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
광마전생 (25)
모용진의 몸에서 짙게 흩뿌려져 나오는 살기.
그 짙은 살기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은 부하들이 여태껏 살아생전 느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살기에 비하면 아까 전 호태산이 내뿜었던 살기는 애교처럼 느껴질 정도.
‘살기로 사람을 죽인다’는 무림에선 농담처럼 나도는 이야기가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를 끝내 이겨 내지 못한 홍송도는 그대로 졸도해 버렸다.
“아직도 내가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
순간 침묵에 쌓인 녹수각의 회랑.
마음속 깊이 올라오는 공포감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대답이 없으니 모두 그렇다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예! 당연하죠. 주군이 어떤 분인데. 반드시 해내실 겁니다.”
“중원 따위 개박살을 내 버리시십죠!”
몹시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는 광천악을 보며 모용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웃어.”
“예?”
“웃으라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갑자기 웃으란 말에 광천악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전각이 떠나갈 만큼 크게 웃기 시작했다.
“너넨 안 웃냐?”
“아하하하하하하!”
“크크크크, 하하하하!”
너넨 안 웃냐는 한마디에 갑자기 회랑 전체에 웃음꽃이 피었고 그 웃음의 화음을 잠시 즐긴 모용진은 이내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고 했다.
“웃으니까 좋군.”
‘뭐지, 이 미친놈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더니 살기로 위협하고 갑자기 이젠 웃으라고 한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모용진의 행동에 모두가 진짜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그때.
모용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그렇다고 내가 방금 한 말이 장난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진짜 그놈들을 박살 낼 생각으로 여길 찾아온 거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고 해도 저들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말이지.”
“그럼…… 녹림에 찾아오신 이유가 세력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뜻입니까?”
“역시 가야허. 그 눈치 맘에 들어. 정답이다. 그럼 내가 왜 여길 첫 번째 행선지로 정했는지도 맞춰 보겠나?”
모용진의 질문에 가야허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앞서 말씀하신 집단들에 얽혀 있지 않은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거대 문파이거나 사파 중에서도 큰 힘을 지닌 곳뿐이니…… 주군은 그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중원에서 영향력이 있는 곳을 선택했는데 그게 바로 녹림이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맞아. 사실이지. 세력을 손에 넣자니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더라고. 중원의 대부분이 그놈들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럼 뭐만 남았겠어? 너희 같은 산적이나 수적. 흔히 말하는 흑도들뿐이었지.”
“그럼 녹림을 그 첫 목적지로 정하신 이유는…….”
“가까워서?”
“아…….”
허무할 정도로 간단명료한 대답에 가야허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모용진의 앞에서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확인?”
“옙.”
잠시 둘 사이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렀지만 모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말해 봐.”
“만일 저희가 주군을 도와 열심히 일한다면 주군은 저희에게 어떤 보상을 주실 수 있습니까.”
“보상?”
생각지도 못한 가야허의 말에 모용진은 눈에 이채를 띠며 그를 쳐다봤다.
그건 눈치가 빠른 가야허의 입에서 나올 물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행보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용진이 기분 나쁘다면 단칼에 죽을 수도 있는 질문.
하지만 그렇기에 모용진은 그 내막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예. 보상 말입니다.”
“보상이라……. 하긴 보상도 중요하긴 하지. ‘너희들의 목숨’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눈빛을 보니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같고……. 뭐, 걱정은 마라. 나도 그렇게 막돼먹은 주인 놈은 아니니까 말이야. 상벌은 확실하게 하는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지. 그래서 뭐냐? 네놈의 눈동자 뒤에 숨어 있는 그건 말이야.”
모용진의 말에 가야허가 살짝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에겐 주군 이전의 주군이 있었습니다.”
“주군 이전의 주군? 너의 이전 주군은 여기 있는 멍멍이 아니냐?”
모용진이 호태산을 가리키자 가야허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고 그런 그의 반응에 호태산이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가야허! 그건 내가 직접…….”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의 동공.
호태산은 가야허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뒤에서 목을 짓누르는 모용진의 손길에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얌전히 앉아 있어. 두 손으로 걸어 다니고 싶지 않으면.”
모용진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호태산은 빠르게 쭈그러들었고 모용진은 가야허에게 계속하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 * *
중원에서 무림인으로도 잘 취급해 주지 않는 무리 ‘흑도(黑道)’.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 그들의 방식을 이용해서 무림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팀이라고 생각했던 사파 쪽에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뒤이어 무림맹에서도 흑도들을 척결하겠다고 나서면서 흑도들은 큰 풍파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흑제(黑帝) 도원영’이었다.
그는 흑천(黑天)이라는 단체와 함께 나타나 흑도들을 사파와 무림맹 사이에서 구원해 주었고 그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등장 이후 흑도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그만큼 흑제의 무위는 고강했고 사파와 무림맹 역시 한 수 접어 주면서 서로 불가침 맹약을 맺게 되었다.
물론 이는 중원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었고 흑도라고 해도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흑도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흑제라는 놈을 따르고 있고 아랫것들은 잘 모르지만 흑도들은 모두 흑천의 소속이다?”
“그렇습니다.”
“흐음…… 근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군. 흑천이라는 강한 단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굳이 무림맹과 사파와 척을 지고 흑도를 돕는다? 그것도 정파와 사파의 동시 견제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흑도를? 그리고 기본적으로 너넨 나쁜 놈들이잖나. 그럼 놈들을 어떻게 믿고?”
대놓고 나쁜 놈 취급을 하는 모용진의 말에 가야허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의문을 가지고 흑제에게 직접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굳이 왜 최악의 상황에 빠진 흑도들을 구했냐고 말입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흑천이라는 그들은 애초부터 ‘흑도’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의외의 것?”
“예.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흑도를 구한 게 아니라 ‘돈’을 구한 것이라고.”
“돈? 흑도들은 그때 당시에 돈이 없었지 않았나? 사파와 정파가 동시에 압박한다면 그쪽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을 텐데.”
“그게 지금 생각해도 살짝 어이가 없지만 그때 당시 저희는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가야허의 말에 모용진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뒤따르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무림은 빈익빈 부익부가 극명하게 치달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흑도들이 호황기였던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헐값에 팔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산적과 수적이 되었고 기녀와 잡일꾼이 되어 흑도에 들어온 것이다.
흑도의 인력이 늘어나면서 인건비는 싸지는데 부자들은 돈이 넘치니 흑도들이 운영하는 기루나 기방을 수시로 드나들고 산적이나 수적에게 빼앗기는 돈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민들의 위기가 곧 흑도의 호황이 된 셈.
사파와 무림맹이 압박을 넣으며 토벌대를 꾸린 것도 다 돈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렇군.”
“저희가 이 전각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사태가 아직도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흑도의 호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 사족은 이만하면 됐어. 그래서 가야허, 네가 지금 내게 말하고픈 게 뭐지?”
모용진의 물음에 가야허는 고개를 들어 모용진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저는 사실 흑천의 행보를 딱히 나쁘게 보고 있진 않습니다. 저희 흑도들을 구해 준 것은 사실이고 돈을 추구하는 것은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요즘 흑천은 도가 심해져도 너무 심해졌습니다. 무림에서의 보호 명목으로 떼어 가는 돈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심지어는 흑도들도 손대지 않는 것들에 손을 대며 그 배때기를 불려 가고 있습니다.”
“흑도도 손대지 않는 것?”
“쉽게 말하자면 아편 그리고 인육 같은 것입니다.”
인육이라는 말에 모용진의 눈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아편 같은 마약도 황실에서 직접 나설 정도로 중원에 있어서 질이 나쁜 것이었지만 인육은 그것보다 한 단계 위의 것이었다.
그 악랄하다는 혈교에서도 식인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지금 중원에서의 식인은 금기 중에서도 금기였다.
순간 모용진의 몸에서 살기가 흩뿌려져 나오더니 회랑 전체의 인원들에게 아까 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를 선사했다.
“혹시 이 중에 그런 것에 관여되어 있었던 자. 조용히 손을 들어라. 내 솔직하게 고한다면 단칼에 보내 줄 것이고 나중에 들키게 된다면 지옥보다도 더 지옥 같은 현실을 살게 해 주마.”
차마 거짓을 고할 수 없는 끔찍한 살기.
다행히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것과 관련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저희들 중에는 없습니다. 이는 정말 일부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것. 애초부터 그들은 그런 일에 저희를 직접 부려 먹지 않습니다. 알게 모르게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 저도 친하게 지내던 하오방의 죽마고우에게 들은 것입니다.”
살기를 겨우겨우 이겨 내며 천천히 말을 내뱉은 가야허.
하지만 그 덕분에 부하들은 겨우 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크게 한숨을 돌린 가야허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 가려 했다.
“그래서 제가 주군에게 제안드리고 싶은 것은…….”
“아아, 거기까지. 이미 나도 다 알아들었으니까. 흑제(黑帝) 모용진이라…… 나쁘지 않은걸? 어딘가 멋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제(帝)라니 마치 임금이 된 기분이야.”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듯 모용진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그에게 있어 방금 가야허가 준 정보는 정말 꿀단지 같은 정보였기 때문이다.
무림맹과 사파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흑도.
그리고 흑도들을 휘어잡고 있는 ‘흑천’이라는 집단.
흑제(黑帝) 도원영.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온다면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모용진이 원하던 모든 ‘세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야…… 내가 가지고 싶던 걸 모두 가진 놈이 있다? 그런데 그놈이 나쁜 놈이네? 나는 착한 놈이고. 크으, 이건 못 참지.”
홀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모용진은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에 가야허를 시작으로 빠르게 박수가 퍼져 나갔다.
짝!
모용진의 마지막 박수에서 울려 퍼지는 강력한 내기.
그 놀랍도록 청아한 기운에 모두가 일제히 멈췄고 모용진을 향해 눈을 껌뻑거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호칭은 ‘흑제(黑帝)’다. 우리의 목표는 가짜 흑제인 도원영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 알겠나?”
“옙!”
“그런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뒤를 돌아보는 모용진.
그가 돌아본 곳에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호태산이 있었다.
“멍멍아, 넌 왜 주인에게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던 거니? 우리 잠시 대화의 시간을 나눠 볼까?”
“오…… 오해십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지만 저 뺀질한 가야허가 먼저 말했을 뿐!”
“그래? 쓰읍, 아깐 분명 숨기려고 하던 것 같던데…….”
“하하하.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주인님의 충견! 멍멍 호태산입니다! 멍!”
필사적으로 살아 보려는 호태산의 발버둥.
하지만 어느새 모용진의 옆으로 다가온 가야허가 호태산을 향해 고개를 크게 숙이며 외쳤다.
“흑천을 배신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이제 새로운 흑제(黑帝) 모용진 님을 모시는 충실한 부하 일호!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녹림왕 호태산…… 아니 흑천의 제십일장로 흑태산 님!”
그 순간 호태산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 찼고 모용진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자, 진실의 방으로.”
“진실의 방으로!”
진실의 방이 뭔진 모르지만 모용진의 말에 재빠르게 튀어나온 광천악과 홍송도.
“아니, 제가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저 녹림을 위해서……!”
그들은 호태산의 어깨를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고 가야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몽땅 날아간 듯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