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3
광마전생 (273)
아무리 황태자에게 좋게 일이 끝났다고 해도 모든 게 좋게 끝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승상은 그 자리에서 황태자의 명에 의해 처형당했다.
사유는 황태자를 비웃고 의심하며 대놓고 탐욕을 드러낸 것이었고 이 같은 황태자의 결정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황태자의 곁에 서 있는 서련.
그녀가 있는 한 열이 됐든 백이 됐든 그 어떤 말로도 황태자의 결정을 바꿀 수 없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후들과 그의 무장들은 황태자의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였고 황태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바탕 소동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 승상과 모든 것을 얻게 된 황태자.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승상의 말 역시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고 지금 이렇게 권력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도 뒤에 흑천파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곁에 돌아온 서련을 보며 물었다.
“내가 그대를 황비로 맞아들인다면 그대는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가?”
황태자의 엄청난 제안.
황비가 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고 황제가 승하하면 그 힘을 온전히 물려받는 첫 번째 대상이 황비였기에 이는 이 세상 그 어떤 제안보다 달콤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련의 대답은 너무나도 칼같았다.
“없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날카로운 거절을 내뱉는 서련.
황태자는 그런 서련을 보며 착잡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는가? 황비의 자리를 거절하는 것이 보통의 일은 아니니 말이야.”
“저는 은월령의 비사이자 흑천파의 검. 그리고 흑제님의 눈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마치 마음이 없는 인간처럼 말을 하는구나. 곁에서 보기엔 충분히 마음이 넘쳐 나는 사람이거늘.”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은 황태자는 승상이 흘린 피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모용진 그자가 네게 똑같은 제안을 했다면 어떻게 했겠나?”
“그 질문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흑제님께서 제게 황비가 되어달라고 제안하시는 것과 제가 흑제님의 첩이 되는 것.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입니까.”
“둘 다 대답해 줄 수 있나?”
황태자의 말에 서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설임 없이 말을 내뱉었다.
“둘 다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흑제님의 명이라면.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어째서지?”
“흑제님은 그런 제안을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애초에 령주님과 홍련님이 그렇게 있는 것을 보면…… 큼,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습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황태자는 처음으로 서련의 인간미 있는 모습을 본 듯했다.
“그렇군. 나는 이 나라의 황제가 될 몸인데 그자가 가진 것 하나도 내 손에 넣을 수가 없구나.”
황태자의 넋두리를 서련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모용진에게 부여받은 명령이 아니었다.
그녀가 모용진에게 부여받은 명령은 황태자를 지키고 그의 질문에는 숨김없이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련은 황태자의 그 어떤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을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칼같은 모습은 마치 목석과도 같았지만, 이는 사실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황태자의 곁을 호위하고 있는 그녀가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하루빨리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몸을 씻으며 화주를 마시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황궁에서 일어난 소란이 완전히 종식되어가고 있는 그 시각.
반대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화산이었다.
‘어…… 어떡하지?’
지금 화산의 장문인인 청화 진인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방금 전 화산 아래에서 자연재해에 가까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일이 끝나자마자 천기린이 정문 앞을 찾아왔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방금 전 그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을 벌인 것은 바로 천기린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화산을 방문하는 이유는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천기린에게 있어서 화산은 원수 그 자체와 같았으니까.
게다가 청화 진인은 앞장서서 천기린과 모용진을 괴롭혔고 그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분명 그때의 일로 복수를 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문득 석가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청화 진인은 또 한 번 후회했다.
그때 그는 앞으로 나서서 모용진을 날려 버리는 것도 모자라 모욕적인 언사도 마구 내뱉었었다.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아니 미친 새끼가 어떻게 살아 돌아와서는…… 죽지도 않는단 말인가? 대체 뭐냔 말이다, 그 녀석은!’
한탄해 봤자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청화 진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화산을 도울 수 있는 통합무림의 문파는 없다. 설사 온다고 해도 천기린은 이미 문 앞에 당도해 있다. 아마 도망간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청화 진인이 내린 결정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문을 열어 주지 않고 버티는 것뿐.
하지만 그마저도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청화 진인은 초연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천기린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의 앞에 도착하기를.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모용진은 화산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청화 진인은 문도들을 통해 바깥을 확인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여전히 그곳에 천기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청화 진인은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은 마치 억겁의 시간인 것처럼 느리게 흘러갔고 점점 청화 진인을 옥죄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
그는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을 떠올렸다.
“그놈이 이렇게 인내심이 좋았었나?”
청화 진인이 아는 천기린은 인내심 따위는 티끌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내였다.
그는 즉흥적이며 무지막지하며 오직 앞만 보는 사내였기에 절대 기다리는 법이 없었다.
그걸 떠올리는 순간 청화 진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바깥에 서 있는 놈이 천기린이 아닌 건가?’
의심이 시작되자 의심은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커졌고 이내 그의 마음속에서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래, 놈은 이런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러니까 아침에 있었던 그 일도 지금의 상황도 그 녀석이 모두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야. 그 영악한 놈이 아침의 일을 이용하여 내가 천기린이 정문 앞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지. 그리고 그 의도는 나를 이곳에 가둬 놓기 위함이야. 놈이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려는…… 헙!”
자신의 입을 가리며 스스로에게 크게 놀란 청화 진인은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기린이 오기 전에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요한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문득 그는 문파원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참으로 짧았다.
‘어차피 모두 나를 위한 도구들이다. 화산의 역사와 진전은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해. 그러니 그들은 이곳에 남아 좋은 시간 벌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천기린을 피해서 화산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으려 하는 청화 진인.
도저히 한 거대 문파의 장문인이라고는 생각하기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사실 그는 원래부터 그런 인물이었다.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
화산의 장문인이 된 것도 공성 대사의 오른팔이 된 것도 모두 그러한 그의 성정 때문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득이라면 그 어떤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결단을 내린 청화 진인은 곧바로 움직였다.
당연히 그는 정문을 향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진짜 그곳에 천기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정문의 수호를 견고하게 하란 명을 내리고 곧바로 연화봉의 뒤를 향했다.
그곳은 절벽에 가까운 바윗길이었으나 화경의 고수인 청화 진인이라면 큰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 이곳으로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때는 자신이 보유한 이 모든 것들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였을 때였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작에 도망쳤어야 했다. 괜히 시간을 버렸어. 아무리 놈이라도 이곳에 사람을 배치할 수 없다. 설령 놈이 이곳에 있다 한들 짙은 어둠이 내렸으니 찾지 못할 것이야.’
청화 진인은 화산파의 마지막 담장을 넘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등.
하지만 그 생각 속에 화산은 없었다.
이미 그의 안중에는 화산이라는 두 글자는 완벽히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절벽에 가까운 경사지에 착지하는 그때였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청화 진인은 너무나도 깜짝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입만 크게 벌렸다.
그곳에 서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모용진.
어두컴컴했지만 청화 진인은 그가 천기린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뀐 게 하나도 없군. 그때랑 똑같아. 넌 항상 자신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었지. 그래서 네놈이 화산파의 장문인이 되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었다. 어떻게 저딴 쓰레기가 그 화산의 장문인이 될 수 있는지 말이야.”
“…….”
“아,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틀렸네. 맞아 잠시 착각했어. 그래, 내가 아는 화산파의 장문인들은 모두 쓰레기들밖에 없었구나. 그러니까 네놈도 지금 여기에 있는 거고, 맞지?”
모용진의 질문에도 청화 진인은 한참을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용진은 그 기나긴 침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고 부엉이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그때.
마침내 청화 진인은 입을 열었다.
“큼…… 뉘신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잘못 보신 듯하오. 노구는 청화 진인이 아니오. 보다시피 그저 허름한 노인일 뿐이지. 일이 있어 화산에 들렀는데 아래에 큰 재해가 난 것인지 빠져나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담을 넘은 것이오. 그러니 노구는 이만 가 봐야겠소. 할 일이 많은 터라…….”
청화 진인의 말에 모용진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다 못해 일순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을 받은 모용진은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평범한 노인이 이 절벽을 내려간다고? 웬만한 무림인들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이곳을? 그리고 난 단 한 번도 네가 청화 진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