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63
광마전생 (263)
처음에 내 남편은 너무 기분파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가벼운 사람.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저 참고 또 참았다가 결국 참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그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고 매번 갑자기 폭발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무언가로 일어난다.
분명 이번 팽이종의 죽음은 여태껏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큰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갈영이 한사코 만류한 일을 강행할 리가 없으니까.
“후우…….”
내 남편 모용진에게서 날아온 서신을 받고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찬회장은 이쪽이 아니었나 보네.”
나는 지금 남편의 부탁으로 요녕에 와 있다.
요녕이 피 튀는 전장이 될 거라는 남편의 말에 혹해 이곳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출정 전날, 남편에게 나는 아내를 격전지로 보내면서 걱정도 되지 않냐고 장난을 걸었는데 그 장난에 대한 남편의 반응은 상당히 미묘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미묘한 반응의 의미를 알았다.
왜냐하면 요녕은 분명 피와 살이 튀는 전장이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도 따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흑룡강과 길림에서 사파 연합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는 장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요녕까지 진출해 몰래 하북에 들어서려 하는 중이었다.
북해빙궁을 지키기 위해 외부 세력들과 벌였던 전쟁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수준.
상대를 이끌고 있는 장군은 수성만 해 본 사람이었고 그가 이끌고 있는 것은 진짜 전쟁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사파의 무리였다.
이런 상대를 상대로 좀 더 확실한 승리를 위해 북해빙궁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게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하아.”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내 깊은 한숨에 곧바로 반응하는 빙월.
그녀는 나의 도움 요청에 대주인 빙설자와 함께 내려왔고 날 만나자마자 찰떡같이 달라붙어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 남편인 모용진은 나를 제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예? 안전한 곳이라니, 여긴 전장인데…….”
그녀의 말대로 여기는 전장이 맞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곳은 지금 중원에서 가장 안전한 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파 연합 본대의 움직임은?”
“현재 금서의 도시를 점거하고 바다를 등진 채 수성을 하고 있습니다.”
“수성이라. 자신 있는 걸로 승부를 보겠다 이 말이군. 대주를 불러라. 내가 직접 그 성벽에 거대한 바람구멍을 뚫어 줄 테니까.”
* * *
흑천파(黑天派).
갑작스럽게 하북에 등장한 이 문파에 사람들은 그들이 사파인지, 정파인지, 무슨 속셈을 가지고 하북에 자리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림맹이 반역을 꾀했다는 소식과 통합무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파와 정파가 한데 힘을 모아 중원을 지배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황태자가 흑천파를 두둔하며 반역을 일으킨 자들의 손에서 황궁을 구해 줬다는 말에 의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흑천파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무림의 현 작태를 차마 견디지 못하고 무림맹에서 빠져나온 선량한 의인들이다.’
사실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저들 좋다고 지어낸 말이었다.
하지만 모용진은 이러한 소문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모용진의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마련된 세력이라고 굳이 떠벌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실 흑천파는 그 어떤 문파보다도 강압적인 곳이다.
흑천파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몸에 심어야만 했으니까.
외부인이 이를 알면 끔찍한 짓이라며 심하게 전 중원인들이 심하게 매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흑천파에 있는 이들은 흑천파가 강압적인 곳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흑천파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천파 문도들은 몸에 고독이라는 폭탄을 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만족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통합무림을 향해 진격하는 이 순간에도 그들은 이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천파는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지켜야 할 집이었고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흑천파를 만든 모용진은 오히려 이러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웬만하면 뭐든 혼자 하려 했다.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만 제갈영과 조종려의 말이 그를 흔들었고 지금 그는 흑천파와 함께 진격하고 있었다.
곧바로 개봉을 향해 진격한 그들은 자연스레 하북 안평에 도착했고 그곳은 석가장이 있는 남호성 근처였다.
하지만 석가장이 사천을 지배하면서 이곳은 이미 석가장의 빈껍데기와 마찬가지였다.
흑천파는 순식간에 남호성을 점거하는 데 성공했고 남호성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거대 문파의 분파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남호성을 관리하는 성주를 불러 상황을 물었고 관군을 대동한 모용진의 말에 성주는 거대 문파나 세가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황태자의 명을 따르지 않고 문파의 문을 걸어 잠가 조사받지 않고 있다고 알렸다.
그 말에 모용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끌고 와.”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에 움직인 것은 흑천파 전체였다.
순식간에 남호성 내로 퍼져 나간 흑천파는 잠겨 있는 문을 박살 내고 남호성 내의 모든 무림인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성주의 앞에 세워 놓았다.
그 일이 벌어지는 데는 반 각도 걸리지 않았고 모용진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성주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점혈이라는 것으로 잠시 무공을 폐해 두었으니 아마 당분간은 성주님을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당분간이라시면…….”
“저들은 아마 무림맹이 반역을 꾀했다는 것조차 모를 겁니다. 문을 닫고 있던 것도 화를 피하기 위함이었겠지요. 그러니 황태자 전하의 명을 따라 적절하게 조사 후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모용진은 썩어 빠진 윗대가리들이 문제지, 그 아래에 있는 이들까지 모두 벌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다만 하북팽가처럼 가문 전체가 통합무림에 가담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조사는 필요하다는 생각이었고 잠시 들른 김에 이를 도와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그의 행적은 순식간에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갔고 흑천파가 산동을 넘어 개봉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소문이 많이 와전되어 있었다.
흑천파가 대대적으로 진격해 황태자 전하의 명을 따르지 않은 남호성과 안평의 문파들을 박살 냈다고.
이러한 소문의 여파 때문인지 모용진이 개봉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관아에 수많은 무림인들이 조사를 받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그들은 흑천파가 깃발을 나부끼며 개봉에 입성하는 것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고 모용진은 그 모습에 곧 소문이 더욱더 크게 와전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짝 흘리라고 했을 뿐인데 벌써 이 정도일 줄이야.”
“원래 소문이란 많이 과격한 법입니다, 흑제 님.”
성아의 대답에 모용진은 그녀가 일부러 좀더 과격하게 소문을 흘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님, 아무래도 놈들이 마중을 온 것 같습니다.”
당철삼의 말에 모용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웬 한 무리의 거지 떼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섯 개의 매듭을 달고 있는 법개였고, 법개는 개방에서 한방을 지배하는, 장로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높은 이들이었다.
그런 법개들이 무려 삼십여 명.
이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 개방의 총 전력이 모여 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
“그들이 매고 있는 것이 진짜라면 거의 모든 법개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뜻이겠군.”
“그건 모릅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아니요. 제가 보기엔 진짜입니다. 저들은 하나같이 절정 이상의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꽤나 거리가 먼데 그걸 알 수 있냐는 조종려의 눈빛에 성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당철삼은 그 모습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장로 중 가장 어린 류성아가 가장 먼저 현경에 올라섰으니까.
이 거리에서 세세한 기운을 느끼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경지의 차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정진해라. ‘그것’에도 대비하고 말이지.”
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용진은 위로와 동시에 ‘그것’을 대비하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성아도 겪은 바로 그 현상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거의 똑같이 대답하는 조종려와 당철삼을 향해 모용진은 작게 손짓했고 그 손짓에 당철삼이 말에서 내리더니 다가오는 법개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멈춰라. 개방의 법개들이여.”
당철삼의 외침에 그를 알아본 법개들이 깜짝 놀라면서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도, 독왕? 사천당가의 가주님께서 여긴 어찌…….”
“본 좌는 지금 사천당가의 가주로서 이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흑제를 모시는 흑천파의 장로로서 그대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철삼의 말에 또 한 번 화들짝 놀라는 법개들.
사실 이는 그들에겐 충분히 깜짝 놀랄 법한 이야기었다.
무림맹을 탈퇴하고 마교와 전쟁을 치르더니 사천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사천당가.
그러한 사천당가의 수장인 당철삼이 흑천파의 장로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미리 말해 두지만 본 좌는 그대들의 의문을 풀어 주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왜 그대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의중을 말하라.”
당철삼의 말에 가장 앞쪽에 있던 법개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당철삼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개방의 법개 중 하남 분방을 맡고 있는 활호라고 합니다. 저희는 용두방주 방풍 님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용두방주에게 무슨 명을 받았지?”
“개봉에 입성한 흑천파분들을 개걸굴(丐乞窟)로 정중히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법개의 대답에 당철삼은 모용진의 의중을 물어보듯 고개를 돌렸고 이에 성아와 종려가 동시에 반대한다며 입을 모았다.
“함정이 틀림없습니다. 방풍 그자의 음험함은 스승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법개들을 저렇게나 많이 보낼 리가 없습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용진.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앞선 긍정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대구파일방의 개방. 그 개방의 수장인 용두방주의 초대를 거절할 수는 없지. 법개들에게 전하라. 지금 당장 개걸굴로 안내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