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37
광마전생 (237)
공성 대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그는 방금 한 번 사망했었다.
사망. 말 그대로 죽음.
그의 사인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기를 마구 내뿜다 주화입마가 온 것이었는데 이는 간단하게 ‘화병’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는 자기 분에 못 이겨 주화입마에 걸려 사망한 것이었다.
자신이 분에 못 이겨 사망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인달의 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아까 한 번 사망하셨지요.”
“크흠. 그런 것도 보이는 것이냐?”
“그게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대사님 곁에 붙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혹 방금 그 죽음이…….”
“그럴 리가요. 제가 고지한 죽음은 영혼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대하지 마십시오.”
기대하지 말란 인달의 말에 공성 대사는 다시 화가 치밀어 솟았지만 간신히 화를 누르며 몸을 진정시켰다.
왜냐하면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이라고 해서 죽는 걸 즐기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자, 참아……. 참아야 한다, 공성. 그분에게 갈 수 없는 지금 더 이상 자아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끓어오르는 속을 열심히 누르는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대웅전의 지하였다.
대웅전의 아래에는 소림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여립이 이곳을 털고 대웅전을 붕괴시켰다는 말에 뭐가 없어진 건지 확인하려 내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웅전의 지하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라진 것이 보이지 않자 공성 대사는 결국 나가자며 소리쳤다. 그때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인달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커다란 서랍장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여기, 열쇠.”
열쇠라는 말에 공성 대사가 황급히 달려가 커다란 서랍장을 열자 수십 개의 알록달록한 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공성 대사는 그것을 일일이 열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두 개의 빈 상자.
하나는 어디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른 하나는 공성 대사 역시 기억하고 있던 열쇠였다.
“크크큭…….”
갑자기 웃음을 흘린 공성 대사는 그 상자를 거칠게 움켜쥐어 박살 내더니 잘했다며 인달의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 쥐새끼 같은 새끼. 그걸 찾고 있었구만?”
인달의 도움으로 공성 대사가 이여립의 행선지를 추려 내는 그 시각.
소림사를 박살 낸 장본인인 모용진은 새로운 흑천파의 본거지에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으음……. 벌써 해가 중천이군.”
모용진은 잠자리가 썩 괜찮았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설백이 모용진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다.
설백이 깰까 조심스럽게 팔을 뺀 모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그 빡빡이 놈도 뭐가 없어졌는지 눈치챘겠지.’
모용진이 대웅전 아래에서 훔쳐 온 것은 꽤나 많았다.
그가 쓸어 온 것은 대부분 영약이었고 대환단부터 소환단 그리고 영약의 재료가 되는 하수오들까지 몽땅 가져왔다.
물론 공성 대사는 이를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그것들을 털어 올 때 그냥 털어 온 것이 아닌 비슷하게 생긴 가짜들을 그대로 넣어 왔기 때문이다.
“꽤나 공을 들이긴 했는데 속아 주려나?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야…….”
게다가 그는 한술 더 떠 그 가짜들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는데, 그 공이란 바로 소환단이었다.
대환단과 하수오는 아무리 비슷한 것을 가져온다고 해도 딱 보면 그 차이가 났는데, 모용진이 가져온 소환단의 대체품은 정말 소환단과 비슷하게 생긴 데다 은은하면서도 청아한 냄새까지 닮아 있었다.
그 대체품이란 바로 ‘고독’.
모용진은 자신이 만든 청류환에 고독을 넣어 가짜 소환단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누군가가 섭취한다면…… 그 누군가는 얼마 가지 못해 고독의 독에 당하여 죽게 될 것이었다.
모용진 본인이 해도 무척이나 잔인한 짓이었지만 그는 딱히 죄책감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공성 대사와 그가 이끌어 가는 소림사를 파멸시키는 것은 모용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당연한 복수였으니까.
짤그랑
모용진이 겉옷을 걸치던 그때, 소매에서 작은 열쇠 두 개가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그것은 바로 대웅전에서 훔쳐 온 예의 그 열쇠들이었다.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모용진이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검은 열쇠.
그것은 모용진에게 있어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
원래 그는 기록관에서 얻어 낸 정보로 하북팽가의 비고를 열 수 있는 열쇠만 훔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열쇠를 찾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검은 열쇠.
처음엔 설마 했었는데 손에 쥔 그 열쇠는 놀랍게도 모용진이 꼭 찾아야만 하는 열쇠였다.
그 열쇠란 바로 천기린의 유품이 담겨 있는 상자의 열쇠였다.
기록관의 정보로 모용진은 자신의 유품이 모두 북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기린의 유품이 천기린과 전혀 상관없는 북경에 있는 이유는 모두 공성 대사 때문이었다.
그는 천기린의 유품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이를 모두 친왕에게 우호의 선물로 넘겼다.
하지만 상자를 운반하던 도중 열쇠가 유실되었고 친왕은 결국 그 선물을 열지 못하고 황궁의 창고에 넣어 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 그 열쇠는 유실된 게 아니라 공성 대사가 일부러 빼돌린 것이었지……. 허 참, 영악한 새끼라니까? 그러니 머리가 없지.”
그깟 상자가 무슨 문제냐고, 그냥 부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겠지만 사실 그 상자는 열쇠가 없으면 절대 열 수 없는 상자였다.
무려 한철로 만든 그 상자는 금왕이 모용진에게 선물한 것으로 그 열쇠 또한 한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친왕은 열쇠공을 불러 그 상자를 열어 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강제로 열려고도 했지만 역시 상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내겐 이득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나?”
원래라면 그 열쇠를 찾기 위해 은월령과 인원을 모두 동원하려고 했던 모용진이었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찾음으로써 큰 시간을 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검을 찾는 방법 중 하나일 뿐.
진짜 그 상자에 ‘신검(神劍) 천일(天佚)’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기록관 그 어디에도 천일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천기린의 유품’만이 모용진에겐 천일을 찾는 유일한 길이었다.
가만히 열쇠를 바라보던 그는 그것을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빡빡이 그놈도 이 열쇠가 사라졌다는 걸 알면 내가 어디로 갔는지 대충 유추해 낼지도 모르지……. 몰랐으면 좋겠다만 아쉽게도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일단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이 있는데, 곧바로 황국으로 가 볼까?”
조심스럽게 방문 쪽으로 향한 모용진이 문을 열려던 그때.
“또 어디 가는 거야?”
모용진이 나가는 것을 눈치챈 설백이 몸에 이불을 만 채 일어났다.
“어? 아, 잠시 산책?”
“가가. 나도 귀가 있고 이미 다 들었거든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설백의 갑작스러운 경어에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르게 한 모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풍 뒤로 가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말하라니깐?”
“아! 그게, 황궁에 잠시 다녀오려고.”
“황궁인데 마치 뒷마당에 다녀오는 것처럼 말하네. 어제 돌아와 놓고 오늘 또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무슨 짓이라니, 그저 뭐 조사해 봐야 할 것도 있고 황녀에 관한 것도 빨리 처리해야 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하던데…….”
“음. 그렇구나. 이번엔 황궁이야? 소림사를 혼자서 털어 버린 것처럼 황궁도 털어 버리려고? 가가, 혹시 황제가 되는 게 꿈은 아니지?”
“무슨 큰일 날 소리를!”
모용진이 황급히 고개를 젓는 그때 옷을 다 챙겨 입은 설백이 가볍게 머리를 정리하며 올려 묶더니 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안 돼.”
“응? 왜, 뭐가?”
“이번에도 혼자 재미 보는 건 금지야.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도 몰라?”
살짝 뺨을 부풀린 채 삐진 듯한 표정을 짓는 설백.
놀랍게도 그녀는 모용진이 자신과 함께 사고(?)를 치지 않은 것에 대해 토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절대 안 돼. 지금 가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한 무더기니까 말이야.”
“날 기다리다니?”
“설마 혼자서 다 해 놓으니까 잊고 있던 건 아니지? 가가가 흑천파의 수장이라는 걸.”
설백은 모용진의 팔짱을 낀 채 문을 열고 나가 그를 데리고 일 층을 향해 내려갔다.
그렇게 설백의 손에 강제로 끌려 내려간 모용진은 내려가자마자 설백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스승님!”
“아저씨!”
“흑제 님이시다!”
각기 다른 호칭으로 모용진을 부르는 이들.
놀랍게도 모용진이 밤을 보낸 전각의 앞에는 흑천파의 모든 이들이 도열해 있었다.
일장로 조종려와 군사 제갈영, 부군사 청화를 포함한 십대제자들.
이장로 류성아와 비사 홍련, 지사 흑련 그리고 은월령의 사자들.
삼장로 당철삼과 소가주 당하율 그리고 사천당가.
최양을 필두로 한 녹림채와 장강수로채.
그리고 새롭게 흑천파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곤륜의 소문주 진유혼과 파성룡, 유성룡 그리고 곤륜파까지.
삼천여 명이 넘는 그들이 모두 한곳에 도열해 있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무림인.
그들이 은연중에 내뿜는 기세와 분위기는 이를 바라보는 모용진마저 압도감을 느낄 정도였다.
모용진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그때.
가장 앞에 서 있던 제자 조종려가 크게 발을 구르자 이에 모든 이들이 뒤따라 크게 발을 굴렀다.
쿵!
대지는 물론 하늘까지 울리는 듯한 커다란 진동과 소리.
“흑천파의 주인 흑제 님을 뵙습니다!”
선창을 한 조종려가 가장 먼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자 모두가 동시에 이를 따라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흑제 님을 뵙습니다!”
그 태산과도 같은 후창에 모용진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태동하는 것을 느꼈다.
모용진은 그 태동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지금 자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어때, 느끼는 바가 조금 있어?”
그때 설백이 옆에서 모용진의 옆구릴 꾹 찔렀고 이에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많이 반성해야겠어.”
모용진은 그 순간 정말로 크게 반성했다.
이렇게 대단한 동료들이 있는데 이를 무시한 것에 대해서.
그는 흑천파의 흑제로서 모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실제론 거의 모든 일을 혼자 하다시피 했다.
그들을 믿지 못했다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 낸 동료들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충분한 능력과 힘이 있었지만 모용진은 이를 활용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것에 그는 마음속 깊이 반성했다.
멋쩍은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간 모용진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인 것 같군. 그런데 종려 너는 어째서 서 있는 거냐? 다른 애들은 모두 무릎 꿇려 놓고.”
“큼……. 저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이는 무슨, 저기 곤륜파의 원로님들도 무릎을 꿇고 있구만.”
모용진의 말에 조종려가 멋쩍은 듯한 얼굴로 살짝 무릎을 굽히려 했지만 모용진은 장난이라며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이 자리에서 많은 말은 하지 않겠다. 짧게 한마디만 하지. 우리 흑천파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같이 고삐가 풀릴 때까지 달려 보자. 여기 있는 모두가 다 함께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