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4
광마전생 (214)
남궁혁은 거대한 대문을 부수거나 억지로 열지 않고 이 장은 될 법한 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이제 관아에서 관리하는 곳이라고 하니 행여 잘못 건드렸다간 문제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안에서 본 중경녹림채는 남궁혁의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넓은 연무장과 높은 전각 그리고 드넓은 연못까지.
당장 눈앞에 되는 건물만 수십 채가 넘어가는 듯했다.
“무슨 산채가 이리도……. 이 정도면 궁궐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흐음…….”
진도석의 말에 남궁혁 역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연무장을 향했다.
최소 수백 명은 동시에 수련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연무장.
이는 남궁세가에 있는 연무장보다 네 배는 큰 규모였다.
“연무장 전체에 여러 흔적이 남아 있군. 그렇다는 것은 정말 이 연무장을 빡빡이 메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뜻인데…….”
“게다가 재질도 뛰어납니다. 이 정도라면 연무장의 값어치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습니다.”
“너는 이쪽을 둘러봐라. 누군가가 있다면 곧장 나에게 알리고 혹시 모르니 설사 먼저 공격을 받는다고 하여도 상대를 죽여선 아니 된다.”
“알겠습니다.”
작은 건물이 많이 몰려있는 쪽으로 진도석을 보낸 남궁혁은 전각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작은 문을 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분명 들어왔을 땐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남궁혁이었다.
그런데 지금 작은 문을 넘자마자 열댓 명이 넘는 인원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이는 지금껏 자신이 진법 안에 갇혀 있었다는 뜻이었다.
“인기척을 지우는 진법인가. 어째서 이런 곳에 그런 진법이…….”
살짝 경계하며 문턱을 완전히 넘은 남궁혁이 안으로 길을 따라 꺾어 들어가는 그 순간 누군가와 눈이 맞았다.
“뉘시오?”
딱 봐도 무림인처럼 보이지 않는 그는 의자에 앉아 남궁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옷차림에 남궁혁은 단번에 그가 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짝 눈치를 보던 남궁혁은 포권을 취하며 가볍게 목례를 올렸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혁이라고 하오.”
“남궁세가의? 남궁세가의 가주가 여긴 어인 일이시오.”
그렇게 말하는 남성의 눈초리엔 의심이 가득했고 이에 남궁혁은 품을 뒤져 자신의 명패를 꺼내 보였다.
“이거면 입증이 되겠습니까.”
“아……!”
명패를 보고 놀란 남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남궁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중경 지방관 청조명이오. 이거 내가 실례를 범했구려. 이런 곳에서 남궁세가의 가주를 뵙게 될 줄은 전혀 몰랐소.”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방관 나리.”
중경 지방관.
이는 생각보다 관에서 높은 직책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 중경 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위세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관리가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남궁세가가 무림이 아니어도 중원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여기는 어인 일이오? 분명 대문에 출입금지라고 관아의 인장을 찍어 두었을 텐데.”
“아,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녹림채에 볼일이 있어 담을 타고 넘어와서 제가 보지 못한 듯합니다.”
“남궁세가가, 그것도 가주님이 이곳 녹림채에 볼일이 있으셨단 말씀이십니까?”
“예. 부끄러운 일이지만 얼마 전 제 개인적인 사택이 누군가에게 털렸고 그 도둑을 잡아냈지만 물건들은 장물로 이곳에 팔아넘겼다고 하더군요. 그중엔 제게 소중한 물건도 있어 이렇게 직접 찾으러 온 것입니다.”
“도둑은 금방 잡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꽤 걸렸습니다.”
잠시 둘 사이를 오가는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청조명이었다.
“그렇군요. 가주님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곳은 더 이상 녹림채가 아닙니다. 얼마 전 녹림채가 이곳을 내놓았고 이곳은 관아에서 정식으로 구매한 곳입니다.”
이제야 의심을 조금 거둔 듯한 청조명이 현 상황을 알려 주자 남궁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군요. 이거 제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나리.”
“아닙니다. 모르셨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보시다시피 관아가 이곳을 인수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지금은 쓰기 좋게 청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청조명이 가리킨 곳엔 정말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원 내를 깔끔하게 청소 중이었고 관아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저야 좀 더 둘러보셔도 괜찮지만 가주께는 그리 좋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관아에서 정식으로 사들인 이곳을 남궁세가에서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의 말에 남궁혁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정말로 유실물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혹시 여기에 있던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흐음. 저도 알려 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저 역시 그것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중경에 있던 녹림과 장강이 동시에 중경을 떠났다는 것이지요.”
“장강수로채의 수적들도 사라졌단 말씀이십니까?”
“예. 수적과 산적이 모두 사라지니 마치 앓던 이가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산적과 수적인 주제에 무림에 손을 얹고 있어 손대는 것조차 난감했었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지요.”
장강의 수적들도 같이 사라졌다는 청조명의 말에 남궁혁의 머리는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 사이의 접점과 사라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장강과 녹림은 중원의 모두가 알 정도로 서로 앙숙인 관계였다.
옛날에는 둘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전쟁도 일어날 정도로 구역 싸움이 심했고 근래에 들어선 조금 잠잠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좁혀질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이 함께 중경을 벗어나는 일은 남궁혁에게 있어서 더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호태산. 놈이 만일 살아 있다면 지금 녹림채를 이전한다거나 장강과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일 것인데 장강과 함께 중경을 벗어났다? 이것은 필시 호태산의 결정이 아닌 다른 이의 결정이다.’
지금 관아에 넘어간 이 녹림채만 봐도 그렇다.
호태산은 뭔가가 주어지면 그저 흥청망청 쓸 줄만 알지, 모으거나 그것으로 더 나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허름하던 산채를 호태산이 이렇게까지 키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적어도 남궁혁의 상식선에서는.
“그런데 언제까지 머무르실 생각입니까? 제가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오래 머물수록 가주님께 별로 좋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남궁혁에게 있어서 이는 너무나도 같잖은 협박이었지만 그는 군말 없이 그길로 산채를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진도석을 찾아 함께 밖으로 나온 남궁혁의 표정은 당연히 그리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있었다면 있었지. 일단 확실한 것은 우리가 찾는 호태산은 더 이상 여기에 없는 것 같다. 녹림과 장강 모두가 이곳 중경에서 빠져나갔다고 하더군.”
“장강까지 말입니까? 아니, 산적이 산채를 버리고 가고 수적이 장강을 벗어나면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진도석의 말에 남궁혁이 중경관문을 지나는 수많은 표사들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 자네는 전용을 불러 이 사실을 천용현 님께 전하도록. 나는 잠시 표국에 들러 대화를 나눠 봐야 할 것 같군.”
* * *
거칠게 몰아치는 염적문의 무사들과 그 사이로 파고들며 주먹을 휘두르는 모용진.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고 해도 이정도의 숫자라면 보통 이겨 내지 못하고 빈틈을 내어 주거나 눈먼 칼을 맞기 십상인데 아쉽게도 지금 염적문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모용진이었다.
단순한 무림의 고수와는 급이 다른 존재.
하지만 그런 모용진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놈들을 쓰러뜨려도 공세가 끝나지 않고 그 어떤 대화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용진이 스스로 깽판을 치고 있는 거지만 그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 증거로 여태껏 그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그냥 이 주변을 호령하는 나쁜 놈들을 가볍게 손봐 주면서 정보도 얻어 낼 생각이었는데, 그 나쁜 놈들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거칠게 나왔다.
“하아…….”
사실 모용진에게는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힘들다.
만일 그가 마음먹고 이곳을 뚫고자 했다면 단번에 여기 있는 모든 자들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먼저 깽판을 친 자의 최소한의 양심이었는데, 염적문에서 이렇게 나오니 그 양심이 서서히 깎여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까지 막는 이유가 궁금해진 모용진은 결국 양심을 살짝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시작한 일이지만 분명 나는 대화를 원했고 그 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너네들이다. 고로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내 호기심과 인내심을 자극한 너희들의 죄다.”
그 순간 모용진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반원의 형태로 퍼져 나갔고 그 기운에 휩쓸린 자들은 일제히 의식을 잃고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거의 육십여 명의 사람들을 쓰러뜨린 모용진.
그런 그가 내뿜은 그 기운이라는 것은 바로 살기(殺氣)였다.
무림의 고수가 내뿜는 살기는 평범한 사람의 몸을 굳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살기 역시도 단계가 있었고 화경의 고수가 진심으로 내뿜은 살기는 사람을 기절시키기까지 했는데, 물론 이는 어느 정도 내공을 다루는 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공을 키우게 되면 자연히 심력까지 키우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화경의 고수가 내뿜는 살기라고 해도 몸이 굳고 움츠러들지언정 기절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모용진을 상대하는 이들은 거의 일류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살기로는 절대 쓰러지지 않아야 정상이었으나 방금 모용진이 내뿜은 살기는 정상적인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심즉살(心卽殺).
이는 살기를 내뿜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를 뜻하는 것으로 전설로만 내려오는 경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모용진이 심즉살의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근처에 다다른 것일 뿐.
실제로 지금 모용진의 살기를 맞고 기절한 이들 중 죽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용진의 살기를 맞은 그들은 모두 살기 속에서 날아온 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살기의 압박감과 그 착각이 겹쳐져 그들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이에 그들의 몸이 스스로를 기절케 만든 것이었다.
모용진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일고 그 주변에 있던 염적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쓰러지자 그제야 이를 바라보던 염적문의 무사들이 모용진에게 다가오지 못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모용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에 침을 꼴깍 삼키며 물러나는 염적문의 무사들.
모용진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짓했다.
“자신 있는 놈부터 들어와. 이제 진심으로 상대해 줄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