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58
광마전생 (258)
황궁에서 금의위를 제압하는 작전이 시작된 그 시각.
다른 할 일이 있다며 황궁에 가지 않은 모용진은 늦은 밤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동행하지 않은 채 홀로 움직이는 모용진.
놀랍게도 그가 향한 곳은 한참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이었다.
“죽어라! 배신자들!”
“저 가증스러운 속물들에게 혈교의 위대함을 보여 주어라!”
“혈세 천세 혈중세!”
전장 근처의 나무 꼭대기에 올라선 모용진은 전장의 소리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휘유. 역시 혈교 내 생각보다 더 잘 막아 내고 있구만.”
지금 모용진 그가 있는 숲은 바로 혈교의 진짜 본거지가 숨어들어 있는 숲이었고 그 정문은 지금 한창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려는 무림맹과 이를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혈교.
하지만 전력 차이는 명백했고 언제 혈교의 성벽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선봉에 나서서 혈교를 쓰러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무당파의 무복을 입고 있는 자였다.
“저 녀석이 무직자(武直自) 장도준인가. 무당의 검치고는 상당히 거칠구만.”
장도준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턱을 두드린 모용진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타난 곳.
그곳은 장도준이 혈교의 무사를 두 동강 내고 있는 검격의 안이었다.
“뭣?”
갑작스러운 모용진의 등장에 장도준은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을 멈추진 않았다.
서걱!
거칠게 잘려 나가는 모용진의 몸.
하지만 그가 벤 것은 모용진의 잔상이었다.
“흠……. 어느 정도인가 했더니 고작 이 정돈가?”
“헉?!”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자신을 평가하는 듯한 목소리에 장도준은 놀라면서도 그곳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크악!”
하지만 그 검에 썰려 나간 것은 장도준을 뒷받침해 주던 무당파의 제자였고 그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살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화경인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다니……. 설마?!’
“날 찾나?”
마치 유령처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모용진의 모습.
모용진은 이번에도 검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장도준은 오히려 한발 물러서며 침착하게 자세를 잡고 있었다.
“호오…….”
“그 용모를 보아하니 태허 진인께서 언질하신 천기린이라는 분이 당신인가 보군요.”
“그 이름은 한 번 죽음으로써 예전에 끝났다. 이젠 모용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참고로 이여립은 가명이야.”
“그렇군요. 한 번쯤은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전설로만 내려오는 최강의 광마(狂魔). 자신의 힘으로 무림맹주의 자리까지 차지한 당신을.”
“날? 이미 죽은 자로 알고 있었을 텐데. 죽은 자를 어떻게 만나고 싶어 하지?”
“그저 어릴 적의 꿈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가진 당신은 제 이상향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래? 악수라도 나눠 주고 싶지만 지금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군.”
모용진의 진지한 목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잔뜩 곤두서는 것을 느낀 장도준이 내기를 끌어 올리는 그 순간, 모용진이 그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만. 파리들이 너무 날려서 말이야. 조용히 좀 만들어야겠군.”
그 순간 모용진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 나왔고, 그 검이 뽑혀 나간 방향을 보며 장도준은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피해!”
찰나의 순간 느껴진 어마어마한 모용진의 내기.
하지만 이를 느낀 장도준이 피하라고 소리쳤을 땐 모든 게 늦어 버린 이후였다.
허공을 가르는 백색의 검강.
그 두께와 형태가 실로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로 거대하고 매끄러운 검강이 혈교의 성벽을 공격하고 있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노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악!
검강은 정확하게 전장의 격전지를 가르며 지나갔고 그 검강에 휘말린 자는 혈교, 무림맹 할 것 없이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무슨…….”
갑작스레 눈앞에 벌어진 일에 장도준이 입을 닫지 못하는 그때 모용진의 입에서 심오한 내공이 담긴 사자후가 전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내가 바로 광마라 불리던 천기린이다! 방금의 일격은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경고이자 자비로써,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누구라도 내 검기가 만들어 낸 이 선을 넘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베겠다. 그게 누가 되더라도 말이지.”
모용진의 말은 그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라도 선을 넘는다면 베어 버린다는 뜻이었지만 전장에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천기린이 명백히 혈교의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와아아아아!”
“광마께서! 우리와 함께한다!”
잠시 후 혈교 쪽에선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는 수세에 몰렸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로 혈교에 협조하고 계셨던 겁니까.”
장도준의 질문에 모용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던 검을 장도준 쪽으로 겨누며 짙은 살기를 흩뿌렸다.
“들어올 것이라면 지금 들어와도 좋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 두지. 내 검은 네 목을 자를 것이나 네 검이 내게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 * *
사실 무림맹은 산서에서 서서히 군세를 물리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산서 그 어디에서도 천기린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이제 남은 것은 혈교의 본거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공성 대사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숭산으로 돌아가려 했고 혈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장도준이 이끌고 있는 철열대만 산서에 남겨 두었다.
이미 혈교는 이빨이 다 빠진 상태였고 혈교에 남은 고수라고는 큰 상처를 입고 도망간 장로 중각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서에 설치한 임시 전진기지와 임시 무림맹지사까지 모두 철거하고 돌아가려는 그때.
그 소식이 공성 대사의 귓가에 전해져 왔다.
“그게 사실이냐? 정말로 천기린이 나타났단 말이냐?”
“예, 맹주님.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대화까지 나누었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막사에서 공성 대사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장도준이었다.
“이때까지 혈교의 본거지에 숨어 있었다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제가 이 영혼을 불살라 그자와 맞서 싸워야 했으나. 전 이렇게 먼저 보고를 올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했다. 너의 선택은 옳았다. 놈은 절대 만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말이지. 조금 생각해 볼 게 있으니 이만 물러나거라.”
“옙!”
장도준에게 축객령을 내린 공성 대사는 그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마자 원불을 턱짓으로 불렀다.
“예, 맹주님.”
“당장 경공이 가장 뛰어난 이들을 보내 장문인들을 불러들여라. 우리도 다시 산서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공성 대사는 이미 낙양을 넘어 숭산에 다다른 상태였는데 장도준이 가져온 소식에 재빠르게 다시 우회하여 산서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눈살을 찌푸린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검성 남궁혁이었다.
남궁혁과 진도석 그리고 왕원장.
천외천의 명을 받아 그들은 지금 무림맹에 있었다.
산서를 향하던 그들은 공성 대사가 혈교와의 전쟁을 마무리 짓고 다시 무림맹을 향한다는 소식에 혹시나 그 길이 엇갈릴까 봐 먼저 무림맹으로 돌아와 잠입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공성 대사가 방심한 틈을 타 인달을 빼돌리는 것.
그런데 공성 대사가 다시 산서로 돌아간다는 말은 무림맹에 몰래 잠입한 일이 전혀 쓸모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여기서 공성 대사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공성 대사를 뒤쫓아 다시 산서로 향하는 것이요. 저는 이대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왕원장과 진도석의 말에 남궁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은 그분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일이 상당히 지체되기도 했으니 빠르게 행동해야겠군.”
“빠르게…… 설마 정면으로 마주하실 생각이십니까?”
진도석의 물음에 남궁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일 우리가 그 아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더욱더 경계가 삼엄해질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상황을 지켜보되 모습을 드러내고도 그 아이를 확보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든다.”
진도석과 왕원장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한시가 바쁜 일이니. 우리에게 멈춰 있을 시간은 없다.”
* * *
갑자기 모용진이 혈교와 무림맹의 전장에 나타난 이유.
그것은 바로 조금 더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무림맹이 산서에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에 모용진은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산서를 주시하고 있었다.
공성 대사의 눈이 혈교에서 멀어진다면 당연히 그 시선은 친왕을 향할 것이니까.
그리고 황궁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공성 대사는 어떻게든 친왕의 입궁을 막으려 들 게 뻔했다.
그래서 모용진은 전장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를 봐라, 혈교에 내가 있다.’ 하고.
모용진의 의도는 아주 잘 먹혀들어 갔고 늦은 밤 무림맹은 다시 산서로 집결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혈교를 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는 바로 그 천기린.
광마라 불리며 한때 절대적인 무위로 무림을 쥐락펴락했던 괴물.
그 괴물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 내내 그들은 혈교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대기했다.
모용진이 먼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하지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모용진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게끔 도발까지 해 봤지만 반응한 것은 오직 혈교도들뿐.
그럼에도 공성 대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천기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선가 그들을 지켜보며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 해가 떠오르고, 기다리다 못한 공성 대사가 혈교를 향한 총공격 명령을 내린 그 시각.
친왕 유역신은 마차에 오른 채 정안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열리는 문과 함께 입궁하는 금군과 친왕의 마차.
“흠……. 요즘 더러 느끼는 거지만 황궁은 참으로 따분한 곳이란 말이지. 빨리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이 따분한 황궁을 완전히 갈아엎어 버려야겠어. 좀 더 신나는 곳이 될 수 있게 말이야.”
친왕은 상상하고 있었다.
자신이 황제에 오르고 자신을 무시했던 모든 이들의 수급을 황궁에 내거는 상상을.
하지만 그 꿈은 짧은 단말마를 시작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끄악!”
“큽!”
단말마로 시작된 비명은 친왕의 주변으로 마구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깜짝 놀란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대체 무슨 일이…….”
하지만 이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들려오던 비명 역시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콰직! 콰지지직!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뜯겨 나가는 마차의 문.
깜짝 놀란 유역신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검을 쥐고 있는 황태자의 모습이었다.
“혀, 형님…….”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유역신, 내 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