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6
광마전생 (66)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
이번엔 아주 완벽히 작정하고 찾아왔다.
곤룡회의 회주 왕우부터 시작해 황보세가의 태전과 파불숭인 여망까지.
여태껏 나에게 도전했던 놈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들 중엔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백수령도 있었다.
백호학관의 삼학년이자 백무회의 회주인 백수령.
내가 처음 손을 봤던 장선욱이 백무회의 부회주였다나 뭐라나.
나는 주동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딱히 손을 대진 않았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마다 도전을 하려 찾아오는 이들이 그렇게 귀찮은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엔 제격이었고 수준은 꽤 차이가 나도 진가은의 연습 상대로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형님, 이번에는 꽤 숫자가 많은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언제 따라왔는지 왕세진이 내 곁에 붙어 나불거리기 시작했고 그 옆에는 진가은도 있었다.
“넌 또 왜 따라 나왔어. 나한테 볼일이 있다잖아.”
“에이, 우리 사이에 너 나 할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바로 백호학관의 괴인삼방 아닙니까! 형님이 가시는 곳에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지요!”
“그래. 뭐, 알아서 해라.”
히죽대는 왕세진의 얼굴을 보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왕세진은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항상 들이대지만 나는 그에게 계속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유지했다.
이걸 뭐라고 할까.
왠지 모를 거부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왕세진은 지금 곁에 있지만, 딱히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자사자 따라다니는 왕세진을 내치려고 하니 딱히 거리를 둘 명분이 없었다.
어찌 됐건 인연이고 같은 학관의 동기니까.
“어이, 뭐 하나? 설마 지금 날 면전에 두고 무시하는 건가?”
왕세진의 수다에 잠시 정신이 팔린 내가 정면을 쳐다보자 그곳엔 처음 보는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입생이 조금 건방지다더니 이거 원, 조금 건방진 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늘 같은 선배들을 앞에 두고 무시하다니 말이야.”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만함과 비웃음.
나는 저 특유의 목소리와 어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쪽 남궁세가의 남자 놈들은 꼭 저런 기분 나쁜 말투를 사용했었으니까.
“그렇게 목소리를 까는 것이며 남을 깔보는 듯한 눈빛과 자세 그리고 그 벌레 같은 눈썹. 너 남궁세가 출신이구나?”
“호오? 지금 내가 남궁세가인 걸 알면서도 그런 말투를 사용한다는 말이냐?”
“어쩌라고? 네가 남궁세가이든 뭐든 여긴 학관이 아닌가? 내가 무슨 말투를 쓰든 내 맘이지.”
“이 자식이! 당장 머리를 조아리지 못하겠느냐! 이분은 남궁세가의 남궁박 대협이시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당장 내려와서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남궁박을 욕보이는 말에 백수령과 처음 보는 이가 앞장서서 삿대질하더니 살기를 풀풀 풍겼다.
아마도 남궁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랬겠지.
남궁박.
백호학관에 대한 조사는 거의 다 끝냈으니 그가 누구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궁도에게 이복동생이 되는 그는 검성 남궁혁의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남궁혁의 정실인 정부인의 사이에서 낳은 늦둥이 아들로 집안의 온갖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많이 비틀어져 자기중심적이었고 좋은 걸 많이 처먹어서 내공은 높으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은 편.
하지만 그 압도적인 내공의 양으로 백호학관 내에서는 백대고수의 반열에 드는 인물이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그냥 엄청 재수 없는 부잣집 아들내미.
“니들이 올라오던가. 내가 뭐 너희들이 개떼처럼 몰려와서 왈왈 짖으면 무서워할 줄 알았냐? 너네 같은 개들은 그냥 모여 있어도 개일 뿐이야. 내공만 엄청 잡수신 돼지 한 마리 데려와 놓고 내가 무릎을 꿇길 바랐다면 이거 너무 큰 오산 아닌가?”
욕인 듯 욕이 아닌 듯이 돌려 까는 건 내 주특기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상대가 좀 더 열이 받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역시 돌려 까기는 기가 막히게 먹힌 듯 이름 모르는 이와 백수령의 입은 닫혔고 남궁박의 얼굴은 불그락해졌다.
“지금…… 감히 대남궁세가의 막내아들인 나 남궁박에게 돼지라는 말을 한 것이냐?”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내공 돼지가 어디 있어? 너 정도는 처먹어야 내공 돼지라고 할 만하지. 근데 쓸 줄은 아냐? 내공만 디룩디룩 처먹어서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고?”
“뭐?”
“아니, 아까부터 계속 입만 나불대길래 말이야. 그런 건가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이 개놈의 자식이! 죽여 버리겠다!”
결국 참지 못한 듯 남궁박의 눈은 뒤집혔고 그는 품에서 검을 뽑으며 거칠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무기를 뽑으며 달려오는 선배들.
살기를 풀풀 날리는 것 보니 그들은 진정으로 나를 죽이려 달려드는 것이었다.
“훗.”
하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내가 일부러 연출한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학관이고 서로 간의 대련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성장에 그리 좋지 않았다.
쉴 땐 확실하게 쉬어야 하는데 학관에 괴인삼방의 이름이 퍼지며 도전자나 복수를 위해 야습을 하는 자들이 번번이 나타나니 그 피로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물론 나는 상관없었다.
애초에 백호학관에 있는 관도들이 내게 위협이 될 리가 없었고 고로 긴장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가은은 조금 달랐다.
안 그래도 수업이다 수련이다 뭐다 해서 끔찍한 일정을 매일 소화하는 진가은에게 잦은 도전과 야습으로 인한 긴장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궁도를 불러 이야기했다.
나에 관한 소문 몇 개만 흘려 달라고.
사실 그 소문도 별거 아니었다.
내가 괴인삼방에게 진 애들을 뒤에서 몰래 험담하며 대련 당시의 상황을 부풀려서 그들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고.
나는 이 소문을 이학년과 삼학년 관도 전체에 퍼지게 해 달라고 했고 최종적으로 이 말도 덧붙였다.
‘아마 그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내 발톱의 때도 벗기지 못할 것’이라고.
그럼 아무 관계 없었던 남궁박은 뭐냐고?
뭐긴 뭐야. 그냥 불쌍하게 선택된 제물 같은 인물이지.
사실 남궁박을 끌어들이라고 추천한 것은 남궁도였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고 한편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물이었다.
백호학관 백대고수의 반열에 드는 ‘남궁세가’의 남궁박이 나에게 박살이 난다면 아마 그 누구도 더 이상 도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 즉.
나는 오늘 이 녀석들을 합법적(?)으로 박살 낼 수 있다는 거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흐흐흐.”
다가오는 남궁박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쥐지 않았다.
아무리 뭉툭한 독각검이라고 해도 다수를 상대하며 잘못 휘둘렀다간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선배가 돼서 아직 자라나는 무림의 꿈나무들을 꺾을 수는 없지.
내가 코앞에서 주먹을 말아 쥐자 남궁박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 개만도 못한 자식이 감히 선배 앞에서 여유를 부려! 제왕무적검(帝王無敵劍) 제사초식! 천뢰중검(天雷重劍)!”
보란 듯이 초식명을 외치며 검을 내지르는 남궁박.
가끔 저런 놈들이 있다.
어떤 초식을 사용할지 미리 말해 주고 피할 테면 피해 보라는 듯이 초식을 전개하는 놈들.
물론 그중에는 정말로 대단한 고수라 자신의 무공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지만 대게는 저렇게 남궁박 같은 허영심과 오만함에 가득 찬 놈들이었다.
슈아악!
몸을 가볍게 트는 것으로 가볍게 검을 피한 나는 가까워진 남궁박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제왕무적검의 천뢰중검은 그 특유의 뇌기와 중검의 묘리를 담고 있는 검술이라 들었는데 선배의 검에는 묘리는커녕 뇌기도 보이지 않는군요. 내공 돼지라 그런가? 내공만 가득 싣는다고 해서 다 천뢰중검이 아니지요.”
“이 자식이!”
남궁박이 곧바로 몸을 뒤틀며 검을 크게 휘둘렀지만 당연히 맞아 줄 리가 없다.
애초에 이딴 실력을 가진 놈이 고작 내공 좀 많다고 백호학관 백대고수라니…….
나는 가볍게 검을 피하며 그의 명치에 주먹을 냅다 꽂았다.
“커헉!”
“넌 마지막에. 다른 애들 먼저 손보고 올 테니까 여기 얌전히 쓰러져 있어라.”
쓰러지는 남궁박의 등을 치며 앞으로 달려간 나는 뒤에서 달려오던 무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오랜만이네.”
“그때의 복수! 이번에야말로 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장선욱이었다.
제일 먼저 때려눕히는 건 이 일의 시발점이 된 백수령으로 정했었는데 가장 먼저 달려오던 백수령은 어느새 저 뒤로 빠져 있었다.
“어쩐지 얼굴 보기가 그렇게 힘들더니 은근슬쩍 빠지는 재주가 장난이 아닌걸?”
“억!”
나는 장선욱의 얼굴을 발판 삼아 한 번 더 뛰어오르며 맨 뒤로 빠진 백수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딜 또 슬슬 도망가나? 처음은 네놈으로 정했는데. 백무회인지 백수회인지 하는 곳의 회주라며?”
“크윽! 닥쳐라! 내가 언제 도망을 쳤다는 것이냐!”
“설마 기억력도 도망간 건가? 머리가 많이 안 좋은가 보네.”
빠른 속도로 낙하하며 백수령의 머리를 노렸지만 꼴에 회주라고 백수령의 몸놀림은 나쁘지 않았다.
백수령은 빠르게 뒷걸음치며 내 주먹을 회피함과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나의 백무난참(百武亂斬)을 받아 보거라!”
내가 멈칫한 사이에 빈틈을 노린 좋은 일격이었지만 이는 내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다.
백무난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환검.
생각보다 그의 검격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 백호학관 내에서는 말이지.
“싫은데?”
너무나도 쉽게 환검을 뚫고 들어간 내 주먹은 정확히 백수령의 안면을 가격했다.
“크억!”
코피를 뿜으며 넘어간 백수령은 단 한 방에 기절하여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두 방은 버틸 줄 알았는데 한 방에 쓰러지다니.
“요즘 애들은 참 약골이란 말이지. 나 때는 말이야 이 정도 주먹은 눈 뜨고 맞았다고.”
백수령을 뒤로한 채 고개를 돌리자 선배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계단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앞으로는 이 중에서 가장 강한 남궁박이 일격에 쓰러졌고 뒤에서도 두 번째로 강한 것 같은 백수령이 한 방에 쓰러졌으니까.
나는 망설이고 있는 선배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떼거리로 몰려와서 쫄아 있는 거야? 난 한 명인데? 나도 꽤나 바쁜 몸이라 시간도 없는데 빨리 끝내시죠, 선, 배, 님,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