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5
광마전생 (255)
하북 적성현.
흑천파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당하고 있는 이곳에 황태자는 모용진이 보란 듯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역시 황태자는 다르다는 건가.”
모용진은 황태자가 적성현에 올 때 기껏해야 한두 명 많아 봤자 네다섯 명의 사람만 동행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모용진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숫자의 사람들을 대동한 채로 적성현에 나타났고 게다가 그들은 결코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동창군(東廠軍)’.
황제 직속의 첩보기관임과 동시에 무력 단체인 그들은 오직 황제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아저씨…… 분명 저에겐 이야기가 좋게 끝났다고 하셨지 않았나요?”
“좋게 끝났어. 내가 상관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올 줄이야……. 그것도 동창군을…….”
황태자가 임시로 세워 둔 통제용 차벽 근처까지 다다르자 모용진은 잠시 다녀오겠다며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적성현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무사들을 뒤로 물린 모용진은 홀로 앞으로 나아가 다가오는 황태자 무리의 앞을 가로 막아 섰다.
“황태자 전하, 오셨습니까.”
모용진의 등장에 황태자가 타고 있던 말을 멈추자 동창군들도 일제히 멈춰 섰다.
“그래. 이곳까지 날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이것 때문이라니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모용진의 대답에 황태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성문을 가리켰다.
“보아하니 지금 그대가 이곳 적성현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설마 잊은 것은 아니겠지? 이 적성현 역시 짐의 것이라는 것을. 이곳 역시 내 백성들이 살아가는 곳인데 그런 곳을 통째로 통제하고 있는 것을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엄연히 말하자면 ‘아직’은 전하의 것이 아니지요. 아직 완전한 승계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해야 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무례한 놈을 보았나! 그 더러운 입을 다물지 못할까!”
모용진의 말에 성을 내며 달려든 것은 황태자가 아닌 그 옆에 있던 동창군의 병필태감이었다.
환관 중에서도 서열 이 위인 병필태감은 동창군을 이끄는 자로 다른 환관들과는 결이 다른 환관이었다.
보통의 환관은 거세를 하는 것만으로도 환관이 되어 황궁의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동창군은 그런 환관들 중에서도 무(武)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만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동창군을 이끄는 병필태감 역시 동창군 출신의 장군으로 뛰어난 무예를 보유한 자였다.
분노한 병필태감이 검을 뽑아 들며 말에서 내리려 했지만 황제가 먼저 손을 들어 올려 이를 제지했다.
“병필태감, 그대의 충의는 알겠지만 물러서게.”
“하오나 황태자 전하!”
“물러서라시지 않습니까, 병필태감.”
모용진이 병필태감을 향해 도발하듯 한마디 던졌지만 병필태감은 모용진을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일부러 우리 병필태감을 자극하려는 것이었다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군. 병필태감이 보기에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아 보여도 되게 뒤끝이 센 편이라네.”
“괜찮습니다. 이 일만 끝난다면 두 번 다시 황궁 사람들과 볼 일은 없을 테니까요.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좋은 인상을 남겨 봤자 무엇 하겠습니까.”
“무림인도 결국은 내 백성들이라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워낙에 ‘관무불가침’이라는 문장을 좋아하는 이라.”
서로를 면전에 두고 말로 기 싸움을 하는 듯한 황태자와 모용진.
그들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을 지켜보는 이들의 손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펼치는 신경전이 당장이라도 전쟁의 신호탄이 되어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네놈의 무례를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나 지금 짐의 상황이 이러하니 여기선 못 본 척 넘어가야 하는 것이 맞겠지?”
“예. 그리하셔야 합니다.”
“이 빚은 언젠가 갚지.”
“이후에 지실 빚까지 확실하게 계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하.”
모용진의 말에 황태자가 졌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고 이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병필태감이 나서려 했지만 그보다 황태자가 먼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태감, 그대가 보았듯 짐은 이런 상황이라네. 그러니 그대도 이해해 주게. 나를 향한 충정은 알겠으나 지금은 참아야 할 때라네. 애석하게도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저자의 힘이 꼭 필요하니 말이야.”
“황녀 전하도 계시니 말이죠.”
모용진의 덧붙임에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필태감이 저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단 들어가면 모두 말해 주겠네. 그러니 지금은 동창군에게 협조를 명하지. 그러니 모용진 자네도 그 비꼬는 말투 좀 어떻게 해 줄 순 없겠나? 당황했다는 건 알겠지만 말이야.”
“예. 솔직히 꽤나 놀라긴 했습니다. 설마하니 동창군을 모두 데리고 오실 줄은 생각하지 못해서 말이죠. 그리고 제 말이 조금 과격했다면 두 분께 사과드리겠습니다. 함께 데리고 오신 분을 떠보고 싶었을 뿐 그 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황태자를 향해 모용진이 고개를 숙인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성문이 열렸고 문 앞을 막고 있던 흑천파의 무사들도 일제히 물러났다.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 * *
황태자는 동창군의 무장을 모두 해제시켜야 안심하지 않겠냐고 말해 병필태감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지만 모용진은 괜찮다며 이를 거절했다.
“지금 동창군에게 여긴 사실상 적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무장을 해제하게 하면 심리적 압박이 엄청나게 될 것이고 이는 향후 사기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동창군이 무기를 들든, 들지 않든 저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용진의 말에 병필태감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지만 그는 이번에도 잘 참아 내고 있었다.
그는 황태자가 차기 황제로 오르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미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한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전하께서는 환관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병필태감과 동창군도 환관이지 않습니까?”
“그들과 우리 동창군을 한데 엮지 말게. 병필태감 역시 마찬가지지. 권력에 눈이 먼 그런 개돼지 같은 놈들과 우리 동창군을 비교하는 것은 동창군에게 있어 큰 수치라네. 그리고 그만 긁어도 되네. 그들은 진짜로 짐의 군사들이니까. 혹 그들이 ‘무공’을 익혀서 그러는 겐가.”
“아닙니다. 저도 병필태감과 동창군이 배신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흥미가 생겨서 그랬을 뿐입니다.”
“흥미가 생겼다?”
“예. 그들이 익힌 무공. 어떠한 내공심법과 무공을 익힌 건진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일반적으로 무림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달리 상당히 특이해서 말이지요. 제가 또 무공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라 병필태감을 살살 긁으면 겸사겸사 한 수 맞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악취미군. 무(武)를 견주고 싶다면 정식으로 한 수 청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럴 수야 있지만 비무를 청하는 것으로는 그 무공의 진가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생사를 오가는 혈투야말로 그 무공의 진가를 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세간에는 그걸 악취미라고 한다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도 지지 않는 모용진을 보며 유역경은 그에게 인간적으로 큰 흥미가 생겨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면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학문적으로 한번 꼭 연구해 보고 싶어지는 인물이었다.
“여깁니다. 들어가시죠.”
모용진이 들어가라며 가리킨 곳은 바로 하북팽가가 있던 그 자리였다.
이제는 모두 다 타 버리고 터만 남은 곳이었지만 병필태감 역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여긴…… 하북팽가가 아닙니까! 그 하북팽가가 어떻게 이런……?”
“병필태감 이곳을 알고 있나?”
“예. 하북팽가는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던 명문 세가 중 하나입니다. 무림에서도 오대세가로 불리며 유명하지만 황궁과 밀접한 곳이라 무림 세가임에도 황궁과 많은 교류를 나눴던 세가입니다. 초창기의 금의위 역시 그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궁에 호의적인 무림 세력 중의 하나였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혹시 ‘북패기원 탈환가연[北敗基原 奪換家燕]’이라는 문장을 아십니까?”
갑자기 모용진이 병필태감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자 병필태감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황태자는 계속해 보란 듯이 턱짓을 했다.
“사실 그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북팽가는 이 문장을 마치 가보처럼 여기며 오로지 직계 적자들에게만 이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건 황태자 전하께서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는 분명 황궁의 일일 테니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확실한 정보는 그들은 통합무림의 일원들 중에서 가장 선봉에 나서서 역모를 꾀하던 이들이고 빠르게 황궁을 함락시키기 위해 역혈기공(逆穴氣功)이라는 마공(魔功)까지 익힌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관련된 증거와 증인은 모두 확보해 둔 상황이니 필요하시다면 황궁에 모두 넘겨드리겠습니다.”
“마공에 증거와 증인까지……?”
“확인은 추후에 하지.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태감?”
황태자는 노골적으로 병필태감을 바라보며 말했고 이는 그에게 알아서 조사를 해 보라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시지요. 황태자 전하께서 말을 타고 계시면 아주 곤란해하실 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때는 모용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던 황태자였지만 잠시 후 모용진과 함께 정원이었던 곳의 다리를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한 인영.
꽤나 먼 거리였지만 황태자는 그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화은아!”
황녀를 본 황태자가 갑자기 뛰쳐나가자 깜짝 놀란 병필태감이 함께 뛰어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모용진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짓이냐!”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남매의 소중한 상봉시간을 지켜 주고 싶을 뿐입니다. 저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불안하시다면 제 목에 검을 얹고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큼…….”
모용진의 말에 침음을 삼킨 병필태감은 알았다며 물러섰지만 그와 동창군은 경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화은아!”
다시 한 번 들려오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설백의 옆에 가만히 있던 황녀가 드디어 반응하며 황태자를 향해 뛰쳐나갔다.
모용진은 병필태감과 함께 멀리서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계획대로 잘 되어 간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모두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황태자를 향해 달려가던 황녀가 그대로 황태자의 손길을 회피한 채 계속해서 달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달려가는 방향은…….
“응? 잠깐만……. 왜 황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