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6
광마전생 (26)
7장
백리강.
그…… 아니, 그녀는 그 백리세가의 막내 공자였다.
그런데 표행 중 벌어진 녹림과의 전투에서 패배했고 목숨을 빼앗기게 되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모용진.
완전히 몰락하여 그 뿌리마저 사라졌다는 모용세가의 이름을 가진 남자.
그리고 그에게 정신없이 끌려다니다가 보니 어느새 백리강은 녹림의 이인자가 되어 있었다.
“난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백리세가는 중원에서 꽤나 뼈대 있는 가문으로 ‘정파(正派)’에 속했다.
그런데 그런 백리세가의 후계자인 백리강이 흑도의 이인자가 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용진을 찾아가 사실대로 고했다.
자신은 정파의 후기지수이며 흑도의 무리가 될 수 없다고.
그런데 그런 백리강에게 모용진은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넌 정파가 뭐라고 생각하냐?”
“예? 음…… 저는 말 그대로 올바른 행위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절과 도덕을 지키며 협과 의를 행하는 단체. 그게 정파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지금 네가 흑도의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협과 의를 행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겠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의에 맞서는 협과 의를 중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더 나아가 세가의 발전을 위하여 이 한 몸 불태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저의 목숨을 구해 주신 모용…… 아니, 주군이라고 해도 저의 신념은 꺾을 수 없을 겁니다.”
백리강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모용진을 향해 진심을 담아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백리강이 보기에 모용진은 완전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하면 들어 주고 의견이 있으면 수용하기도 했다.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백리강은 모용진이 웬만하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조금 분하긴 하지만 주변의 녹림도들에 비해 자신은 무공 실력도 부족한 편이니까.
잘만 이야기하면 보내 줄 것이라고.
하지만 묘용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럼 네 말은 우리가 의와 협을 행하면 상관이 없다, 이 말이네……?”
“네? 아…… 뭐,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그것 말고도 저희 세가를…….”
“그래. 뭐, 그 백리세가도 띄워 주고 말이야. 그거면 돼?”
그렇게 말한 모용진은 백리강을 물렸다.
그리고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용진은 중경녹림의 모든 녹림도를 불러들였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로 산적질은 금지. 다들 착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 오도록.”
산적에게 산적질을 그만하라는 모용진.
처음에는 모두가 장난 삼아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용진은 진짜로 산적질을 못 하게 막았다.
어떻게?
힘으로.
말을 듣지 않는 녹림도들에게 물리적인 설득을 가한 것이었다.
물론 가야허는 펄쩍 뛰었다.
산적이 산적질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면서.
하지만 그는 곧바로 진실의 방으로 끌려갔고 착해져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산적질을 하지 않게 된 녹림.
당연히 백리강은 녹림이 이제 망할 거라 생각했다.
‘모용진 저자가 작정을 하고 녹림의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이었구나!’
여전히 세가로 돌려보내 주진 않았지만 녹림이 망하고 나면 분명 모용진이 세가로 돌려보내 줄 거란 생각에 모용진이 시킨 일만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여섯 달…….
백리강은 뭔가가 점점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말이 되나……?”
백리강이 모용진에게 받은 임무는 장부 정리.
돈을 관리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표국에서 기본적인 일은 배웠었고 옆에는 녹림에서 회계를 맡던 홍봉도도 붙어 있었다.
당연히 산적질을 그만두게 만든 초반에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수익은 없었고 나가는 돈만이 있을 뿐.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어디선가 수익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육 개월이 지난 지금은 예전 산적질을 하던 시절의 열 배, 조금 더 들어온다 싶은 날은 스무 배도 넘는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리강은 가야허를 찾아갔다.
“분명 주군은 산적질을 못 하게 막지 않았나? 그런데 왜 수익이 점점 늘어나는 거지?”
하지만 그런 백리강의 질문에 가야허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백리강에게 따라오라며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녹림의 회계를 맡고 있는 녀석이 우리의 주 수입원도 모르면 쓰나. 쯔쯔쯔. 그렇게 매일 전각 안에 박혀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며 가야허가 보여 준 것은 바로 중경관문이었다.
놀랍게도 중경관문은 예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잘 닦인 지반엔 흔한 돌멩이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름만 관문이던 앞의 네 개의 관문에는 진짜 네 개의 문이 생겨나 있었다.
“이게 바로 새로운 중경오관문이다. 모두 주군께서 창안하신 것이지.”
백리강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표국이 가야허의 손에 전멸했던 첫 번째 관문.
그곳엔 중경관문을 지나려는 표사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에겐 이렇다 할 호위 무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많아 봤자 한두 명.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표사들이 아무런 반항이나 대꾸도 없이 돈을 내고 중경관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돈을 내면서도 아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냐…… 그전에 습격이라도 해서 표사들을 협박이라도 한 것이냐? 내가 이를 주군에게 알리면…….”
“쯧쯧. 하여간 정파 놈들이 더하다니까. 봐라. 저 표정들이 협박을 당한 표정인지. 우리는 지금 정당하게 통행비를 걷는 것뿐이다.”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백리강을 보며 가야허는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 녹림이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모용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산적질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었다.
믿기진 않지만 모용진의 좌우명은 ‘착하게 살자’.
애초부터 모용진은 녹림을 개과천선시킬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고 그 첫 번째 계획이 바로 수입원의 변화였다.
예전과 똑같이 통행세를 받되 정당한 통행세를 받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는 가야허를 시켜 중경관문의 모든 길을 평탄화시켰고 걷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름만 관문이었던 위치에 실제로 거대한 관문을 만들어 문지기를 배치했고 칼을 든 산적 대신 붓을 든 세관원을 관문마다 배치했다.
물론 처음에는 표국들의 반발도 있었다.
왜 길을 지나는데 통행세를 내야 하냐면서.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모용진은 귀신같이 그들 앞에 나타났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꼬우면 바로 옆 산길로 돌아가던가. 거기에도 길은 있어. 왜 우리가 깔끔하게 정리한 길을 공짜로 걸어갈 생각을 하지?”
그렇다.
모용진은 일부러 중경관문을 걷기 좋게 만든 뒤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통행세를 걷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따졌다.
모두가 사용하는 길에 주인이 어디 있냐면서.
차라리 이 하늘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라며 따지던 그들에게 모용진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종이는 바로 이곳 중경을 관리하는 관리의 직인이 찍혀 있는 땅문서였다.
“어, 주인 있어. 여기 내 땅인데? 불만 있으면 관아에 가서 따지던가. 말리진 않을 테니까. 잘 들어. 이 길에 건물을 짓든 바위로 가득 메우든 그건 내 마음이야. 한마디로 내가 중경관문을 통째로 막아 버린다고 해도 너희들은 아무 말도 못 해. 알아? 그러니까 우리 곱게 곱게 가자고. 나도 착하게 살고 싶으니까. 싫으면 관아에서 봐도 좋아.”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몇몇 사람들은 중경관문에 돈을 내고 건너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절대 돈을 못 내겠다고 하며 산길을 걸어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곧 중경관문의 편안한 길을 타고 오르는 다른 표사들을 보며 다시 내려와 돈을 내고 지나갔다.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데리고 있는 호위 무사에 자신이 있던 표국들.
하지만 그들은 모용진의 압도적인 무력에 쓴맛을 보아야 했고 그중 ‘대원표국(大原鏢局)’과의 다툼은 중원에 알려질 정도였다.
열 명이 넘는 화산파 속가제자 출신을 거느리고 있던 대원표국이 통행세를 거부하고 모용진에게 덤벼들었는데, 단 일 분도 걸리지 않아 모든 호위 무사들이 바닥에 드러눕는 일이 발생했다.
모용진은 항상 모습을 드러낼 때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때 착용한 가면이 개를 형상화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중경귀견(重庆鬼犬)’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그 호칭이 붙은 뒤로 중경녹림엔 화산파 속가제자들을 때려잡은 중경귀견(重庆鬼犬)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고 더 이상 표국들은 중경관문에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럼 요즘 수익이 많은 이유가…….”
“그래. 이렇게 정당하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제공하고 표국들은 통행세를 낸다. 물론 강요도 없어. 바로 옆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산길이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 벌이가 더 많아진 건 아마 저거 때문일 거다.”
가야허가 가리킨 것은 바로 노점상이었다.
중경 관문마다 배치된 노점상.
그곳에는 놀랍게도 오로지 ‘물’만 판매하고 있었다.
“저것도 우리 주군의 지혜 중의 하나지. 관문을 오르는 이들은 목이 마를 테니 물을 팔아라.”
“물을……? 물이라면 여기 중경의 지천에 널렸을 텐데?”
백리강의 질문에 가야허는 한심하다는 듯 손가락을 저어 보였다.
“백리세가의 공자라고 해서 조금 똑똑할 줄 알았더니만 예쁜 장식이었나 보군. 잘 봐라. 여기 중경관문 어디에 물이 있는지. 오관문을 모두 통과하기 전까진 물은커녕 이슬도 존재하지 않아. 게다가 물은 이고 가기엔 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지. 고로 돈이 된다 이 말이야.”
가야허의 말대로 물은 돈이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물이 통행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중이었다.
중경관문에서 물을 팔고 있다는 걸 안 표국들이 물을 길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편이 표국에도 좋았다.
물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표사들이 줄어들자 당연히 인력비도 아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짐이 많이 가벼워졌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외에도 주군께서 일러 주신 방안이 많이 있지. 예를 들면 중경관문을 통할 때 표물을 먼저 옮겨 주는 안심 배달 봉사라든가…… 사람까지 운송해 주는 인력거라든지…… 아직 시행 전이지만 우린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거다.”
가야허에게 있어서 모용진은 이제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돈을 만들어 내는 재물의 신.
게다가 그 모든 일들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살면서 처음으로 걱정 없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가야허였다.
“뭐, 그래도 이건 네가 제안했다고 하더군. 역시 정파 출신이라서 그런 건가,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내가? 이걸?”
“그래. 주군이 그러시던데? 네가 합법적으로 돈을 벌어들이자는 제안을 했다고.”
그렇게 백리강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그 시각.
우리의 모용진은 자신의 애완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물어 와!”
모용진의 외침과 함께 저 멀리 전각 넘어로 날아가는 새하얀 뼈다귀 하나.
잠시 후 검은 신형 하나가 전각을 밟고 하늘을 날 듯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그 뼈다귀를 낚아챘다.
그리고 다시 사라지는 신형.
그 신형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전 녹림왕 거혈이지 호태산이었다.
“멍!”
진짜로 개가 된 듯 모용진에게 입으로 뼈다귀를 건네주는 호태산.
모용진은 그런 그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어이구, 잘한다……. 이제 충성심이 조금은 생겼겠지?”
오랜만에 모용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
여태껏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물어 와’ 하나뿐이었고 ‘멍’ 이외의 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호태산은 최선을 다해 크게 짖었다.
“멍!”
……이라고.
그리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든 듯 모용진은 웃으며 손에 든 뼈다귀를 바닥에 내려놨다.
“잘 봐, 멍멍아. 네가 다시 사람이 될지, 아니면 평생 개로 살지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란다.”
모용진의 말에 호태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
호태산은 알고 있었다.
모용진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평생 개로 부려 먹을 인간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볼까? 네가 흑천에서 한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흑천의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