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
광마전생 (32)
모두의 선봉에 서서 홀로 달려 나가는 호태산.
장간교를 가볍게 뛰어넘은 그는 깊은 골짜기를 향해 몸을 날렸고 마치 계곡을 뛰어노는 범처럼 바위를 밟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장강수로십팔채가 있는 가락골은 자연이 만든 요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방어에 좋은 지리를 가지고 있었다.
장강에서 이어지는 골짜기를 제외하면 주변이 모두 절벽에 둘러싸여 있었고 양쪽으로 흐르는 강의 중간에 높은 지대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가락골이었다.
게다가 가락골은 높은 지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면적도 넓어 커다란 마을이 하나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곳을 본거지로 삼고 있었기에 여태껏 가락골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침공당한 적이 없었다.
가락골 내로 진입하는 것도 고생이었지만 장강의 수적들은 물에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기에 누구도 쉽사리 수적을 토벌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골짜기에서 내려온 호태산을 반겨 주는 것은 열 명이 넘는 수적들이었다.
“외부에서 온 손님인가?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냐. 얌전히 돌아가지 그래?”
입에 갈대를 문 채 거들먹거리며 호태산의 앞을 막은 사내.
그의 이름은 왕춘봉.
곧 명(命)을 달리할 불쌍한 인물이었다.
“지랄.”
욕지거리와 함께 내질러진 호태산의 주먹은 왕춘봉의 목을 부러뜨렸고 그는 그대로 절명했다.
“내 이름은 호태산. 거혈이지(巨血耳指)라는 별호를 들어 본 자는 순순히 물러나라!”
내기가 실린 호태산의 외침에 달려들던 수적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거혈이지라면……!”
“녹림왕 호태산!”
호태산은 자신을 알아보고 주춤거리는 수적들의 모습에 의기양양하며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푸른빛의 검기가 호태산의 산통을 깨 버렸다.
“먼저 지나가겠소.”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수적들을 검기 한 번으로 쓰러뜨린 인물은 바로 백리강이었다.
호태산을 곧바로 뒤따라 온 그녀는 호태산을 지나쳐 빠르게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를 그녀의 사제들이 우르르 따라왔다.
순식간에 호태산과의 거리를 벌리는 백리강 일행.
조금 짜증은 났지만,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은 일종의 승부라는 걸 잘 알고 있는 호태산이었다.
“그래. 니들이 그래야 나도 할 맛이 나지.”
피식 웃으며 대지를 박찬 호태산은 녹림군림보(綠林君臨步)를 밟았다.
녹림산보(綠林山步)에 흑영보(黑英步)를 대입해 창안한 호태산의 독자 보법.
녹림군림보는 비록 흑영보에 비해 평지에서의 속도는 더 느렸지만 산지에서의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산적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법.
호태산은 자신을 제치고 달려 나간 백리강 무리들을 단번에 앞지를 자신이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녹림군림보를 밟아도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할 뿐 가까워지지 않았다.
심지어 내공까지 쏟아붓고 있는데도 거리는 좁혀질 생각이 없는 듯 오히려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뭐야…… 왜 내 녹림군림보가 따라잡지 못하는 거냐!”
다른 이들이 모용진에게서 새로운 무공을 배우고 훈련할 때 호태산은 함께하지 않았다.
모용진은 배움을 강요하지 않았고 호태산은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기에 새롭게 뭔가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호태산이 힘겹게 백리강의 뒤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그때.
“으어어…….”
갑자기 옆에서 괴물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뭔가가 호태산을 제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가야허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던 가야허에게도 제쳐진 호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니…… 저게 말이 되냐고!”
* * *
중경 제일수문 가락문(歌樂門).
이곳은 장강수로십팔채를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가장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내로라하는 무림의 고수들도 이곳에선 얌전히 통행세를 내고 지나갈 정도였고 약 십 년간 단 한 번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었다.
그 정도로 이 가락문에는 뛰어난 고수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경계를 서는 흔해 빠진 병사들도 모두 일류를 넘어서 있었고 가락문을 넘어 수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종종 절정의 고수도 맞닥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수적에 대항하려 하면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수준.
그런데 그런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가락문이.
지금 단 아홉 명의 손에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다.
도를 든 아홉 인의 산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락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침공했고 그 뒤로 맞닥뜨린 수적들을 단 일도(一刀)에 쓰러뜨리고 있었다.
물론 수적 쪽 절정 고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뽑고 산적에게 맞선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단 한 합 부딪친 것뿐이었는데 그들과 자신의 엄청난 차이를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 그 수적들보다 더 놀라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바로 가야허였다.
죽을 것 같은 몸뚱어리를 이끌고 어찌어찌 백리강의 뒤를 따라왔는데, 정말 도 하나 꺼내는 데도 엄청난 힘이 들 정도로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런데 막상 적을 마주하니 본인의 몸은 도를 뽑아 들고 있었고 단숨에 그를 제압했다.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상황.
심지어는 매번 모용진이나 백리강에게 지적받던 습관도 고쳐져 있었다.
가야허의 흔한 버릇 중 하나가 한 합을 나눈 후 상대방을 가늠하듯 자세를 다시 고쳐 잡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쏙 빠진 것이었다.
물론 가야허의 습관은 여전했다.
한 합을 나눈 그는 몸을 살짝 빼며 자세를 고쳐 잡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이 본능적으로 가야허의 습관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용진의 무시무시한 구타식(拘打式) 교육.
그 교육 효과는 실로 뛰어났다.
그 외에도 가야허는 자신의 많은 버릇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의미하게 도를 돌려 잡던 버릇도.
자꾸만 뒷무릎이 먼저 나오려는 버릇도.
심지어는 초식을 쓸 때마다 찡그려지는 얼굴도 고쳐졌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배움의 깊이였다.
모용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기 전엔 열화신공과 열악도가 채 삼성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성 그 이상의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야허가 지금 인물들 중 가장 강한 것은 아니었다.
홍송도와 광천악 그리고 백리강.
이 세 명이 순수한 무공으로 따지면 가장 강했고 가야허는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이번 사형제 대전의 순위 결정 방식은 공의 크기를 따지는 것.
무조건 강하다고 해서 큰 공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만 해도 전혀 자신감이 없었던 가야허였지만 직접 강해졌다는 것을 체감한 후의 그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백리강, 홍송도, 광천악.
이 삼 인을 필두로 흑천파는 그야말로 중경장강을 뒤흔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세 개의 수문을 모두 격파해 버린 그들은 수적의 본거지로 침투했고 엄청난 숫자의 수적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물밀 듯이 쏟아지는 수적들.
수적의 본거지에도 고수들은 존재했지만 지금 흑천파에게 있어서 그 고수들은 고수 반열에도 들지 못했다.
구 인 중 가장 약하다고 알려진 홍봉도 역시 절정에 다다른 고수들을 쉽게 상대하고 있었으니 지난 일 년간의 수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잘 알려 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 년 전의 그는 이렇다 할 무공도 익히지 못한 문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을 일 년 만에 절정의 고수를 상대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모용진뿐일 것이다.
흑천파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유독 열심히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홍송도였다.
원래 중경녹림채의 채주였던 그는 원래 부하였던 이들이 자신의 위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재능에 관한 자부심도 있었던 그였기에 남들보다 더 뛰어나길 바랐고 꼭 대사형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홍송도는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계속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리강이었다.
검기를 마치 자신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같은 열악도를 사용하지만 검기에 있어서는 홍송도도 그녀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다른 이들도 각자 품속에 호승심을 키우고 있었다.
호승심은 모두를 적극적으로 바꾸었고 결국에 그것은 광기가 되어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중경장강의 수적들을 쓸어버리는 흑천파.
그들은 어느새 모든 내원을 가로질러 아까 전 불꽃이 일어나며 무너졌던 중경장강의 자랑. 장수각(長水閣) 앞에 서 있었다.
사형제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 건물.
그 안마당을 향하는 문 앞에 선 백리강은 당당하게 문을 열었고 혹여나 날아올지 모를 공격에 대비하여 황급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전각 앞엔 작은 정원과 연못이 있었는데 문제는 타오르는 전각이 아닌 조그마한 연못이었다.
조그마한 연못 속에 빠져 있는 열여덟 명의 남자들.
놀랍게도 그들은 장강수로십팔채가 자랑하는 장강십팔수적이었다.
초절정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그들을 수적이라며 욕보일 수 없다고 알려진 장강십팔수적이 물고기들이 노닐기에도 좁은 연못에 콩나물처럼 박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앞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남자였다.
머리가 다 날아가 얼핏 보면 스님과 같은 남성.
하지만 스님이라기엔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수많은 상처 자국을 가진 그는 바로 장강수로십팔채의 주인. 장강왕 조종려였다.
울고 있는 어른의 눈물마저 멈추게 만드는 위압감을 가진 화경의 고수 조종려.
그런데 그런 입신의 경지에 이른 초고수인 조종려가 누군가의 앞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이제 모두가 다 알 것이다.
“사부님…….”
너무나도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은, 탄식이 섞인 백리강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화답하듯 모용진은 웃으며 조종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어, 왔어? 한참을 기다렸잖아. 제자님들이 하도 안 오시길래 스승인 내가 먼저 정리했지.”
마치 앞마당의 쓰레기를 치운 듯한 말투를 내뱉는 모용진은 머릴 박고 있는 조종려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반짝이는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여기 문어 한 마리가 아주 제철인데. 너희들도 한번 만져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