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4
광마전생 (254)
48장
“이건…… 확실히 문제가 되겠군요.”
서신을 모두 읽은 제갈궁은 왜 유역신이 무림맹을 직접 찾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서신에는 명확하게 누구라고 적혀 있진 않았지만 ‘힘’을 가진 이들이 황녀를 돕고 있고 유역경 역시 돕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힘’을 가진 이들이란 여태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 무림인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 서신이 황태자에게 들어갔을 확률은…….”
“없다. 그의 곁에는 이미 우리가 심어 놓은 이들이 있고 이 서신 역시 그들이 도중에 회수해 온 것이니까.”
“만일 이것이 황태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아마 그도 눈치챌 것입니다. 유역신 님의 곁에 무림이 있다는 것을.”
“음? 그건 어째서지?”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상황에서 황녀를 노릴 법한 인물은 친왕 전하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그 황녀가 무림인의 습격을 수차례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황태자도 무림에 대해 의심을 하고 결국 밝혀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진 선대 황제의 장례와 승계 일로 바빠 큰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이러한 서신이 황태자에게 들어간다면 곧장 반응할 것입니다.”
“호오……. 역시 괜히 제갈세가의 가주가 아니군.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줄이야.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흠…….”
제갈궁이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그 서신들을 몽땅 화롯불 속에 집어던졌다.
“일단 당분간은 궁에 머무심이 좋을 듯합니다.”
“궁에 머물라?”
“예. 혹여나 이 정보가 황태자에게 들어가면 가장 먼저 친왕 전하를 의심할 텐데 그때 궁 밖에 있다면 더욱 큰 의심을 받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을 대비해 친왕 전하께선 황궁에 머무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증명이 필요하단 것인가?”
“그렇지요. 이쪽에서도 그것에 관하여 손을 써 놓겠습니다. 그리고 그 황녀를 돕고 있는 세력에 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하여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유역신은 제갈궁의 말에 크게 만족하며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고 제갈궁은 그를 멀리까지 직접 배웅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갈궁이 안도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해 주었군.”
그 순간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깜짝 놀란 제갈궁이 어깨를 들썩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말했지 않았나.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히익!”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넘어진 제갈궁.
그런 그의 앞에는 홍송도와 최양이 나타나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참인가, 제갈 가주. 아니, 이젠 전(前) 가주라고 불러야 하나?”
홍송도의 말에 제갈궁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홍송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친왕은 오늘 일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고 있다. 보는 것과 달리 사람이 가볍고 귀가 얇아 사람을 쉽게 믿는다고 하더군. 욕심만 많을 뿐 황좌에 어울리는 재목은 아니지.”
“예, 그렇습니다.”
“가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처럼 행동해. 네가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알아서 연락이 갈 것이다.”
홍송도는 자신을 보며 굽신거리는 제갈궁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용진을 따르게 되어 진짜 그의 염원이 이루어진다면 언젠가 자신도 한낱 녹림의 채주가 아닌 무림의 중심에 선 인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궁’이 자신의 눈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이는 옛날이라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명심해라. 네 행동 하나하나에 네 가족의 목숨이 걸려 있다는 것을. 너와 네 가족들이 지금 명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오롯이 그분의 화해와 같은 아량 덕분이니까.”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 * *
모용진이 하북에 도착하기 삼 일 전.
제갈영은 생각했다.
유기서필(油耭栖筆)이 이미 손에 들어왔는데 이것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라고.
제갈세가의 위치와 그 능력을 생각했을 때 지금 흑천파가 제갈세가를 손에 넣는다면 앞으로 있을 일에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제갈영 자신이 그 선봉에 서서 제갈세가를 휘어잡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나서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왜냐하면 한번 그들에게 인생을 농락당했던 제갈영이 유기서필을 들고 나타나 봤자 큰 두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갈영은 가상의 인물을 하나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 이름은 바로 제갈벽우.
자신의 아버지인 제갈벽운의 이름을 딴 그는 제갈벽운이 몰래 낳아 기른 아이로 천기린의 제자인 천기열. 즉 조종려의 제자로 보내졌다고 설정되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모용진의 인생을 거울삼아 만들어 냈고 어쩌다 보니 제갈벽우는 모용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갈영은 제갈벽우를 겉으로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적은 모름지기 그 정체를 모르면 모를수록 무서운 법.
모용진이 도착하기도 전에 홍송도와 최양을 불러 조용히 계획을 시작한 그녀는 다음 날 올라온 보고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최양과 홍송도가 단 하룻밤 사이에 제갈세가를 함락시켰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한번 제갈세가를 급습했었던 최양은 제갈세가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모용진이 넘겨준 ‘초열권’을 이용하여 이제 조금씩 가세를 일으켜 가던 제갈세가에는 제갈궁을 제외하고는 홍송도와 최양에게 대적할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제갈궁마저도 최양의 한 수를 버티지 못해 큰 내상을 입었고 그렇게 오대세가 중의 하나인 제갈세가가 흑천파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제갈세가를 손에 넣은 제갈영은 제갈벽우라는 이름을 통해 합리적으로 제갈세가를 손에 넣으려 했고 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제갈벽우는 자신의 아버지인 제갈벽운의 복수와 자신의 제갈세가를 되찾기 위해 이여립에게 ‘유기서필’을 가지고 오라 명령했다고.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홍송도를 통해 유기서필을 제갈궁과 제갈세가의 장로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원래 제갈세가의 적통이었던 제갈벽운의 피를 이은 제갈벽우.
거기에다 그의 손에는 가주를 증명하는 유기서필이 쥐어져 있었고 제갈세가를 하루 만에 제압할 정도의 강한 무인들 역시 그를 따르고 있었으니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궁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제갈벽우에게 가주를 넘겨주고 내려오는 것.
하지만 제갈영은 제갈궁이 가주의 자리에 있어야 좀 더 쓸모가 있을 거라 판단했고 대외적으로는 제갈세가에 아무런 일도 없던 것으로 만들었다.
“제 예상대로 유역신은 공성 대사를 찾아 무림맹을 찾았습니다. 그 서신을 들고 말이죠.”
“서신은?”
“제갈궁이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유역신은?”
“공성 대사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절대 황궁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갈영의 보고를 들은 모용진은 만족한 듯한 미소와 함께 제갈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뭣…… 뭐 하는 짓이세요!”
“칭찬. 나라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들인데. 역시 내가 군사 하나는 잘 뒀단 말이지.”
“칭찬해 봤자 더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리고 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유역신이 궁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유역경이 역모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고 숨어 버리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그리고 제갈세가는…… 언젠가 제가 해야 할 일을 아저씨의 힘을 빌려 조금 더 일찍 써먹었을 뿐이에요. 그마저도 어느 정도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제갈세가를 손에 넣은 것은 계획의 일부였지만 그 제갈궁이 공성 대사를 대리해 무림맹주의 일을 하게 된 것은 순전한 운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제갈궁에게 통합무림을 통해 직접 유역신을 만나게 하여 서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는데 운 좋게도 제갈궁이 무림맹주의 대리를 하게 된 상태에서 유역신이 무림맹을 찾은 것이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지. 운도 맞이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운을 쟁취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운도 영이의 실력이라고 생각해.”
“아저씨…….”
모용진의 말에 제갈영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모용진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까치집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재빠르게 머리를 빼냈다.
“아! 내 머리! 우으……. 아저씨는 진짜 예나 지금이나!”
“하하. 힘 좀 빼라고 한 거야. 지금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말이야.”
“제가요?”
“그래.”
황궁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모용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제갈영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고 모든 상황이 그녀의 계획에 맞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아마 군사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겠지. 게다가 항시 정보를 받고 계획을 짜는 게 너의 임무니까 다른 이들에 비해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거고.”
모용진이 말하는 ‘그 일’이란 바로 통합무림과 흑천파의 전쟁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는 절대 작은 문파 간의 다툼 따위가 아니었고 이제는 서로 친왕과 황태자를 등에 업은 상태로 거대한 전면전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무림과 황궁이 함께하는 전쟁.
이는 어떻게 보면 중원 역사상 가장 큰 내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사의 입장에서 모두를 생각해야 하니 마음이 무겁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 ‘책임’까지 모두 네가 질 필요는 없어.”
“예?”
“내가 시작한 일이고 내가 모두를 끌어들인 것이니 책임은 모두 내가 질 거야. 그러니까 너는 마음 편하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안만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돼.”
“……그게 가장 어려운 것 아닌가요?”
“어? 그, 그런가……?”
“풋……!”
당황한 듯한 모용진의 반응에 제갈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고 이에 모용진도 덩달아 웃었다.
한참을 이유도 없이 웃던 제갈영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진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아저씨는 어떤 사람인지 도통 모르겠다니깐요.”
“내가? 내가 왜? 딱 봐도 평범한 사람이지 않아?”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뭔가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거워요. 게다가 가끔은 정말로 무서운데 지금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을 때는 한없이 웃긴 그런 사람?”
“그게 뭐야……. 그건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사람 같은데…… 아니, 그것보다 방금 내 표정이 그렇게 멍청해 보였어?”
“네. 무척이나 멍청해 보였어요.”
방금 전 모용진의 표정을 떠올린 제갈영이 다시 웃기 시작했고 이에 모용진은 자신의 표정이 정말로 웃긴지 거울로 확인했다.
“꺄하하하하.”
맑고 청량한 제갈영의 웃음소리.
하지만 그 웃음소리에는 모용진을 향한 제갈영의 또 다른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제갈영은 평생 드러내지 않을, 속에 담긴 그 감정을 웃음으로 조용히 날려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