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3
광마전생 (213)
모용진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막는 염적문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그 시각.
독약전과 시귀까지 마저 처리하려던 유미옥 일행은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사실 그들이 독약전을 치는 것까지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 감행한 습격은 성공적으로 독약전을 제압했고 류성아가 독약전의 수장인 하두를 제거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시귀였다.
시귀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유미옥은 전체를 이끌고 상해의 근처에 위치한 양당호를 향했다.
그런데 양당호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의 인적이 귀신같이 사라졌고 사방이 짙은 안개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는데 그녀들은 처음엔 단순한 운무(雲霧)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주변을 수색했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운무가 아닌 진법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걸.
유미옥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네 개의 조로 나뉘어 생문(生門)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생문은커녕 단서조차 나오지 않았고 이에 크게 당황한 류성아와 악노 들이 지형 자체를 훼손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단순히 진법에 갇힌 것만이 아니었다.
“오늘로 며칠째인지 모르겠군요.”
“큰일입니다. 이제 단순히 발이 묶인 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다.
평소 오랜 기간 동안 바깥을 맴돌며 정보를 모으는 은월령의 사자들이 지니고 있던 벽곡단 덕택에 여태껏 잘 버텨 왔지만 이제 남은 벽곡단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최대한 아껴 먹는다고 해도 사오 일 내엔 동이 날 것이었고 진법 안에는 이렇다 할 먹을 것이 없었다.
호수가 있어 먹을 물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됐지만 놀랍게도 그 외엔 물고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진법 속은 흔한 벌레조차 보이지 않았고 땅을 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피로도 문제입니다. 장로님 지금 다들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악노의 말에 류성아는 안색을 굳히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진법 속에서 버티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바로 해가 떨어지는 밤마다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들이 땅에서 튀어나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해가 뜨면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매일 밤마다 그 괴물들과 싸워야 하니 쌓이는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저희들의 소식이 없음을 깨달은 사자들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이 정도로 넓은 규모의 진법이라면 바깥에서는 쉬이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어떻게든 버티면 흑천파가 우리를 구하러 와 줄 것입니다.”
힘을 내자는 류성아의 말에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아지지 못하던 그때. 이 모습들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흑천의 도원영과 시귀 독진이었다.
“크큭. 버틴다고 버텨질 게 아닐 텐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제 길어 봤자 수일 내. 그들의 목숨은 경각에 달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양당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근처의 전각이었다.
전각의 아래엔 양당호 전체를 덮은 엄청난 규모의 진법이 펼쳐지고 있었고 흑천의 병사들이 그 진법 밖을 꼼꼼히 둘러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역시 자네의 시귀진(屍鬼陳)의 위력은 대단하군. 이 수많은 인원을 한 번에 붙잡은 것도 모자라 며칠씩이나 가둬 두다니 말이야.”
놀랍게도 이 진법을 펼친 이는 바로 시귀 독진이었다.
단신의 몸으로 흑천의 열두 번째 장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시귀 독진.
이름만 들어서는 왠지 독이나 암살과 같은 것을 할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진면목은 바로 진법이었다.
시귀라는 별호가 붙은 것도 그가 사용하는 시귀진 덕분에 붙은 것이었는데 너무나도 오래전에 붙은 별호였기에 그 사실을 아는 자는 거의 없었다.
“자, 한 잔 받으십시오, 흑제 님.”
“그러지.”
구부정한 등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독진은 도원영에게 술을 따르며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큰일을 하나 해낸 것 같은데 저번에 말씀하셨던 보상은 확실히 받을 수 있겠지요? 헤헤헤.”
“그거라면 걱정 말게. 이번 일만 잘 처리한다면 내가 직접 그분께 자네를 소개시켜 주지.”
“흐흐흐. 흑제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음흉하게 웃는 시귀를 슬쩍 바라본 도원영은 옅은 미소를 띠더니 고개를 돌려 전각의 아래 멀리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류성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류성아, 은월령의 령주가 된 네가 여기 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분명 그 녀석들도 이곳으로 오겠지.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모였을 때 너는 죽을 것이다. 내 부귀영화와 안녕을 위해 은월령은 이 중원에서 사라져 줘야겠다.’
“뭐가 그리 즐거우신 겁니까? 혹 또 다른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좋은 일이야 모두 그대의 덕이지. 그대가 저놈들을 잡아 준 덕에 내 길고 긴 과거의 연줄을 드디어 끊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렇습니까? 흐흐흐.”
“그래, 그렇지.”
도원영은 시귀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며 술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목이 화끈할 정도로 독한 술이었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성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그 술이 너무나도 달게 느껴지는 도원영이었다.
‘은월령. 지금이라면 내가 보낸 서신을 받았겠지.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이야. 네놈들의 령주가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네놈들이 사자들을 이끌고 령주를 찾는 그 순간 나와 은월령의 지긋지긋한 악연도 모두 끝이다.’
도원영의 생각대로 그의 서신은 은월령의 사자들에게 전해져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은월령으로 도원영이 어떻게 서신을 보낼 수 있었냐면,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가장 정보거리가 많은 하남에 은월령만이 알아볼 수 있는 전보를 널리 퍼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보는 사자들을 통해 하북으로 이주하느라 바쁜 제갈영의 귀에도 들어갔다.
놀랍게도 제갈영은 그 짧은 시간 만에 하북 내 흑천파의 새로운 본거지가 될 곳을 물색하고 구매하는 것도 모자라 이주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친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중경에서 흑천파의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하북에 도착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그들을 기다리는 사이에 이 전보가 그녀에게 도착한 것이었다.
“성아가 흑천에 붙잡히다니…….”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금 흑천의 전력은 아직 중경에서 하북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교와의 전쟁도 끝났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이제 막 산서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을 보내 왔을 뿐이고, 그들이 조금 일찍 도착한다고 하여도 막상 새로운 흑천파의 보금자리에서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 산더미와 같았다.
게다가 막 전쟁을 끝낸 이들을 쉬게 하지도 못하고 다시 절강 근처로 내려보낸다는 것도 사실상 무리에 가까웠다.
“하필……. 조종려 장로님을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조종려라도 지금 같이 있었다면 그에게 어떻게든 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조종려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이주하는 흑천파들을 지키려 내려가 있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이가 전혀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만드는 사람.
모용진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 * *
중경 녹림.
한때는 녹림도들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던 중경관문.
하지만 흑천파가 이주하면서 텅텅 비게 된 그곳을 오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혁과 이젠 그의 새로운 수행원이 된 삼궁격도(三弓擊刀) 진도석이었다.
“이런 곳에 볼일이 있으시다는 겁니까?”
“찾아야 하는 인물이 있다.”
“여긴 녹림이 관리하는 곳이 아닙니까. 이런 곳에 가주님이 찾는 분이 있다는 겁니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천외천의 어르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지.”
“그 천외천의…….”
“이쪽이다.”
남궁혁은 진도석의 말을 가볍게 끊으며 길이 아닌 가파른 경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진도석도 그 뒤를 따랐다.
그가 이리로 향하는 이유는 예전에도 몇 번 천용현의 부탁으로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중경녹림의 본거지를 알고 있었고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찾은 산채는 마치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것처럼 허름했고 커다란 바위들로 문이 봉쇄되어 있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최소 몇 년간은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원래는 이곳이었다. 중경녹림의 본거지는.”
남궁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용진이 중경녹림을 찾아오기 한참 전의 일이었고 새롭게 지은 녹수각(綠秀閣)을 마음에 들어 한 호태산이 중경녹림을 완전히 이주하기 전의 장소였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더 숲을 탐색했고 마침내 다시 중경관문으로 오르는 길로 돌아와 있었다.
약초를 캐던 약초꾼에게 중경관문을 곧장 올라가면 녹림의 산채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경관문을 지나는 수많은 표국들과 함께 그 끝에 다다른 남궁혁은 또 한 번 멈춰 서고 말았다.
왜냐하면 중경녹림채의 커다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글과 관의 직인이 찍힌 거대한 종이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남궁혁은 지나가는 표사들을 붙잡아 물었다.
“잠시 질문 좀 하겠소.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저기 녹림채 말하는 것이오? 들리는 소문엔 여기 있던 중경녹림이 하룻밤 만에 사라졌다고 하더이다. 그리고 저 산채와 건물은 모두 관에서 사들였다고 하고, 원래 이 중경관문도 녹림채가 관리하던 곳인데 이제 관이 관리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소.”
“관아가 직접 말입니까?”
“그렇지. 소문이기는 하나 관이 녹림을 몰아냈다는 말도 있고 녹림채가 비싼 가격에 이곳을 팔아치웠다는 말도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 들어오는 이런 금싸라기 땅을 파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 관이 녹림을 몰아냈다는 소문을 대부분 믿고 있지. 나도 그렇고.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요.”
“감사합니다.”
표사의 대답에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한 남궁혁은 잠시 생각하는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가 생각하기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무불가침. 아무리 산적이라고 해도 녹림도 엄연히 무림인에 속합니다. 그들이 먼저 관아에 피해를 주거나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이상 관에서도 나서지 않을 텐데 관이 직접 녹림을 이곳에서 몰아내다니요. 게다가 여기는 녹림과 장강의 땅이라고 불리는 중경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진도석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남궁혁은 굳게 닫혀 있는 중경녹림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 한번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