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2
광마전생 (52)
“마교가 선행을?”
“예. 수해를 입은 민가에 구휼(救恤)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 주변 마을에 여러 선행을 대대적으로 벌리고 있다고 합니다.”
“허어…… 오로지 힘에만 관심이 있던 놈들이 갑자기 선행이라니.”
“확실히 이상하지만 딱히 흠잡을 곳이나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설마 저희 곤륜에도…….”
인상을 잔뜩 찌푸린 하태벽의 질문에 진가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여전히 대치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 이후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갈 때쯤에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워낙 오랜만이니 전할 말이 많았군요.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소문주님, 괜찮으십니까?”
“예?”
“혹시 같이 방을 쓰는 놈이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당장 말씀해 주십시오. 이 하태벽이…….”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혀 눈치도 못 챈 것 같고 애초에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니까요.”
진가은의 말에 하태벽이 잠시 고민하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여립. 조사를 해 봐도 딱히 뭐가 나오지 않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소문주님도 너무 눈에 띄는 건 좋지 않으니 어느 정도 자제해 주십시오.”
“하하. 그게 제 마음대로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엮여 버려 지금 빠져나오기도 이상하고 워낙에 튀는 놈이라 말이죠.”
“끙…….”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장로님.”
진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자 하태벽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창밖으로 진가은이 기숙사를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태벽은 연민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곤륜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정말로 괜찮으실는지…….”
* * *
진가은이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모용진은 이미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여. 어딜 그렇게 갔다 와?”
“아, 잠시 학생주임님과 상담이 있어서. 별일 아니었어.”
“그래? 난 또 곤륜파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했네.”
“하하…….”
진가은이 웃으며 이여립의 앞을 지나가려는 그때.
진가은은 조금 늦게 깨달았다.
방금 모용진이 곤륜을 입에 올렸다는 것을.
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만 그는 조심스럽게 검에 손을 얹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곤륜이라니?”
“뭐긴 뭐야. 네 사문이잖냐.”
순간 진가은은 큰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곤륜파 출신인 건 맞다.
그런데 분명 이여립에겐 곤륜파 출신이라고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곤륜파 출신이라는 것을 이여립에게 들킨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만일 이게 다른 이에게 알려진다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진가은이 입술을 깨물며 검을 뽑으려는 그때 모용진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야.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잃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야.”
“언제부터 알았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내가 곤륜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냐.”
“아…… 숨기고 있던 거야? 어쩐지. 그래서 이상한 검법을 사용하던 거였구나. 일단 결론부터 간단하게 말해 주자면…… 네가 곤륜 출신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알게 된 이유는 바로 그거야.”
모용진이 진가은을 보며 가리킨 것은 바로 발이었다.
“설마…….”
“너,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익혔지?”
그 순간이었다.
진가은이 모용진을 향해 날아든 것은.
운룡대팔식임을 알아봤다는 것은 모용진이 진가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극비 중의 극비로 지금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만일 이게 누군가에게 들통난다면 그자의 입을 봉해야 할 정도의 큰 비밀이었다.
푸른 섬광과 함께 뽑혀 나온 진가은의 검은 용이 회전하듯 부드럽게 궤적을 그리더니 정확하게 모용진의 목을 향해 그어졌다.
이는 곤륜의 검법 중 최고라 알려져 있는 태허도룡검법(太虛屠龍劍法)이라 하여 장문인과 그 후계자들에게만 전수되는 검법으로,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곤륜의 검법이었다.
곤륜의 웅장하면서도 묵직한 검기를 담고 있는 진가은의 검.
평소 모용진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진가은이었기에 숨겨 뒀던 내공을 방출하며 진심으로 내지른 일격이었다.
콰장창!
멀리 떨어져 있던 도자기마저 깨어져 나갈 정도의 심후한 내공을 담은 공격.
하지만 그 결과는 진가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 꽤나 묵직하네. 역시 운룡대팔식과 태허도룡검법을 익힐 자격이 있다는 건가.”
허공에 멈춰 선 진가은의 검.
그리고 그 검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은 단 한 개의 손가락이었다.
곧게 세워진 모용진의 왼손 검지.
놀랍게도 그는 왼손 검지 하나로 진가은의 태허도룡검법을 막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진가은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당연히 실력도 숨기고 있었다.
일류에서 절정 사이의 실력을 연기 하고 있는 그의 실제 경지는 초절정.
그것도 초절정 초입이 아닌 중반 정도로서, 소문주의 자리도 단순히 혈연, 지연 덕이 아닌 실력으로 올라간 그였다.
그런데 그 검을 모용진은 검도 아닌 손가락으로, 그것도 다른 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닌 맨손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쩝…… 설마 내가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려 버린 건가?”
모용진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진가은이 검을 다시 회수하려 했지만 놀랍게도 검은 마치 나무에 깊이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진가은은 깨달았다.
검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엄청난 압박에 몸이 굳어 버린 것이었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압박감은 그의 숨통마저 조금씩 조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사과 한마디와 함께 그 압박감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 미안, 미안.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괜찮냐?”
“커헉…… 하아…….”
챙그랑.
저도 모르게 검을 놓쳐 버린 진가은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생에 처음 느껴 보는 압도적인 무력감에 다리의 힘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숨을 헐떡이며 모용진을 바라보는 진가은.
모용진은 그런 진가은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어쩌면 내가 곤륜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귀인(貴人)이 아닐까?”
* * *
하북 남호성에 위치한 석가장의 본가(本家).
하남에 무림맹이 있다면 하북에는 석가장이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세를 불려 나간 석가장은 이제 사실상 남호성의 지배자와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 물밑에는 통합무림이 존재했고.
사실상 석가장은 그 통합무림의 본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석가장의 장주 석산우.
통합무림의 실세와도 다름없는 그가 고개를 숙인 이는 바로 명교의 장로였던 왕원장이었다.
한때 팽이종이란 이름으로 모용진의 아래에 숨어들었던 그는 그 사건 이후로 통합무림의 인정을 받아 이제 명교의 장로에서 명교의 부교주 자리까지 올라 있었다.
왕원장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수많은 명교의 밀객(謐客)들.
석산우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석가장에서 가장 큰 연못과 정자가 있는 석지정(石池亭)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이미 왕원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올라오시지요, 부교주님.”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는 왕원정을 향해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이는 무당파의 장문인인 태허 진인이었다.
그렇게 정자로 올라선 왕원장의 앞에는 익숙한 인물들과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있었다.
맨 끝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소림사의 공성 대사와 사천당가의 가주 독왕 당철삼.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화산파의 청화 진인과 천마신교의 장로 혈영무(血英舞) 전박귀.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왕원장이 가장 눈이 가는 인물은 바로 맨 끝에 앉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검성 남궁혁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본 그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곧은 수염과 강직한 얼굴은 그야말로 제왕의 상이였고 곧은 자세와 뿜어져 나오는 패기는 가히 검성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마주하고 있는 여성.
그 여성은 왕원장도 익히 아는 인물로 바로 명교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알려진 배교(拜敎)의 교주 서서희였다.
한때 명교와 배교는 철천지원수로 귀주에서 다투던 관계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어머. 왕원장, 오랜만이야. 부교주로 올라갔다면서? 대단한걸.”
서서희의 교태 섞인 목소리에 왕원장은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아직 부족한 몸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서희 교주님.”
“그래. 이쪽은 그 유명한 검성 남궁혁 가주님. 인사해.”
서서희의 하대에 왕원장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젠 한배를 탄 사이였고 통합무림 내 배분에서도 위에 속해 있는 서서희였기에 속을 진정시키며 남궁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검성을 뵙습니다.”
“반갑네. 나도 자네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네.”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왕원장은 남궁혁의 옆에 자리했고 맞은편엔 태허 진인이 자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가 모였다는 것을 안 공성 대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작은 종을 울렸다.
뎅.
작은 종소리와 함께 몰려드는 짙은 안개.
그 안개는 순식간에 연못 주변을 감쌌고 잠시후 정자는 안개로 감싸져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자! 자자자자! 오늘 제가 이렇게 시주들을 모은 것은, 끅…… 사실 이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푸후우. 그것 말고도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픈 인물이 있습니다.”
공성 대사가 술에 많이 취한 듯 손에 술병을 쥔 채 배배 꼬인 말투로 누군가를 소개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당철삼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 사천의 독왕! ……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네요?”
갑자기 일으켜 세워진 당철삼은 조금 당황한 듯 멋쩍게 웃더니 이내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큼…… 크흠…….”
그리고 작은 헛기침과 함께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천마신교의 장로인 혈영무(血英舞) 전박귀였다.
“실은 저희 사천당가에서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그 문제에 의해 천마신교에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당철삼이 살짝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자 그 모습을 본 전박귀는 웃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
“설마. 저희 천마(天魔)께서 하사하신 독각사(毒角巳)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그 한마디에 정자 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당철삼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독각사는 천마가 직접 우호의 의미로 통합무림에게 내어준 영물.
게다가 그 독각사는 천마가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물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이는 간신히 통합무림에 끌어들인 마교가 다시 탈퇴를 고려할지도 모를 큰 사안이었다.
전박귀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당철삼에게 향하자 당철삼은 이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술에 취한 듯 보였던 그 공성 대사마저 뒤에서 옅은 살기를 내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결국 당철삼은 말할 수 없었다.
“하하하. 장로께서 걱정하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되돌려드리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알려 드리려고 했지요. 이놈들이 워낙 활발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