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0
광마전생 (210)
천마가 다시 천산을 밟게 된 것은 모용진과 천마손이 약조를 맺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수습해야 할 시신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인은 죽을 때 온몸이 불타 사라진다고 하나 그들의 유품과 일부 뼛가루는 남는다.
이는 마인이 마공을 얼마나 익혔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깊이가 얕을수록 더 많은 흔적이 남았다.
아무리 마인이라고 해도 가족이 있고 장례도 치렀기에 천마손은 그 모든 시신을 회수하길 원했고 천마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천마는 이제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 버렸으니까.
사흘 전.
천마를 억지로 끌고 간 천마손은 처참하게 짓이겨진 곡화성의 성벽을 향해 그를 집어 던졌다.
쾅!
“크억!”
벽과 강하게 부딪쳐 고통스러워하는 천마.
천마손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당대 천마는 보거라. 지금 곡화성의 성벽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는 본 녀가 천산의 주인으로 있었을 땐 상상치도 못한 일이다.”
“쿨럭…….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곳까지 끌려오는 내내 천마는 거칠게 저항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천마손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천마가 지금 경어를 쓰고 있는 이유는 그 저항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녀가 내뿜는 마기를 바로 옆에서 마주하자 평범한 인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본 녀는 너와 구면인 사이다.”
“언젠가 제게 여자 때문에 단명할 상이라고 말하신 노파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호오……. 그걸 아직도 기억하다니. 하긴, 어렸을 때부터 너는 총명했지.”
“그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누구인지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요.”
“기억이 없다라……. 쯧. 이러니 검은 머리 짐승은 키워 봤자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지.”
“예?”
“천리마경(千里魔境). 네가 천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술법. 그 술법을 전수해 준 이가 진정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냐?”
천마손의 말에 천마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마는 당연히 천리마경을 가르쳐 준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유일한 스승이었고 어릴 적 자신을 보호해 주던 어머니이자 첫사랑이기도 했으니까.
“천손……. 지금 당신이 그 천손이라는 말입니까?”
“한땐 본 녀가 그런 이름을 쓰기도 했었지.”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고 해도 그분은…….”
천마가 천마손의 말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지금 천마손의 외형이 너무 늙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그를 돌봐 주고 천리마경을 가르쳐 준 천손은 꽃다운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고 그때 그녀가 많이 어려 보였다고 가정해도 지금 천손은 오십 대가 넘어갈 리가 없었다.
“외형 말이냐? 본 녀가 많이 자글자글해지긴 했지. 요즘 통 먹질 못해서 말이야.”
“먹질 못하다니…… 그게 무슨…….”
“아무튼 본 녀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칭찬해 주마. 그러니 상으로 진짜 이름을 알려 주지. 본 녀의 이름은 천가 마손. 너도 천마동에 들어갔을 테니 이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천가 마손…… 천마손……. 서, 설마 그 천마손이십니까?!”
천마손은 마교에 있어서 전설과도 같은 존재.
당연히 천마가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천마의 눈빛 속에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녀가 몇백 년 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으니 말이야. 하나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본 녀는 허구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네놈도 봤을 텐데? 본녀가 어떤 무공을 쓰는지. 천마 이외에 그 무공들을 쓰는 자가 이 중원에 있더냐?”
천마손의 말에 천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이에 그녀는 그를 향해 다그쳤다.
“알았으면 뭐 하는 게냐! 당장 마교의 조사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그렇게 천마손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고 천마는 그날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오늘 천마는 천마손과 함께 천산을 밟았고 천마손은 마교가 자신의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천마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천마를 마중 나온 이들이 그 모습을 상당히 의아해하며 쳐다봤지만 그 누구도 천마손을 저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산에 입산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마기를 보란 듯이 풀어놨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짙은 마기를 풀풀 풍기던 그녀가 작정하고 마기를 흩뿌리니 그 누구도 감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천마를 데리고 간 곳은 마교의 본관이자 천마를 알현하는 궁인 천마궁(天魔宮)이었다.
끼이익, 쿵!
천마손이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천마손을 향했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군. 이번 전쟁에서 그만큼 많이 죽었다는 뜻이려나?”
그녀가 천마궁의 내부로 발을 디디려는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입산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다름 아닌 구대종파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천인종(天人種)의 수장 천마현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모두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든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바로 천마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천인종의 수장 천마현이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기 때문이다.
“천가 마현! 마를 이룩하지 못한 부끄러운 종자가 조사님을 뵙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낮추며 천마손을 향해 조사라고 칭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깜짝 놀랐는데 이어서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천마손이 손으로 그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냅다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구나, 마현. 알면 본 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둘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듯했고 그러한 모습에 천마가 천마현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는 동안 천마손은 어느새 천마현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에 천마는 그녀의 뒤를 재빠르게 따라갔지만 갑자기 뒤를 돌아본 그녀가 천마를 바라보며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천마의 자리인 천좌까지 일자로 쭉 깔려 있는 붉은 깔개.
천마손은 그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네 자리는 여기다, 천마.”
이곳에서 꿇으라는 천마손의 말.
이는 그에게 있어 무척이나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그에게 반항할 힘은 없었다.
“천마시여!”
“일어나시옵소서! 천마시여!”
천마가 무릎을 꿇자마자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목소리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천마손을 직접 막으려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천인종의 수장인 천마현이 뺨을 맞았고 천마가 무릎을 꿇었으니 다른 이들이 감히 나설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천마를 호위하는 호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천마손을 응시하고 있지만 검조차 빼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천마를 무릎 꿇린 천마손은 그대로 마교의 좌호법과 우호법이 지키는 계단을 지나 천좌를 향해 올라갔고 마침내 천좌에 앉았다.
그녀가 천좌에 앉자마자 모두가 숨을 죽였고 일순 침묵이 맴도는 천마궁.
그때 무릎을 꿇고 있던 천마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모두를 바라보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뭣들 하는 것이냐! 지금 천좌에 오르신 분은 천가 마손! 마교의 전설이라 불리는 진정한 천마이시다! 구호로 그 이름을 찬양하고 목소리로 천마님의 그 업적을 드높여라!”
천마현의 일갈.
그 일갈에 처음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천세, 천세, 천천세! 파천이 강림하셨다!”
하지만 천인종중 누군가가 재빠르게 구호를 외쳤고 이는 잠시후 천인종 전체로 퍼져나갔다.
“천세, 천세, 천천세! 파천이 강림하셨다!”
“천세, 천세, 천천세! 파천이 강림하셨다!”
그리고 그 기세는 모두에게 전해져 천마궁에 있는 모두가 열혈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천마손은 옅게 미소를 짓더니 이내 얼굴을 굳히며 일갈을 내질렀다.
“그만! 아무리 본 녀가 강림했다고 하나. 지금의 천마는 저 아래에 무릎 꿇고 있는 저자가 아니더냐. 지금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대들이 나를 드높이면 어쩌자는 것이냐!”
난데없는 천마손의 호통에 모두가 일순 조용해지자 천마손은 그제야 만족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천좌에 몸을 기댔다.
“천마여.”
“예.”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오라.”
천마를 부른 그녀는 천마가 자신의 앞에 서자 자신의 바로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게 했다.
“본 녀가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마교의 위상을 무너뜨린 현 천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야.”
“제 불찰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손이시어.”
“그러니 내가 항상 계집을 조심하라 일렀거늘. 쯧. 너의 그 알량한 자만심이 수백의 마인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중원을 벌벌 떨게 만들어야 할 천산은 강제로 봉문당하여 이곳에 가두어졌다. 그대는 이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천마손의 말에 천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이에 그녀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몸을 앞으로 숙여 천마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 위험천만한 놈이 앞으로 중원을 뒤흔들 테고 언젠가는 그 칼날이 다시 마교를 향하겠지. 그러면 결국 넌 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또 한 번 그자에게 당하지 않도록 천마동에 들어가 폐관수련(閉關修鍊)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손 님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아이야,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구나. 눈치도 빠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정답을 알고 있어.”
갑작스러운 천마손의 이상한 말에 천마가 눈을 크게 뜨자 천마손이 웃으며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놈이 앞으로 어떻게 마교를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것이 아니야. 아이야, 왜 본 녀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너에게 천리마경이라는 술법과 무공을 가르쳐 천마가 되게 하였는지 아느냐?”
그녀의 질문에 천마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이에 천마손은 말을 계속 이어 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천마의 고결한 피를 이어받은 자, 즉 본 녀의 피를 이어받은 이를 제물로 삼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말이냐며 천마가 입을 열려는 그 순간 천마손의 손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전신을 휘감더니 그의 손과 발이 검은 마기에 녹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천마였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네놈이 본 녀를 흠모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두 눈으로 마지막까지 잘 지켜보도록. 본 녀가 제물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니라.”
턱을 붙잡힌 채 들어 올려진 천마의 얼굴.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그 눈동자에는 천마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늙은 노파의 얼굴에서 점점 젊어지는 천마손의 얼굴.
그리고 마침내 천마손의 검은 마기가 천마의 목까지 올라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천마가 알고 있던 옛 아리따운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천……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