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2
광마전생 (202)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겐가?”
“저는 남의 검무를 훔쳐보며 지아비가 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고자 하는 이에게 농담을 할 정도로 좋은 성격이 아닙니다.”
“그럼 그 까칠한 곤륜의 도인 놈들이랑 콧대 높은 사천당가 위에 정말로 누군가가 있다는 건가?”
“믿기 싫으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당신이 진짜 천마라면 머지않아 만나게 될 테니까.”
설백의 말에 천마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내 그자를 쓰러뜨려 그대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겠소. 그대의 말대로 어차피 곧 만나게 될 것이었는데 조금 앞당겨진 걸로 하지. 어디로 가면 되오?”
당장 가자는 천마의 말에 설백은 고개를 내저으며 검을 거두었다.
“그건 일대일의 대결이 아니라 야간의 급습이 아닌가요. 아침 해가 밝은 사시(巳時)가 되면 곡화성의 뒤쪽으로 오십시오. 그곳에 제 지아비가 있으니.”
“지금 나보고 적진 한중간에 홀로 가란 말인가? 그대가 무슨 짓을 꾸며 놓을지 어떻게 알고?”
“검무를 추던 저를 몰래 훔쳐보고 말을 걸어온 건 그쪽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지아비는 충분히 강해서 수작질 따위 하지 않아도 마인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으니까요. 만일 다른 이들이 그대를 공격하려 한다면 내가 막아 드리죠. 저도 충분히 강하니까.”
설백의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말에 천마는 크게 웃기 시작했고 잠시 후 웃음을 그친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사시라. 곧 내 아내가 될 자의 말인데 지아비가 돼서 이를 믿지 못한다면 안 되겠지. 그럼 그때까지 갈 테니 기다리시오.”
“굳이 혼자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걱정이 되신다면 마인들을 잔뜩 데리고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그 또한 내 지아비가 혼자 상대할 터이니.”
“크크크. 그대는 농을 참으로 잘하는구려.”
“좋을 대로 생각하십시오.”
천마는 잠시 설백을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과 함께 사라졌고 홀로 남은 설백은 그가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천마라……. 만일 저자가 진짜 천마라면 가가에겐 오히려 잘된 일일 거야. 굳이 불러내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온 거니까.”
놀랍게도 그녀는 걱정이라는 것을 단 일(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그 강렬한 창천신검의 초식을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아침.
오랜만에 진유혼과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진 모용진은 곤히 자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의 품에 누군가가 살포시 안겨 왔다.
익숙한 느낌에 설백이겠거니 해서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은 모용진.
그런데 잠시 후 엄청나게 냉랭하다 못해 살벌한 설백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가가, 지금…… 뭐 하는 거야?”
그와 동시에 전신을 훑는 날카로운 살기에 모용진은 눈을 번쩍 떴다.
“으음? 설백?”
살기에 놀란 그의 눈앞엔 잔뜩 화가 난 듯한 설백이 서 있었고 순간 모용진은 머리가 아찔해져 옴을 느꼈다.
잠결에 분명 설백이라고 생각하고 껴안은 인물.
조심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모용진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밀어냈는데, 사실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으허헉!”
“음냐…… 추워어…….”
모용진에게서 떨어져 나가자마자 춥다며 몸을 웅크리는 그녀는 바로 한때 왕세진으로 그의 옆에 붙어 있던 은월령의 양양이었다.
어젯밤 그녀는 모용진이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경계근무가 끝나자마자 그를 찾아왔고, 모용진과 진유혼이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끼어들었다.
누군가에게 엉겨 붙는 잠버릇은 여전한지 양양은 모용진에게 자연스럽게 붙었고 이에 지금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잠, 잠깐만, 설백아. 이건 오해야. 정말로 오해…….”
모용진은 다시 필사적으로(?) 달라붙으려는 양양을 손으로 떼어 내며 황급히 변명을 했지만 설백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가가도 남자니까 그럴 순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전장에서? 아내가 심란하여 잠시 떠나 있는 사이에 여자를 둘이나 끼고 놀고 있었다니…….”
“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
모용진의 말에 설백은 대답 대신 누군가를 손짓으로 가리켰고 그곳에는 진유혼이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미인이었다.
“남자 옷을 입혀 놨다고 해서 저런 미인을 내가 못 알아볼 것 같아?!”
“잠깐만. 그것도 오해야! 쟨 남자라고, 남자! 그리고 여기 이놈은 남장여자고!”
“잠깐……. 그럼 가가는 설마 남색가였던거야? 그런 거였어?”
“아니, 잠깐만! 왜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나쁜 놈! 바보, 멍청이, 변태, 저질!”
놀랍게도 설백은 어떠한 손찌검도 하지 않았고 귀여운 욕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반응에 놀란 모용진은 달라붙는 양양을 진유혼에게 던져 버리며 밖으로 따라 나갔다.
“설백! 그러니까 이건 오해…… 응?”
막사를 나오자마자 모용진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설백이 어디론가 가지 않고 막사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화난 얼굴로 모용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바로 내 뒤를 쫓는 걸 보면. 북해에서 남편이 바람났을 때 여자가 남자의 속을 떠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야. 따라서 뛰쳐나오나, 안 나오나를 보고 판단하는 거지.”
“그, 그거야 당연하지. 내 아내가 큰 오해를 하고 나갔는데.”
“오해? 무슨 오해? 남색가라는 거? 아니면 밤새 여자 둘을 끼고 논 거?”
“둘 다! 나는 남색가도 아니고 여자를 끼고 놀지도 않았어! 말했듯이 한 놈은 남자고 한 명은 남장여자인데 둘 다 내가 학관 생활 할 때의 친구였고 오랜만에 만나서 술을 조금…….”
모용진은 양손까지 써 가며 필사적으로 해명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백의 표정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모용진의 말을 듣던 설백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를 향해 진한 살기를 내뿜었다.
“변명이 어떠한들. 내 남편이 내가 없는 사이에 어려 보이는 여성과 껴안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 안 그래?”
“그건 설백인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양양 저것이 옛날부터 이상한 잠버릇이…….”
“옛날? 그럼 옛날에도 그렇게 둘이 붙어서 지냈다 이런 말이야?”
말을 할수록 점점 꼬여만 가는 느낌에 모용진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곤 황급히 노선을 바꿨다.
털썩.
자존심은 개나 주라는 듯이 가볍게 꿇어지는 모용진의 두 무릎.
그는 설백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인.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정말 오해십니다!”
남성이 여성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중원에서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북해라고 해서 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고 하물며 흑천파의 수장이자 전대 무림맹주이자 광마였던 천기린의 무릎을 진심으로 꿇린 것은 그의 스승을 제외하고는 설백이 처음이었다.
“정말이야?”
“예, 부인! 정말 오해이십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절대 없습니다! 제가 양양 그놈을 멀리 천축국으로 보내 버릴 테니…….”
“그럼 잘못을 했으니 가가가 내 부탁도 들어줘야겠네.”
“물론이죠. 말씀만 하십시오, 부인. 창천신검을 가르쳐 달란 것만 빼면 뭐든…….”
“쳇.”
곧바로 창천신검에 대한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모용진의 말에 설백이 혀를 찼지만 그녀에겐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럼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 줘야겠어.”
“응? 갑자기?”
“어젯밤에 가가의 초식을 보고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서 마음을 진정시키러 근처 호수에 갔었거든. 거기서 만난 자야.”
“그런데 왜 갑자기 나랑 그자를…….”
“그자가 나에게 청혼했거든. 물론 나는 남편이 있다며 거절했지만 상관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날 가지고 싶다면 내 지아비랑 싸워 이기라고 했지.”
설백의 말에 모용진은 조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그가 아는 설백은 절대로 싸움을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그녀의 성격상 곧바로 검을 휘둘렀어야 정상이었고 상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야 정상이었다.
“그…….”
“천마야.”
“예?”
“어젯밤 나에게 청혼한 남자. 본인을 천마라고 하더라고.”
모용진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것에 있어서 농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말은…… 설백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야?”
모용진의 물음에 설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해를 가리켰다.
“사시에 그가 이곳에 찾아오기로 했어. 정정당당하게 가가와 승부를 겨루겠다고. 참, 혼자 올지, 누군가를 데려올지, 대군을 끌고 올진 나도 몰라.”
“사시?”
놀라 하늘을 본 모용진은 이미 사시가 다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 조금 있으면 그 천마가 이곳에 나타난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그는 정정당당하게 일대일을 하기로 했으니 가가도 그렇게 해 주리라고 믿어.”
일대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모용진에게 생겨난 문제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바로 설백에 관한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모용진은 설백에게 다가가 그녀를 힘껏 끌어안더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엇……?”
생각지도 못한 모용진의 포옹에 설백이 살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있을 때, 그녀의 귓가로 모용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감히 천마 따위가 내 아내를 넘보다니 말이야. 놈이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어?”
염려가 가득 들어차 있는 목소리.
하지만 그런 모용진의 목소리엔 깊은 분노가 어려 있었고 이는 설백이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다가오려고 했지만 내가 검기로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어. 그러니까 아무 일도…….”
“다가오려 했다?”
모용진의 목소리엔 한층 더 깊어진 분노가 어려 있었고 이에 설백은 깜짝 놀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도 화를 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화가 설백을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설백은 두려웠다.
어제 봤던 그 재앙 같은 창천신검의 초식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려 두려 했었는데. 아쉽게도 계획을 바꿔야겠어.”
모용진에게 새로이 생긴 문제.
그것은 세워 뒀던 계획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문제였다.
원래 모용진은 천마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천마를 이용하는 쪽으로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아내에게 추파를 던졌고 이는 모용진에게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마는 오늘 죽는다. 그리고 그의 천마신교도 내 손에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