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7
광마전생 (47)
환상무진(幻狀霧陳).
이는 학관의 입시생에게 조금 과한 시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는 진법계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진법이었다.
그냥 일자로 걸어가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무턱대고 일자로 걸어 나가면 평생 이 진법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진법의 중점은 눈에 보이는 안개보다는 인간의 감각을 흩트리는 진법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그저 진법에 휘말린 사람의 두 눈을 현혹시키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작은 소리와 바닥의 진동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잘 알고 있냐고?
뭐, 진법에 대해 따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데리고 있던 제갈벽운이라는 놈이 진법과 기관진식의 달인이었을 뿐이지.
그리고 공교롭게도 지금 시험관은 그 제갈벽운의 딸이고 이 환상무진은 나와 제갈벽운이 함께 만들었던 진법이다.
파훼법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진법에는 필연적으로 생(生)문과 사(死)문이 존재하는데 이 환상무진은 사문을 영원히 걷게 만들어 그 진법 안에 가두는 것이었다.
그럼 반대로 생문은 어디 있을까.
생각보다 생문은 멀리 있지 않다.
환상무진의 생문은 바로 진법에 당하고 있는 자의 귀였다.
기이이이이이이익.
깊은 내공이 없다면 전혀 들리지 않는 이 ‘소리’.
이 소리를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은 어느 정도 돌아오게 되고 그 후에 안개 지대를 벗어나면 그만이다.
뭐,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당장 빠져나갈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최고의 기회였으니까.
“감독관님.”
“왜?”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 여기는 시험장이야. 가끔 가다 한 번씩 해법을 물어보는 애들이 있긴 한데…… 바로 탈락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아.”
“혹시 제갈벽운이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은 시험…… 뭐?”
깜짝 놀란 듯한 제갈영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 번 말해 줬다.
“제갈벽운 말입니다. 전 무림맹의 서기관이자 기관진식의 달인. 그리고 광마 천기린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천재라고 알려져 있는 당신의 아버지 말입니다.”
아버지를 들먹이는 모용진의 목소리에 제갈영은 황급히 진법을 해제하며 그의 멱살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제갈영이 사문을 담당하는 주축 중 하나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법은 해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눈앞에 안개가 몰아치며 모용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건 설마…….”
“예. 맞습니다. 전 이미 이 진법을 파훼했고 감독관님께 그대로 되돌려 드린 겁니다.”
환상무진을 파훼한 것도 모자라 그대로 되받아쳐 환상무진을 펼친 제갈영에게 돌려준다.
이는 제갈영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개 입시생이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넌…… 누구냐.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뭐, 굳이 말하자면 감독관님의 아버지와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죠.”
“내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는 이십 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다. 그럼 네가 귀신이 된 우리 아버지라도 만났다는 것이냐?!”
아버지를 들먹이는 모용진의 말에 잔뜩 흥분한 제갈영이 환상무진을 파훼하려는 그때.
짙게 내려앉았던 안개가 일순에 사라지며 그녀의 눈앞에 모용진이 나타났다.
“귀신이라……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군요.”
“너…… 읍!”
제갈영이 뭐라고 소리치려는 그 순간 모용진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더니 조용히 하라는 듯이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누군가가 옵니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죠. 감독관님의 아버지인 제갈벽운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제갈벽운의 죽음의 진실이라는 말에 제갈영의 두 눈이 흔들렸고 이를 본 모용진은 옅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손을 뗐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진법의 파훼에 성공했으니 삼 차 시험에 통과한 거겠죠?”
“어……? 어어…….”
당황한 제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모용진의 말대로 서두철이 올라왔다.
“응? 뭐야, 벌써 시험 끝났어? 심심해서 잠시 구경하러 왔는데…….”
“아, 옙.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제갈영 선생이 이렇게 얼빠져 있는 건 처음 보는걸? 이야. 입시생, 너 좀 대단한데?”
서두철과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용진.
그런 모용진의 얼굴을 보며 제갈영은 반쯤 얼이 나가 있었다.
그녀는 모용진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한 말에 얼이 빠진 게 아니었다.
방금 전 모용진의 손에 입이 봉해졌을 때 당연히 제갈영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의 손에 잡히는 순간 전신의 힘이 빠졌고 단전의 내공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제갈영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여립이라고 했나……. 저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 * *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제갈영은 내가 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살기를 싣고 대기하는 내내 노려보긴 했지만 제갈벽운에 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 듣고 싶은 모양인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날 내쫓으려 했으면 한참 전에 내쫓았을 테니까.
하지만 난 지금 배정된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잘 풀렸다는 말이겠지.
뭐,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말이야.
원래 제갈영은 계획에 없던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제갈벽운의 딸을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제갈영이라는 선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드넓은 중원에 제갈씨가 한두 명인가.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내 친우(親友)의 딸.
아버지가 어떤 일로 어떻게 죽었는지 알 권리가 있었고 학관 내에 조력자가 하나 더 생기면 나에겐 이득이었다.
물론 이 선택으로 인해 내가 친우의 딸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극히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기에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침대가 푹신하니 좋네. 안 그래?”
내가 말을 건넨 것은 바로 내 침대 반대편에 위치한 침대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그의 이름은 진가은.
어딘가 여성스러워 보이는 이름을 가진 그는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동기였다.
내가 아는 것은 그의 이름과 나이가 나보다 두 살 어리다는 것.
그리고 엄청난 미남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내 얼굴도 어디에 가서 빠지지 않는다.
그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만 있다는 백리세가에 있을 때도 내 외모는 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놈.
진가은은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진짜 신이 내린 조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아니, 너무 잘생겨서 여자보다 더 이쁠 정도로 잘생겼다.
지금 쪼종이 밑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을 강이도 아마 이놈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 할 느낌이었다.
“…….”
그런데 문제는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이와 이름을 말한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것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건 뭐에 쓰려고 하는 건데?”
갑자기 방을 가로지르는 줄을 벽면에 걸더니 뭔가를 열심히 만들기 시작한 진가은.
그는 내 질문에도 슬쩍 얼굴만 보여 주더니 이내 그 줄에 거대한 천을 둘러 방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렸던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방을 반으로 나누는 겁니다. 저는 개인 공간을 중요시하는지라.”
크으. 전형적인 미남의 꿀 떨어지는 목소리.
역시 아까 전에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진짜 완벽한 놈이구만.
“혹시 불편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냐, 됐어. 이게 좋다면 이렇게 해야지, 뭐. 앞으로 잘 부탁해.”
그렇게 대화는 또 끝이 났다.
더 말을 걸어 볼까 싶기도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 같진 않으니까.
“하…… 아무래도 조용하게 지내기엔 글러 먹은 것 같구만.”
그리고 그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늦은 밤.
나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인기척의 주인공은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백 명이 넘는 인원.
그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기숙사의 복도에 들어차 있는 것이었다.
스르륵.
그때 천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진가은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예.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보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다니.”
놀랍게도 진가은 역시 이 인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역시 일 차 시험을 일 등으로 통과한 수재답게 뛰어난 기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와 달리 나는 복도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알고 있다.
백호학관에 입관하기 전에 나는 철저하게 백호학관에 대해 조사했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입신양명을 하기 위해 이 학관을 찾아온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조사 중에 알게 된 것이 바로 ‘백호학관의 전통 입소식’이었다.
백호학관의 입소식은 조금 과하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선배들이 늦은 밤 몰래 찾아와 잠이 든 신입생들을 하나씩 끌고 나가 얼차려를 주는 것.
물론 여자라고 봐주는 것은 없었다.
여자 기숙사엔 여자 선배가 있으니까.
그렇게 밤새 선배들에게 굴려지다가 다음 날 아침 최악의 상태로 입관식에 참여하는 것이 ‘백호학관의 전통 입소식’이었다.
물론 신입생들에게는 한밤중에 날벼락 같은 일이겠지만 이 ‘입소식’이 계속 반복되고 학관에서 이를 눈감아 주는 것은 바로 ‘기강’ 때문이었다.
선후배 간의 기강이 잡혀 있으면 학관 입장에선 그만큼 관원들을 관리하기가 쉬워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선생들은 모두 알면서도 이를 눈감아 주었다.
“제가 나가 볼까요.”
나가 본다는 진가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가지 않아도 알아서 쳐들어올걸? 백호학관의 전통 입소식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
“전통 입소식이요?”
“엉. 근데 선배들 말고도 이상한 짜투리들이 숨어들어 있는 것 같은데…….”
“네?”
“아. 아무것도 아냐.”
나는 진가은의 되묻는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바깥의 기에 집중을 했다.
이상하게 우리 문밖에만 있는 거대한 기 하나.
선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그 기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진 대충 예상이 된다.
제갈영이 이렇게 대놓고 입소식에 찾아올 만한 멍청이는 아니다.
그 제갈벽운의 딸인데 그럴 리가 없지.
게다가 여기는 남자 기숙사.
고로 지금 이곳에 찾아올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이 차 시험의 감독관이었던 ‘남궁도’.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와아아아아아!”
그 순간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학관의 선배로 보이는 자들이 방안으로 마구 뛰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는 진가은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살아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