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41
광마전생 (241)
일다경(一茶頃).
한 잔의 차를 마실 정도의 사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백리강이 연환패왕진(連環覇王陣)을 단번에 박살 내고 내가 이 의자에 앉기까지는 일다경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비록 가주인 팽여운이 죽고 통합무림에게서 버림받아 가세가 기울었다고 하나 하북팽가는 오대세가 중 하나였다.
그런 하북팽가를 내 도움 없이 일다경 만에 점령할 줄이야.
이제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강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 정도로 강해져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특히 내가 첫 제자로 받아들였던 백리강을 비롯한 십대제자들의 성장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중경녹림의 사형제대전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실력을 보지 못했는데 그들은 그 짧은 기간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다.
백리강과 광천악 그리고 악노는 화경의 벽을 부수고 초입 단계에 이르렀고 나머지 이들은 모두 초절정의 끝에서 벽을 부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훌륭한 스승인 조종려도 있고 많은 영약과 뛰어난 무공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무림인에게 ‘성장’이란 자신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화경의 벽을 허무는 것은 나 자신과의 긴 싸움과도 같은 것이기에 아무리 조종려와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쉬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든든하게 성장해 준 그들을 붙잡고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괜히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성장을 축하하며 따스한 눈으로 봐 주는 게 전부겠지.
“흑제 님?”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당철삼이 말을 걸어왔고 이에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잠시 그대들의 눈부신 성장에 감격하여 차마 입을 떼지 못했군. 그 하북팽가를 단 일다경 만에 무너뜨릴 줄이야. 많은 말을 해 주고 싶지만 우선 이 말을 하고 싶다. 고맙다.”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들은 내 말에 정말로 기뻐하는 듯했다.
그 무뚝뚝해 보이던 백리강 역시 옅게 미소를 짓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자, 그럼 이제 가볍게 보고를 받아 볼까.”
내가 눈짓을 보내자 조종려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항하지 않는 자들은 해치지 않았습니다. 무사전과 장로전은 완전히 제압한 상태이고 현재 가야허와 홍송도가 나서서 모두 정리 중에 있습니다.”
“이 자리의 원래 주인과 그 혈족들은? 요 녀석들이 보통 성격이 아니라 쉽게 항복했을 리가 없는데.”
“그것이, 현 가주인 팽이각은 무림맹에 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팽가의 혈족들은 거세게 반항하기는커녕 금세 꼬리를 말고 투항했습니다. 오히려 일반 무사들이 있는 무사전이 가장 거세게 저항을 해 왔고 가장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 팽가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들이 머무는 내원에 있습니다. 무기를 모두 빼앗고 손발을 묶어 두었으니 아마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걱정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어. 아무튼 지금 내원에 있다는 말이지?”
내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자 조종려와 당철삼이 내등뒤에 따라붙었다.
“비고의 위치라면 저희가 이미…….”
“아니, 나도 옛날에 많이 털어 봐서 비고가 어디에 있는진 누구보다도 잘 알아.”
“털어 보셨다니, 그게 무슨…….”
“너도 잘 알 거 아냐. 설마 내가 사천당가만 털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당시에는 그 천지일도(天地日刀) 팽무악이 있지 않았습니까. 항간에는 광마가 다른 곳은 다 털어도 하북팽가만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거 다 팽무악이 퍼뜨린 뻥이야.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주제에 꼴에 자존심은 강해서 헛소문이나 마구 퍼뜨리고 말이야.”
내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가장 먼저 반겨 준 것은 가야허였다.
“오셨습니까, 흑제 님.”
“팽가 놈들은 어디에 있지?”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야허의 안내에 도착한 내원의 거대한 장원.
넓게 펼쳐진 마당에는 수십 명이 넘는 팽가의 식솔들이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맞았고 그 역시 나를 알아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크게 소리쳤다.
“이, 이여립 대협?!”
그는 바로 사신무의 진행자였던 팽노악이었다.
“팽노악 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어떻게 대협이……. 그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들은 대체 누구이고 무슨 연유로 우리를…….”
“이들은 모두 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무슨 연유라고 물으신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복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예? 복수라니요. 설마 가주님과의 그 일 때문이라면 악감정이 남아야 하는 것은 오히려 저희 팽가입니다! 비록 마공을 사용하셨다지만 그분의 저희 세가의 가주셨으니까요. 설마 무림맹에서 저희를 처리하라고 했습니까?”
부릅뜬 팽노악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는 결코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고, 손발이 묶인 채 열을 내는 팽노악의 모습이 너무나도 웃겼기 때문이었다.
“그냥 통합무림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무림맹이 대외적으로 팽가를 멸문시키라고 명을 내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 말에 팽노악의 안색은 거무죽죽하게 물들어 가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통합무림에서 어떻게 우리를…….”
옅게 떨리는 팽노악의 목소리.
원래라면 적당히 놀리다가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는데 그 목소리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통합무림에서 그대들을 내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이유도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럴 이유가 없다니! 공성 대사…… 아니, 더 나아가 통합무림 전체를 위하여 우리가 희생한 것을 어찌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저희는 그저 충성을 다했을 뿐인데!”
“음…… 충성, 충성이라. 고작 그딴 걸로 충성을 다했다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팽노악을 자극하여 정보를 얻기 위해 내가 뱉은 말이 너무나도 잘 먹혀들었는지 그는 얼굴부터 목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분노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고작이라니요! 저희가 왜 역혈기공(逆穴氣功)까지 익혔는지 알면서 그러시는 겁니까!”
* * *
천기린이 다시 중원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안 공성 대사는 그길로 통합무림의 수뇌부들을 재빠르게 소집했다.
하지만 공성 대사의 소집령에 대답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오대세가는 대부분 응답이 없었고 제갈세가만이 가문 내 사정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서신을 보내왔을 뿐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마교는 봉문하였고 혈마가 사라진 혈교 역시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명교 또한 움직일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결국 숭산으로 찾아온 것은 구파일방의 정파 장문인들과 배교의 교주 서서희뿐이었는데 그들마저도 왠지 행동이 느긋하여 공성 대사를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공성 대사를 의아하게 만든 이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석가장의 석산우였다.
그는 회의장에 찾아와선 공성 대사를 향해 인사를 올리더니 대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며 그대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공성 대사는 그러한 석산우의 행보에 솔직히 크게 화가 났지만 결국 그를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친왕 유역신과의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석가장이 꼭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대업을 위해 바쁘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 수 있는 모든 수뇌부가 모인 자리는 왠지 모르게 어수선했으나 단 한 명 청화 진인 만큼은 공성 대사에게 꼬리를 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임시로 무림맹주의 위치에 있을 때 기록관을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공성 대사는 빠르게 천기린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고 천기린이 다시 돌아왔다는 공 성대사의 서신이 반쯤 장난이 아닐까 싶어 가벼이 생각하던 일부 장문인들은 진지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으니 바로 청성파의 장문인인 마 대협과 해남파의 건소대였다.
그들은 천기린의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에서 빠지길 원했고 공성 대사는 이에 반쯤 협박을 날려 보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돌아갔다.
결국 공성 대사는 남은 이들과 함께 천기린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을 꾸밀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맹주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그 이여립이 천기린이었단 말씀이십니까?”
“예. 제 동문인 대사들의 증언이니 확실하지요.”
“그럼 어째서 천기린이 백호학관을……. 무공을 배우러 갈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통합무림에 잠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 줬던 행동도 그 젊은 나이에 화경이라는 경지에 오른 것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지요.”
“크흠…….”
공성 대사의 말에 모두가 얼굴을 굳히며 한층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는 몇십 년 전과 상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의 천기린은 모용진이라는 허약한 아이였고 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천기린은 청년의 몸으로 화경이라는 경지에 올라 있었고 마공의 부작용으로 이성을 상실한 대신 몇 배는 강해진 팽여운을 순식간에 베어 버린 전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그들에겐 옛날 중원 전체를 들쑤시고 다녔던 광마 천기린이 다시 완전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킨 태허 진인이 떨리는 눈으로 공성 대사를 바라보더니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럼 팽여운이 이여립의 손에 죽게 된 것도 복수의 일환이었겠군요. 그때 정소촌과 모용세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제거한 것은 다름 아닌 팽가였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실제로 대웅전에 침입한 천기린은 다른 것은 모두 내버려 두고 두 개의 열쇠만을 훔쳐갔지요. 그중 하나가 바로 팽가의 비고 열쇠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천기린은 팽가를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겠군요.”
“그럼 빠르게 팽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대처하시는 것이…….”
“저희도 빠르게 문파원들을 모아 하북으로 가겠습니다. 그 괴물 같은 놈을 이대로 놔두게 되면 언젠간 또다시 그 광마가 되돌아올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지금을 노리는 것이 좋겠군요.”
하지만 공성 대사는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십니까?”
“시주들의 의견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가야 할 곳은 하북이 아니지요.”
“예? 그게 무슨…….”
종소유의 말에 공성 대사는 다 부서진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그들 앞에 던졌다.
“이것은 그때 팽가의 비고 열쇠와 함께 사라진 열쇠의 함입니다. 그 열쇠는 바로 천기린의 유품이 담긴 상자의 열쇠이지요. 아무래도 놈은 자신의 검인 신검(神劍) 천일(天佚)을 되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