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6
광마전생 (56)
우연인지 필연인지.
백호학관에서 시행하는 견학엔 제갈세가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렇다 할 계획 없이 둘은 무작정 일단 제갈세가에 가 보기로 했다.
물론 왕세진 역시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그가 있으면 너무 눈에 띌 것을 잘 알았던 모용진이 남궁도에게 서류 조작을 명령했고 그렇게 왕세진은 제갈세가가 아닌 ‘제강세전(諸薑世電)’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제강세전? 거긴 또 어디야?”
“음…… 듣자 하니 생강을 주로 다루는 상인회라고 하던데. 배송이 빨라서 생각보다 인기가 많대.”
“생강을? 배송을 빠르게 한다고? 대체 그런 곳이 왜 백호학관이랑…….”
“그 배달을 하는 게 경공이 빠른 무림인이라고 하더라고”
“아하…….”
왕세진이 제강세전으로 끌려갈 땐 한바탕 소동도 있었지만 우리의 남궁도는 끝까지 일을 잘해 줬다.
남궁도의 어깨에 걸쳐져 발버둥 치는 왕세진의 모습이 눈에 선한 모용진은 가볍게 그의 명복을 빌어 줬다.
혹시라도 제갈세가로 도망칠 가능성을 대비하여 남궁도에게 끝까지 붙어서 감시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왕세진은 왜 곁에 두고 있는 거야? 너 정도 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냥. 조금 시끄러워도 옆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으니까.”
“진짜로……?”
깜짝 놀라며 되묻는 진가은의 표정에 모용진은 미소로 답해 주곤 다음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것보다 난 네가 더 신기한데. 단 오 개월 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도 되나 싶을 정도라서 말이야.”
“응? 내가 뭐 어때서……? 크흠, 그땐 그런 연기가 조금 필요했을 뿐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나은 것 같은데. 이젠 내 나이가 너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반말을 찍찍 내뱉고 있으니…….”
“네가 하라며! 친구라면서 허울 없이 지내자던 게 누군데. 그리고 난 아직 네 이야기를 전부 믿는 건 아니거든? 광마(狂魔)의 환생이니 뭐니 그걸 어떻게 다 믿으라는 거야. 뭐, 그 괴물 같은 실력은 인정하겠다만 아직은 완벽하게 신용하진 않아.”
“신용하지 않는다면서 나한테 태허도룡검법을 그렇게 열심히 배우시나?”
모용진의 말에 진가은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입장에서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 개월 전부터 모용진은 자신이 광마 천기린이었음을 증명하겠다면서 진가은에게 태허도룡검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물론 모용진이 증명하겠다는 건 명분상의 말이었고 실제로는 진가은의 실력을 올려 놓기 위해서였다.
확실한 아군의 실력을 높여 두는 것만큼 비상사태 시 대비에 좋은 게 없으니까.
지금 모용진에게 진가은은 백호학관에서 유일하게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였다.
그러니 모용진의 기준에서 그 동료의 실력은 당연히 높아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가은은 정말 나쁘지 않은 동료였다.
아직 약관의 나이지만 절정의 끝에 달한 고수.
게다가 곤륜의 소문주라 그런지 지원을 많이 받아 내공도 빵빵한 상태였다.
만일 모용진이 없었다면 백호학관에서 가장 강한 관도는 진가은이었을 것이다.
이히히힝!
그때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춰 섰고 벌써 도착했나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린 진가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푸른 삼림이었다.
이 말인즉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마부의 떨리는 목소리가 마차 내로 작게 들려왔다.
“도, 도련님들…… 산적이 나타났습니다.”
산적이 나타났다는 말에 진가은이 깜짝 놀라며 앞을 바라보자 저 멀리에 길을 막고 앉아 있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산적이요?”
“예…… 게다가 저자는 호북에서 유명한 산적. 십사적부(什死赤斧) 최양입니다. 붉은 도끼 한 자루로 한 번에 열 명의 사람을 벤다고 알려져 있는 악독한 이입니다. 어떻게 하죠?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뒤로 돌아가심이…….”
“아뇨. 그 정도 이명을 가진 이가 이 마차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죠. 아니, 그 전에 우린 이미 포위당한 상태입니다.”
방금 전까진 긴가민가했지만 이젠 확실했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진가은의 기감을 통해 느껴지는 바로는 최소 서른 명 이상.
지금 그들의 마차는 확실하게 산적에 의해서 포위당한 상태였다.
“여립! 어떻게 할 거야?”
진가은은 이제 어떻게 할지 모용진을 향해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그는 마차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산적한테 둘러싸였다니깐?”
모용진의 강함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을 아는 진가은이었지만 무림은 혹시 모르는 일투성이였다.
마차를 가로막은 최양이라는 자가 생각보다 많이 강할 수도 있고 주변에 이미 온갖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네가 쫓아내.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잖아?”
전혀 돕지 않겠다는 듯이 드러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용진을 바라보던 진가은은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들어 마부를 향해 말했다.
“가시죠.”
“예? 그치만 저 앞엔…….”
“금전으로 해결이 가능하면 좋고 여차하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포위당한 상태라 뒤로 도망간다고 한들 금세 잡혀 버리고 말 겁니다.”
“큭…… 알겠습니다.”
마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고 마차는 점점 최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최양의 앞까지 도착한 마차.
하지만 최양은 마차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했고 마부가 그 모습에 안심하며 말을 몰려는 그때.
“어딜 가나.”
낮게 깔린 무거운 목소리.
살기가 잔뜩 실린 최양의 목소리는 마부의 몸을 굳게 만들었고 마차는 저절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더 놀란 것은 바로 진가은이었다.
‘이게 일개 산적의 살기라고?!’
산적이라 함은 대부분 무공의 기초도 제대로 닦지 못한 이들.
그들이 아무리 수련한다고 해도 높은 경지에 오르는 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산적들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가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맞닥뜨린 최양은 달랐다.
짙은 살기 속에 담긴 내공의 기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았다는 것은 최소 절정의 수준에 다다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가은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마차에서 내려 그의 앞에 다가갔다.
“우리는 백호학관의 관도. 학관에서 주최하는 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피차 귀찮은 건 싫을 테니 통행세가 있다면 내고 지나가지.”
통행세라는 말에 최양이 고개를 들어 진가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 손으로 입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금자로 백 냥.”
“그래, 금자로…… 뭐? 금자?”
사실 은자 백 냥이라고 해도 펄쩍 뛰며 깜짝 놀랄 금액이었는데 최양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자 백 냥이었다.
참고로 철전 천 개가 모여 은자 한 냥이 되고 금자 한 냥은 은자 스무 냥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은자 한 냥으로는 쌀을 세 석까지 살 수 있으니.
금자 백 냥은 곧 쌀 육천 석.
한마디로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고 설사 들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내어 줄 수 없을 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것이 바로 금자 백 냥이었다.
“차라리 황궁을 사 달라고 부탁하는 게 나을 듯한데.”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최양은 어이없어하는 진가은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등에서 거대한 도끼를 빼내어 들었다.
“포기하고 가진 걸 다 넘겨라. 도망갈 곳은 이미 없다.”
그의 말과 함께 숲속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산적들.
그들은 순식간에 마차를 둘러싸며 진가은들이 도망갈 수 없게 진을 치고 있었다.
꿀꺽.
영 좋지 않은 상황.
최양만 해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는데 새롭게 등장한 산적들 역시 하나같이 기개가 이상하리만치 강렬했다.
정말 산적인지 의심이 갈 정도.
하지만 진가은은 품에서 검을 빼내 들었다.
왜냐하면 그도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차에는 모용진이 자고 있었고 그는 절대로 자신을 버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나서지 않겠다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게 진가은의 판단이었다.
‘산적 따위는 쉽게 이겨 보라는 건가. 좋아. 그동안 나도 많이 강해졌다고.’
진가은은 백호학관 입학 당시의 자신을 생각하면 이 최양이라는 남자와 산적들에게 분명 밀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모용진이 그의 곁에 있었고 그는 진짜 미친 사부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 덕에 일성에 머물렀던 태허도룡검법이 단 오 개월 만에 삼성에 올라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지옥과 같은 수련을 해야 했지만 아무튼 같은 절정이라면 그 누구도 자신을 꺾지 못하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남자답게 일대일 어떤가.”
“흥. 애송이가……. 좋다. 받아들여 주지. 하지만 설사 나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내 부하들이 너를 살려 두진 않을 거다.”
“과연 그럴까.”
진가은은 살짝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내 이름은 진가은. 곤륜파 출신의 관도다.”
“십사적부 최양. 덤벼라, 애송이.”
최양이 여유롭게 손가락질을 하는 그 순간.
진가은의 발이 대지를 박차더니 그의 신형이 구름을 밟듯 가볍게 최양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곤륜의 절기 중 하나인 운룡대팔식.
운룡대팔식은 신법으로서 중원에서 손꼽히는 절세의 경신법 중 하나였다.
공중에서 자유롭게 몸을 뒤집으며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구름 사이를 노니는 용 같다고 하여 운룡(雲龍)이라는 이름과 여덟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경신법이면서 각기 다른 초식과 그에 맞는 기술을 보여 주는 게 특징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 신묘함에 홀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그게 절세 미남인 백일미 진가은의 몸에서 펼쳐지니 아름다움의 극을 보는 듯했다.
그 신묘함 사이로 거칠게 허공을 찢어발기며 휘둘러지는 검.
방금 전 운룡대팔식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패도적인 힘을 담고 있는 그 검은 바로 태허도룡검법의 강천지룡(强天之龍)이었다.
진가은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신법과 최고의 검법.
그야말로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급습.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고 방심하고 있는 최양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급습이라고 생각한 진가은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카앙!
튀어 오르는 불꽃과 함께 튕겨 나가는 검.
그 엄청난 반탄력에 진가은은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크윽…… 어떻게……?!”
분명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격이 최양의 도끼에 허무하게 막혀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양이 쉽게 그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은 아니었다.
진가은의 공격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그의 몸은 삼 장이나 뒤로 밀려난 상태였고 그의 붉은 도끼의 옆면에는 진가은의 공격이 만들어 낸 흔적이 깊숙이 남아 있었다.
“역시 곤륜의 소문주. 대단하군.”
“뭣……?”
도끼 사이로 보이는 최양의 미소와 함께 들려온 말에 진가은이 깜짝 놀랐지만 그는 미처 다 놀라기도 전에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려야만 했다.
최양의 내기를 담은 도끼가 자신을 향해 거칠게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곤륜과 산적! 누가 강한지 승부를 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