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1
광마전생 (201)
천마(天魔).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산이 있는 신강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인물.
그의 이름은 건고경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마교의 귀족이라 불리는 구대종파 출신이 아니었고 천마의 직속 부대인 천마대 출신의 인물로 오로지 실력만으로 천마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가 천마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주 특이한 술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리마경(千里魔境)이라는 것이었는데 이 술법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곳이라면 그게 천 리 이내라면 어디든 공간을 열어 이동할 수 있는 술법이었다.
게다가 이 술법은 혈마의 이동술법과는 다르게 공간을 통과한 모든 이들을 옮겨 주었기에 가히 도술을 넘어 신술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 능력을 사용해 천마비고와 천마동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고 그로 인해 지금 천마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마교를 거느리고 있었다.
기기긱!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는 공간.
늦은 밤 천마의 개인 수련동인 천마동에 있던 천마는 그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 어딘가로 이동했고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곡화성 인근의 산속이었다.
그가 지금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곤륜을 몰래 탐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마교가 패배할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마경들을 모조리 빼앗겼음에도 그는 마교가 무조건 이길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건고경 자신이 천마로 있으니까.
애초부터 그가 진심으로 곤륜을 박살 내려고 했다면 바로 천리마경을 활용했을 것이다.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의 후방에서 나타나 쓸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구대종파를 휘어잡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그가 여기에 나타나 온 것은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잠깐의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고 적당히 파성룡이나 유성룡 중 한 명을 죽이고 돌아갈 셈이었다.
그런데 깊은 숲속의 어둠을 헤치고 언덕을 내려왔을 때.
그는 한 여성과 마주했다.
그녀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몸과 얼굴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홀로 달빛 아래에서 검무를 추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호수라는 것이었다.
꽁꽁 언 호수 위에서 그녀는 한기를 흩뿌리며 초식을 전개했고 이에 빙판은 깨어져 나가면서도 그 매서운 한기에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그 신비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천마는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도 검무도 그리고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의 무공이었다.
무척이나 앳되어 보임에도 그녀의 무공은 한없이 고강해 보였고 내뿜는 기운 역시 예사가 아니었다.
‘최소 화경의 고수. 이 중원에 내가 모르는 고수가 있었다니. 놀랍구나.’
순수하게 감탄하는 그는 어느새 빙판 위에 올라서 있었고 이에 검무를 추던 여성이 누군가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멈춰 섰다.
“이 야심한 밤에 뉘신지요.”
“아.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하오. 소저, 그저 그대의 검무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고 말았소.”
그렇게 말하며 정면으로 그녀를 응시한 천마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면으로 마주한 그 여성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몇십 배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뚜렷한 이목구비.
거기에 푸른 벽안과 달빛에 비치는 새하얀 피부는 그가 여태껏 본 여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웠다.
“전 누군가가 훔쳐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게 용건이 없으시다면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아름다운 외모가 그의 눈을 홀렸다면 무척이나 차가운 말투였지만 아름다운 미성은 그의 귀를 홀렸고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검무는 그의 마음을 홀렸다.
한마디로 천마는 지금 처음 보는 여성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바로 북해빙궁의 공주이자 모용진의 아내인 설백이었다.
그녀가 늦은 밤 이렇게 홀로 호수 위에 서 있는 이유는 모두 모용진 때문이었다.
창천신검(猖天神劍) 제 사초식 격풍회선(擊風回旋).
그가 펼친 한 초식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가 펼친 것은 단순한 무공이 아닌 하나의 자연재해와도 같은 것이었고 이러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도한 그녀는 자신의 무공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펼친 창천신검에 비교하면 자신의 빙백신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이걸 계속 익혀나가야 하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용진이 했던 약조.
자신을 이긴다면 창천신검을 가르쳐 주겠다는 그 약조가 절대 넘어설 수 없는 하나의 벽으로 다가왔고 이젠 그의 강함이 약간 두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여러모로 싱숭생숭했던 그녀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이곳에 나와 검무로 마음을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도중에 갑자기 방해꾼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설백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그를 향해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자신의 시간을 방해한 방해꾼에게 곧바로 달려들었을 그녀였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누군가와 다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그녀였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돌려보내려 했는데 그 방해꾼은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설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살기를 흩뿌리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한줄기 섬광과 함께 잘려 나가는 빙판.
그 검기는 정확하게 천마와 설백 사이를 갈랐고 그 위력에 천마가 밟고 있던 잘려 나간 빙판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이건 경고입니다.”
“하하…… 실례했습니다, 소저. 검무만큼 그 검기도 강렬하고 아름답구려. 내 잠시 소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조금만 이해해 주십시오.”
“…….”
“그리고 아깐 용건이 없었지만, 이제는 생긴 것 같소.”
그렇게 말한 천마는 가볍게 발을 굴리더니 물 위를 밟고 설백의 빙판으로 다시 올라왔다.
“우선 통성명부터 할까 싶은데. 내 이름은 건고경. 높을 고(高)자에 볕 경(景)자요.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한줄기 햇빛을 뜻하오.”
“내가 굳이 이름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아무에게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럼 내가 그 ‘아무’가 아니면 어떻소. 내 이름은 건고경이지만 이 세상에 나를 이름 석 자로 부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소. 이곳에서는 나를 교주라고 부르고 중원에서는 나를 마귀(魔鬼)라 부르며 무림에서는 천마라고 부르지요.”
천마라는 말에 설백이 살짝 놀란 듯이 반응을 하자 천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천마라고 하여 오해하지 마시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무공을 익힌 무림인일 뿐. 다만 천마신교라는 거대한 단체를 이끌어 가는 교주일 뿐이지. 그대를 해할 생각은 없소.”
“천마…… 그대가 천마라면 더욱더 저랑 말을 섞어서는 아니됩니다만.”
“어째서요?”
“그거야 나는 천마와는 반대되는 곳의 인물이니까.”
“반대되는 곳이라…… 요즘 같은 세상에 반대되는 곳이 있긴 하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어딘지 한번 말해보오. 나는 이렇게 출신과 이름을 모두 밝혔는데 같은 무림인으로서 그대도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니겠소?”
예의를 따지는 천마의 말에 설백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 이름은 설백.”
“설백이라. 그대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이름이구려.”
“고작 천마 따위한테 오르내릴 이름이 아니고 통성명도 끝났으니 이만 꺼져 주시지요. 이 달밤에 피를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만 물러가라는 설백의 날카로운 경고에도 천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용건이 있으면 있어도 되는 것 아니었소?”
“그대가 바라는 대로 통성명은 끝났을 텐데.”
“제 용건은 그게 아니라서 말이오. 통성명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 미리 서로를 알기 위한 것일 뿐이었소. 그런데 그대는 내가 천마라는 사실을 알고도 두렵지 않소? 중원의 무림인들은 나를 그렇게나 두려워한다던데.”
“북해빙궁은 중원에 있지 않죠. 그리고 내가 천마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설백은 이제 대놓고 살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듯한 설백의 진한 살기.
하지만 상대는 천마였다.
그는 그러한 살기를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이더니 웃으며 설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용건은 간단하오. 내 손을 잡고 나를 따라오시오. 내 그대를 아내로 맞이해 천마신교의 모든 것을 누리게 해 줄 터이니.”
설백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천마의 충격적인 말.
하지만 그러한 말에 설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릴 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이런 일을 수십 번은 겪어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천마를 향해 날카로운 검기를 흩뿌렸다.
스악!
섬찟한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가는 빙판.
설백의 검기는 정확하게 그가 서 있는 빙판만을 잘라 냈고 이에 또 천마는 자연스레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난 이미 지아비가 있는 몸. 그러니 헛수고 말고 지금 당장 꺼지는 게 좋을 겁니다.”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소. 난 그런 것에 딱히 신경도 쓰지 않으니 소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
“천마가 미친놈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자였군.”
설백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들어 목을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진짜 천마 같았다.
그리고 그가 만일 진짜 천마라면 싸움은 쉽게 끝날 리가 없었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설백은 나름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지금은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상황.
게다가 천마는 모용진이 협상 대상으로 보고 있는 자였으니 설백이 그를 쓰러뜨려 제거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나보다 강한 자가 아니라면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럼 내 말은 들어야겠군. 나는 그 천마이니까 말이야.”
“그건 싸워 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나는 지금 여러 가지 이유로 별로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죠.”
“뭘 어떻게 하잔 거지?”
“당신이 내 지아비를 상대로 일대일로 싸워 이긴다면 그대의 그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들어드리지요. 내 지아비는 정정당당하게 나와 겨루어 승리함으로써 나를 거두었으니 천마인 당신도 그를 꺾어야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오…… 그 지아비가 누구지?”
천마가 흥미가 돋는다는 듯 눈을 빛내자 설백은 잘 걸렸다는 듯이 똑같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곤륜과 사천당가. 그들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자가 바로 내 지아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