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5
광마전생 (45)
뎅뎅뎅뎅.
오시가 되자마자 울리는 커다란 종소리.
그 종소리와 함께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문이 닫혔고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떠들던 아이들도 입을 닫고 정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백호학관 입관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정면을 주시해 주십시오!”
이 엄청난 인원수의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 궁금했었는데 역시는 역시나였다.
“곤륜(崑崙)바위인가.”
곤륜바위란 곤륜산맥에서만 나온다는 신기한 바위로 신선바위 또는 운돌 등으로 불리는데 특이하게도 내공에 반응하는 돌이었다.
불어넣는 내공에 양에 비례해 바위는 덜덜 떨게 되는데 그 흔들림의 정도로 내공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뭐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신비스러운 영물(靈物)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도 한때 곤륜바위에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몇 번 연구한 적이 있는데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저 바위가 내공에 떨리는 이유는 바위 속에 작은 구슬만 한 텅 빈 공간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뭐,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
“와…… 저게 곤륜바위!”
“신물을 이렇게 마주할 줄이야.”
“역시 백호학관! 아무렇지도 않게 곤륜바위를 들고 오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곤륜바위를 신성시하고 있는 우매한 것들을 보면 이렇게 웃음이 나는데 말이야.
내 활력소 중 하나를 버릴 순 없지.
“백호학관의 시험은 총 삼 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 차 시험은 바로 총 스무 개의 곤륜바위를 흔들면 됩니다. 합격 기준은 각 감독관이 판단합니다. 그럼 차례대로 한 분씩 올라와 주십시오!”
앞줄부터 한 명씩 단상 위로 올라가더니 차례로 바위에 손을 얹기 시작했고 잠시 후 연무장은 ‘드드드득’거리는 바위의 진동 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적당한 힘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눈에 띄지 않게 적당히 시험만 통과할 정도면 된다.
그렇게 대충 열 명 정도 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합격선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입관하려는 사람은 무지막지하게 많았고 그 후로도 나는 한참의 시간을 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반 시진이 다 되어 갈 때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고 왠지 모르게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이름.”
날 맞이한 것은 간신배 같은 수염이 곧게 자란 중년의 남성이었다.
비쩍 마른 몸에 표독한 눈빛.
푸른색 도복에 허리춤에 맨 묵직해 보이는 검까지.
‘나 종남파(終南派)요’라고 외치는 듯한 그는 어딘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훑고 있었다.
“이여립이라고 합니다. 옥 여[璵] 자에 설 립[立] 자를 쓰고 있습니다.”
“나이와 출생. 그리고 소속은?”
“올해 스물이며 호북 이천 출신 평민입니다. 지금 소속은 딱히 없고 한때 백리세가의 무사로 일했었습니다.”
무사로 일했단 말에 눈썹을 움찔거리며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감독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 표정이 훤히 들어왔다.
출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놈인가 보군.
“시험 내용은 이미 알고 있겠지. 여기에 손을 대고 내공을 주입해라.”
빨리하라는 듯이 갑자기 빨라진 감독관의 말투가 조금 띠껍긴 했지만 나는 순순히 바위에 손을 얹었다.
‘드드드드드득!’
내기를 불어넣자마자 마구 떨리는 곤륜바위.
원래는 이 정도로 흔들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합격선에서 흔들고 지나가려고 했었는데 왠지 저 감독관의 표정이나 말투가 마음에 걸려서 일부러 좀 더 강하게 내기를 불어 넣은 것이었다.
절대 떨어뜨릴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불합격. 나가는 곳은 왼쪽이다.”
“예?”
깜짝 놀란 나는 감독관을 쳐다봤지만 감독관은 어서 꺼지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 있었다.
그것도 나를 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잠깐만요. 이게 불합격이라고요? 앞선 사람도 이것보단 덜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불합격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판정에 항거하자 감독관이 벌레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봤다.
“시험 감독관은 나다! 지금 일개 무사 출신 주제에 종남파의 이대제자인 나 전호웅의 판정을 무시하는 거냐!”
일개 무사 출신을 운운하고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걸 보니 딱 이놈의 수준이 눈에 보이네.
하. 하필 걸려도 이딴 놈이 내 감독관이라니…….
운도 지지리도 없단 말이지.
“그거야 제대로 된 판정이 아니니까 그렇죠.”
“뭐야?!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봤나! 여봐라! 당장 이놈을 끌어내려라!”
전호웅의 호통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고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나를 잡으러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런 잡음이 생기면 좋지 않은데…….
전호웅이라고 했나.
꼭 기억…… 아니, 하지 않아도 왠지 자주 맞닥뜨릴 것 같은 느낌이네.
다가오는 무사들의 모습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곤륜바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진작 그럴 것이지. 썩 꺼져라! 이곳은 너 같은 놈이 올…….”
“억지로라도 통과할 수밖에.”
나는 전호웅의 말을 자르며 바위에 내기를 불어넣었고 바위는 아까 전보다 더 크게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닥!
바닥에 진동이 전달될 정도의 큰 움직임과 함께 울려 퍼지는 소리.
깜짝 놀란 듯한 무사들과 전호웅의 표정을 보고 나는 씨익 웃어 줬다.
“이것도 불합격입니까?”
나는 당연히 통과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호웅을 쳐다봤다.
뭐 때문에 분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염을 파들파들 떠는 전호웅.
그래 봤자 어쩌겠어. 이 정도로 이목도 끌었고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설마 불합격이라고 하겠…….
“불합격!”
하네.
목에 핏줄을 세우며 불합격이라 외친 전호웅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당장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지.”
붉어진 얼굴로 죽여 버린다고 협박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하아…… 꼭 있단 말이지.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멍청이가.”
“머, 멍청이?”
“그럼 감독관님이 멍청이가 아니고 뭡니까? 출신이나 따지면서 옹이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 옥석도 가려보지 못하는 아둔한 자인데. 딱 보니 이 백호학관이나 종남파의 수준을 알겠구만.”
“뭐……?! 이 자식이 감히 우리 대종남파를!”
그 순간 눈이 회까닥 돌아간 전호웅은 품에서 검을 뽑아 들었고 곧바로 나를 향해 휘둘렀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리하도록 유도했으니까 말이지.
이런 별 볼 일 없는 놈들일수록 자신의 뒷배경에 집착하고 쓸데없이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뒷배를 욕했으니 그 치졸한 마음으로는 견딜 수 없었겠지.
그래도 딴엔 백호학관의 강사라고 자세 하나만큼은 깔끔했다.
종남파 특유의 중검의 묘리가 담긴 검격(劍擊).
그리고 날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나 보다.
팔 하나 정도 날릴 생각이었나 보군.
나는 가볍게 피할지 아니면 대놓고 망신을 줄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찰나 어떤 손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손은 순식간에 전호웅의 검을 붙잡았고 검은 정확하게 내 어깨 앞에서 멈췄다.
완벽에 가까운 금나수(擒拿手).
그 금나수를 보여 준 것은 백발이 멋들어지게 자란 노인이었다.
“허허. 지금 시험장에서 뭐 하는 건가, 전호웅 선생.”
“학, 학생주임 선생님…….”
“학관의 선생이라는 자가 이렇게 함부로 검을 뽑아 들어서야 되겠는가!”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전호웅에게 학생주임이라고 불린 노인은 잠시 그를 노려보더니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많이 놀랐겠군. 내가 백호학관을 대신해 사과함세.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새하얀 도복 위에 수놓아진 푸른색의 용.
흰색 도복 위에 푸른색의 용을 그릴 수 있는 문파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곤륜파(崑崙派).
구파일방 중 하나로 한때는 중원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 문파였다.
그렇다고 해서 곤륜파에 속한 모두가 푸른색 용의 자수를 놓을 순 있는 건 아니었다.
곤륜파에서도 인정을 받은 일부의 인물.
그러니까 최소 장로급 정도가 돼야 저 자수를 옷에 새길 수가 있었다.
“학생주임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저 저 아이에게 불합격을 통보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사문을 거들먹거리며 모욕을…….”
“갈! 전호웅 선생! 나는 지금 이 입시생에게 질문을 한 걸세! 자네가 아니라!”
학생주임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거칠지만 청아한 기운을 담은 꾸짖음에 전호웅은 이를 악물며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호오. 백호학관에 이런 인물이 있을 줄이야.
백발이 무성할 나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학생주임은 아무리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뭐, 애초부터 곤륜은 무림맹에 속해 있어도 깊은 교류를 나누지 않긴 했지…….
그래도 내가 하도 마교를 들쑤시고 다니니 곤륜파는 상당히 우호적이긴 했었다.
곤륜은 마교라면 치를 떠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해 주겠나?”
“예. 저는 방금 시험을 봤고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제가 항거하자 저 감독관이 검을 빼 들었습니다.”
“흠…… 어째서 항거했지? 감독관이 불합격을 통보했다면 자네가 합격의 기준을 넘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그거야 당연히 기준을 넘었으니까요. 원하신다면 지금 눈앞에서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내 자신만만한 말에 학생주임은 해 보라는 듯 곤륜바위를 가리켰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얹었다.
“해 보게나. 내가 직접 봐 줄 테니.”
나는 학생주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곤륜바위에 내기를 불어넣었고 잠시 후 바위는 춤을 추듯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다닥!
엄청난 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곤륜바위.
그리고 그 모습에 학생주임의 눈썹이 눈에 띄게 치켜 올라갔다.
“입시생. 이렇게 했는데 불합격이라고 통보를 받은 건가?”
“예. 방금 저 감독관님이 확실하게 불합격이라고 두 번 외치셨습니다.”
“그래?”
다시 묻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주임은 화가 잔뜩 난 듯 돌아보더니 전호웅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전호웅 선생! 왜 불합격 처리를 한 건지 설명할 수 있겠나!”
왜 불같이 화를 내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 됐건 나에겐 이득인 상황.
학생주임의 불같은 화에 전호웅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니오라! 저 녀석은 일개 평민입니다! 그것도 세가의 잡심부름이나 하던 잡놈이란 말입니다! 저, 저런 놈이 우리 백호학관에 들어왔다간 학관의 명예가…….”
“전호웅 선생!”
그 순간 날카로운 살기가 학생주임의 몸에서 해일처럼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전호웅을 집어삼켰고 전호웅은 그 살기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켁켁거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언제부터 우리가 학생들 출신을 가려 받았지?! 지금 네놈이 미쳐 오직 실력만 보고 인재를 배출하는 우리 백호학관의 오랜 전통을 박살 내려 하는 것이냐!”
호오…… 눈에 보일 정도로 맹렬한 살기라니.
역시 내 생각대로 학생주임은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최소 절정의 말미(末尾).
요즘 말로 하면 초절정의 고수 정도겠군.
이 정도면 일개 학관에 있기엔 아까운 인재일 터인데.
나이가 나이라 은퇴한 건가?
그렇게 잡생각을 하는 그때 결국 살기로 전호웅을 기절시킨 학생주임이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입시생에게 못난 꼴을 보여 주고 말았군. 우선 내 이름은 하태벽이라고 하네. 본문은 곤륜이고 지금은 이 백호학관의 학생주임이지. 아직 자네에게 백호학관에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이 노구에게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