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
광마전생 (3)
얼마나 몸이 쓰레기이기에.
나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어났다.
모용혁에게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어났을 때 그의 얼굴을 보자 아무런 화도 낼 수가 없었다.
무리를 해서 그런 것인지 몸은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말을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딱히 심심하지는 않았다.
내가 깨어난 이후로 움직이지 못한단 것을 안 모용혁이 내게 모용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까.
모용세가의 시초인 선비족부터 장황하게 알려 줬다는 게 문제였지만.
모용세가는 뼛속부터 귀족 집안이었고 잘났다.
이 말을 대체 몇 시진이나 하는 건지…….
밤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잔잔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즈음이 돼서야 내가 듣고 싶은 정보가 모용혁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리 모용세가가 갑자기 몰락하게 된 것은 이 아비가 너만 한 나이였을 즈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 년쯤 되겠구나. 당시 우리 모용세가는 여전히 가세를 불리며 급성장 중이었고 세가 중 가장 강했던 남궁세가보다도 모든 면에서 앞서가고 있었지. 그래서 우린 너무나도 안일했던 거야.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것이지. 당시 천하제일인이자 무림맹주는 너무나도 강했어. 중원인들은 그 강함을 경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했지.”
확실히 내 이야기다.
천기린의 이야기.
큼큼 내가 좀 강하긴 했지.
“그리고 그 두려움이 너무나도 강해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모여 우리 세가에서 큰 회동을 열었단다. 그 회동에서 무림맹주를 제외한 무림맹은 무림맹주를 제거하기로 계획을 짰고 우리 세가도 거기에 가담했단다. 부끄럽지만 그는 강해도 너무 강했거든.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이지. 하지만 그 결과 우리 가문은 몰락했단다. 무림맹주의 손에 처참하게 박살 났지.”
아……. 아아아아?!
듣다 보니까 생각났다.
‘모용세가’.
분명 내가 그때 제대로 뒤집어 줬던 세가였다.
모용세가를 뒤집은 덴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날 유인한 곳이 모용세가였으니까.
그렇군. 결론은 나 때문에 이렇게 몰락했던 거였나? 난 지금, 내가 몰락시킨 세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고?
“문제는 그 이후였다. 우리 모용세가의 본관이 박살 난 다음날. 놈이 또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그는 십여명의 수하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모용세가를 박살 내기 시작했지. 정말 끔찍했단다. 그에겐 자비란 없었어. 재물은 모두 빼앗고 세가의 병력들은 물론 집안의 시종들까지 모두 도륙했지.”
예?
“우린 그날의 일을 ‘모용혈겁’이라고 부르고 있단다.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붙인 이름이지. 모용혈겁에서 살아남은 이는 내 사부였던 모용강 숙부님과 모용가주 모용천 님 그리고 어린 나와 동생뿐이었지. 우린 요녕에서 하북팽가로 죽기 살기로 도망쳤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은 우릴 뒤쫓아 왔고 결국 가주님과 숙부님은 어린 우릴 살리고 그 잔악무도한 놈의 손에 찢겨 죽었다.”
어…… 내가? 저거 나 말하는 것 맞지?
나는 전생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봤지만 분명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아니, 진짜로.
기억을 지운 것도 아니고, 내 천기린의 이름을 걸고 맹세코 그런 적이 없다.
나는 가볍게 본관만 두 동강 냈을 뿐이지 수하를 대동하고 누구를 몰살한 적은 정말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동생은 살아남아 하북팽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 잡았고 잠시 동안 그들의 성씨를 빌려 살았다. 그런데 내가 스무 살이 되던 날 정마대전이 벌어졌고 우리의 철천지원수인 무림맹주는 정사대전 도중 사망했지.”
모용혁이 약관(弱冠)일 때면…… 대충 십칠 년 전일 테니 그럼 지금은 천기린이 죽은 지 십칠 년 된 세상이란 건가?
거참 되게 애매하네. 이십 년도 삼십 년도 아닌 십칠 년이라니…….
그때의 일이 바로 어제 같은데 내가 죽은 지 십칠 년이나 지났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진아, 비록 그자는 죽었으나 반드시 기억하도록 해라. 우리 모용세가의 철천지원수인 그자의 이름은 광마 천기린. 죽을 때까지 원망하고 죽어서라도 반드시 복수해야만 하는 그 이름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
확실하게 나군.
나야.
광마 천기린.
아니, 씨…… 근데 진짜 억울한데…….
나 아닌데, 진짜…….
“으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떤 새끼가 감히 날 사칭하고 모용세가를 박살 내?
내가 진짜 억울해서라도 찾아내고 만다.
그렇게 내 새로운 삶의 최우선 목표가 하나 생겨났다.
‘광마 사칭범 붙잡기.’
* * *
모용혁이 해 준 그 이후의 이야기는 뻔한 내용이었다.
모용혁은 팽가에 몸을 의탁하다가 천기린이 죽고 모용 성씨를 되찾고 팽가의 아래에서 도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곳 하북에서 ‘모용학관’이라는, 어린아이들에게 무공을 알려 주는 학관을 열었고 아내를 얻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사이에서 나온 것은 바로 나 모용진이었고 모용진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맹에서 지원해 준 지원금도 홀라당 까먹고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학관은 아직 멀쩡하게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뻥인 것 같다.
이야기를 할 때 표정만 봐도 안다.
내가 눈치 백 단이거든.
그날 이후로 나는 열흘을 더 앓아 누웠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나는 아버지 몰래 다시 외원공을 수련했다.
절악명의 구결은 아파서 누워 있는 내내 읊고 있었다.
아마 이걸 몰랐다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다 살다 천마한테 감사할 줄이야.”
전대 천마의 얼굴을 떠올린 모용진은 피식 웃으며 절악명의 구결을 계속 외웠다.
외원공을 수련하고 다시 드러누워 절악명의 구결을 외기를 반복.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여름이 오고 낙엽이 문드러지는 소리와 함께 가을이 찾아왔으며 살을 에는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겨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새파란 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모용진은 드디어 자신의 첫 번째 목표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하겠어.”
그 목표란 바로 내공이었다.
여전히 몸은 너무나도 허약해 모용진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연약한 몸엔 내공이 가득했다.
물론 몸의 상태에 비해 가득하단 것이다.
극심한 구양절맥으로 인해 당연히 단전은 생성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몸속의 살과 내장이 내공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최대치를 달성했을 뿐이다.
“겨우 눈곱만 한 내공을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모으다니……. 하지만 오늘부터 많은 것이 변할 거야.”
아버지가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한 모용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왼손은 심장에 그리고 오른손은 단전이 위치할 아랫배에 부드럽게 올렸다.
“후읍…….”
크게 숨을 들이켠 모용진은 이내 눈을 감으며 집중했다.
그의 의식은 피부를 뚫고 살갗으로 들어가 내장을 휘저었으며 그 곳곳에 숨어 있는 내공을 향했다.
지금 그가 하려는 것은 ‘단전’을 재생시키려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세 개의 단전을 가진 채 태어난다.
상단전과 중단전 그리고 하단전.
모용진 역시 태어났을 때 세 개의 단전이 모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양절맥으로 인해 하단전이 중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기에 짓눌러 아주 작게 쪼그라들었을 뿐.
이 경우 하단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하단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자신의 몸 곳곳을 누빈 모용진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찾아냈다.
몸속 깊은 곳에 소멸 직전까지 찌그러져 있는 단전을.
‘찾았다.’
이 찌그러진 단전을 찾는 것 자체가 일단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보통은 이걸 찾아낸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고 내공이 전혀 없어 완전히 쪼그라든 단전이니까.
거기다가 모용진의 몸은 구양절맥.
이 하단전에 이어진 맥은 전부 끊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용진이 누구인가.
전대 무림맹주이자 무림을 떠들썩하게 했던 광마(狂魔).
그에게 불가능이라는 것은 없었다.
오직 직진할 뿐.
모용진은 심장에 얹은 왼손에서 먼저 외원공(外圓功)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발동된 외원공은 중단전인 심장을 자극했고 중단전에서 엄청난 양기가 요동치며 손끝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 양기는 손목과 팔, 어깨를 타고 오른팔로 이동했다.
팔의 혈도를 몽땅 짓누르며 이동하는 양기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모용진은 입술만 살짝 깨물 뿐 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동한 양기는 오른손에 모여들었고 잠시 후 미리 찾아 둔 하단전을 향해 거칠게 쏘아 보내졌다.
지금 그가 행하는 일은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아니, 어지간히 미친놈도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모용진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지금 모용진은 자신의 단전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양기를 양기로 밀어낼 생각이었다.
말이야 쉽지, 이건 진짜 미친 짓이었다.
같은 두 양기가 합쳐지기라도 한다면 한층 더 거대해진 양기는 더 강하게 단전을 압박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모용진은 죽는다.
만일 밀어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두 개의 양기가 서로를 밀어내게 되면 엄청난 충격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모용진은 끔찍한 고통을 계속해서 받아야만 했다.
성공 확률은 일 할도 되지 않았고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오른손에서 이동한 양기는 엄청난 속도로 하단전 앞으로 모여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양기와 마주했다.
내장이 다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부딪치기 시작한 양기.
그런데 놀랍게도 두 개의 양기는 섞이지 않았다.
외원공의 원심력과 내장에 흩뿌려둔 내공들이 양기의 겉을 둘러쌌고 거칠게 회전하는 양기는 단전을 짓누르던 양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윽…….”
끔찍한 고통에 모용진은 어느새 식은땀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내장을 태우는 고통을 이겨 내며 외원공을 계속해서 운용했고 그 양기가 거대한 양기를 밀어내는 동안 빠르게 몸속에 퍼져 있던 내공을 움직였다.
피부와 살 내부에 매달려 있던 내공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더니 하단전으로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맥이 끊겨 내공이 혈도를 이용할 수 없었기에 억지로 살에서 살로 조금씩 이동하는 내공은 엄청나게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이 지나고.
세 시진이 다 되어 모용진이 거의 실신 상태까지 도달했을 때.
드디어 그의 눈앞에 빛이 펼쳐졌다.
몰려든 내공을 받아들여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 단전.
그리고 그 작은 단전이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아 가던 그때.
모용진은 깨달았다.
“아!”
한 줄기 감탄사와 함께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안광.
잠시 후 그 안광이 모두 걷혀 나갔을 때.
모용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라면 한참 동안 신음 소리를 내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야 정상이었던 모용진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범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크게 기지개까지 펴고 있었다.
“끄으아아아압! 하아…… 역시 나야. 이래야 나답지.”
환하게 미소를 짓는 모용진의 얼굴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광마(狂魔) 천기린!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