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23
광마전생 (223)
한바탕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중기관에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깨달은 관아의 병사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높은 담을 넘어오려는 병사를 본 나는 곧바로 전각의 뒤쪽으로 담을 넘어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휴우……. 다행이군.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많이 귀찮아질 뻔했네.”
본관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정문 근처로 왔지만 설백과 황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백이 고작 관아의 병사들에게 잡혔을 리는 없었기에 어딘가에 대피해 있을 설백을 찾기 시작했고 일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관아에서 조금 떨어진 포목상 근처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여기 있었네.”
“병사들이 몰려들길래 피해 있었지.”
“잘했어. 황녀님은 어때?”
“많이 놀랐을 뿐이야. 내가 내기로 보호하고 있어서 별다른 타격은 입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황녀는 설백의 품에 안겨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믿었던 관아에서도 그녀를 내친 것이니까.
아무리 황녀라지만 이는 어린아이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후우…….”
그런 황녀를 보는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마무리는 어떻게 했어? 다 죽였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혹시 황녀가 듣고 충격받을까 봐 일부러 전음을 날리는 설백을 바라보며 나도 전음으로 답했다.
[그럴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목숨은 살려 뒀어. 그래도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최소 몇 달간은 아무런 말도 글도 쓰지 못할 테니까.]“그래? 뭐, 가가가 한 일이니 별문제는 없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금 태원에서 일어난 일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황궁의 친왕이 황녀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고 지금 모용진은 그런 황녀를 살려 데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깨어난 그들에 의해서 황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친왕에게 들어간다면 그는 무조건 황녀를 찾아 죽이려 할 것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황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마디로 지금 황녀는 걸어 다니는 표적이자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게 어떻게 하지…….”
그런데 그때 어떻게 하냐는 내 말에 황녀가 움찔거리며 반응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닭똥과도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에 그리 약한 편이 아니었다.
무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곳이었고 특히 무림인 여성의 눈물은 대부분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의 눈물이었다.
뭐 때문에 그런 건지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여성의 눈물은 지나쳐도 어린아이의 눈물은 지나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 적도 많았지만 나는 매번 아이들의 눈물에 약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뚝 그치십시오, 황녀님. 제가 황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말……?”
“예, 물론이죠. 저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럴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굳이 황녀에게 황궁까지 모시겠다는 약속까지 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만 우시지요, 황녀님.”
머리로는 망했다고 소리치면서도 나는 소매로 황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그녀는 내 말에 안심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가.”
“응?”
“혹시 뭐, 공주님을 좋아한다거나 그런 취향은 아니지? 나도 그래서 꼬신 거고.”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취향이라니?”
“아니, 마치 황녀를 첩으로 들일 기세길래 물어봤어.”
“아니거든? 내 순수한 걱정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 줄래? 그리고 애초에 꼬셔진 건 나였거든요? 말은 바로 하시죠, 북해빙궁의 공주님.”
“쳇.”
딱히 반박거리가 없는 듯 그녀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은 마치 어딘가 삐진 소녀와도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정말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제 곧바로 무림맹으로 내려가 기록관의 일을 처리해야 할 건데 그곳까지 황녀를 데려가기엔 좀 그렇지 않아? 아! 아니지. 오히려 그게 정답인가? 차라리 그녀를 무림맹에 인계하여 황궁으로 돌아가게 하는 편이…….”
“아니, 그건 안 돼. 황녀의 암살을 의뢰한 이가 다름 아닌…….”
황녀가 듣고 있다는 것을 깜빡하고 하마터면 이름을 말할 뻔한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전음을 흘렸다.
[현 황궁의 친왕, 유역신 황자가 바로 그 범인이야.] [허……. 그 역모를 꾸미고 있다던 그 친왕? 친왕이면 황녀의 오빠 아니야?] [맞아. 그러니까 무림맹은 안 돼. 지금 통합무림의 수뇌가 바로 유역신 황자나 마찬가지니까.]설백은 어떻게 하나뿐인 동생에게 그럴 수 있냐며 전음을 통해 길길이 날뛰었고 나는 이를 진정시킨다고 한참 동안 진땀을 빼야만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설백을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황녀였다.
“풋…….”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
이는 황녀가 억지로 웃은 게 아니었고 그녀의 시선으로 봤을 때 나와 설백의 모습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손짓을 하고 있었지만, 황녀의 눈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이상한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아무튼 그녀의 웃음에 설백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고 아직도 웃고 있는 황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럼 어쩔 수 없으니 무림맹은 나 혼자 갔다 오는 걸로 하자.”
“뭐? 어째서?”
“말했잖아. 황녀를 데리고 무림맹에 갈 순 없다고. 무림맹도 바보가 아닌 이상 황녀는 쉽게 알아볼 거야. 그렇다고 황녀를 홀로 하북에 보낼 수는 없잖아?”
“그럼 내가 무림맹에 다녀올게! 가가가 황녀를 데리고 먼저 하북으로 돌아가.”
“안 돼. 애초에 기록관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고.”
“쳇.”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설백이었지만 나는 이제 그녀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이번에 돌아가면 ‘무아(無我)’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줄게.”
“창천신검은?”
“말했잖아. 다른 건 다 괜찮아도 그것만은 안된다고.”
“흥!”
“하아, 그럼 이건 어때.”
나는 그녀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쳤고 이에 설백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좀 더 올리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 손가락의 의미는 일종의 ‘자유 비무권’을 뜻하는 것이었고 이는 설백이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각에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비무를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설백의 표정에 결국 나는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펼쳤고 그제야 설백은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좋아. 그럼 나는 먼저 하북에 가 있을게.”
“응? 벌써 바로 가는 거야?”
“가라며? 황녀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긴 그렇잖아?”
“아, 그렇지. 조심해서 가. 군사는 지금 자리에 없을 테니 아마 당철삼이 대신해서 맞이해 줄 거야.”
“내 걱정은 말고 가가나 조심해요. 괜한 사고 치다 다치지 말고. 아 참, 황녀에 대한 설명은 일절 하지 않을 테니 가가가 돌아와서 해결하세요. 그럼 이만.”
설백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떠났다.
확실히 그게 맞는 거긴 한데 왠지 모르게 외로워지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쩝……. 생각해 보니 흑천파에 황녀를 데리고 가면…… 하아.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겠군…….”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었지만 어찌 됐든 지금은 무림맹을 향할 때였다.
“그래도 설백이 따라와서 그나마 다행이었군……. 황녀가 문전박대를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야.”
사실 설백이 굳이 무림맹까지 따라간다고 우겼을 땐 매우 난감했었는데 이는 오히려 내게 이득이 된 셈이었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황녀를 안은 채 또 고민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자……. 그럼 옛 직장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가 보실까.”
* * *
공성 대사가 귀주로 떠나며 텅 빈 무림맹.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가 정말로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맹주라는 위치는 잠시라도 공성으로 놔둘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원래 공성 대사가 자리를 비울 때 그의 측근인 원불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메꾸었지만 지금 그마저 같은 길을 떠났고, 당연히 그 업무들은 다음 순서인 청화 진인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권한이 청화 진인에게 넘어오는 순간 그는 곧바로 태허 진인을 불러들였다.
“이리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장문인.”
“괜찮습니다. 청화 진인께서 부르는데 바로 와야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장문인께서 앉아 있는 걸 보아하니 공성 대사가 옥에서 풀려나자마자 귀주로 향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뭐, 거짓은 아니긴 하나 이곳 무림맹에 잠시 들르긴 했었습니다.”
“귀주라면 명교가 있는 곳인데 대체 또 무슨 꿍꿍이를 생각 중이신 건지…….”
“다른 건 몰라도 그 공성 대사를 직접 움직이게 했으니 귀주에 뭔가 대단한 게 있겠지요. 아무튼 지금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중하지가 않다? 그럼 뭐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겝니까?”
태허 진인의 물음에 청화 진인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듯이 손을 들어 올렸고 그러자 잠시 후 시종 둘이 들어오더니 다과와 차를 그들의 앞에 놓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것이니 전음으로 대화하도록 하지요.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나 잠시 맡아 둔 자리일 뿐입니다. 주변의 눈과 귀는 모두 공성 대사의 것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시종들인데…….] [태허 진인께서 그자가 얼마나 치밀한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이윽고 시종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뜨자 태허 진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편히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예. 그럼 태허 진인께서는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음? 갑자기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친왕 유역신에 대한 것 말입니다.”
유역신이라는 이름에 태허 진인이 살짝 움찔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으며 도호를 외웠다.
“무량수불. 그것에 대해 궁금하신 겁니까? 그러면 청화 진인께서 먼저 말씀해 보시지요. 화산파는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솔직하게 우리 화산파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은 아무리 공성 대사와 통합무림이라도 쉬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까요.”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림이 지켜 온 관무불가침을 스스로 깨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무당파는 이미 공성 대사께 확답을 보내 드렸습니다.”
“확답을 보냈다니……. 설마 정말로 반역에 몸을 담으실 거란 말씀이십니까?”
청화 진인의 물음에 태허 진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건 청화 진인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공성 대사가 무엇을 쥐고 있는지. 설령 제 결정에 무당파 전체가 거부한다고 해도 저는 결국 공성 대사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 도윤이만 다시 되살릴 수만 있다면 저는 무슨 일이라도…….”
“커흠! 크흠…….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낼 말이 아닙니다, 장문인.”
청화 진인이 헛기침으로 태허 진인의 말을 끊었고 이에 태허 진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청화 진인께서 궁금하신 것은 그게 다입니까? 그럼 저는 이만…….”
“아니요, 앉으시지요. 방금 것은 그냥 태허 진인의 의중이 궁금하여 물었을 뿐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따로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태허 진인을 붙잡은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태허 진인께 드리고자 했던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