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8
광마전생 (278)
형산을 지나 장사, 악주, 악양의 동정호까지.
보부상 행색을 한 장도준과 서경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리게 이동했지만, 그 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차를 빌려 타기도 했고 지나가던 표국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기도 했다.
황태자가 방을 내건 이후에 무림세가들과 문파들이 일제히 봉문패를 내걸었다는 것과 무림맹과 소림이 완전히 전소해 버렸다는 것.
그리고 황태자의 명에 따라 흑천파라는 문파가 나타나 하북부터 시작하여 황태자의 명을 따르지 않는 무림의 문파들을 차근차근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까지.
하지만 그들이 가장 놀란 소식은 바로 개방의 괴멸 소식이었다.
개방이 흑천파의 손에 완전히 괴멸했다는 소식은 그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믿기 힘든 것이었다.
아무리 황태자의 지원을 받는 곳이라지만 생전 처음 듣는 문파가 구파일방 중 하나인 개방을 괴멸시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정호에 도착한 그들은 그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남의 눈을 피해 몰래 개방의 분타 중 하나를 찾아갔는데 그곳에 있던 거지가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서경은 알고 말았다.
자신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화산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이미 관아의 관리하에 들어가 있고 화산을 지탱하던 장로들의 대다수도 명을 달리했고. 이제 남은 것은 화산검귀라 불리시는 서경, 그분뿐이지.”
그들은 신분을 숨겼기에 거지는 눈앞에 있는 자가 서경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청화 진인님은? 장문인은 어떻게 되었나?”
“보아하니 한때 화산파에 몸담은 속가제자처럼 보이는데 요즘 같은 시기에 깊게 파고드는 것은 좋지 않아. 정 듣고 싶다면 말해 줄 수도 있지만…….”
“말해 주게!”
서경의 부탁에 거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청화 진인의 죽음에 관하여 알려 주었고 그것을 들은 서경의 몸에서는 거친 살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지가 그 살기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있을 때만 해도 장도준은 별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화산파가 흑천파에 당한 것은 단지 약했을 뿐이고 자신이 속한 무당파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애초부터 그는 무당파가 정파 중엔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 자신이 무당산에 없다고 해도 지금 무당산을 지키고 있는 이는 바로 자신의 사제인 무적자 장일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자신이 사제인 장일체보다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장문인인 태허 진인 역시 인정한 바였고 지금 명실상부한 무당파의 최강자는 장일체였다.
그런 장일체가 있는 한 장도준은 절대 무당파가 흑천파 따위에게 무너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그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거지에게서 튀어나왔다.
“지…… 지금 흑천파에게 당한 것은 화, 화산파만이 아닙니다. 개방과 공동 그리고 종남과 무당까지, 소문에 따르면 남궁세가와 황보세가까지 무너졌다고 하니 사실상 무림맹 자체가 무너졌다고…….”
“지금 무어라 했느냐?”
서경은 살기를 흩뿌리는 것에서 끝났지만 장도준은 그렇지 않았다.
쓰러진 거지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 그는 거지를 한 손으로 들어 벽에 몰아세우며 살기를 흩뿌렸다.
“쿨럭…… 잠…… 잠깐 저는 그저…….”
“무당파가 어찌 됐다고?”
“큭…… 말씀드릴 테니 손…… 손을 좀.”
거지의 발버둥에 장도준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주었고 간신히 풀려난 거지는 아직도 살기를 내뿜고 있는 그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최대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저 일개 거지일 뿐입니다. 정보를 들어 알고만 있을 뿐. 그러니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 같은 부탁에 장도준은 자신이 과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알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미안하군. 잠시 흥분했으니 이해해 주게. 앞으로 위해는 가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말해 보게나.”
“아…… 예, 일단 무당파의 경우 화산파와 달리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소문에 흑천파는 투항한 자들에 대해선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 않았다고 하여 꽤나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다고 전해 들었고 장문인 역시 행방이 묘연할 뿐 흑천파에게 당했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오오…… 그건 다행이군…… 그럼 무적자 장일체는 어떻게 됐나? 그도 행방이 묘연한가?”
장도준은 당연히 장일체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에서 무당파가 패배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장문인이 살아 도망칠 수 있었다면 그 역시도 당연히 충분히 몸을 피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거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쉽지만 무적자 장일체 도장께선 그날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이는 장도준에게 있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고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낮에 신세를 졌던 표국에게 도움을 받아 하룻밤을 신세 지고 있는 그들은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서경이었다.
그는 보부상의 옷을 벗고 보자기에 말아 놨던 무복을 다시 꺼내 입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려고?”
그 모습을 본 장도준이 질문을 던지자 서경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종남과 무당까지 무너졌으니 다음은 제갈세가 아니면 형문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천의 청성파나 아미파로 갈 수도 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설마 그 흑천파라는 녀석들을 칠 생각이냐?”
장도준의 말에 서경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화산파가 그들의 손에 무너졌다면 전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한 가지밖에 없겠지요.”
“한 가지밖에 없다라…… 딱히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었지만, 그 대답은 마음에 드는군. 때마침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선배님도 그럼…….”
옷 정리를 끝낸 서경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곳엔 이미 무복으로 갈아입고 당당히 검을 허리춤에 메고 있는 장도준이 서 있었다.
“장일체, 장문인은 둘째치고 내 사제가 그렇게 쉽게 쓰러질 놈이 아니라서 말이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겠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복수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
그렇게 서로 마음이 맞은 둘은 곧바로 당당하게 표국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무복을 입은 그들을 본 마을 사람들이 욕을 하며 돌팔매질을 했지만 이젠 그들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문파는 괴멸했다고 하니 더 이상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을 던진 백성들을 죽이진 않았다.
그저 살기로 못 움직이게 만들었을 뿐.
“우리가 정파의 무인이라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경과 장도준은 사람들을 살기로 제압해 나가며 동정호 근처에서 흑천파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흑천파가 현재 어디에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그 위치는 바로 호북에 위치한 무한이었다.
왠지 가만히 있어도 그들이 알아서 이곳 악양으로 내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서경과 장도준은 기다리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동정호를 떠나 호북에 도착한 그들은 곧바로 배를 수배해 장강의 기류에 올라탔고 순식간에 호북 무한의 중심까지 도착했다.
처음 호북에 도착한 그들은 상당히 평범한 도시의 모습에 조금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무한에는 수많은 분파들이 존재했기에 무한을 침공한 흑천파와 분파들 사이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거나 아니면 격전의 흔적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은 그들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한 듯 너무나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격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던 중 화산파의 속가문파인 화곡파를 발견했다.
화곡파는 당연히 그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지만, 서경의 정체를 알고서는 극진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화곡파의 장문인인 곡형을 만난 그들은 곡형에게 아주 의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무한에 있는 분파들은 모두 관아의 뜻에 따랐다는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화산파의 속가문파로서 부끄럽긴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차례차례로 무너지는 거대 문파들의 소식을 들은 호북 내 분파들은 하나둘씩 관아의 뜻을 따르기 시작했고 화곡파 역시 화산파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 관아로 찾아갔다고 했다.
“흑천파는 황태자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문파에게는 일절 손을 대지 않습니다. 처음 화산파가 무너졌다는 소식엔 저희 화곡파도 무기를 들고 나서자는 말이 많았지만…… 처자식과 화산의 무공을 어떻게든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부득이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문인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그 관아에서는 대체 무엇을 요구한 것입니까?”
황태자의 명에 따라 무림인들은 관아에 들러 등록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내용에 관해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지금 거의 모든 문파들이 봉문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그 문파에 속한 이들도 절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입 밖으로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곡형 역시 처음에는 절대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끈질긴 서경의 추궁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관아에서 한 것은 정말로 이름과 지역을 등록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약조를 내걸었습니다.”
“약조?”
“예, 그 약조란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봉문을 내걸고 얌전히 있겠다는 약조였습니다. 황태자님께서는 모든 무림인들을 학살할 생각 따윈 없고 오직 반역을 도모한 자들에게만 처벌을 내릴 생각이니 그 처벌이 끝날 때까지만 얌전히 있는다면 흑천파가 우리를 찾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곡형의 말을 들은 서경과 장도준은 이에 대해서 당연히 납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무림인이란 자존심과 의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
제아무리 흑천파가 무섭기로서니 자신의 신념을 쉽게 굽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안 서경과 장도준은 협박에 가까운 말로 곡형을 압박했고 이에 곡형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관에서 약속을…… 했습니다. 만일, 이 약조에 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다면 문파는 물론 그 문파원들까지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봉문이 끝날 때까지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가 이것을 알려 드렸다는 것을 절대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는 한 문파의 생계가 달린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