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6
광마전생 (46)
“제 이름은 이여립. 호북 이천 출신이며 한때 백리세가에 무사로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올곧고 절도 있는 자세와 당당한 목소리.
백호학관의 학생주임인 하태벽은 그런 모용진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군. 그럼 기초 무공을 백리세가에서 배운 것인가? 이 곤륜바위를 이 정도로 흔들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데 말이지.”
“아닙니다. 저는 백리세가에 무사로 고용되어 일을 했을 뿐. 백리세가에서는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
더 붙잡고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던 하태벽이었지만, 지금은 입관 시험 중이었기에 입맛을 다시며 여전히 포권을 하고 있는 모용진의 등을 토닥였다.
“자네의 일 차 시험은 나 하태벽의 이름으로 통과라네. 부디 우리 백호학관의 생도로 다시 마주했으면 좋겠군.”
“예. 아마도 그리될 것입니다.”
겸손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당당함.
하지만 하태벽은 그 당당함이 좋았고 옅은 미소와 함께 전호웅을 끌고 시험장에서 나갔다.
“합격자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호위 무사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던 모용진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이런…… 이건 별로 좋진 않은데.”
무수하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
이는 모용진이 시작부터 큰 소란을 일으켰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곧바로 두 번째 시험장으로 이동한 모용진에겐 종이와 붓 하나가 주어졌다.
백호학관의 두 번째 시험은 바로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의미가 있는 짤막한 문장 하나를 쓰는 것이었다.
아무리 무(武)를 가르치는 학관이라고 해도 글을 아는 것은 중요했기에 문무 겸비를 위하여 문의 기초가 되지 않은 이들은 걸러 내려는 것이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짤막한 문장을 적는 것이었는데.
감독관의 눈에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적어야만 했다.
물론 감독관은 여러 명이었기에 굳이 같은 감독관에게 새로 적은 문장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 시험이 시작된 지 반 시진이 다 되어 가는데 일 차 시험 첫 번째 통과자도 아직 이 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하아아암.”
이 차 감독관 중 한 명인 남궁도는 벌써부터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이 차 감독관을 맡게 되어서 성미에도 맞지 않는 글귀만 하루 내내 보고 있어야 하니 그에겐 거의 고문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 한 사내가 자신을 향해 걸어왔고 종이를 내밀었다.
‘어차피 의미 없는 것을.’
글자를 모르는 이들을 걸러내려는 것도 맞지만 그것 말고도 이 시험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초적인 인내심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글귀와 문장을 만들어 와도 감독관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다시.’
합격자는 한 시진이 지난 뒤 나와야 했고 그게 규칙이었다.
그런데 종이를 받아 든 남궁도는 ‘다시’라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입에선 아직 나올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합격.”
그 말에 감독관은 물론 입시생들 역시 깜짝 놀라 낭궁도와 그 앞에 서 있는 모용진을 쳐다봤다.
“감사합니다. 전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쪽이다.”
모용진의 질문에 남궁도는 살벌한 눈빛으로 문을 가리켰고 모용진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더니 유유자적하게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남궁도 선생, 무슨 일입니까? 합격이라니요.”
깜짝 놀란 옆자리의 선생이 모용진이 제출한 종이를 보려 하자 남궁도는 재빠르게 종이를 구기더니 품속에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일은 저희 가문과 엮여 있어 제가 관주님에게 직접 전하겠으니 조용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남궁도는 비록 서자라고 해도 현 남궁세가의 기둥인 검성 남궁혁의 아들이었다.
그렇기에 가문을 거론하는 남궁도의 말에 선생들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후우…….”
거친 숨을 내뱉은 남궁도는 품에 넣은 종이 한 장을 의식하며 그 종이에 적힌 이름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이여립…… 이여립…… 대체 어디서 굴러온 놈이냐.’
* * *
삼 차 시험장은 이 차 시험장의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시험장이라고 안내받고 들어간 곳엔 작은 연무장이 있었고 그 어디에도 감독관은 없었다.
“삼 차 시험은 반 시진 후에 시작됩니다.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나를 안내한 무사는 그 말을 남기곤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결국 삼 차 시험장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반 시진 후라…….”
아무래도 내가 또 눈에 띄는 짓을 한 것 같군.
삼 차 시험이 반 시진 후에 시작된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차 시험은 일부러 한 시진 가까이 통과자를 내지 않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 차 시험을 막무가내로 통과하고 말았으니…….
쩝.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어진 물이고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원래라면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말이지……
홀로 연무장의 위에 앉아 잡념으로 시간을 때우는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세 명의 남녀가 삼 차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자색 옷깃에 매화가 수놓아진 도복을 입은 남성과 딱 봐도 소림사 출신의 땡중 하나.
그리고 새하얀 백우선을 든 여성까지.
아무래도 그들은 삼 차 시험장의 감독관인 듯했다.
“음? 시주는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시험장을 잘못 찾은 것 아닙니까? 이 차 시험장은 여기 바로 옆쪽입니다.”
“저는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차 시험은 조금 전에 합격했습니다.”
조금 전에 합격했다는 말에 세 명 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화산파 출신으로 보이는 선생이 확인해 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나를 신기한 듯 주시하며 연무장에 오르더니 내 정면에서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잠시 확인 중에 있으니 시주는 앉아서 편히 있어도 됩니다.”
“아닙니다. 무림의 대선배님들께서 서 계시는데 제가 감히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흐응…….”
마치 신기한 생물을 쳐다보듯이 나를 훑어보는 여성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지려는 그때.
나갔던 화산파 출신의 감독관이 돌아오더니 그들끼리 조용히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남궁도 선생이 그랬단 말입니까?”
“신기하네. 그 인간이 집안일에 관심이 있다니…….”
“하여튼 그렇다고 하니 이 차 시험을 통과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다 들린다, 이놈들아.
그들은 나에게 들리지 않게 최대한 작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그들의 속닥거림이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마지막 시험은 면접이라고 했는데 과연 어떤 면접을 치르려나…….
머릿속으로 삼 차 시험에 대한 추측을 열심히 하고 있는 그때.
뭔가 결정이 된 듯 땡중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나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시주가 시험을 통과한 건 확인이 되었으니 시주만 원한다면 먼저 시험을 시작하려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아, 예.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일단 저희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희 세 명은 모두 백호학관의 선생들이며 우선 저는 보시다시피 소림사 출신의 무승이고 원심이라고 합니다.”
원(圓) 자 돌림인가.
그 빡빡이 아래 항렬인가 보군.
“나는 화산파의 서두철이라고 한다. 검술을 담당하고 있지.”
“난 제갈영.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응?
가장 짧은 소개였지만 나는 제갈영의 말에 눈이 갔다.
왜냐하면 제갈영이라는 이름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림맹에 있던 시절, 내 서기관으로 있었던 놈이 바로 제갈세가 출신의 제갈벽운이라는 놈이었는데 제갈영은 그놈의 딸 이름이었다.
제갈벽운은 심심하면 자신의 딸이 영재라고 그렇게 자랑을 해 댔었고 몇 번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딸이 이렇게 장성했을 줄이야.
그리고 이젠 내 선생이 되어 있네?
참으로 기구하구만.
동명이인일 확률도 없진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제갈벽운의 안사람과 꼭 닮아 있었다.
눈 옆에 난 저 작은 점까지 말이지.
“삼 차 시험은 저희 세 명 중 한 명과 승부를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겨야 합격하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그 과정을 심사하여 입시생의 합격 여부를 판단할 것입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면접은 면접을 가장한 비무였다.
그래도 스님과 여자를 때리긴 그러니까 저 화산파 놈으로 할까.
그렇게 대충 시험 상대를 정하려는 그때 원심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우선 저희의 시험은 외공, 내공, 진법 세 가지로 되어 있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외공 시험은 서두철 선생이, 내공은 저 원심이 볼 것이며 진법은 제갈영 선생이 수고를 해 주실 터이니 입시생은 저희 셋 중 한 명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입시생은 운이 좋아. 이렇게 시험 대상을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서두철의 말로 봐서는 원래라면 삼 차 시험은 시험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고 진행하는 것인 것 같았다.
외공과 내공 진법이라.
고민하는 척 뒤통수를 긁은 나는 일부러 조금 뜸을 들였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은 선생들의 자존심도 살짝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비대면이 아닌 대면에서 대결 상대를 정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그들을 배려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다고 판단했다.
“저는…… 진법 시험을 보겠습니다.”
“그렇군. 진법을…… 응?”
내가 진법이라고 말하자 세 명 다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뭐, 그들이 놀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 외모 때문이겠지.
잘생겼……다기보다는 도저히 진법을 사용하는 그쪽 계통으로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아마도 그들은 내가 외공이나 내공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혀 그쪽으론 보이지 않는데…… 뭐, 좋아. 따라와.”
신기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 제갈영은 나를 시험장 내의 건물로 안내했고 군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건물의 이 층을 향해 올라가는 순간, 발밑으로 깔리기 시작하는 새하얀 안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미 내가 진법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벽과 건물의 기둥으로 되어 있어야 할 이 층은 온통 안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제갈영의 목소리.
“자. 여기가 바로 네가 진법 시험을 치를 장소야. 원래라면 세 명이 한 조로 함께 진법을 파훼해야 하는 곳이지만 아직 이 차 시험을 통과한 게 너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반쯤 놀리는 듯한 제갈영의 어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눈앞을 흐리게 하는 안개에 손을 내저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럼 언제 시작하면 될까요?”
“이미 시험은 시작됐어. 넌 지금부터 이 진법을 해체하거나 빠져나가면 돼. 주어진 시간은 일각이야. 빠져나가지 못해도 괜찮아. 아까 원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린 과정을 평가할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알았다는 내 말에 안개가 더욱 짙어지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 봐. 네가 이 환상무진(幻狀霧陳)에서 얼마나 발버둥 칠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