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
광마전생 (28)
모용진이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모두를 가로질러 가장 끝에 있는 단상에 오른 모용진이 자리에 앉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착석했다.
“일단 모두 모여 줘서 고맙고. 오랜만이지? 다들 이렇게 모인 건.”
“그렇습니다.”
“뭐, 다들 의아해한다는 건 나도 안다. 그 난리를 치고 육 개월 동안 녹수각에 박혀만 있었으니까. 다 너희들을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예!”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다들 이건 먹었나?”
모용진이 품에서 꺼내 든 것은 초록색 빛이 맴도는 작은 단약이었다.
그 단약은 방금 전 회의장에 입장하기 전에 시비들이 ‘소양단(小陽團)’이라는 원기회복용 단약이라고 물과 함께 건네준 것이었다.
“혹시 먹지 않은 사람은?”
“다 먹었습니다.”
안 먹은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소양단은 녹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약이였고 몸이 많이 피곤할 때 한 번씩 먹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너희들이 평소 먹던 소양단이랑 최대한 똑같이 만든 보람이 있었구나.”
‘소양단이 아니었어?’
모용진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고 모용진은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 별거 아니니까. 내가 설마 너희들을 죽이려고 그랬겠니.”
“하하하. 그렇지요? 난 또…….”
“그래. 그래 봤자 고독(蠱毒)인데 뭘.”
고독(蠱毒)이라는 말에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독(蠱毒)이라 함은 뱀이나 지네와 같은 생물의 독을 뜻하는데 어떤 독인가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었다.
가야허가 긴장한 표정으로 모용진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어째서 저희한테 고독을……?”
“에이, 오해하지 마. 말했잖아? 죽이려고 그랬겠냐고. 고독은 고독인데 너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너희 몸에는 평생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야허의 질문에 모용진은 보란 듯이 단약을 꺼내 들더니 그곳에 내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잠시 후 단약이 꿈틀대며 움직이더니 아주 작은 지네 한 마리가 단약의 구멍을 뚫고 나왔다.
“이 아이의 이름은 ‘단류오공(短類蜈蚣)’ 독충 지네 중에서도 제일 작은 아이지. 독성이 워낙 미미해서 물려 봤자 살짝 가려움을 느끼는, 그 정도 독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모용진이 손가락을 타고 기어오르는 작은 지네를 바닥에 내던지자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지네는 몸이 터져 죽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 뒤에 발생했다.
치이이익!
미세하지만 확실한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는 바위.
그 연기에서 나온 독 냄새는 순식간에 회장 전체를 휘감을 정도로 강력했다.
“우읍…… 이건……?!”
“내가 아주 우연히 얻은 독각사의 독. 그걸 단류오공에게 먹였고 내공으로 잠재웠지. 다행이야. 모두 멀쩡하게 앉아 있는 걸 보면 단약을 씹어 먹은 사람은 없었나 봐? 그럼 바로 내장이 모두 녹아 죽었을 텐데.”
모용진의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듣자마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매스꺼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일부는 헛구역질까지 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구역질을 멈춰야만 했다.
“강제로 뱉어 내려고 하지 마. 그러다 터진다?”
이미 눈앞에서 독의 위력을 봤기에 터진다는 말을 듣자 헛구역질을 하던 이들은 저절로 헛구역질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걱정 마. 어차피 내 내기로 재워 둔 거니까 내가 직접 내기를 주입하지 않는 이상은 단류오공이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없을 거야.”
모용진의 말에 백리강은 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사파에서 사람을 조종하기 위해 몸에 벌레를 심는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본인이 당하게 될 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백리강이었고 자신의 배 속에 그런 벌레가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였다.
생각지도 못한 공포에 모두가 벌벌 떨며 자신의 배를 쳐다보는 그때.
그 벌레보다 더 공포스러운 모용진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로 울려 퍼졌다.
“혹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손 들어서 말해 봐. 나도 한 명쯤 시범을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돼서 말이야. 그럼 너희가 더 말을 잘 들을 것 아냐? 광천악! 어때? 요즘 산적질도 못 해서 짜증도 많이 쌓였을 텐데 시원하게 반항 한번 하는 건?”
“무……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십니까! 주군, 저는 절대 그런 생각을, 요만큼도 한 적이 없습니다!”
재빠르게 바닥에 납작 엎드린 광천악.
“저, 저도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짜증이라니요!”
그 모습을 보고 하나둘씩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하더니 하나같이 충성을 다하겠다며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아아, 그만하면 됐고. 다들 일어나.”
일어나라는 말에 일사불란하게 일어나는 부하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그 후로 갑자기 모용진의 똥개 훈련이 시작되었고 그 똥개 훈련을 받으면서 녹림도들은 왜 호태산이 그 흔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개’가 되어 버린 건지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자신들이 호태산과 똑같은 ‘개’가 되어 있었으니까.
“음음, 마음에 들어. 이제 편히 앉아. 이제 본격적으로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확실하게 부하들의 목줄을 잡은 모용진은 검지를 들어 올리더니 가야허와 백리강을 가리켰다.
“너희 둘. 서로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고 있지?”
“저희 말씀입니까? 저는 딱히…… 부른 적이 없어서…….”
“저는 가야허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치? 그럼 너랑 너는?”
모용진이 이번엔 가야허와 광천악을 가리키자 두 명이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전 형님이라고 합니다.”
“아우라고 합니다. 흑제 님이 오시기 전부터 저흰 의형제를 맺은…….”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야.”
갑자기 안 된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모용진은 모두를 불러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들을 일자로 줄 세운 모용진은 다시 제일 앞쪽으로 이동해 가야허의 앞에 섰다.
“자, 오늘의 안건 일 호는 바로 호칭과 서열이다. 우선 오늘부터 너흰 녹림도가 아니다.”
갑자기 녹림도가 아니라는 말에 모두가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모용진이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흑천파(黑天派)」
힘찬 붓글씨로 적혀 있는 것은 모용진이 새롭게 정한 녹림의 이름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의 문파가 된다. 이름은 보다시피 ‘흑천파’이고 초대 장문인이자 개파 조사는 바로 나 모용진이다.”
갑자기 녹림을 문파로 만들겠다는 모용진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더니 가야허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야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이미 ‘흑천(黑天)’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흑천파(黑天派)’라는 이름은…….”
“어차피 내가 흑제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거, 이름 정도는 훔쳐 와도 괜찮잖아? 사실 좋은 이름이 없나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아, 흑천만큼 괜찮은 게 없단 말이지.”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순간 저희의 계획도…….”
“그건 걱정 마. 흑천파라는 이름은 여기 있는 자들만 알고 있으면 되니까. 자, 그럼 호칭과 서열 정립을 시작해 볼까?”
문파를 만들겠다는 어마어마한 발언을 해 놓고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냥 넘어간 모용진은 가장 먼저 자신을 가리켰다.
“가야허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날 ‘주군’이라고 부르더군. 앞으로는 날 사부님이라고 불러라. 그럼 가야허 너는 나에게 뭐가 되는 거지?”
“전 사부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됩니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군. 그럼 넌?”
다음으로 지명당한 건 백리강이었다.
“전…… 두 번째 제자가 됩니다.”
이미 백리세가에 스승을 두고 있는 그녀였기에 살짝 떨떠름하긴 했지만 지금은 말대꾸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너희 둘은 이제 무슨 관계지?”
“사매…….”
“사형…….”
“그래 내가 처음 너희들을 만났을 때 그렇게 칭하라고 말만 했었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제대로 호칭을 정립해 주지 않았더라고. 그러니까 이제부터 너흰 진짜 하나의 사부를 둔 제자들이 되는 거다. 이쯤 되면 나머지도 대충 눈치껏 자신의 위치를 알겠지?”
모용진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전 중경녹림채의 채주인 홍송도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홍송도가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넷째 제자 홍송도가 사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모두들 깨달았다.
지금 선 위치 그대로가 자신의 위치라는 것을.
“지금부터 너희들은 피를 나눈 것보다 더 진한 사형제가 된다. 우리 흑천파의 위계질서는 매우 엄격한 편이며 사형과 사매의 말은 곧 내 말과 같으니 철저하게 호칭을 구분해서 쓸 수 있도록. 광천악!”
“넵! 세 번째 제자 광천악!”
“넌 그럼 뒤에 서 있는 사람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광천악이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자 홍송도와 눈이 맞았다.
어딘가 뻘쭘한 두 명의 눈빛 교환.
원래라면 홍송도가 채주였고 광천악은 녹림단주였기에 광천악이 홍송도를 높여야만 했다.
꼬일 대로 꼬인 족보.
하지만 옛날 일은 옛날 일일 뿐.
이젠 광천악이 홍송도의 사형이었다.
“사제…….”
“……사형.”
“고독.”
뻘쭘한 분위기에 모용진이 고독을 끼얹었고 갑자기 둘의 관계는 빠르게 정립되었다.
“하하하. 사제, 앞으로 잘 부탁하지.”
“하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광천악 사형.”
하지만 모용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광천악의 앞에 가야허와 백리강을 세운 모용진은 그들을 가리키며 광천악의 등을 두드렸다.
“말해.”
“…….”
홍송도와 말을 놓을 때보다 좀 더 망설이는 광천악.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가야허는 친한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사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에게 가야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제, 지금 사부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가? 사매도 한마디 해.”
“아…… 빠, 빨리하는 게 좋을 거야, 사제.”
땀을 뻘뻘 흘리는 백리강의 얼굴을 본 광천악은 그제야 옆에 서 있는 모용진의 기세가 흉흉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형과 사매를 뵙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광천악.
형제 관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대충 호칭 정립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너희들도 알아들었지?”
더 이상은 귀찮다는 모용진의 눈빛에 모두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자기들끼리 호칭을 정립하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첫 번째 서열.
사부 – 모용진.
첫째 제자 – 가야허.
둘째 제자 – 백리강.
셋째 제자 – 광천악.
넷재 제자 – 홍송도.
다섯째 제자 – 홍봉도.
여섯째 제자 – 주화자.
일곱째 제자 – 군마전.
여덟째 제자 – 악노.
아홉째 제자 – 철풍견.
그리고…….
“이놈은 개다. 그냥 개.”
개 – 호태산.
모든 걸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유는 괘씸죄.
천기린과의 약속을 어긴 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이 사형제 간의 순위는 바뀔 수 있다.”
순위가 바뀐다는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란 듯 모용진을 쳐다보자 모용진은 웃으며 호태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철저한 실력주의거든. 그러니까 일 년에 몇 번 기회가 나는 대로 ‘사형제 대전’을 열 것이며 거기서 정해지는 서열순으로 제자들의 순위는 다시 정해질 거야. 한마디로 이 개놈도 다시 너희들의 사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어때, 멋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