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5
광마전생 (285)
귀주에서 아무런 소득도 보지 못한 모용진.
그런 그가 향한 곳은 신강이었고 그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가 사천을 넘어가기 전에 다시 발길을 돌렸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의 부고 때문이었다.
모용진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쟁 중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아무리 극한의 수련으로 강해진 흑천파라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지금 하북에서 귀주까지 진출하는 데 수백 명의 문도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그중에 중요 인물이라 불릴 만한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이번에 사망한 이는 바로 십대제자 중 한 명.
그것도 십대제자 중 상위에 속하던 광천악이 사망했다.
광천악이 죽었다는 소식에 모용진은 곧바로 호남을 향했다.
그가 사망한 곳은 형산파가 있는 형산이었고 모용진은 그곳에 숨어 있던 은둔 고수나 기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형산에 도착했을 때 가야허에게 직접들은 그의 사인은…….
“뭐……? 밤중에 급사(急死)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의 사인은 놀랍게도 급사.
다른 말로 하면 자연사였다.
사실 이는 꽤 흔한 일이었다.
무공을 배운 무림인이라고 해도 수면 중 심정지 같은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니까.
갑작스럽게 광천악을 잃은 십대제자들의 슬픔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허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천악은 산적 출신치고는 인품이 좋아 호인으로 주변 사람들이 잘 따르기도 했었다.
모용진은 그를 호남에서 제일 좋다는 명산에 묻어 주고 비석을 세웠다.
일단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모든 게 다 끝나면 이장(移葬)을 할 생각이었다.
“흐음…….”
간단한 장례 절차를 마치고 절벽 위에 선 모용진.
임시라고 하지만 광천악이 지금 묻혀 있는 곳은 주변이 탁 트인 높은 절벽 근처로 가히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꼭대기에 올라선 모용진이 광천악의 허무한 죽음을 달래듯 술 한 잔을 마시는 그때.
모용진의 눈에 멀리 광동의 땅이 들어왔다.
호남은 지금 무척이나 화창한 날씨인 데 반해 광동은 이상하게도 먹구름이 몰려 심상찮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때때로는 뇌우까지 내리치고 있었다.
“뭘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모용진이 홀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뒤따라온 이는 바로 가야허였다.
“광천악의 넋을 좀 달래 줄까 싶었는데 묘하게 저곳이 신경 쓰이는군.”
모용진은 멀리 광동의 땅을 가리켰고 이에 가야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동에 공성 대사가 있다는 것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광동을 향하시지 않고 신강으로 가려고 하셨습니까?”
“사자들에게 들었나 보군.”
“예, 저희에겐 흑제 님의 위치와 상황이 가장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군사님이 하도 신신당부를 하셔서 말이지요. 어디로 튈지 모르신다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확실히 내가 좀 그렇긴 하지. 뭐 내가 신강을 향한 이유에 별다른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촉’이 따르는 대로 움직인 것뿐이지.”
“촉이라…… 이제 남은 곳이 봉문을 한 마교 정도이니 확실히 신강을 향하는 것은 옳은 일이긴 합니다.”
“아직 명교도 남았다.”
“예? 다 처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내가 명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두 달아난 뒤였다. 그곳의 마을 사람들 역시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어.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지. 마을이 온통 피투성이인데 시체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으니 말이야.”
“명교가 있던 곳이라면 귀양이고. 귀양이라면 절대 작지 않은 도시인데…… 이를 황궁에 알리고 조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가.”
모용진은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계속해서 저 멀리 광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가야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경 쓰이십니까?”
“그러게, 이렇게 보고 있으니 자꾸 보게 되는 군. 우리가 딱히 급한 상황도 아닐진대 말이야.”
“그럼 확인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확인이라…….”
“지금 이 시기에 흑제 님이 이곳에 계신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늘이 흑제 님을 돕는 걸지도 모릅니다. 저곳에 흑제께서 놓친 것이 있다고 알려 주는 걸지도 모르지요.”
가야허의 말에 모용진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촉에 따르면 지금 바로 신강으로 떠나야 옳았으나 한번 보게 된 광동의 땅은 계속해서 그를 광동으로 불러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거라…….”
* * *
광천악이 급사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하북에도 전해졌다.
제갈영은 이에 슬퍼하며 조기(弔旗)를 내걸었지만, 그녀는 그 슬픔에 잠길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지금 사실상 흑천파 내에서 가장 바쁜 이는 제갈영과 유미옥이었다.
그들은 중원 전체에서 들어오는 소식에 매일 상황판을 갈아 치우면서 전국의 정세를 살펴보고 있으면서도 흑천파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보급에 힘쓰고 있었다.
게다가 황궁과 관련된 일부터 시작해 얼마 전부터는 무림에 관한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황태자가 무림에 관련된 일은 모두 흑천파에게 일임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용진이 바라던 것이었기에 제갈영의 입장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제갈세가를 먼저 잡아 두었다는 점.
제갈궁에게 이여립의 정체와 흑천파의 정체를 밝힌 제갈영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주도했으며 그녀의 손에 유기서필(油耭栖筆)이 있다는 것을 당당히 밝혔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갈궁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주의 자리를 넘기고 칩거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제갈영은 하룻밤 사이에 가주의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제갈세가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기존에 요직을 맡고 있던 간신들을 싹 갈아 치우고 능력이 있는 자들을 요직에 올려 두었고 은거에 들어간 원로들 역시 다시 일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반발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백호학관의 선생이었던 제갈영이 아닌 흑천파의 군사 제갈영.
게다가 흑천파는 지금 황궁을 등에 업고 중원에서 가장 강한 세력과 재력 그리고 힘을 보유한 문파였다.
반발은 제갈세가 제압의 달인 최양의 손에 금세 마무리되었고 지금 제갈세가는 제갈영의 손과 발이 되어 흑천파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갈영의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날이면 날마다 더 늘어나는 일감들.
오죽하면 제갈영의 소원이 이곳 군감실(軍堪室)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제갈영이 잠시나마 숨을 틀 수 있게 해 줄 이가 찾아왔으니 그녀는 바로 설백이었다.
설백은 요녕에서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후 황태자에게 이를 보고하고 곧바로 하북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꽤나 고전하셨다고 들었는데 다치신 곳이 없어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언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왜…….”
설백과 제갈영은 이미 옛날에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내기로 했는데 제갈영이 경어를 쓰며 자신을 존대하자 설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그렇지만 지금은 공적인 자리라서 말입니다.”
제갈영이 존대를 한 이유.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자리가 제갈영과 설백 둘만이 있는 것이 아닌 북해빙궁의 대주와 황궁의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설백의 신분은 제갈영과 언니 동생 하는 편한 자리가 아니었고 북해빙궁의 공주이자 대장군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백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영이 설백과 함께 온 남성을 가리켰다.
“그럼 우선 여기 이분이 누구신지 소개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 이 자는 군사님께서 부탁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곧바로 경어로 바뀐 설백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문사의 옷을 입은 남성이 앞으로 나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조일 사마중이라고 합니다. 황궁에서 책사를 맡고 있습니다.”
조일 사마중.
그는 황제의 책사를 맡고 있는 자였다.
그는 수많은 책사 중에서도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자로서 현재 황궁에서 병필태감, 승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권력을 지닌 자였다.
“사마중? 그 사마중 님이란 말씀이십니까?”
“예, 말씀을 높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황태자 전하의 명으로 제갈영 님을 도우러 온 인물. 편하게 대하시고 편하게 써 주십시오.”
사마중은 편하게 대해 달라고 했지만 제갈영에게 있어서 그를 편하게 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현존하는 군사들을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하나였고 그녀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사마중 님께서 어떻게…… 저는 그저 일손이 부족하여 황태자 전하께 조금 도움을 청한 것뿐인데…….”
제갈세가를 갈아 넣어도 치이는 업무량에 제갈영이 황태자에게 손을 벌리는 서신을 보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갈영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저에게 직접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황태자 전하를 따르는 신하로서 그 명을 따라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마중 역시 단순히 명을 받아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책사나 군사들은 괴짜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역시도 상당한 괴짜에 속했는데 그가 괴짜라 불리는 이유는 본인이 관심이 없는 일엔 정말 손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옆에서 전쟁이 터져도 그 전쟁에 흥미가 가지 않으면 황태자의 명에도 움직이지 않는 자.
그것이 바로 사마중이었다.
지금 사마중이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제갈영.
처음 무림인이 황궁을 뒤엎었단 소식에도 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충분히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그에 대한 방비도 해 두었고 상황을 지켜보고 적절한 시기에 나서서 이를 해결하려 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마중은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니 놓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훨씬 빠르게 흘러갔고 정보가 그의 귓가에 들어왔을 땐 이미 모든 일이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정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마무리된 상황.
그리고 그 뒤에 단 한 명의 군사가 이 모든 일을 꾸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마중은 너무나도 궁금했다.
자신이 손도 발도 못 쓰게 만든 그 군사가 누구인지.
그리고 사마중은 얼마 전에야 황태자의 말을 통해 제갈영의 존재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는 현 중원의 정세나 황태자의 명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 제갈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갈영 님. 저는 조일 사마중이 아닌 황태자 전하의 명으로 그대를 도우러 온 자입니다. 저 이외에도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신 책사가 백(百)은 되오니 그들 역시 마음껏 부려 먹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