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3
광마전생 (23)
“하악…… 하악…….”
언덕을 오르는 백리강은 금세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는지 금세 기운이 빠지는 느낌.
하지만 그런 고통에도 그녀는 이상하게도 모용진의 뒤를 쫓고 있었다.
한참을 그의 뒤를 따라가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쉬는 그때.
갑자기 모용진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아프면 아프다고 할 것이지.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문제없는 줄 알았잖아.”
화들짝 놀란 백리강이 비틀거리는 그때 우주 최강의 눈치를 가진 가야허가 보법을 밟으며 달려오더니 백리강을 부축했다.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예, 주군. 제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원인 제공을 한 건 저였습니다.”
“그래, 잘했어. 부하 일호가 이호보다는 세야지. 넌 생긴 것도 멀쩡하면서 녹림 따위한테 이런 걸 당하냐?”
마치 가야허를 혼낼 것 같은 분위기에서 백리강을 혼내는 모용진.
일대일 대결 중 급습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혼까지 나야 하나 싶었던 백리강이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왜 사과가 나왔는지는 그녀도 모른다.
단지 본능이 시켰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까 전에 보여 준 그 무시무시한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잘못은 없지만 잘못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하 일호.”
“옙.”
“넌 앞으로 ‘일호’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넌 ‘이호’고.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개똥이랑 소똥이로 바꿔 줘도 되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래?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네. 일호가 이호 좀 잘 챙겨 줘. 너넨 이제 형제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백리강의 상처 부위를 손으로 찰싹 때리는 모용진.
당연히 백리강은 고통을 예견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상하게도 아픔은 찾아오지 않았다.
깜짝 놀라 내려다본 그곳엔 어느샌가 붕대가 감아져 있었다.
‘느낌도 없었는데? 언제 붕대를…….’
놀란 백리강이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그때 이미 모용진은 한참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한 느낌.
“뭐 하냐, 안내 안 하고. 이제 그놈 잘 걸을 테니까 부축은 안 해도 돼. 내려가면 의원한테 진찰받고. 그리고 계집애가 뭔 남자 꼴을 하고 다니냐? 하도 완벽해서 나도 속을 뻔했네. 너네 형제가 아니라 남매다, 남매.”
남매라는 말에 가야허도 깜짝 놀랐고 백리강은 경악했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완벽한 변장.
심지어 무림맹의 고수들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그 변장을 모용진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알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되물을 순 없었다.
“빨리 안 와? 죽는다?”
그냥 빨리 안 오냐는 말이었지만 그 아래에 깔린 무시무시한 살기.
은연중에 그런 살기를 내뿜는 자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강심장은 없을 테니까.
가야허와 백리강은 그 살기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제대로 걸렸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은 제대로 걸린 것 같다고.
* * *
“중경의 녹림은 덥구나…….”
“예, 주군. 여기 있습니다!”
가야허의 눈치는 놀랄 정도로 빨랐다.
진짜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대충 말을 내뱉어도 그냥 다 알아먹고 마치 준비된 사람처럼 뭔가를 꺼내 준다.
독사굴에서 나오고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빠른 놈일 줄이야.
내가 생각보다 인복은 타고 났을지도?
……라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닌 것 같다.
인복이 좋았다면 그 팽이종 같은 녀석을 만났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가야허가 건넨 시원한 얼음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나는 지난 수련을 떠올렸다.
아아. 끔찍했다, 끔찍했어.
아무리 무공에 미쳤던 나라고 해도 수련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이었기에 쉬는 것도 좋아하고 자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새끼들 때문에 잠자면서까지 수련을 했으니.
팽이종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쯧.”
그래서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짜증을 몽땅 날려 버리기 위해서.
“거기 서라! 이곳은 중경관문의 제이관문. 나는 황림단주 구…… 꽤액!”
정확하게 턱이 박살 나며 날아가는 돼지 한 마리.
딱히 내력을 싣지도 않았다.
“야, 넣어.”
날 돕기 위해 검을 뽑으려는 부하들에게 나는 다시 검을 넣으라고 했다.
어디 내 해우소에서 날뛰려고.
이 년 동안 쌓인 갑갑함을 해소하는 데는 역시 실전만 한 게 없지.
“나서지 마라, 내 거니까.”
우르르 몰려드는 산적들을 향해 나는 독각검을 마구 휘둘렀다.
애초부터 독각검은 날이 뭉툭하여 내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그냥 몽둥이와 다름이 없었고 이는 화풀이에 제격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녹림의 산적.
두들겨 패기 딱 좋은 덩치에다가 교육이라는 좋은 명분까지 있으니 완벽하군.
“쿠엑!”
“끄억!”
앞서 덤빈 몇 놈들이 손도 쓰지 못한 채 날아가자 산적들은 주춤거리더니 일부는 슬그머니 뒷걸음질까지 치기 시작했다.
“요놈, 어딜 도망가려고.”
그래서 나는 도망가려는 놈들부터 우선적으로 팼고 그 모습에 산적들은 항복한다며 무기를 바닥에 버렸지만 그냥 팼다.
왜 팼냐고?
그냥 패고 싶어서 팼다.
“아, 시원하다. 여윽시 사람은 한 번씩 이렇게 몸을 풀어 줘야 한다니까.”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사람까지 가차 없이 갈겨 버리는 모용진.
그 모습에 가야허와 백리강은 침을 꼴깍 삼켰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꼭 자신들에게 ‘너네 반항하면 이렇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굳이 돕지 못하게 한 것도 이런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마지막 남은 산적이 쓰러졌고 놀랍게도 모용진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 조금 부족한데…….”
조금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가야허는 재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주군!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직 관문은 세 개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가야허의 말에 다행이라고 말하는 모용진.
백리강은 그 둘의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삼관문과 사관문을 거쳐 드디어 도착한 오관문.
처음 보는 오관문은 놀랍게도 앞선 관문과 다르게 진짜 성벽과 문이 존재하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것은 거대한 근육질을 가진 남성.
녹림십팔채의 정예 중의 정예 녹림단의 단주인 녹림단주 광천악이었다.
광천악은 무림에서도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거부녹도(巨斧綠刀)’라는 별호까지 가지고 있었고 그 이름에 맞게 거대한 도끼와 녹색의 도를 동시에 사용하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광천악이 어떤 사람인지 모용진에게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가야허.
그 말에 모용진이 깜짝 놀라자 광천악은 웃으며 도끼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크크크. 그래, 내가 바로 거부녹도 광천악이다! 가야허 네놈이 왜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곳을 지나가려면…….”
“아니, 요샌 초절정이라는 것도 있어?”
모용진이 놀란 것은 광천악 때문이 아니라 난생처음 듣는 초절정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예. 절정이랑 화경 사이에 그 틈이 너무 커서 요즘은 화경에 가까워진 자들은 초절정이라고 합니다.”
“이야…… 세상 말세네, 말세야. 나중에는 뭐 초현경, 초화경, 초일류, 초삼류도 나오겠네. 뭔 경지를 지들 맘대로 늘리고 앉아 있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앞에 있는 자신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에 광천악은 어이가 없었다.
무림 어딜 가도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순간 짜증이 확 솟았고, 이는 그의 눈을 뒤집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어르신을 면전에 대고 무시를 해!”
휘둘러지는 거대한 도끼.
놀랍게도 그의 도끼에는 부기(斧氣)가 실처럼 얽혀 있었다.
흔히 검사(劍絲)라고 불리는 것으로 검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이었다.
도끼는 정확하게 모용진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충격파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한 숲속.
그 침묵 속에 광천악의 두 눈은 빠질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검이 아니고 도끼니 부사(斧絲)라고 해야 하나? 도끼로 쓰는 건 처음 보네.”
여유롭게 말을 내뱉는 모용진.
그가 오므리고 있는 두 손가락 사이엔 광천악의 도끼가 끼어 있었다.
한마디로 모용진이 단 두 개의 손가락으로 부사로 휩싸인 광천악의 도끼를 막았다는 뜻이었다.
“그거 나도 잘 써.”
“그…… 그건……?!”
안 그래도 놀라기 바빠 죽을 것만 같은데 더 놀라운 일이 모용진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검사(劍絲)가 아무것도 쥐지 않은 그의 손가락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손가락이 멀쩡할 수가…….”
검사는 검기를 실처럼 무기에 두르는 것.
이는 웬만한 보검이 아닌 이상 무기에도 무리가 가는 것이었는데 지금 모용진은 그것을 맨손으로 펼쳐 보인 것이었다.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단련하면 다 돼. 내가 괜히 탄지공을 익혔겠어?”
‘탄지공(彈指功)?!’
탄지공은 소림의 절기 중 하나 그런 무공을 익혔다기에 광천악은 모용진을 자세히 살폈지만 그 어디에도 소림의 느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놀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좀 더 놀라게 해 줘?”
그 말에 광천악이 황급히 도끼를 빼내려 했지만 도끼는 마치 두꺼운 바위 깊숙이 박힌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모용진의 말대로 까무러치게 놀랐다.
모용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사가 뱀처럼 살아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광천악의 도끼를 휘감아 왔기 때문이다.
내공이 깃들어 있는 무기에 검사를 휘감은 것도 놀라운데 광천악의 검사를 짓누르기까지 했다.
도끼와 도끼에 전달된 내공이 모용진의 검사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광천악은 도끼에서 강제로 손을 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깨닫고 있었지만 광천악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신이 완전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내기로 전달되는 엄청난 압박에 광천악은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하……. 제가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대협……. 한 번만 용서해 주실순 없으신지요?”
“하하하……. 당연히 그럴 순 없으시지요?”
“하하하……. 그렇겠지요? 하하하하…….”
겉으로 웃고는 있었지만 그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야!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냐! 빨리 알려 줬어야지!]가야허를 향해 원망 어린 전음을 보내면서…….
하지만 돌아오는 가야허의 전음은 매몰찼다.
[지금 제 코가 석 자입니다, 형님. 보면 모르시겠습니까?]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가야허의 전음을 들으며 광천악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며 광천악은 기도하듯 말을 내뱉었다.
“살살…… 만약 죽이실 거라면 안 아프게 살살 부탁드립니다.”
“뭐…… 최선을 다해 볼게.”
안 아프게 살살 죽여 달라는 광천악의 이상한 부탁에 모용진은 그걸 또 웃으며 받아 주었다.
쾅!
도끼와 함께 중경관문의 거대한 문을 뚫고 날아가는 광천악.
결과적으로 그는 살았다.
사지가 멀쩡한 채로.
하지만 죽다 살아난 그는 더 이상 녹림단의 단주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네놈은 삼호다. 여기가 일호 그리고 이호. 너에겐 각각 사형(師兄)과 사저(師姐)가 되겠군. 나는 사형제 간의 위계를 아주 중요시여기니까 알아서 처신 잘하도록.”
한참 아래의 동생이었던 가야허를 이제 형님으로 모셔야만 하는 광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