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7
광마전생 (207)
40장
스윽.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노파의 시야에서 사라진 모용진은 어느새 천마의 뒤에 나타나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뻗어지는 모용진의 살수.
하지만 그 공격은 또 한 번 노파의 손에 가로막혔다.
“고얀지고! 본 녀의 말을 무시하다니! 네가 정녕 벌주를 마시려는 게냐!”
노파는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더니 모용진을 향해 발을 내뻗었다.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몸놀림.
그리고 그 발차기의 위력 역시 예사의 것이 아니었다.
쿵!
모용진이 팔을 들어 막았음에도 그의 몸은 삼 장이나 밀려났고 노파는 이에 곧바로 따라붙으면서 모용진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본 녀를 화나게 했으니 너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곧게 내뻗는 노파의 주먹.
그런데 모용진은 그 주먹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봤던 주먹인 그것은 바로 천마신권의 초식이었다.
본 녀라는 말과 흉악스러운 마기 그리고 천마신권까지.
순간 머릿속에 한 여성이 떠올랐으나 모용진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무아를 펼쳤다.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리가. 언젯적 사람인데…….’
무아의 세상 속에서 모용진은 노파의 주먹을 가볍게 밀어내며 역으로 주먹을 내질렀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견용(見用)을 쓸 줄 아는 것이냐?!”
그 무아의 세상 속에서 노파가 모용진을 향해 말을 건 것이었다.
보통은 반응하기조차 힘겨워해야 정상이었는데 노파는 모용진의 주먹을 회피하며 말까지 걸어왔다.
그 말인즉 노파 역시 무아를 사용할 수 있고 모용진이 펼친 무아의 세상에 노파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견용……. 무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네가 펼친 이 공간. 우리는 오래전부터 견용이라고 불러 왔다.”
“오래전부터라……. 꽤나 오래 사셨나 보군요.”
그들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했으나 그들의 손과 발은 잠시도 쉬고 있지 않았다.
무아 속에서 노파의 천마신권에 대항해 모용진은 극양초열권을 사용했고 마기와 화기로 둘러싸인 네 개의 주먹은 쉴 새 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또 방어했다.
이 정도의 격투가 벌어진다면 바깥은 난리가 났어야 정상이었지만 오히려 바깥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노파가 펼친 무언가가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던 천마는 문득 지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노파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왜 도와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도망친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었다.
천마로써 꽁지를 빼고 도망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천마는 판단이 서자마자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이에 마인들이 천마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당철삼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천마가 도망친다! 천마를 잡아라!”
당철삼의 외침과 함께 꺼져 있던 불씨가 다시 타올랐고 흑천파가 도망가는 천마를 일제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마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이미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이었고 게다가 지금 흑천파의 본진에는 화경의 고수만 둘이었다.
홍련의 명령에 순식간에 마인들을 가로지른 사자들은 그들의 앞을 막았고 당가의 사람들은 후방에서 마인들을 압박했다.
이번 전쟁으로 다져진 은월령과 당가의 합공은 무시무시했고 그들 중에서도 당철삼과 홍련의 활약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순식간에 마인들 사이로 파고든 당철삼은 독무(毒霧)를 퍼뜨리며 이독지법(異毒指法)으로 수십의 마인들을 쓰러뜨리며 나아갔고 홍련 역시 그와 정반대편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두 개의 소검으로 마인들을 갈라 버리고 있었다.
마인과 흑천파의 전투가 다시 시작된 그 시각.
무아 속에서 합을 나누고 있던 모용진과 노파 역시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챘다.
하지만 그들은 알면서도 이 무아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먼저 틈을 보이는 쪽이 큰 손해를 볼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견용을 쓸 줄 아는데도 외사를 모른다……. 대체 넌 뭐 하는 놈이냐? 어디서 굴러 들어온 것이냐?”
“굴러 들어오다니요. 저는 원래 이곳 중원에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그건 제가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체 노파께선 어디서 오신 분입니까? 보아하니 천마도 모르는 눈치던데 이렇게 흉악한 마기를 흩뿌리며 천마신권을 사용하는 노파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네깟 놈이 함부로 들을 이름이 아니다! 그러니 얌전히 저 아이만 넘겨주거라. 그럼 네가 나를 보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저는 반드시 저놈을 죽여야 하고 당신에게도 들을 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내게? 뭘 듣겠다는 것이지?”
“금왕. 제 진기를 보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금왕이라고.”
모용진의 말에 노파가 미간을 찌푸리며 모용진의 배를 노리고 주먹을 뻗었으나 모용진의 무릎이 이를 방어함과 동시에 그의 오른 주먹이 노파의 팔을 가격했다.
“크윽!”
“제가 원래 노인을 때리진 않습니다만 당신의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제 물음에 답하시고 얌전히 이 자리를 떠나시지요.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 드리겠습니다.”
“내게 가져가기만 하겠다는 뜻이냐? 이런 오만방자한 녀석을 봤나!”
그 순간 노파의 양팔에서 검은 묵룡이 휘감아 올라오더니 노파의 주먹이 두 배는 더 빨라졌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위력도 세진 노파의 주먹은 극양초월권의 불꽃을 꺼뜨릴 정도로 무시무시해졌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모용진 역시 극양초월권을 극성까지 끌어 올리며 극양초월권의 십이초식 ‘화신강림(火神降臨)’을 사용했다.
무아의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용해 본 화신강림.
사실 무아 속에서 내공을 사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 움직임만 있는 초식이라면 상관이 없었지만 화신강림처럼 내공을 사용해야 하는 초식이라면 엄청난 제약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내공의 사용량이었다.
모용진이 무아를 너무 편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아를 발동하는 데는 상당한 내공을 써야만 했다.
거기다가 그 속에서 또 내공을 쓰려고 하면 몇 곱절은 되는 내기가 필요했기에 무아 속에서 내공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서로 비등비등한 상태에서 노파가 먼저 무공을 사용하니 모용진 역시 무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파의 손에서 생겨난 묵룡과 모용진의 손에서 피어난 화룡이 부딪치자 엄청난 힘의 폭발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이 여파는 바깥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노파와 모용진의 힘과 힘의 대결.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고 그때마다 대지는 미친 듯이 흔들리며 부서져 나갔다.
콰가가가가각!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주먹의 교환.
하지만 그 주먹을 먼저 거두어들인 것은 놀랍게도 모용진이었다.
“아무래도 승부는 난 것 같군요.”
“뭣?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더냐?”
“제 부하들이 워낙 유능해서 말입니다.”
모용진의 말과 함께 자연스레 무아도 풀려나갔다.
초토화가 되어 버린 진지.
하지만 모용진은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에 노파 역시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썩을…….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
혀를 차는 노파의 눈앞에는 손가락에 독기를 휘감은 당철삼과 소검에 불꽃을 휘날리고 있는 홍련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
그곳엔 천마가 그 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확실히 인복은 있단 말이지…….”
* * *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나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철삼과 홍련이 천마를 붙잡을 줄이야.
놀랍게도 그들은 천마는 물론 그 수많은 마인들까지 모조리 제압해 두고 있었다.
내가 이 정도로 그들을 잘 키웠던가?
분명 어느 정도 내 수훈도 있을 것이다.
무공이나 영약 등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줬으니까.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그들의 물음에 대답해 줬고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내놓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이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오지 않았어도 됐겠는걸? 둘이서 천마를 붙잡을 줄이야.”
“스승님께서 천마를 미리 상대하셨기에 저흰 그저 기진(氣晉)이 다한 이를 붙잡은 것뿐입니다.”
“겸손하기는. 자, 그래서 이제 노파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 부하들이 천마를 붙잡았고 전 당신을 붙잡았으니 이제 당신이 천마를 살리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한 나는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파천검을 향해 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완벽한 허공섭물로 내 손에 들어온 파천검.
나는 노파를 향해 보란 듯이 그 검을 휘둘렀다.
“제 기운을 보고 금왕을 떠올리셨으니 당연히 제가 사용하는 검법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시겠지요.”
내 말에 노파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정녕 네가 그 금왕의 검법을 익혔단 말이냐?”
“지금 확인해 보셔도 전 괜찮습니다. 천마도 손에 넣었고 파천검도 열두 자루나 있으니 더 이상 제가 물러날 이유가 없으니까요.”
“감히 본 녀를 협박하는 것이냐? 간이 아주 크구나.”
“저는 간땡이를 배 밖에 내둔 토끼와도 같은 놈이라서 말입니다.”
“떼잉……. 한마디도 지지 않는구나.”
혀끝을 찬 노파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마를 흘끗 쳐다보고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부하들을 물려라. 단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안 됩니다, 흑제 님. 노파임에도 흉악한 마기를 사용하는 자입니다. 방심했다간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노파의 말에 홍련이 먼저 나서서 나를 만류하려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 마. 난 방심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다. 당철삼, 홍련, 둘은 천마가 도망가지 못하게 잘 붙들고 있도록. 그는 공간을 이동하는 요상한 술법을 사용하는 자다. 만일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가차 없이 팔다리를 잘라 버리도록.”
이는 홍련과 당철삼에게 한 말이 아닌 노파와 천마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노파는 천마에게 무언가 전음을 날리는 듯했고 이에 천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디서 이야기를 나누실 겁니까? 괜찮으면 저희 막사로 가시지요. 내 마인은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께 들을 이야기가 있으니 손수 차 한 잔 정도는 내어 드리겠습니다.”
“너는 마치 본 녀가 모든 걸 말해 줄 것처럼 말을 하는구나. 끌끌…….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좋다. 상황이 이러하니 본녀가 어울려 줄 수밖에.”
그렇게 말한 노파는 당당하게 자신의 등을 보이더니 나를 보며 턱짓을 했다.
“안내해라, 건방진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