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4
광마전생 (274)
청화 진인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긴 침묵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밤하늘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해도 이 어두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진 못할 것이다!’
물론 위험한 것은 청화 진인도 마찬가지였다.
무공으로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높이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의 착지는 큰 부상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빠르게 자유 낙하하는 몸을 한 번 뒤튼 청화 진인은 공중에서 자세를 바꾸어 발이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다!’
그가 호신강기로 몸을 둘러싸며 낙법을 취할 준비를 하는 그 순간.
“지금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뭣?!”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화 진인이 미처 다 놀라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의 뒷목을 붙잡았다.
“맞아, 지금이야. 네가 처맞는 순간이지.”
빠각!
다리부터 착지하여 낙법을 치려 했던 계획과 다르게 턱으로 착지하게 된 그는 낙법이고 뭐고 없이 그대로 그 힘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커헉!”
그 충돌은 청화 진인이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강력했다.
첫 충돌을 턱으로 시작한 청화 진인은 그대로 튕겨 나가 허공을 네 바퀴 정도 돌더니 거대한 나무와 부딪쳤다.
“으어어…….”
나무 아래서 축 늘어진 청화 진인.
그는 놀랍게도 턱뼈가 완전히 박살 나 입을 다물지 못하는 데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다행이네, 죽을 줄 알았는데 호신강기 덕에 살아남은 건가? 턱뼈가 으스러졌는 데도 정신이 살아 있다니 대단한데?”
모용진의 목소리에 청화 진인은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와중에도 도망치려고 하다니 생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네. 이건 병이라고 해도 좋겠어. 그런데 그런 놈이 타인의 목숨은 하나도 중요시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끔찍한 놈이란 말인가?”
모용진이 그의 앞에 서서 차가운 살기를 흩뿌리자 청화 진인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간신히 움직여 그의 발을 붙잡았다.
“음?”
한 번만 살려 달라는 강렬하면서도 애절한 눈빛.
복수의 대상이 이미 생사를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눈빛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놓아 줄 법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청화 진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광마 천기린이었다.
“적성현, 하북팽가, 너희가 혈교를 들쑤시며 헛짓거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곳은 하북팽가가 아주 비밀리에 숨겨 놓은 땅굴이었다.”
땅굴이라는 말에 청화 진인은 움찔거리며 반응했고 모용진은 그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된 일이구나 너도 알고 있는 듯하니. 나도 처음에는 그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하북팽가에서 대외적으로 숨기고 싶은 것을 모아 둔 곳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곳은 나에게 있어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었지. 의미 없어 보이는 두루마리는 모두 나에 관한 것이더군.”
“으어…….”
“비밀 문어로 되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알았냐고? 그러게, 나도 놀라워. 내 수하들의 유능함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아무튼 그곳은 하북팽가의 비밀을 간직한 곳 따위가 아니었다. 그곳은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들이었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나와 관련된 인물 그리고 제거해야 할 인물까지.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너희들이 내게 했던 짓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는 거야. 사실 처음에는 의심했었어, 왜 이런 걸 너희들이 기록해 둔 것인지.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지 그것은 하북팽가에서 너희들 몰래 기록하고 있었던 것들이라고. 나에 관한 것은 하북팽가에게 있어 일종의 보험이었던 거야. 통합무림이 혹시나 하북팽가를 버리려 할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둔 보험. 공성 대사의 압박으로 ‘마공(魔功)’을 익혀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그들도 하나쯤 무기가 필요했던 거지.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북팽가는 그 무기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그것도 내 손에 의해서 말이야. 그리고 이제 그 무기는 내가 쥐고 있지.”
콰득!
“끄아아아악, 깍…… 끅…….”
청화 진인의 손목을 밟아 으스러뜨린 모용진은 그의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두 눈을 마주 보게 했다.
“거기엔 네 이야기도 적혀 있더군. 평소 나에 대한 화가 꽤나 많았었나 봐? 어때, 하나하나 읊어 줄까?”
퍽!
모용진의 발이 청화 진인의 복부를 사정없이 걷어차 올리자 그의 몸이 하늘에 붕 떠올랐다.
“보자…… 살려 달라고 달라붙은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발로 걷어찼지.”
서걱.
“그리고 죄도 없는 정소촌 사람들의 팔을 날렸어. 검기가 어디까지 닿는지 실험하기 위해서.”
화륵.
“근데 잘려 나간 팔은 왜 불로 지진 거야? 과다 출혈로 죽게 하지 않으려고?”
모용진은 팔이 잘린 채 떨어지는 청화 진인의 어깨를 붙잡았고 그런 그의 손에서는 거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치이이익!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뒤집히는 청화 진인의 눈.
하지만 모용진은 그를 기절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걱정 마, 네가 생살을 불로 지지는 고통으로 죽인 사람들과 똑같이 죽게 놔두진 않을 테니까.”
모용진의 손을 통해 청화 진인의 몸으로 파고든 내공은 그의 혈도들을 건드리며 자극했고 청화 진인을 강제로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으어어어아아아!”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괴음을 지르는 청화 진인.
순식간에 끔찍한 몰골이 되고 만 그는 모용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모용진의 손가락은 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잘려 나간 그의 어깨를 파고들고 있었다.
“자, 이쯤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혹시 대답해 줄 수 있어? 대체 왜 그런 거야? 나와 모용학관에 관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어. 내가 그들에게 전승한 것이라던가 나의 흔적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겠지. 그런데 정소촌의 사람들은 왜? 그 사람들은 무슨 죄를 졌지? 그들은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그들은 너희들의 놀잇감이 되어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야만 했지? 자 대답 여하에 따라 내가 살려 줄 수도 있어.”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귓가로 정확하게 꽂혀 들어가는 모용진의 말.
청화 진인은 알고 있었다.
왜 정소촌의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당시 정소촌의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살당하는 모용학관의 관도들을 보며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관아에도 이 소식이 들어갔고 이에 공성 대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모용학관뿐만이 아닌 관아를 포함한 정소촌 전체를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자고.
당시 청화 진인은 공성 대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를 자원하고 나섰고 태허 진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용학관에 관해서는 이미 석가장과 하북팽가가 나서서 처리 중에 있었기에 그들이 도망친 모용학관의 잔당을 처리하고 있을 때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은 각각 화산파와 무당파를 이끌고 정소촌을 포위하여 모두 죽였다.
지금 모용진이 거론한 것은 그때 당시 어차피 죽일 사람들이니 청화 진인의 입장에선 그저 재미를 조금 본 것뿐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그렇게 죽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죽은 것은 그저 힘없고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보라니깐? 설마 죽고 싶은 거야?”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자 그는 모용진이 너무 잔악무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극한의 이기주의.
청화 진인 그는 정말로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말하고 싶다. 죽기 싫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내가,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올라섰는데! 나는 강자다, 내가 죽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단 말이다!’
그는 살기 위해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턱은 이미 박살이 났고 사실상 전음마저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한마디로 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피로 글이라도 적어 보고 싶었지만 지금 그는 모용진의 손에 들려 있는 상태.
한마디로 뭔가를 전달할 방법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모용진이 피식 웃으며 그를 바닥에 내던졌고 이에 청화 진인은 눈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빠르게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본인의 피로 써 내려가는 글자.
그렇게 겨우 한 문장을 적은 청화 진인이 모용진을 바라봤으나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 이거 원…… 달도 뜨지 않은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질 않네.”
“으어!”
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지금 모용진은 내리쬐는 달빛을 맞으며 두 눈으로 달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하지만 달빛이 내리쬐는 곳은 훤히 보이는 밤.
청화 진인이 피로 써 내려간 글씨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유난히도 달이 밝은 밤이었다.
“그래서 대답은?”
“으어어어어!”
절규하듯 소리를 내지르는 청화 진인.
모용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은근슬쩍 자신의 그림자로 청화 진인의 글을 가려 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아, 그러고 보니 하나 깜빡하고 있던 것이 있었네. 네가 거세게 반항하던 이들 중 한 명을 어떻게 죽였는지 대해서 적혀 있었는데…… 뭐라고 적혀 있었더라?”
모용진의 말에 청화 진인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그가 죽인 정소촌의 주민들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지금 그는 어떻게든 대답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어서 그런 옛날 기억까지 꺼내 올 여력은 없었다.
그런데 문득 그는 한 남성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침을 뱉었던 남성.
그의 죽음은 청화 진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다.
“으어…….”
그의 죽음이 떠오른 청화 진인은 갑자기 발작이라도 일으킨 듯 몸을 마구 떨기 시작했고, 있는 힘껏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몸.
그의 발버둥은 더 이상 발버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기억났어? 그거 다행이네.”
다행이라며 청화 진인의 몸을 강제로 일으켜 세운 모용진은 나무 기둥에 그의 몸을 묶었다.
“으어어어…… 으어어어!”
“이래 봬도 이십사수매화검법엔 꽤나 자신이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검법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의 몸을 나무에 단단히 고정시킨 모용진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치켜세워 자신을 보게 했다.
“걱정 마. 너도 화산의 매화처럼 아름다운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되게 만들어줄 테니까.”
다음 날.
청화 진인은 산을 타는 약초꾼의 손에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그가 청화 진인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그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몰골로 나무에 묶인 채 사망해 있었고 그의 주변은 잘려 나간 그의 살점으로 가득했으니까.
최초로 청화 진인을 발견한 약초꾼은 이렇게 말했다.
사방에 퍼져 있는 그 살점들은 마치 매화꽃과 같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