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70
광마전생 (70)
이여립을 처음 본 황보유선과 백두철은 내심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말쑥한 사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귀티마저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얼굴에 새하얀 피부.
깔끔하게 묶은 뒷머리와 정갈한 차림새는 어느 명문세가의 아이들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까지 출중하니 도저히 ‘광견’이라는 별호가 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여립 관도. 우리의 제안에 답을 해 줄 수 있겠나?”
긴 시간 동안의 설명에도 자세를 바르게 하고 경청하는 이여립의 모습.
그 모습에 황보유선은 어쩌면 이여립은 이 제안을 거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올곧고 바른 눈빛이었으니까.
어른들의 사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겠습니다. 저에게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은 없을 테니까요.”
“어째서지? 왜 이 제안이 자네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인가? 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움에 정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걸지도 모른다네.”
“그건 배울 게 있을 경우에 한해서 기회이고 이득이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백호학관에 들어온 이유는 배움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학관에 들어온 이유가 배움이 아니라고 하자 백두철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황보유선이 말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
“두 분께는 죄송하지만 제가 이 학관에 입학한 이유는 토대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토대?”
“예. 저 위로 올라갈 토대. 저는 가족도 없고 혼자서 살아남았기에 이렇다 할 뒷배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움보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얻기 위해 학관에 입학한 것입니다.”
“오만하군. 그럼 지금 자네는 학관에서의 가르침이 무용(無用)하다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약간은 성이 난 백두철의 말에 모용진은 즉답했고 이에 백두철이 분노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보유선이 빠르게 그를 저지했다.
“이제 갓 약관을 넘은 놈이 감히 백호학관을 토대로 삼으러 왔다고? 이곳에서 배울 것이 없어?”
“참으십시오, 관주님! 젊은이의 치기입니다. 자네도 빨리 사과하게. 패기는 좋다만 방금 말은 과했다네!”
“아니요. 저는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젊은이의 치기도 패기도 아닌 사실이니까요.”
“이노옴!”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백두철이 검을 뽑으려 하는 그 순간.
띵!
맑고 청아한 음이 관주실 내에 퍼져 나갔고 그 울림에 백두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다.
“이건…….”
모용진이 찻잔을 이용해 만들어 낸 청아한 울림.
그 울림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울림 속에는 심후한 내공이 깃들어 있었고 그 내공이 백두철의 귓속으로 파고들어 와 그의 머리를 맑게 해 준 것이었다.
“진정하십시오, 관주님. 지금은 비록 제가 무례해 보일지도 모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결코 무례한 것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뜻인가?”
혼이 나간 듯한 백두철 대신 황보유선이 질문을 던지자 모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칠 일 뒤. 백호학관의 백대고수를 가리는 백호비무제가 있는 걸로 압니다. 거기서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제가 관주님의 말씀대로 오만한 자인지, 아니면 정말로 실력이 있는 자인지를.”
그 말을 남기고 모용진은 곧바로 뒤돌아 관주실을 빠져나갔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 모습에 황보유선과 백두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황보유선이 입을 뗐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졌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치 폭풍이 스쳐 지나간 듯한 느낌이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관주님? 선택은 관주님에게 맡기겠습니다.”
황보유선의 말에 백두철이 잠시 고민을 하듯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그가 정말로 이 백호학관을 토대로 삼을 정도의 남자인지, 아닌지.”
* * *
“하하하! 부어라! 마셔라!”
“크크크크. 제가 한 곡 띄워 보겠습니다!”
“이리로 와라, 귀여운 계집년! 크하핫!”
“꺄르르. 꺄악!”
여성의 교태와 술에 취한 남정네들의 뜨거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어느 기루.
그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무림맹 소속의 창월단(彰月團)이었다.
무림맹 내에서 손에 꼽는 무력을 가진 집단인 창월단이 고작 기루를 지키고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지금 저 문 안에 무림맹의 가장 높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명색의 무림맹주와 구파일방의 수장이라는 것들이…….”
창월단의 단주, 악비가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검집을 꽉 쥐자 곁에 있던 다른 이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참으십시오, 단주님. 저런 이들이긴 하지만 현 무림을 이끌어 가는 분들입니다. 참아야 삽니다. 저도 단주님도 그리고 단주님의 본가도.”
악비를 붙든 것은 창월단의 부단주인 풍하운이었다.
풍하운의 말에 악비의 손이 잘게 떨렸지만 이내 빠르게 진정을 되찾아 갔다.
악비의 손 떨림이 멎자 풍하운은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고 악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네 말이 맞다.”
숨을 깊게 내쉬자 콧속으로 강렬하게 파고드는 술 냄새.
안쪽에서 얼마나 술을 마셔 대는 것인지 문을 뚫고 바깥까지 그 술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악비는 아까와는 다르게 흥분하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의 본가를 위해서.
악비의 본가는 비록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하지만 꽤나 유명한 명문세가인 산동악가였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 말이었고 지금은 가세가 많이 기울어 세가의 일공자인 악비가 무림맹 소속의 창월단에 몸을 담아야 할 정도였다.
만일 지금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게 된다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은 산동악가였기에 그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부단주, 교대까지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약 한 시진 정도 남았습니다.”
“그렇군. 고맙다.”
악비의 감사 인사에 풍하운이 손사래 치던 그 순간.
파악!
갑자기 허공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강한 마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눈을 뜰 수도 없는 맹렬한 마기의 폭풍.
악비와 풍하운이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 처음 보는 남성이 서 있었다.
벽안의 흑발을 가진 괴이한 미남자.
검은색 피풍의를 걸치고 나타난 그를 본 악비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교……!”
악비는 절로 검에 손이 올라갔고 이를 뽑으려 했으나 풍하운이 또 한 번 그의 손을 막았다.
악비가 고개를 돌려 풍하운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검을 뽑아서는 안 된다며.
그때 미남자의 입에서 차갑다 못해 시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동료에게 감사해라. 검을 뽑았다면 지금 넌 죽었을 테니.”
남성의 말에 악비가 그를 노려보자 남성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이런 노골적인 적개심은 실로 오랜만이란 말이지.”
흥미롭다는 듯한 말과 함께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허공에 한 줄기 핏물이 뚝 떨어졌다.
똑!
그 핏물이 바닥에 떨어져 퍼짐과 동시에 어느새 악비와 미남자 사이에는 또 다른 남성이 나타나 있었다.
회색빛 피부에 앙상하다고 해도 좋을 몸과 커다란 키를 가진 남자.
그는 인기척도 없이 등장하더니 미남자의 앞을 가렸다.
“오랜만이네, 천마(天魔). 잘 지냈어?”
“우리가 안부 인사를 할 만큼 친한 사이였던가? 혈귀(血鬼).”
그들의 대화에 악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앞에 나타난 이들이 진짜 마교의 수장인 천마와 혈교의 수장인 혈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마교와 혈교에서 천마와 혈귀라는 칭호를 함부로 입에 거론할 수 있는 자들은 그들밖에 없었으니까.
“천마와 혈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혈마가 고개를 돌려 악비를 보더니 씨익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운 좋은 줄 알아.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그냥 넘어가 줄게.”
그렇게 말한 혈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천마의 등을 두드렸고 천마는 그의 손짓에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옮겼다.
“가지.”
기기기긱!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저절로 열리는 문.
문이 열리자마자 강렬한 술 냄새와 여성의 교태가 마구 뿜어져 나왔고 혈마는 웃으며, 천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문은 닫혔고 문밖에는 짙은 혈향만이 나돌고 있었다.
“단주님!”
많은 것을 내포한 풍하운의 외침에 악비는 그를 쳐다보더니 손으로 검집을 부러뜨릴 기세로 꽉 쥐었다.
“설사 내 영혼이 불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언젠가 기필코 이 썩어 빠진 놈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겠어.”
* * *
천마와 혈마의 입장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과 여색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태의 소리도 술을 따르며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저절로 멈추게 되었다.
천마의 거센 마기가 술판을 뒤엎더니 기녀들을 모조리 기절시켰고 술은 불태웠기 때문이다.
화륵!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쓰러지는 기녀들.
천마는 일순 조용해진 술판의 한가운데로 향했고 혈마는 미소와 함께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이거, 이거, 천마신교의 천마 아닙니까! 하하하!”
경박스러운 웃음과 함께 천마를 맞이한 이는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인 태허 진인이었다.
흘러내린 상의를 늘어뜨린 째 그들의 앞을 막은 태허 진인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천마에게 권했으나 천마는 무시하듯 그를 지나치더니 누군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 누군가는 바로 현 무림맹주이자 무구한 역사를 가진 소림사의 방장 공성 대사였다.
공성 대사는 많이 취한 듯 한 손에 여자를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공성 대사.”
차갑고 날카로운 천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공성 대사는 한쪽 눈을 슬쩍 뜨더니 이내 안고 있던 여자를 내팽개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 으으으. 천마신교의 천마께서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슨 일인가? 혹시 즐기러 왔다면 내 한 자리 내줌세. 크크크.”
“사천당가의 독왕이 서신을 보냈다. 그의 아들인 당하경이 죽었다고. 그런데 그 당하경이 독각사를 관리했다고 하더군. 지금은 독각사의 행방을 알 수가 없고 말이야.”
“한 자리 하고 싶은 게 아니었군. 딸꾹.”
크게 딸꾹질을 한 공성 대사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마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술기운을 몽땅 날려 버렸다.
파악!
묵직한 기세와 함께 원래의 눈으로 돌아온 공성 대사는 피식 웃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우리 천마 시주는 뭘 바라는 것이오. 바라는 게 있으니 이곳까지 찾아온 것 아니겠소.”
“사천당가. 우리가 보낸 우호의 표시를 기간 내에 돌려주지도 않고 분실했으며 이를 한 명의 죽음으로 덮으려고 했다.”
“사천당가 전체를 말입니까?”
“그렇다.”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요?”
“전혀.”
천마의 대답에 공성 대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웃으며 다시 말했다.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전혀.”
“과하다고 생각할 텐데요?”
“아니.”
평범한 문답 같지만 둘의 대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날카로운 살기가 거세게 휘몰아쳤고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내기와 마기가 뒤엉켜 술판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과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공성 대사의 한쪽 눈이 크게 뜨이자 황금빛의 광채가 천마를 위협하듯 쏟아졌고 천마의 미간은 절로 찌푸려졌다.
엄청난 내공의 압박.
공성 대사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휘몰아치는 내공은 주변의 기물을 박살 낼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압박 속에서 튀어나온 천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