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4
광마전생 (24)
녹림(綠林) 중경 지부. 녹수각(綠秀閣).
험악한 산새 사이에 지어져 있는 이 건물은 중경녹림의 상징이자 ‘부(部)’의 상징이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거주하는 건 중경녹림채의 채주인 홍송도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최근 이 년간 홍송도는 이곳에 발가락 하나 들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녹림왕 거혈이지(巨血耳指) 호태산 때문이었다.
“하하하. 역시 여기서 즐기는 술맛은 끝내주는구나.”
녹림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태산같이 큰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여자 네 명을 끼고 녹수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연일 술자리를 벌이는 호태산.
그가 매일 벌이는 연회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지출되었는데 그 때문에 중경녹림채는 하루하루 예산을 맞춘다고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호태산에게 그만해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돈보다는 목숨이 소중했으니까.
녹림에서 호태산의 실력은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화경에 이른 고수라는 말이 나돌 정도.
하지만 그에 반해 홍송도의 실력은 일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무공 실력보다는 돈을 굴리는 재주로 채주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니까.
그래서 근래의 홍송도는 항상 불만이 많았다.
개같이 돈을 굴려도 산채에 쌓이는 것은 먼지뿐이었으니까.
그는 늘 호태산의 뚝배기를 깨 보는 게 소원이었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백 번은 더 호태산의 머리를 깼다.
그리고 오늘.
호태산의 명으로 녹수각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홍송도가 연회장의 문지방을 밟았다.
쿵.
일부러 발을 크게 굴리며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홍송도.
그 모습에 호태산은 어이가 없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냐, 홍송도?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녹수각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호태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
평소라면 그 살기에 잔뜩 움츠러들 홍송도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니미 시부랄 개잡놈 같은 산적 나부랭이 새끼가 헛소리하고 있네. 여긴 내가 만든 곳이야. 그러니까 내 거고. 근데 니가 뭔데 내 피땀으로 만든 전각에 발을 들이니 마니 지랄하는 거냐?”
걸죽하게 나오는 욕과 온 세상의 불만을 다 담으며 찌그러지는 그의 미간.
그런 홍송도의 말에 호태산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답 대신 홍송도를 향해 날카로운 검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호태산은 대화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앞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뱉은 말이 호태산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곧바로 죽을 각오해야 했으니까.
중경녹림을 키운 홍송도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다.
호태산에게 있어서는 그저 한낱 파리 같은 존재.
채주는 바꾸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태산이 쏘아 낸 강기가 무언가에 부딪쳐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철제 검이나 방패 따위가 아닌 새하얀 맨살에.
“내 부하가 맞는 말만 골라서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쓰나…….”
“뭐 하는 놈이냐.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나서는 것이냐?”
“알지, 알지. 아주 잘 알지. 내가 멍멍이의 이름을 까먹을 리가 없잖아?”
멍멍이란 말에 호태산이 흠칫 놀라더니 끼고 있던 여자들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 누구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살기.
하지만 이 살기를 정면으로 받는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우리 귀여운 부하 사호 홍송도의 새로운 주인이자 녹림왕이 될 모용진이지.”
“모용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아, 아쉽네. 알면 살려 주려고 했는데.”
대놓고 도발을 하는 모용진이었지만 호태산은 함부로 나서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아까 전에 자신이 뿌린 검기에 있었다.
모용진은 그 검기를 맨살로 받아 냈는데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호신강기(護身罡氣)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호신강기(護身罡氣)란 강기를 몸에 갑옷처럼 둘러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초절정에서 화경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익힐 수 있는 기예였다.
즉 모용진은 현재 최소 초절정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는데 그 호신강기가 너무나도 고강했다.
자신의 검기에 몸이 전혀 흔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멀뚱히 서서 바라만 보는 호태산을 보며 모용진은 입가에 비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여전히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우리 멍멍이.”
“크윽! 이 개자식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모용진의 입에서 다시 나온 멍멍이라는 말에 분노하며 달려드는 호태산.
그의 검에는 미약하지만 검강이 둘러져 있었고 거대한 덩치에서는 패도적인 내기가 풀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압박감 속에서도 모용진은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고 여유롭게 서 있었다.
“거혈이지(巨血耳指)? 분명 내가 살려 주는 대신 앞으로 착하게 살라고 했을 텐데. 귀와 손가락을 자르는 버릇을 못 고쳐서 거혈이지(巨血耳指)라는 칭호를 얻어?”
모용진의 말에 호태산은 그제야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멍멍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죽었다고 들었고 조촐하게 진행되는 장례식도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던 호태산이었다.
카앙!
검강이 깃든 검과 맨손바닥의 충돌.
모용진의 손바닥이 잘려 나가야 정상이었지만 오히려 검강을 두른 호태산의 검이 마구 흔들리더니 아주 미세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건…… 반탄강기(反彈罡氣)!’
반탄강기는 호신강기보다 한 단계 위의 기예로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호태산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즐겨 사용했던 무공이기도 했다.
쿵!
황급히 몸을 뺀 호태산은 바닥을 크게 한 바퀴 구르더니 그대로 모용진을 향해 머리를 박으며 몸을 낮췄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호태산은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다.
눈앞의 사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갑작스러운 호태산의 태세 전환. 그리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그의 몸.
한 번도 그가 몸을 낮추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녹림도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녹림도가 아닌 백리강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호태산의 악명은 중원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녹림은 무시하되 호태산과 녹림단은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런 호태산을 가볍게 무릎 꿇린 모용진은 이제 한술 더 떠 엎드린 그의 등 위에 올라탔다.
“역시…… 우리 멍멍이가 옛날부터 눈치 하나는 진짜 빨랐지. 맞지, 멍멍아?”
“멍! 멍멍!”
이제 개가 짖는 모습을 따라 하기까지 하는 호태산.
모두가 충격에 빠져 있는 그 상황에서 호태산은 마음속으로 홀로 울고 있었다.
‘아니, 죽었다며! 왜 살아 있는 거야아!’
* * *
호태산과 천기린.
둘은 오랜 시간 동안 주인님과 멍멍이 사이였다.
그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천기린이 녹림의 무공에 관심을 가졌고 호태산은 멍멍이가 되었다.
끝.
아주 평범한 이야기.
그 당시에 호태산은 녹림왕이 아닌 녹림단의 부단주였다.
근데 어느 날 찾아온 천기린이라는 재앙이 녹림채를 방문하였고 자신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호태산이 살아남은 이유는 눈치가 워낙 빨랐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안 호태산은 스스로 멍멍이를 자처하며 천기린의 아래로 들어갔고 그에게 도움을 받아 단시간에 녹림을 장악.
녹림왕에 오를 수 있었다.
“멍멍!”
지금은 개가 됐지만.
“그럼 지금부터. 제 일차 녹림 회의를 실시하겠습니다.”
가야허의 선창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앉아.”
모용진의 손짓에 착석하는 사람들.
유일하게 의자에 앉지 않은 이는 호태산 한 명뿐이었다.
진짜 개가 된 듯이 모용진의 옆에 엎드려 있는 호태산.
그를 보는 이곳의 모든 이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 개기면 안 된다…….’
만일 모용진의 눈 밖에 났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지 않는 그들이었다.
“자, 우선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나는 모용진이다. 방금 녹림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지. 혹시 불만 있는 사람?”
손을 들어 올리며 불만이 있냐는 모용진의 질문에 그 누구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숨까지 참고 있는 그들.
모용진은 잠시 그 상황을 즐기듯 쳐다보고 있더니 이내 웃으며 손을 내렸다.
“좋아, 없는 걸로. 그럼 만장일치로 내가 녹림의 대표가 되었으니 저 뒷자리에 앉은 놈들 소개 좀 들어 볼까?”
지금 이곳에는 모용진의 부하와 멍멍이를 제외하고도 세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
그들은 모용진의 명을 받고 가야허가 데려온 인물들로 이곳 중경녹림의 요직에 앉은 이들이었다.
“중경녹림의 회계를 담당하는 홍봉도라고 합니다.”
“중경녹림의 녹림도를 담당하는 주화자라고 합니다.”
“저는 물품을 관리하고 있는 군마전이라고 합니다.”
이들 외에도 관문을 관리하는 각 단주들과 몇몇 요직에 있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녹수각을 오르는 과정에서 모두 병실 신세를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 간단명료해서 좋군. 앉아도 좋아.”
잠시 그대로 주변을 둘러본 모용진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의자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이제 계획했던 대로 녹림왕의 자리에 올랐고…….”
‘계획? 계획이 있었던 건가? 그냥 다 때려잡은 거 아니었어……?’
계획이 있었다는 말에 조금 놀란 가야허였지만 다음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는 더 크게 놀랐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녹림을 하루 만에 무릎 꿇렸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 제일의 눈치 대장 가야허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혹시 주군께선 하시고 싶은 일이라든가 목표가 있으십니까?”
“으음? 목표? 목표야 당연히 있지.”
목표가 있다는 말은 가야허와 녹림도들의 귀엔 이렇게 들렸다.
매일 즐겁게 연회를 연다거나 약탈과 살인을 즐기겠다!
앞선 녹림왕들은 대다수가 그래 왔고 자신들도 녹림왕이 된다면 당연히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하니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 목표는 중원 무림, 그곳을 전부 불태우는 거야.”
“아하, 그렇군요. 중원 무림을…… 예?!”
이는 가야허도 깜짝 놀랄 만한 말이었기에 그도 사람인지라 절로 큰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놀랄 필요가 있어? 남자로 태어났으면 중원 정도는 불태워 줘야지. 그게 정상 아냐?”
‘어딜 봐서 정상인데……?’
대체로 속마음은 비슷했지만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너무 허황된 말이라 생각했는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자 모용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 태우자는 건 아냐. 내가 복수해야 할 곳이 몇몇 있거든. 거기만 불태워 버리면 돼.”
“아! 그렇군요. 누가 감히 저희 주군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소림사, 마교, 무당파, 혈교, 화산파, 배교, 아미파, 사월교파, 공동파, 명교, 개방, 남궁세가, 사천당문 그리고 석가장…… 그 정도? 뭐, 파 보면 좀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밖에 안 돼.”
“아하…….”
대충 맞춰 주는 듯한 말을 내뱉은 가야허였지만 그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모용진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입에서 나온 문파들과 세가만 해도 무림 전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으니까.
그냥 우스갯소리겠거니 해서 웃으며 모용진을 쳐다보는 가야허와 부하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표정에 모용진은 손으로 호태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설마 지금 내가 농담하는 것처럼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