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29
광마전생 (229)
모용진이 마봉에게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모두 고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론 네가 그 입으로 내뱉은 말들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해도 좋아. 너흰 날 습격했지만 고강한 내 무공에 이기지 못해 패배한 거지.”
“그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정말 그걸로 되겠습니까?”
“그래.”
마봉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대신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지 않는다거나 각색이 들어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거야. 만일 그 사실이 확인되는 날엔 내가 너희들을 직접 찾아갈 것이고 오늘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오늘 있었던 일을 또 반복할지도 모르지.”
오늘 있었던 일을 또 반복한다는 모용진의 말에 마봉이 치를 떨더니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모용진은 정말로 그들을 보내 주었다.
손까지 흔들며 그들을 배웅해 준 모용진은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무림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황녀를 보호하고 있던 게 무림인이라는 걸 안 친왕은 황태자에게도 무림의 세력이 붙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될 거야…….”
그렇게 개울을 건넌 모용진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친왕은 반역을 꾸미고, 정파는 사파와 손을 잡고, 혈강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전쟁……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네.”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는 자신 역시 그 난장판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황녀를 죽이려는 걸 보면 그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래. 이제 슬슬 두각을 드러낼 때도 됐지. 하북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부터 시작하는 거야. 오랫동안 묵혀 왔던 내 복수를.”
* * *
카앙!
도원영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크윽, 어떻게 네깟놈이!”
그는 욕을 내뱉으며 성아의 단검을 쳐 내려 했지만 그녀의 검은 마치 자석이라도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성아의 내공이 도원영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증거였다.
“고작 이 정도로 그렇게 힘겨워하시다니. 한때 힘으로 벽사와 해사를 모두 가져간 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군요. 안일하여 수련을 게을리하신 겁니까?”
성아의 비꼬는 말에도 도원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단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 세상에서 믿을 거라곤 자신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매일 꾸준히 단련한 결과 ‘화경’이라는 경지에도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공성 대사가 구해 준 마공(魔功)의 영향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에게 게으르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태하진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성아의 앞에서 단 한 번의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그녀의 검을 방어하기에도 급급했다.
성아는 검을 붙이면서 끊임없이 내공 싸움을 유도했고 도원영은 내공 싸움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쳐 내는 상황.
하지만 성아는 집요했고 전혀 틈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튕겨 내고 붙기를 계속 반복하던 네 자루의 검은 어느 순간 딱 붙어 버렸고 성아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크윽!”
단검을 통해 물밀듯이 들어오는 성아의 내공에 도원영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내공을 밀어내려 했지만 성아의 내공은 거친 한 마리의 용처럼 그의 내공을 뚫고 몸속을 침범했다.
“쿨럭!”
도원영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짙은 갈색의 토혈.
이는 그가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이자 굴욕의 증표였다.
무인들 사이에서 내공 싸움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서로 합의하지 않는 이상 내공 싸움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무나 생사결 중에 내공 싸움은 걸려고 하는 쪽이 받는 쪽보다 확실히 불리했기에 정말 압도적인 실력 차가 아니라면 내공 싸움은 기피하는 경향이 많았다.
실제로 일류에게 내공 싸움을 걸려던 절정의 고수들이 그들에게 패배했다는 기록도 꽤나 많이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까.
“수치스러우십니까?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떼어 낸 성아는 도원영의 가슴팍을 차 넘어뜨리더니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손짓했다.
“솔직히 이렇게 빠르게 복수할 기회가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은월령의 배신자 도원영. 그날 죽어 간 소성성 님과 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의 모든 추태를 세상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은월령의 배신자이자 통합무림의 개 도원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죽어 가다’라고…….”
“죽여 버리겠어!”
성아의 말에 잔뜩 흥분한 도원영.
그는 내상이 깊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성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공이 부족해도 기술에선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자신의 검은 류성아에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류성아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에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도원영은 미친 개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털썩.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것도 그 류성아의 바로 앞에서.
“어째서…… 어째서 내가 네년 따위에게…….”
도원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앞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릎을 꿇으리라곤.
조금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실력 차.
분명 같은 화경의 고수였는데 그 차이는 어린아이와 성인의 차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것이지? 어떻게? 너에게 남겨진 거라고 해 봤자 나에게 패배한 소성성의 내공뿐일 텐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소성성 전대 령주께서 당신 따위에게 졌다고?”
“하. 그럼 내가 그년을 베었으니 내가 이긴 것이지. 그년이 강했다면 내가 그년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애초부터 소성성 님은 당신과 싸운 적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도원영의 말에 잠시 격해진 성아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한숨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하아……. 아니, 이제 아무런 의미조차 없겠죠. 당신은…… 넌 배신자도 아닌 그냥 버러지만도 못한 쓰레기였을 뿐이니까.”
푸슉!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땐 이미 그녀의 검이 도원영의 심장을 관통한 뒤였다.
등을 뚫고 나온 네 개의 칼날.
죽음을 앞둔 그 순간 도원영은 주마등보다는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은월령의 사자들에 의해 처절하게 썰려 나가는 흑천의 병사들.
자신의 수족과도 같았던 주모적과 양조양은 이미 목이 잘린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실력은 있던 유운호 역시 악노와 가야허의 합공에 양팔이 잘려 나가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한 얼굴.
그 얼굴의 주인은 바로 제갈영이었다.
흑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제갈영.
그런데 문득 그 얼굴을 보니 옛 자신의 누이인 도영선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이…….”
그리고 곧 그 얼굴은 도원영의 눈에 도영선의 얼굴로 변해 있었고 그의 동공은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넌 쓰레기야.’
다시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그 순간 힘이 빠져 가던 그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잘 가라, 쓰레기.”
귓가에 메아리치듯 꽂히는 류성아의 목소리와 함께 뽑혀 나가는 그녀의 단검.
단검이 뽑히자 그의 몸은 자연스레 바닥을 향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쿵!
앞으로 발을 크게 내디딘 도원영의 신형이 곧바로 사라지더니 그는 성아를 무시한 채 곧장 제갈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뭣?!”
놀란 성아가 황급히 뒤따라 갔지만 그를 따라잡기엔 이미 너무나도 늦은 상태였다.
제갈영을 향해 거칠게 검을 휘두르는 도원영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죽어어어어어어!”
하지만 그는 결국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를 막아 낸 건 그와 싸우던 성아도 제갈영을 호위하던 흑련도 아니었다.
“날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냐?”
바로 제갈영.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공격하려는 도원영을 막아 낸 것이었다.
도원영은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친 것처럼 멈춰 서 있었고 제갈영은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난 흑천파의 군사이자 제갈세가의 유기서필(油耭栖筆)을 가진 적통의 후계자. 다 죽어 가는 네놈에게 당할 만큼 나약하지 않아.”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진법을 이용한 일종의 결계였다.
혹시나 자신이 공격당하여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까 봐 그녀가 미리 준비해 둔 대비책 중의 하나였다.
털썩.
바닥에 널브러진 도원영은 그렇게 결국 생을 마감했다.
도원영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다.
여기서 정리되었단 말은 흑천의 항복을 받아 냈다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리’.
더 이상 이곳 양당호 근처에 ‘흑천’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죽었으니까.
그런데 딱 한 명 도망간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시귀 독진이었다.
그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곧바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 그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 이곳엔 은월령의 전력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도원영…….”
도원영의 시체 앞에 선 성아는 그의 주검을 보며 환호도, 슬픔도, 눈물도, 그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 있는 성아를 발견한 제갈령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성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니, 복수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네요. 그렇게 죽이고 싶던 원수를 죽였는데 지금은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아요. 복수에 성공하면 속이라도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원래 복수가 이런 걸까요?”
“사람의 감정이란 변하는 법이니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는 거야.”
“그럼 흑제 님의 복수도 저와 같을까요?”
성아의 말에 제갈영이 손가락으로 도원영을 가리키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위를 가리켰다.
“아니……. 아저씨의 복수는 조금 다를 거야.”
“그럴까요? 하지만 흑제 님의 복수는 저희보다 더 오래되었고 흑제 님에게는 도통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심지어 복수의 대상이 눈앞에 있을 때도 그랬었죠.”
“글쎄……. 사람의 마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 아저씨…… 아니, 흑제 님이 가진 그 분노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제갈영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용진이 가슴속에 쌓여 있는 무언가를 표출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모용진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지만 그 마음속 깊이 어떠한 분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히 조금 두렵기도 해.”
“두렵다니요……?”
“아저씨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것이 터져 나오게 되는 순간이 말이야……. 단순 내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때가 흑천파에 있어서 진정한 위기가 찾아오는 날이 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