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4
광마전생 (64)
14장
악노와 철풍견.
한때 녹림의 적림단주와 풍림단주였고 이제는 흑천파의 십대대제자라고 불리는 그들.
둘은 항상 가던 객잔에서 회과육(回鍋肉)과 함께 화주(火酒)를 홀짝이고 있었다.
“크으, 역시 비싼 술보단 이 화주가 딱 내 취향이란 말이지.”
“거, 형님. 가끔은 이과두주(二鍋頭酒)는 어떻소? 내 취향도 한 번씩은 맞춰 줘야지 않소.”
“에이, 그럼 둘 다 시키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철풍견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젓가락 사이로 고기가 빠져나가 옷 위를 지저분하게 굴렀다.
“어휴. 형님은 진짜 입에 구멍이 두 개도 아니고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질질 흘리기나 하고. 으이구.”
악 노가 어쩔수 없다는 듯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철풍견에게 내미는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살기가 둘을 덮쳐 왔다.
“이 개자식아!”
욕지거리와 함께 날아오는 대여섯 개의 비수들.
비수에는 날카로운 살기는 물론 내기까지 실려 있었고 순식간에 악노와 철풍견이 앉아 있던 식탁을 박살 냈다.
“흠…… 좀 과한데?”
“그러게요, 형님.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나무로 된 식탁이 박살 났음에도 그들은 피하지 않았다.
단지 젓가락을 들고 있을 뿐.
악노의 젓가락에는 무려 두 개의 비수가 잡혀 있었는데 이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젓가락질이었다.
날아오는 비수를 잡은 것도 대단한데 그걸 두 개나, 게다가 그 비수에는 내공도 실려 있었다.
예전의 악노였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일이었고 이는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잘 알려 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철풍견 역시 젓가락을 들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든 곧게 뻗어진 젓가락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엔 아무것도 잡혀 있지 않았다.
“형님……?”
“하하하. 괜찮다. 이 정도야 뭐, 거뜬하지.”
“괜찮지 않아 보입니다만…….”
“크흠. 술을 좀 과하게 했나…….”
멋들어지게 턱을 쓰다듬는 그의 팔뚝과 이마에는 비수가 그대로 박혀 있었고 이마에서는 한 줄기 핏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다시 한 번 욕지거리가 튀어나오자 그제야 철풍견은 이마에 꽂힌 비수를 뽑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무척이나 더러워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초록색 뱀이 그려진 황색 장포.
그 장포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중원에 없었고 철풍견은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아, 씨. 어쩐지 조금 어지럽더니만.”
털썩!
철풍견이 제자리에서 쓰러졌음에도 악노는 또 한 번 날아오는 비수에 그를 받쳐 줄 수 없었다.
“이 개자식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우욱…… 내가 바로 당가의 일공자 독조인 당하경이란 말이다! 다 죽여 버리겠어!”
난데없는 자기소개와 함께 일방적으로 죽여 버리겠다는 당하경의 말에 악노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인가?’
제정신이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젓가락으로 비수를 모두 쳐 낸 악노는 순간 살심이 가득 피어올랐지만 이내 빠르게 진정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중경을 떠나기 전에 단단히 일러 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사고를 쳐서는 안 된다. 만일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엄벌을 내릴 테니까.’
그 엄벌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하는 모용진의 눈빛으로 굉장히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고로 지금 상황에서는 조용히 달아나는 게 최고였다.
악노가 슬쩍 몸을 빼며 철풍견을 부축하려 하자 당하경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비수를 뽑아 들었다.
처음엔 술기운에 대충 던졌다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두 번째 날린 비수는 정말로 악노를 죽이기 위해 던진 것이었는데 그 공격을 악노는 너무나도 쉽게 막아 냈고 이젠 대놓고 몸을 내빼려 하고 있었다.
“이 개자식이! 어딜 도망가려고!”
자존심까지 상해 버린 당하경은 허공에 몸을 날리며 비수에 내공을 실었고 그 모습에 악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러는 거요! 우리는 아무것도…….”
“닥쳐라! 감히 이 당하경의 공격을 튕겨 내다니! 보기 좋게 내 자존심을 짓밟은 죄로 너는 죽어 줘야겠다!”
악노를 향해 출수되며 흩뿌려지는 비수들.
그 공격은 놀랍게도 여태까지의 공격과 달랐다.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악노의 사방을 에워싸며 날아가는 비수.
당가의 직계만 배울 수 있는 무공 ‘환영비조(幻影飛肇)’였다.
당하경은 악노가 순식간에 벌집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조금 실력은 있어 보였지만 이런 시골 주막에 환영비조를 막을 만한 고수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악노가 도를 꺼내 들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스악!
날카로운 칼바람과 함께 악노의 앞에 후두둑 떨어지는 비수들.
놀랍게도 악노는 환영비조를 아주 가볍게 제압한 것이었다.
그것도 단 일 검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하경이 깜짝 놀라며 눈을 부릅뜨는 그 순간.
어느새 악노는 그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엄청난 살기와 함께 눈앞을 수놓는 섬광.
“공자님!”
당하경의 목이 잘려 나가기 직전 그를 살린 것은 바로 그의 수하들이었다.
당하경의 만행을 그저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던 그들은 당하경이 위험에 처하자 곧바로 움직였다.
당하경의 앞으로 뛰어든 무사가 검을 들어 올리며 악노의 도를 막아 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막아 내지 못했다.
서걱!
악노의 도가 검과 함께 그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과 함께 놀라 나자빠진 당하경.
온몸에 부하의 피를 뒤집어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을 응시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뛰어드는 부하들.
하지만 악노의 도 앞에서 그들은 한 줌의 이슬만도 못한 존재였고 당하경은 그 패도적인 도의 난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당하경의 앞에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신의 호위 무사들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
그리고 그 한중간에는 피를 잔뜩 뒤집어쓴 악노가 도를 들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옥, 또옥.
도의 끝에 방울져 떨어지는 핏방울.
그 핏방울이 피로 된 웅덩이로 떨어지자 한 줄기 파동이 당하경의 발까지 퍼져 나갔다.
“당…… 당신은 누, 누구십니까.”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당하경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로 이루어져 있는 독비단(毒秘團).
그중에는 자신보다 강한 초절정 고수도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들 역시 지금 목이 분리된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당하경의 물음에 악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도를 들어 올렸고, 그것이 당하경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서걱!
바닥을 구르는 당하경의 머리는 두 눈을 감지 못한 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악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걸 어찌한다…….”
악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지만 이미 객잔에 사람은 없었다.
무림인의 싸움에 말려들기라도 할까 봐 객잔의 손님과 주인장은 이미 모두 도망친 상태였다.
이대로 놔둔다면 소문은 퍼질 것이고 그럼 사건은 점점 더 커지게 될 게 분명했다.
“사형한테 왕창 깨지겠네.”
* * *
모용진이 학관으로 되돌아온 그날 밤.
그는 산천에 어둠이 내려앉자마자 기숙사를 빠져나왔고 그의 뒤엔 진가은도 함께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몸놀림으로 담장을 넘은 그들은 곧바로 홍혜아를 향했다.
얼마 전만 해도 진가은은 이 홍혜아를 출입할 때 극도로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며 들어갔었는데 이젠 마치 제집 드나드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기루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여성들의 추파를 무시한 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 모용진과 진가은의 앞에 익숙한 얼굴의 기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물론 그녀는 모용진에게만 익숙한 얼굴이었고 주인님이라며 기녀가 고개를 숙이자 진가은은 당황한 듯 모용진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전에 말한 학관의 동료.”
“아, 진가은 대협님이시군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곤륜의 소문주님. 제 이름은 청화이고 미천한 실력이지만 하오문 천기정루의 청루주이자 흑천파의 정보를 맡고 있습니다.”
“아! 진가은이라고 합니다.”
진가은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자 청화가 웃으며 안내해 주겠다며 따라오라 했다.
“얼마나 들었지?”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꼬리를 밟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은 하오문에서 이 기루를 인수한 걸로 처리해 두었으니까요.”
“여립, 그게 무슨 말이야?”
진가은의 질문에 모용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샀어.”
“뭘?”
“홍혜아.”
홍혜아를 샀다는 말에 진가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모용진을 응시했다.
모용진은 너무나도 가볍게 구매한 것처럼 말하지만 홍혜아는 가볍게 구매할 만한 기루가 아니었다.
그 규모와 위치를 봤을 때 가치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진가은도 이 홍혜아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정도였으니까.
“이, 이 기루를 샀다고?”
“어.”
“전체를 다?”
“그럼 건물을 절반만 사는 경우도 있나?”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모용진을 보며 진가은이 새삼 그의 능력에 놀라는 그때.
복도 끝에서 익숙한 얼굴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흑제님.”
모용진의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인 것은 바로 최양이었다.
분명 모용진과 진가은이 제갈세가를 떠나올 때 그들이 제갈세가에 침입하고 있었는데 그는 벌써 목표를 완수하고 이곳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래. 상태는?”
“나쁘진 않지만 상당히 거칩니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포박해 두긴 했으나 보통 여간내기가 아닌 듯합니다.”
“그 벽운의 딸이니……. 안내해.”
“옙.”
옛날 벽운의 모습이 떠오른 모용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최양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복도 끝에 위치한 문앞에 모용진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읍읍읍!”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것은 어느 여성의 낑낑거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온몸이 줄에 묶인 채 낑낑거리며 마치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몸만 줄에 묶인 게 아니라 입엔 재갈이, 눈에는 안대까지 씌워져 있었다.
그 난감한 장면을 바라보던 모용진은 고개를 돌리더니 최양을 바라봤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했어? 저건 사람이 아니라 굼벵인데?”
“아까도 말했듯이 여간내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마 흑제 님도 직접 보셨다면 저희랑 똑같이 했을지도 모릅니다.”
순간 얼마나 심했길래라는 생각이 잠시 든 모용진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모용진이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자 여성은 진동을 느낀 듯 깜짝 놀라며 몸을 마구 휘저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잉어를 보는 듯했다.
“거참……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백호학관의 제갈영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