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9
광마전생 (49)
백호학관.
사신기제(四神旗祭)니 사신무(四神武)니 해서 아주 뛰어난 후기지수들만 모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관에 시험을 보러 오는 이는 대부분 일류 이하의 사람들. 간혹가다가 절정 이상의 고수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왜냐하면 절정 이상의 고수가 되면 그 어느 집단에 들어간다고 해도 대우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리강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군.
아무튼 정리를 하자면 이 학관에 입관하는 이들은 대부분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절정에 오른 고수가 입관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오직 자기 자신의 힘뿐만이 아니니까.
인맥과 새로운 기술의 연마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사대학관은 일종의 등용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눈앞에서 검을 뽑아 든 채 씩씩거리는 장선욱이 날 이길 확률은?
“이 개자식이! 하늘 같은 선배가 이 무림이 어떤 곳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해 주마!”
당연히 없지.
주먹은 조금 심하다 싶어 손바닥을 펼친 나는 다가오는 장선욱의 뺨을 부드럽게 갈겨 줬다.
철썩!
시원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장선욱의 머리.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멍하니 멈춰 섰고, 이는 구경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배, 정신 차려야죠. 후배한테 본보기를 보여 주시려고 한 거 아닙니까?”
“어……? 어…….”
철썩!
볼살이 살짝 통통한 게 찰진 맛이 있군.
“컥?!”
“선배? 괜찮으세요?”
철썩!
“선배, 정신 차리세요!”
철썩!
“크억!”
“아이 참, 정신 차리시라니깐?”
철썩!
정신 차리라면서 나는 계속해서 장선욱의 뺨을 갈겼다.
물론 정신 차릴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왜냐하면 내 손에 실린 내기가 그의 뺨을 때릴 때마다 머릿속까지 뒤흔들고 있으니까.
뭘 많이 처먹어서 내기만 잔뜩 쌓은 일류 따위가 막아 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철썩! 철썩! 철썩!
신명 나게 휘둘러지는 손바닥과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장선욱의 뺨.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막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막을 수 없는 게 정상일 것이다.
자기들 중에 가장 강한 장선욱이 아무것도 못 한 채 이렇게 처맞고 있으니까.
붕!
그러던 와중 내 손바닥이 대상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갈랐고, 그 이유는 너무 많이 맞은 장선욱이 그대로 기절해 쓰러진 것이었다.
“어쿠! 가셨네. 승천하신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반응하듯 구경꾼들이 몸을 움찔거렸고 나는 문밖의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음.”
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다음 들어오시라니깐요? 선배님들, 백호학관의 전통 입소식을 이렇게 끝낼 순 없지 않습니까?”
“으…….”
오히려 발을 빼며 물러나기 시작한 선배들.
아마 그들 중엔 장선욱보다 더 강한 이는 없는 듯했다.
뒷걸음만 치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장선욱과 바닥에 널브러진 선배들을 데려가라고 했고 그들은 군말 없이 뛰쳐 들어와 그들을 둘러메고 달아났다.
“이야, 도망가는 거 하나는 빠르네.”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질주하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나는 방 문을 닫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들어오는 진가은의 놀란 듯한 표정.
그는 내가 쳐다보자 황급히 검을 검집에 넣더니 포권을 취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긴 뭘. 난 그저 빨리 자고 싶었을 뿐이야.”
뭔가 말을 더 나누게 되면 귀찮아질 것 같았기에 나는 재빨리 침대에 누웠다.
나는 진짜로 피곤했고 빨리 자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 예상대로 나는 조금 유명해져 있었다.
“저 신입생이 어제 그 장선욱을 죽탱이방탱이로 만들어 놨대!”
“신입생이 장선욱을? 백무회의 부회주 맞지?”
“어. 무당파의 삼대제자 장선욱. 기절할 때까지 뺨을 때렸다던데?”
“들리는 소문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선배들도 마구 짓밟았대.”
“이야, 살벌하다…….”
아니, 조금 많이.
* * *
백호학관의 동쪽이자 기숙사의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자잘한 건물들.
그 건물들은 모두 백호학관의 관도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동호회가 활동하는 장소였다.
백무회(白武會)도 백호학관의 관도들이 만든 동호회로 당당히 건물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곳의 분위기는 최악이다 못해 살벌했다.
“그러니까…… 그 신입생도한테 우리 부회주랑 너네가 모두 당했다는 뜻이냐?”
“예…….”
“그것도 고작 두 놈한테?”
백무회의 회주 백수령.
그의 분노한 목소리에 보고를 올린 회원이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부회주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그게…… 지금 숙소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그 일 때문인지 아무리 불러도…….”
“머저리 같은 놈. 백무회의 부회주라는 놈이 신입생에게 얻어터지고 무서워서 숙소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당장 제명시키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 백수령이었지만 차마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잠시 놀림감이 되었어도 장선욱은 삼학년 중에서도 손에 꼽는 내기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절정의 벽 앞에 서 있는 그였기에 그가 절정에 올라선다면 장차 백무회에게 있어서는 큰 힘이 될 것이었다.
“장선욱을 팬 그놈. 이름이 이여립이라고 했지? 출신은?”
“그게, 들리는 소문엔 백리세가에서 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관 시험을 일 등으로 통과했다고 합니다.”
“입관 시험을 일 등으로? 수석(首席)인가?”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일 등으로 통과했을 뿐. 올해의 수석은 곤륜파의 ‘진가은’이라는 아이라고 합니다.”
“그래? 아무튼 장선욱을 맨손으로 팰 정도면 보통이 아니란 건데. 설마 절정에 이른 고수인가?”
“일단 예상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백수령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만일 이여립이 절정의 고수라면 괜히 더 건드렸다간 화만 입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무회의 위명을 떨어뜨린 그를 가만히 놔둘 수도 없었다.
그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치면 백무회는 크게 비웃음을 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동호회를 유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백리세가 출신의 절정 고수라…… 어찌 됐건 이대로 설치게 놔둘 순 없지. 곤룡회에 연락해.”
“고, 곤룡회 말씀이십니까?”
“그래. 곤룡회주 왕우에게 전해라. 우리에게 진 빚을 갚을 때가 왔다고.”
* * *
“다음 수업은 ‘현과 가락’인가. 이 학관에는 음공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도 있나 보군.”
학관에 입관한지 오 일째.
나는 첫날 밤 이후로 큰 사건, 사고 없이 무난한 관도 생활을 하는 중이다.
백호학관의 교육 방식은 참으로 신기했다.
보통 무림에선 한 명의 스승을 두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학관에서도 한 명의 스승을 두고 졸업할 때까지 가르침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백호학관에서 스승을 맞이하는 것은 삼학년에 오르고 나서였다.
일학년과 이학년에는 공통 과목과 선택 과목이 있었고 선택 과목은 원하는 수업이라면 어디라도 참가할 수 있었기에 원하는 과목 여섯 개를 적은 뒤 학관에 제출하면 학관에서 그에 맞는 일정표를 내어 주었다.
내가 선택한 선택 과목은 ‘무림의 역사’, ‘현과 가락’, ‘토납법의 이해’, ‘약학 기초’, ‘독의 이해’, ‘실전 무공’이었다.
사실 그중 ‘무림의 역사’와 ‘토납법의 이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선택과목 중엔 필수로 들어야 할 선택 과목이 있었고 여덟 개 중 두 개를 들어야 했는데 그나마 저 두 개가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첫 선택 과목 수업이 있는 날.
선택 과목은 공통 과목을 배우는 건물과는 다른 곳에 있어서 이동해야만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
제 딴엔 몰래 따라온다고 기척을 숨기고 있지만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하아…… 넌 왜 그렇게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건데?”
내가 고개를 돌린 그곳엔 진가은이 품에 검을 안고 서 있었다.
“응? 그거야 나도 선택 과목이…….”
“아니, 가은이 너 말고. 너 말이야, 너.”
내가 가리킨 것은 가은이 바로 옆에 있는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왕세진.
내가 시험 날 아침에 기절시켰던 바로 그놈이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형님. 우리 사이에. 저도 여립 형님과 가은 형님이랑 똑같은 과목입니다. 현과 가락 맞죠? 이야 제가 이걸 알아내려고 어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하마터면 들킬 뻔도 했지만 제가 한 은신술을 하지 말입니다. 다행히도 늦지 않아서 아침에 헐레벌떡 형님들과 똑같은 과목으로 바꿔 왔습죠.”
분명 기절을 시켰는데 대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한 건지.
여튼 내게 기절을 당해 시험을 떨어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날부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지 나를 찾아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붙어 다녔다.
“하아…….”
괜히 말을 더 붙였다간 그의 수다가 또 터져 나올 것이라는 걸 알기에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따라오는 왕세진과 진가은.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사실 내가 장선욱을 두들겨 팬 것은 어느 정도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다.
일학년이 삼학년을 꺾었다는 소문이 나면 그 통합무림에서도 눈길을 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첫 번째는 그 사건 이후로 진가은이 나에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놀랍게도 그는 백호학관에 수석으로 입관한 수석 관도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저 수다쟁이 왕세진.
입관하자마자 말이 많기로 너무 유명해져서 삼 일 만에 폭풍다변(暴風多辯)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남자.
그렇게 안 그래도 하극상(?)으로 유명해진 내 주변에 수석 관도 진가은과 폭풍다변 왕세진이 붙어 다니자 그 효과가 배로 늘어나 버렸다.
우린 어디를 가도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우리를 이렇게 불렀다.
괴인삼방(怪人三彷).
그 뜻을 풀이하자면 특이한 놈 세 명이 뭉쳐 다닌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도착한 곳은 ‘현과 가락’의 수업이 있는 장원의 앞이었다.
그렇게 장원의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갑자기 문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잠깐 멈춰라.”
손을 내뻗으며 내 앞을 가로막은 일곱 명의 남자.
그들은 놀랍게도 상의를 모두 탈의한 채 거대한 곤봉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거대한 키를 가진 남자 내 앞에 서더니 내 미간 앞에 곤봉을 들이 내밀었다.
“내 이름은 왕우. 백호학관의 삼학년이자 곤룡회의 회주다.”
또 시작이군.
아직 입관한 지 오 일밖에 안 됐지만 벌써 여섯 번째였다.
이렇게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모두 동호회라는 것에 나를 섭외하려는 것이었다.
“네가 이여립이지? 그 뒤에는 일학년 수석 관도 진가은과 왕세진이라고 했던가. 너희들 소문은 들었다. 입관한 지 오 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괴인삼방이라고 불린다더군.”
“제가 원해서 붙어 다니는건 아닙니다. 그래서 용건은 뭡니까, 선배님. 선배님도 절 섭외하러 오신 겁니까?”
“섭외라……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아쉽게도 우린 너한테 받아 내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받아 낼 게 있다는 말과 함께 크게 휘둘러져 오는 곤봉.
그 곤봉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더니만…….”
아무래도 한동안은 시끌벅적하겠어.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