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97
광마전생 (297)
“엇?”
피할 틈새도 없이 마주한 해일.
하지만 놀랍게도 해일은 내뿜는 굉음과 달리 아주 부드럽게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괜찮으십니까, 흑제 님!”
“…….”
백리강의 걱정에도 자신의 손만 내려다보고 있는 모용진.
그런 그의 모습에 백리강도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자 아주 신비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 주변은 물론 온몸을 감싼 영롱한 초록빛.
그리고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백리강은 피부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의 형상이라는 것을.
“이건…….”
신기한 현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은 온통 검녹빛으로 물들어 있음에도 모든 사물이 훤하게 잘 보였으며 하늘 위에는 검은 구체들이 꼬리를 길게 휘날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이이이이.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떨어진 것은.
“헉!”
하늘 위에서 물밀 듯이 쏟아져 내리는 검은 구체들.
그 광경에 모용진 역시 깜짝 놀라 검을 휘둘렀지만, 구체들은 그의 검에 베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구체들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며 지나갔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지는 구체들.
“뭐지 이것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직 하늘에 일부분이 남아 있지만…….”
난생처음 겪는 일의 연속에 모두가 긴장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그때.
“으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
하지만 모용진은 그것을 확인하려 굳이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눈앞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후두두두득.
들썩이는 바닥과 함께 흙을 뚫고 올라오는 앙상한 나뭇가지.
하지만 그것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사람의 뼈였고 잠시 후 바닥을 뒤집어엎으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앙상한 백골만 남은 인간.
놀랍게도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비단 그 하나뿐이 아니었다.
모용진의 눈에 들어온 것만 해도 최소 수천의 해골들.
그 모습들도 시체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 달랐다.
“죽은 자가…… 되살아 난 건가?!”
“흑제 님이 말씀하시던 명계화가…….”
키아아아아아악!
백리청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기이한 괴음들.
그 소리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고 그 살기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것은 오직 모용진뿐이었다.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이었던 거냐, 천외천.”
모용진이 검을 뽑아 들자 엄청난 숫자의 시체들이 달려오기 시작했고 이는 그의 정면뿐만이 아닌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키아아!
* * *
명계화의 시작으로 대륙 전체는 큰 혼란에 빠졌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는 일이었다.
되살아난 이들은 인간의 감정 따위는 사라진 듯 마치 짐승과도 같이 행동했으며 무차별적으로 살아 있는 것들을 공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들의 공격은 많이 단순했고 일반인이 아닌 무림인들 기준으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림인들조차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으니 그 이유는 바로 그 시체들이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죽었기에 완전히 박살 나지 않는 이상 다시 살아 움직였고 해골만 남아 있어도 공격하기 위해 이빨을 딱딱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놈들은 숫자도 많았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숫자의 어마어마한 시체의 물결은 높은 성벽을 무너뜨릴 정도였고 이에 대부분의 마을은 순식간에 집어삼켜졌는데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시체 또한 되살아나서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끊임없이 계속 늘어나는 시체의 군단.
그러한 가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무리를 뭉쳐 어떻게든 생존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무리를 지은 곳은 다름 아닌 흑천파.
제갈영과 사마중을 필두로 한 무리였다.
그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북 내의 무림인들을 모조리 끌어모았고 지리가 험난하기로 유명한 태항산맥에 올랐다.
태항산맥에 올라 거대한 진지를 구축한 그들은 주변 생존자들을 구하러 다니며 세를 불려 나갔으며 이제는 그 손길을 섬서까지 뻗고 있었다.
“오늘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까.”
“예.”
“하아…….”
사마중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제갈영.
지금 그녀가 이토록 걱정하는 것은 바로 모용진의 행방이었다.
명계화가 시작된 지 어느덧 석 달째.
그동안 숱한 위험들이 그들을 덮쳤지만 제갈영과 사마중의 지혜로 어떻게든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진 흑천파에 대해서도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는데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어디에서도 이렇다 할 소문이 전해져 오지 않았다.
“분명 살아 계실 터인데…… 절대 이 정도의 위협에 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다른 곳에서도 연락은 없습니까?”
“예, 며칠 전 소림 숭산에 올라 봉화를 피워 올렸지만 아직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없다고 합니다.”
“후우…….”
제갈영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한숨만이 자꾸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정되어 있는 식량과 공간.
지금까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왔지만, 곧 그 한계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만일 정말로 대륙에 살아남은 이들이 자신들뿐이라면?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갈영은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그 앞은 오직 파멸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제갈영은 필요했다.
이 답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그 누군가가.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제갈영을 찾아온 것은 구원이 아닌 또 하나의 비보였다.
“큰일 났습니다, 군사님! 산맥 아래에 명군(命軍)이 다시 집결하고 있습니다!”
“뭣?!”
명군.
그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달 전쯤이었다.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시체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제갈영이 구축해 놓은 진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공격에 큰 위기를 겪었지만 사마중과 제갈영의 기지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었다.
“또 녀석들이 쳐들어오는 건가. 명두(命頭)도 거기에 있었나?”
사마중이 말하는 명두란 바로 명군을 지휘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체들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던 군세에는 단 한 명의 살아 있는 인간이 있었는데 그는 시체들의 한가운데에서 천외천(天外天)이라고 적혀 있는 깃발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는 직접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의 손짓에 명군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고 이에 명군의 우두머리라고 하여 명두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 기회를 노려 암살해 보려 했지만, 워낙 많은 시체들이 그를 지키고 있었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자의 보고에 사마중은 침음을 삼키며 제갈영을 바라봤다.
그가 이토록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전 전투에서 지리적 이점은 모두 써먹었기에 명두가 이에 쉽게 당해 줄 리 없었고 지금은 그 때에 비해 숫자는 많았으나 실질적인 무력은 훨씬 떨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사마중은 더 이상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제갈영 군사님.”
“하아…….”
한층 더 깊어진 제갈영의 한숨.
사마중이 알고 있듯 제갈영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들로서는 명군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다면 저들은 바로 그 뒤를 쫓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느린 우리가 큰 피해를 보거나 전멸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수성전을 펼치고 난 후 그들의 공격이 잠잠해진 틈을 타 북쪽으로 가지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갈영의 말에 사마중 역시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작전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시체들이 득시글거리는 남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 북쪽.
지금 그곳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쪽보다는 북쪽이 훨씬 안전할 거란 판단을 한 제갈영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북해빙궁의 공주인 설백도 함께 있었으니 어쩌면 북해빙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일단 설백 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곧바로 복귀해 달라고 전하세요. 한시라도 빨리.”
그 시각.
설백은 섬서의 서안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별동대로 사람을 꾸려 사람들을 구출하고 모용진과 다른 흑천파를 찾기 위해 수색 중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적은 수의 인원으로 수색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가 익힌 빙백신공 덕분이었다.
그녀의 한기는 시체들을 얼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얼린 시체 자체를 박살 내면 시체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매번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하아, 하아…….”
그렇게 또 한바탕 거친 전투를 끝낸 설백.
많은 내공을 사용하여 주저앉은 그녀의 곁에 빙월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몸에 내기를 불어넣어 줬다.
“고생 많으셨어요, 공주님. 그러니까 이제 조금만 쉬고…….”
“아니, 가야 해.”
빙월이 조금만 쉬자고 권했지만, 설백은 그녀의 손길을 떨쳐 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다가 몸 상하셔요! 아무리 모용진 님이 걱정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몸을 혹사하시면…….”
하지만 설백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이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일행에게 움직이자며 손짓했다.
그렇게 다시 이동하는 설백의 일행.
하지만 그들은 한 고개를 넘어가기도 전에 다시 멈춰서야 했다.
“누구지?”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그들이 멈춰선 이유는 시체 무리 때문이 아니었다.
길 앞을 막고 있는 검은 인영 하나.
그는 꽤나 멀리 있었지만, 그 기운은 설백이 있는 곳까지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꺼림칙한 느낌.
설백은 그 인영이 가까워질수록 그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이내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천마(天魔)?”
그녀가 호칭을 내뱉었을 때 인영은 이미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치 축지법을 쓴 것처럼 엄청난 거리를 단번에 줄여 버린 인영.
그, 아니 그녀는 바로 천외천의 십인 중 한 명인 천마손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천기린의 아이야. 이렇게 보는 것은 두 번째인가?”
천마손은 설백을 알아보는 듯 이야기했지만, 설백은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의 천마손은 쭈글쭈글한 할머니였고 지금은 무척이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그녀가 취할 자세는 마찬가지였다.
마의 기운을 물씬 뿜는 그녀가 적이 아닐 수는 없으니까.
설백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북해검(北海劍)에 손을 얹었지만, 그 순간 천마손은 이미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선택받지 못한 가여운 영혼. 걱정 말거라 네 젊음은 내가 가져갈 테니까 말이야.”
그 순간 설백은 보았다.
검은 칼날이 자신의 배를 뚫고 튀어나오는 모습을.
푸욱!
“걱정 마. 곧 네 연인도 너와 똑같이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