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7
광마전생 (277)
모용진은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난생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생에 처음으로 맞닥뜨린 초강자.
약선 천용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 자네의 진심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모용진을 향해 말을 걸어온 것은 놀랍게도 바닥에 떨어진 천용현의 목이었다.
무려 목이 잘려 나갔음에도 천용현은 바닥에서 태연한 얼굴로 모용진을 바라보고 있었고 더욱더 소름 끼치는 것은 잘려 나간 그의 몸과 목의 단면에서 아무런 피도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 선배님.”
“허허…… 날 적으로 두는 것은 옳지 못한 선택일 것인데.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궁금하군.”
“큰 의미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직감이 말하고 있더군요. 어떻게 되든 선배님과 저는 서로 적이 될 사이라고.”
“감? 그런 불확실한 것을 믿고 나와 척을 지겠다는 것인가?”
“제겐 전혀 불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제 감은 절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준 뛰어난 것이니 말이죠. 적어도 가짜의 몸으로 제 앞에 나타나신 선배님보단 훨씬 믿음직스러운 것입니다.”
피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천용현의 몸.
그것은 진짜 천용현의 몸이 아닌 흙으로 빚어진 가짜였다.
자연스럽게 흙으로 되돌아가는 천용현의 몸을 보며 모용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당신을 무림의 선배로 대우해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완전한 적이 되어 있을 테니 이런 후한 대우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완전한 적이라…… 그래, 네가 스스로 권주를 멀리하고 벌주를 받아들이겠다니 어쩔 수 없지.”
“제 선택이 권주일지 벌주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요. 지금 선배님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통합무림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쪼록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 앞길을 막아서지 않도록 말이지요.”
이 같은 모용진의 말에 천용현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모용진의 손에서 펼쳐진 검격이 훨씬 빨랐다.
서걱!
천용현의 얼굴을 가차 없이 갈라 버리는 모용진의 검.
두 동강 난 천용현의 얼굴은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한 줌의 흙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흙투성이로 변한 방.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쉰 모용진은 그 흙더미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한번 슥 훑었다.
“흙으로 완벽한 몸을 만들다니. 이것은 도술의 일종인가? 하긴 불사의 몸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고작 이 정도의 인형을 만들어 내지 못할 리가 없지.”
모용진이 처음으로 마주한 천용현.
그는 모용진이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의 괴물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분신체를 그대로 만들어 내는 것도 모자라 그 분신체에게 가공할 만한 힘을 줄 수 있는 괴물.
하지만 그는 그 괴물을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모용진은 천용현에게 그 이유를 감이라며 대충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그가 천용현을 적으로 둔 진짜 이유 중 몇 가지를 꼽자면 그가 통합무림의 실질적인 뒷배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풍과 청화 진인을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 낸 자백 중 하나가 바로 공성 대사의 뒤에 ‘천외천’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성 대사의 뒤엔 천외천이 아닌 천용현이 있었고 공성 대사는 천용현이 가진 불사신의 몸을 만드는 능력을 이용해 통합무림을 만들어 낸 것일 뿐.
그렇기에 천용현은 모용진에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복수의 대상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만일 그가 공성 대사를 살리지 않았더라면, 불사신의 몸 따위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애초부터 모용진은 그와 손을 잡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천용현과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간 것도 그저 천용현이 가진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천용현,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다니까. 과거의 선인이니 뭐니 기록만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고개를 저으며 외원당을 빠져나온 모용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타고 있는 무당파의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그의 제자인 조종려와 무적자 장일체였다.
검과 검의 치열한 공방.
놀랍게도 조종려와 장일체의 실력은 비등비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용진은 굳이 나서서 조종려를 돕지 않았다.
모용진은 가만히 승패가 결정 나기를 기다렸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승패는 갈리게 되었다.
“헉헉.”
가파르게 숨을 헐떡이며 모용진의 앞에 다가선 자.
그는 바로 조종려였다.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낸 그는 모용진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어 조금 시간이 걸려 버렸습니다.”
“아니, 수고했다. 많이 성장했구나.”
“과찬이십니다.”
모용진은 두 시진이 지나도 자신이 나오지 않으면 날뛰어도 좋다고 명을 내렸지만, 아직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들이 모두 무당파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용진이 내린 명령도 그렇고 조종려의 철수 명령도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것.
아주 단순한 계책이었지만 무당파는 너무나도 쉽게 속아 넘어갔다.
“태허 진인은 어떻게 됐습니까? 원하시는 바를 이루셨습니까?”
“아니, 태허 진인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곳에는 다른 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은 만남이었다.”
모용진의 말에 조종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모용진은 구태여 깊이 말해 주지 않았다.
“확실한 건 지금 이곳에 태허 진인은 없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 그러니 그동안 너희들은 투항하는 자는 살려 주고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오늘부로 무당파는 화산파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 *
“흐헙!”
거센 숨을 들이켜며 눈을 뜬 자.
그는 바로 천용현이었다.
“괜찮은 것이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절악명의 목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천용현은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꾹 눌렀다.
“갑작스럽게 동화가 끊어져 조금 어지러울 뿐입니다.”
“동화가 끊기다니 설마…….”
“예, 그놈이 제 분신체를 갈랐습니다.”
천용현의 말에 절악명은 크게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천용현이 만든 분신체.
그것은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용현의 분신이 가진 힘은 화경의 고수조차 섣불리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고 천용현의 의지대로 그의 무공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런 천용현의 분신을 갈랐다는 것은 모용진이 보통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최소 현경의 힘을 지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궁혁을 쓰러뜨린 것은 기교 따위가 아니었나 보구나.”
“예, 직접 마주한 그의 힘은 진짜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약조는? 보아하니 좋게 끝난 건 아닌 것 같다만.”
“거절당했습니다. 대화를 길게 이끌어 나간 것은 오히려 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머리도 있는 놈이라…… 꽤나 귀찮은 일이 되었군.”
귀찮게 되었다며 절악명이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자 천용현이 그를 향해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스승님.”
“음, 그게 무슨 말이더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니.”
“어차피 놈은 저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놈과 대화를 나누며 더 쉽게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실마리 역시 찾아냈습니다.”
“실마리라니…… 무슨 실마리를 말하는 것이냐?”
절악명의 말에 천용현은 자신의 머리가 반 토막 나는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 기억 속의 서슬 퍼런 칼날.
칼날의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검(神劍) 천일(天佚).
“스승이 애타게 찾고 있던 검을 제자가 먼저 찾은 것 같더군요. 그것도 자신을 배신하고 검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든 제자가 말입니다.”
“금왕(金王)을 말하는 것이냐? 하지만 금왕 그 녀석의 행방은 우리도 찾지 못하지 않았느냐?”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신검이 누구 손에 있는지 저희가 알게 되었으니 스스로 나타나게 하면 그만입니다.”
* * *
무직자(武直自) 장도준과 화산검귀(華山劍鬼) 서경.
그들은 무림맹의 몇 안 되는 젊은 화경의 고수들로 얼마 전까지 혈교 소탕의 선봉에 나섰던 이들이었다.
원래 그들은 소탕이 끝난 후 각자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그때 때마침 황제의 방이 내걸렸고 무림맹이 성난 백성들의 손에 불타올랐다.
그 상황에서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은 그들에게 공성 대사를 보필하라는 명을 내렸다.
장문인의 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들은 공성 대사의 신변을 보호하며 도망쳤고 그렇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륙의 끝이자 해남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공성 대사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호위는 필요 없다며 각자 갈길을 가라고 명했고 이에 그들은 다시 자신의 문파로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문파로 돌아가는 길은 화경의 고수인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험난한 길이었다.
반역을 꾀한 무림인들에게 극도로 분노한 사람들은 장도준과 서경에게 잠을 잘 곳도 먹을거리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어느 마을을 들려도 마찬가지였고 이에 분노한 장도준은 몇 번이고 검을 뽑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길도 익숙지 않은데 그들이 무림인임을 안 사람들은 길 안내를 해 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이 보이기만 하면 관아에 신고를 넣어 장도준과 서경은 매번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관군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물론 그들에겐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었으나 무림맹이 불타는 것을 본 그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 여파가 문파에 어떤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광동을 벗어난 장도준과 서경.
하지만 조금 더 괜찮을 거라 생각한 호남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무림인이라는 걸 눈치채자마자 돌멩일 던지거나 마을에서 내쫓으려 했다.
이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호남에서 가장 큰 문파인 형산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오히려 형산파는 그들을 냉대하게 대했다.
형산파는 중원 무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얽히기 싫다면서.
그렇게 결국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
무복과 검을 보자기에 숨기고 내기마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갈무리한 그들은 떠돌이 보부상의 행색을 하고 다녔다.
원래는 표국의 표사인 척 돌아다니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 표사마저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보부상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보부상이 된 첫날.
그들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노숙이 아닌 작은 헛간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푹신푹신한 볏짚에 드러누운 둘은 문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보부상이 될 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