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6
광마전생 (286)
제갈영은 소개를 받은 사마중을 뒤로한 채 우선 설백의 보고를 받았다.
보고의 대부분은 얼마큼의 피해를 입었는가가 주가 되었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쟁에 이겼으나 이것은 ‘내란’에 속하는 것이었기에 전리품을 얻거나 나라에 이득이 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북해빙궁에서는 어떤 대가를 원하십니까?”
제갈영의 물음에 대주인 빙설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공주님을 도우러 왔을 뿐. 빙제께서도 크게 염려치 말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큰일을 해 주셨으니 정당한 보상은…….”
“단, 혼인식에 대하여 언질 주신 것이 있습니다. 빙제께선 빙궁에서 공주님의 식을 올리기 원하십니다. 이것만큼은 양보해 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갑작스럽게 모용진과 설백의 혼인식에 대한 말이 나오자 제갈영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지금 북해빙궁에서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중원의 정세나 나라 간의 협력이 아닌 설백의 혼인에 관한 것이라는 걸.
“하하 그건 제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 설백 님이…….”
“저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아시다시피 공주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을 가지고 계시니 빙제께서 공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빙설자의 말에 설백이 그를 눈으로 욕을 하듯 노려봤지만, 행동과 다르게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흑제 님께서 돌아오시면 제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요청이라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가를 원하시지 않는다고 했지만, 저희 입장에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름의 성의를 표하겠습니다.”
“북해빙궁의 원조에 관한 포상이라면 궁에서도 논의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제가 확실하게 전권을 쥐고 있으니 저와 이야기를 나눠 보시고 결정하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아, 그리하도록 하죠.”
보고가 끝나자 설백은 곧바로 지금 모용진이 있는 호남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지만 제갈영은 크게 만류하며 이곳에 남아 있도록 설득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고 제갈영에게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설백은 제갈영의 만류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오늘 하루는 머무르겠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군감실을 떠났고 이에 빙설자와 수행원인 빙월도 같이 자리를 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둘만 남게 된 제갈영과 사마중.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제갈영을 보며 사마중은 부채를 펼쳐 자신의 하관을 가렸다.
“자, 그럼 이제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군요.”
“아…… 이미 늦었으니 피곤하시다면 내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갈영은 피곤하니 내일 이야기하자고 완곡히 돌려 말했지만 사마중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제가 귓등으로 듣기엔 시간이 참으로 촉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우리가 손발을 맞춰야 조금이라도 유연한 대처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피곤했던 제갈영이었지만 사마중의 말엔 틀린 것이 없었기에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채로 얼굴은 왜 가리고 계십니까?”
“하하, 별것 아닙니다. 제 외모가 워낙 출중하여 군사님을 홀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니 이리 가리고 있습니다.”
“예?”
사마중은 딱 봐도 훤칠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잘생긴 인물은 아니었다.
특히 허구한 날 모용진이나 진유혼의 얼굴을 봐 왔던 제갈영에게 그는 지나가던 동네 청년 정도의 수준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그리 눈여겨보고 계신다던데 제가 감히 그사이에 끼였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사마중의 부연 설명에 제갈영은 그의 말이 농임을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럼 이 정도로만 알고 있겠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제갈영은 사마중이 능구렁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긴장했다.
사마중은 한때 그녀가 존경하던 인물.
그가 오로지 실력만으로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를 목전에 둔 제갈영은 마치 자신이 시험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시죠. 우선 현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제갈영은 대륙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 들었는데 그 펼쳐지는 지도를 보던 사마중이 갑자기 그것을 뺏어 다시 말기 시작했다.
“갑자기 뭘 하시는 겁니까?”
“이거 대신 이걸 쓰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사마중이 손뼉을 치자 두 책사가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두루마리였다.
촤라라락!
탁상 위에 크게 펼쳐지는 두루마리.
그 내용물을 본 제갈영의 두 눈은 주먹만큼 커져 있었다.
“이것은……?!”
“대륙경화홍지도(大陸經畵弘地圖)입니다.”
대륙경화홍지도.
그것은 제갈영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황궁의 가장 중요한 보물 중 하나로 대륙 전체의 지리가 아주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이는 군사적으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며 만일 이를 꾀하거나 일부를 베끼려고 하다가 걸리면 이유를 막론하고 즉시 사형에 처했다.
그런 보물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아무리 제갈영이라도 입을 쩍 벌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건 보물이 아닙니까? 허락받지 않은 자가 보기만 해도 엄벌에 처한다는 소문이……”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실제로 전전대 황제께선 이 이전에 쓰인 지도를 몰래 훔쳐본 환관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팔과 다리를 잘라 버리셨지요.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것을 따라 그릴 수 없게 말입니다.”
“예……?”
“그런데 이것을 제갈영 군사님께 보내시는 것을 보면 황태자 전하께서 당신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표하고 계신 건지 알 수 있지요.”
“하하…….”
“아무튼 앞으로는 편하게 이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관리는 이들이 직접 할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명을 끝낸 사마중은 대륙경화홍지도를 관리하는 환관들을 손짓으로 돌려보냈는데 사실 그들 역시 평범한 환관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인수감이라고 하여 황궁의 공문서를 보관, 관리하는 높은 관직에 있는 이들이었다.
제갈영이 지도에 쓰는 말을 어떻게 올려놓을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자 사마중이 막 사용해도 상관없다며 보란 듯이 말을 집어 지도 위에 세게 내려찍듯이 놓았다.
“자, 대부분의 이야기는 병필태감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지요.”
사마중의 말에 제갈영은 흑천파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세력을 먹고 앞으로 남은 인물과 지역이 어느 곳인지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흠…… 그러니까, 지금 작전에 있어서 반역을 꾀한 무림인들을 물색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일임은 분명하나 흑천파의 수장인 흑제라는 분의 개인적인 원한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군요. 그런데 이걸 숨기지 않고 이리 직설적으로 말씀해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제 외모가 아무리 친근하다고 해도 저는 황궁의 사람. 이를 보고하게 된다면 흑천파는 그리 좋은 시선을 받진 못할 겁니다.”
마치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될 것을 왜 굳이 알려 주느냐는 듯한 말투.
하지만 이에 대한 제갈영의 답변은 너무나도 당당했다.
“흑천파는 곧 흑제 님의 의지로 만들어진 곳. 저희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러한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황태자 전하나 황궁을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흑제 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호오.”
사마중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제갈영이 이 정도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중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흑제라는 인물에게 충성을 다하며 그를 믿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그 정도로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은 어느 독물의 힘이라고도 하던데. 무림에서는 이를 고독(蠱毒)이라고 하더군요.”
“그건 저희 문파 내의 비밀인데 어찌 알고 계십니까.”
“흑제라는 분이 황태자 전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그것을 말해 전하를 안심시켰다고 하더군요. 지금 그 대답으로 봐서는 의도가 아닌 진실이었나 봅니다.”
제갈영은 순순히 그 말에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사실이지요. 하지만 옛날의 일일 뿐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다. 무슨 변화라도 있는 것입니까?”
“흑제께 고독이 필요했던 것은 언제 날뛸지 모를 수적과 산적 그리고 흑도들을 길들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독이라는 제약을 두면 그들은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성장케 만들 것이라고 말이죠.”
“날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성장은 무슨 말입니까?”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만일 지금 사마중님의 몸에 고독이 심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독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초절정’이라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면 어떻습니까?”
그녀의 설명에 사마중은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 흑천파의 인원들은 모두 그 ‘초절정’이라는 경지에 올라 고독을 없앴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초절정이라는 경지는 그리 쉽게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
“간단한 겁니다. 흑제 님은 ‘고독’을 먹이긴 했지만 ‘고독’을 먹이진 않은 겁니다.”
“아하…….”
보통 사람이라면 약간의 생각하는 시간이라도 있었겠지만 사마중은 흑제가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고독이라고 했지만, 그 많은 인원수의 고독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흑천파 문도들은 가짜 고독을 먹었지요.”
“대부분이라면 몇몇은 진짜 고독을 먹었다는 겁니까?”
“예, 십대제자 분들과 장강십팔수적 그리고 몇몇 인물들은 실제 고독을 먹었으나 이제는 없습니다. 흑제께서 모두 깔끔하게 없애 주신지 꽤 됐지요.”
“허…… 헌데 이 중요한 사실을 제게 알려 주셔도 되는 겁니까? 만일 이를 흑천파의 문도들이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이도 분명 있을 겁니다.”
사마중의 말에 제갈영은 걱정 말라는 듯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대륙경화홍지도를 들고 오신 답례입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까?”
“예. 하지만 떠난 이들도 떠나겠다는 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흑천파는 그들에게 산적질과 수적질을 하지 않아도, 남의 재산을 빼앗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게다가 성별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흑제 님이 만들어 내신 무공을 익힐 수 있고 엄청난 지원도 받고 있으니 누가 감히 이곳을 떠나려 하겠습니까. 오히려 지금 흑천파엔 흑제 님에게 입은 보은을 갚고자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렇기에 이번 일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원하여 나서려는 자들이 훨씬 많은 수준이지요. 마음 같아선 그들이 제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이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절대 대다수가 무인인지라…….”
사마중은 제갈영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흑천파가 흑제에게 보내는 무한한 맹신과 충성도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그렇기에 역으로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만일 이 창이 황궁 그리고 황제를 향한다면?
사마중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도우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제갈영 님, 우리 같이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 봅시다. 흑천파에게도, 황궁에게도 서로 좋은 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