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2
광마전생 (252)
결국 모용진은 집객전(輯客殿)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집객전은 천자의 손님이 모이는 곳으로 황궁에선 오로지 황제와 황태자만이 보유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황상에 올라앉은 황태자와 그를 마주 보며 무릎 꿇은 모용진 그리고 그의 뒤에서 검을 겨누고 있는 강현까지.
여궁들까지 모두 물린 이곳에 있는 사람은 그들 셋이 전부였다.
“흠…….”
모용진을 바라보는 황태자는 보면 볼수록 그가 신기했다.
외모로 봐서는 자신이나 강현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금의위 전부를 상대할 정도로 강한 무공을 지닌 자.
게다가 그가 내뱉는 말은 그 어린 외모에서 나올 법한 것이 아니었다.
웬만한 학사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심계가 깊고 그 속을 알기 힘든 말솜씨는 황궁의 천재라 불렸던 자신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에,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군. 통성명이라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역경 황태자 전하. 매일 밤 황녀님에게 귀가 따갑게 들은 이름이라서 말입니다.”
“뭣……?”
황녀라는 호칭이 나오자마자 유역경은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에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시는 그분이 맞을 겁니다. 황제의 막내딸 여목공주 유화은. 이제 황태자 전하의 유일한 핏줄이기도 하신 분입니다.”
“네가 어떻게 화은이를……!”
“그래서 제가 지금 화를 조금 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입니다.”
모용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현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을 뺐고는 역으로 강현의 뒤를 잡아 오금을 걷어찼다.
“큭!”
자연스레 무릎이 굽혀진 강현은 순식간에 모용진의 인질이 되어 그의 목에는 날카로운 모용진의 검이 얹혀 있었다.
“강현!”
“솔직하게 답변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자, 왜 황태자 전하께선 황녀님을 버리신 겁니까?”
황태자는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모용진의 진지한 표정과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무형의 압박에 입이 절로 닫히고 말았다.
“난…….”
“왜 그 어리고 약한 분을 왈패 따위에게 납치당하게 하여 죽게 하였나 말입니다!”
“뭐……? 왈패라니? 납치?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전혀 모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황태자는 정말 몰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에 모용진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설명해 보시지요. 황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놀랍게도 황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질문한 것은 모용진이었다.
이에 황태자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황녀는 정말 어쩔 수 없이 태원으로 간 것이네. 아바마마께서 승하하셨으니 그 피를 이은 자가 제(第)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였고 믿을 만한 사람을 붙여 태원으로 보냈다네.”
“정말 그게 답니까? 저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아니, 꼭 있어야 할 겁니다.”
모용진의 말에 황제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황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은 길었지만 결국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승계 과정에서 일어날 위험한 상황에서 황녀를 지키기 위해 믿을 만한 사람을 붙여 태원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만일 황태자 전하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 믿을 만한 자의 목을 쳐야 할 것 같군요.”
“아니, 그럴 리가 없네. 그는 정말로 믿을 만한 자다. 며칠 전만 해도 나에게 황녀의 서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필체는 명백히 황녀의 것…….”
“그거 이상하군요. 분명 황녀님은 제가 지내는 곳에 제 동료들과 함께 숨어 계시는 중이고 저는 이 사실을 황태자님께 전하기 위해 매일 수십 통에 가까운 황녀 친필 서신을 보냈으나 그 어떤 서신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되레 그 자리에는 저희를 죽이려고 하는 암살자만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황태자가 쳐다본 것은 바로 강현이었다.
모용진은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황제를 보며 말했다.
“지금 제게 황녀의 진짜 친필 서신이 있습니다. 황태자 전하만 괜찮으시다면 전하가 받으신 서신과 제 서신을 교환하여 살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모용진이 꺼내 든 서신에는 작은 천 조각이 매달려 있었고 황태자는 이를 단번에 알아본 듯 다시 한 번 강현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태자 전하?”
황태자는 크게 당황한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상황을 이해한 듯 모용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현의 목에 댔던 검을 회수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은데?”
뜬금없는 모용진의 말.
하지만 그러한 말에 온몸을 들썩일 정도로 반응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강현이었다.
그는 잠시 바닥을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죽어라!”
그리고 그의 검이 향한 곳은 바로…….
“유역경!”
미끄러지듯 유역경을 향해 다가가는 강현과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 물러서는 유역경.
그의 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황태자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검은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멈춰 서고 말았다.
푹!
딱 한 걸음이 부족한 상태로 멈춰 선 강현.
“제기랄…….”
마지막 유언으로 욕을 내뱉으며 쓰러진 그의 뒤에는 모용진이 서 있었다.
“태자 전하, 그가 방금 사용한 무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명교(明敎)’라고 불리는 무림의 사파가 사용하는 명전발도술(明電發刀術)입니다.”
털썩.
황태자는 정말로 크게 놀란 듯 자리에 주저앉더니 멍하니 강현의 주검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가 명교의 사람이라는 것은 첫눈에 보고 알았습니다. 하지만 황녀님에 관한 일이라면 전혀 몰랐습니다. 그에 관한 대답은 말이 아닌 황태자님의 시선이 알려 주고 있었지요.”
“강현은…… 내가 유일하게 신뢰하고 있던 자였다. 그런데…….”
“행여나 자책하지 마시지요. 누구라도 속이고자 작정하고 들어온 이를 눈치채기는 힘든 법입니다. 더더욱 그 대상이 무림인이라면 말이지요.”
“그럼 그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획된 일이란 말인가…….”
황태자와 그의 만남은 황태자에게 있어서 정말로 특별했다.
우연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적 같은 만남.
하지만 그 만남은 충격적이게도 모두 강현의 손에서 철저하게 계획된 일이었던 것이다.
“제 군사가 그러더군요. 잘 짜인 계획만큼 기적처럼 보이는 것은 없다고. 태자 전하께선 참으로 운이 좋으십니다.”
운이 좋다는 모용진의 말에 황태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더니 눈물이 가득한 충혈된 눈으로 모용진을 노려보았다.
“지금 짐에게 운이 좋다고 했느냐! 유일하게 믿고 있던 이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한 짐을!”
“예. 운이 보통 좋으신 게 아닙니다. 거의 천운을 타고났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만하라! 더 이상 짐을 농락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지금 저를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황태자는 순간 머리끝까지 끓어오르던 분노가 멈칫하는 것을 느꼈다.
“뭐?”
“어찌 됐건 제 덕분에 황태자 전하께선 간자의 정체를 알아냄과 동시에 목숨까지 부지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한 제 공(功)이지요.”
모용진의 말에 황태자는 살짝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묘한 기대감도 있었다.
이 미친 자의 입에서 나올 그다음 말에 대한 강렬한 기대감이.
“공(功)이라면 짐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인가?”
“크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은 우선 황태자 전하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그 뒤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어떻습니까?”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 뒤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모용진.
그 말의 의미는 결국 그가 주장한 ‘공’에 대한 무언가를 요구하겠다는 뜻이었다.
황태자는 그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무언가 확실한 공을 원한다는 것에서 절대 다른 꿍꿍이를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좋아. 그러지. 어디 한번 그대가 원하는 ‘대화’를 해 보자꾸나.”
* * *
솔직하게 말해서 모용진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모든 상황이 자신의 군사인 제갈영이 말한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약간 소란이 있긴 했지만 그 소란 덕분에 모용진은 더욱 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지금…… 그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반역이라니…….”
모용진은 황태자에게 황녀가 어떻게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통합무림, 친왕 유역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물론 모든 정보를 알려 준 것은 아니었지만 제갈영이 말한 대로 황태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 한해서 모용진이 아는 것을 말해 준 것이었다.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믿기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황태자 전하께선 올곧은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애초에 이 황궁에 그런 것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 황궁에 대해 안다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전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황녀님과 친왕이라는 자 덕분에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되고 말았지요. 이미 알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무엇을 짚고 넘어가고 싶은가?”
“황녀 유화은. 그분에 관한 황태자 전하의 진심을 말입니다.”
모용진의 말에 황제는 혀를 내두르며 미소가 담긴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황녀에 대한 진심을 솔직하게 가감 없이 전하는 황태자.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 황태자가 황녀를 끔찍이도 아낀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나를 몇 번 보지 못했지만 나는 매일 하나뿐인 여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나와 멀수록 그녀가 이 황국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말을 증명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십니까?”
“증명? 그대는 정녕 증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아이를 보고서도? 지금 그대가 이곳에 있는 것도 유역경과 통합무림의 공모를 알려 준 것도 모두 그 아이 때문이 아닌가!”
황태자의 물음에 모용진의 솔직한 대답은 ‘아니’였다.
황녀는 그저 구실일 뿐.
모용진의 목표는 황태자와 손을 잡고 공성 대사와 유역신의 계획을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용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황태자의 말에 그가 바라는 대답을 내뱉었다.
“확실히, 황녀님의 미소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긴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