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
광마전생 (8)
“그럼 이제 내가 질문을 할 차례군. 너는 어찌하여 내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 학관을 부수려 했던 것이지?”
[죄송합니다. 저는 팽무악 조부님께서 이리 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여…….]“허허. 그럼 내가 아니라 일반 서민이라면 그냥 죽이고 빼앗아도 된다는 뜻이렷다? 이런 인간말종을 보았나. 우리 팽가가 고작 이런 수준이라니…….”
[아! 아닙니다, 조부님! 그게…… 실은…….]팽이종의 말에 따르면 팽가는 원래 모용세가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원로원의 장로들이 하나 남은 모용세가의 핏줄인 모용혁을 고깝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팽가에서 사람을 구하면 팽가의 기본 도법을 익힌 자들이 나타났는데 그 내력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모용혁이 있었고 이에 장로들이 팽가의 도법을 함부로 팔고 있다며 분노한 것이다.
물론 이는 장로 팽기문이 가문의 이공자였던 시절 가주의 허락을 받고 모용혁에게 일임한 일이었지만 장로들의 모용 혐오는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장로 팽조엽 님이 이 마을에 학관을 세웠기 때문에 더욱더 팽기문 숙부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팽기문 숙부는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지부득의 서신을 주셨고 모용혁을 찾아가 위협해 하북에서 도망치게 만들라고 했습니다.]“도망을 치라고?”
[예. 팽기문 숙부는 이대로 가다간 장로 중 누군가가 모용혁을 암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저는 평소 팽기문 숙부님과 친했기에 이렇게 부탁을 받고 내려온 것이고요. 저도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으로 위협만 했을 뿐 아까 전에도 그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 학관을 요란하게 박살 내고 모용혁을 죽인 것처럼 만든 다음 그를 도망치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조심스럽게 손을 품에 넣은 팽이종이 꺼내 든 건 하나의 편지와 은관이 잔뜩 든 주머니였다.
[팽기문 숙부가 모용혁을 위해 준비한 서신과 다른 곳에 가서도 충분히 정착할 수 있는 돈입니다. 서신은 하북을 벗어나면 읽으라고 하셨고 그 금액이면 작은 객잔 하나를 차릴 수 있으니 지금보다 더 유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팽이종의 말에 모용진은 조금 당황했다.
쌉쓰레기, 양아치, 왈패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용혁을 살리려고 온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정파는 정파였다.
의와 협이 뭔지 알고 있는 정파.
‘그래서 내가 정파의 무림맹주가 되었지. 의와 협이라고 하면 바로 나 천기린이었으니까.’
맘에 들면 다 뺏고 맘에 안 들면 다 때려 부수던 광마가 뭔 개소리를…….
모용진이 서신을 확인해 보니 거기엔 팽기문의 모용혁에 대한 걱정이 잔뜩 적혀 있었다.
진짜로 아끼는 친우에게 보내는 듯한 서신.
나는 그 서신을 접어 다시 팽이종에게 돌려주었다.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너는 자랑스러운 팽가의 아들이다. 그 서신은 네가 직접 우리 아버지께 드리도록. 오해를 풀어야 하니까 말이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부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만일 팽가로 돌아가신다면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어허, 내가 분명 말했을 터인데.”
[하하하. 만약 그러고 싶으시면 제가 모신다는 뜻이었습니다. 허면 모용혁 님과 함께 이곳을 떠날 생각이십니까?]“아니, 우린 여길 떠날 생각이 없다.”
[예? 허나 제가 이대로 그냥 돌아간다고 하여도 장로 중 누군가가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모용혁 님과 함께하실 생각이시면 하북을 떠나는 게…….]“이곳은 아버지의 노력과 희생으로 운영되어 온 학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우리가 어째서 떠나야 하는 것이냐. 우리는 정정당당하기에 이곳에서 떠날 생각은 없다.”
[지당하신 말씀이옵지만…….]“아이야, 걱정 말거라 내가 누구냐. 천지일도 팽무악 아니냐.”
팽이종의 옆에 다가간 모용진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내가 다 해결해 주마.”
* * *
하북팽가.
정소촌에서 네 시진이나 되는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하북의 패자 하북팽가의 내원은 패자라는 호칭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높이와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멋들어진 본관의 바로 뒤쪽.
본관의 그늘에 위치한 이 원형의 건물의 이름은 원로전.
하북팽가의 원로와 장로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어찌 보면 본관보다 더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원로전의 경비를 보는 무사들에게 경례를 받으며 이동한 팽이종은 ‘팽기문’의 위패가 걸린 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거라.”
팽기문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간 팽이종은 팽기문을 향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가문의 장로 팽기문 숙부님을 뵙습니다.”
“됐다. 서신은 먼저 도착해서 읽었다. 그래, 모용혁이 진짜로 떠나지 않겠다고 한 것이냐?”
“예. 그리고 그에 관한 대응 방법은 서신에서 알려 드린 것처럼 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그 방법이면 잔뜩 뿔이 난 장로들도 어쩔 수 없겠지…….”
그 방법이란 바로 모용학관에서 더 이상 팽가의 도법을 전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모용혁을 밀어붙였던 계기가 사라지는 것이었기에 장로들도 당장에 손쓸 명분이 없어진다.
“정말 모용혁이 학관을 그만두겠다고 하였느냐? 그럼 대체 뭐로 생계를 이어 나가려는지……. 차라리 그 돈을 들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사는 게 본인에게나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돈은 들고 가셨습니다. 제가 학관을 부순 탓에 다시 재건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학관을 재건해? 팽가의 도법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어떻게 학관을 운영하려고…….”
“재건은 하나 모용혁 그분이 학관을 운영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모용혁의 아들 모용진. 그분이 이제 학관을 운영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팽이종의 말에 팽기문은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 귀를 후벼 팠다.
하지만 몇 번이나 되물어도 돌아오는 팽이종의 대답은 똑같았다.
“허어…… 모용혁 자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단은 알겠네. 어차피 당분간은 별일 없을 것이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팽가가 며칠 전부터 혈종문 때문에 많이 바쁘니 장로들도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
“예.”
고개를 숙이며 이만 나가 보려는 팽이종의 손을 팽기문이 붙잡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삼공자인 자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부탁이지만 당분간 모용학관을 봐줄 순 없겠나? 내 삼공자인 자네의 상황을 이용하여 부탁하는 것이라 매우 미안하지만 모용혁은 나에게 있어 은인이네. 이렇게 꼭 좀 부탁합세.”
팽기문이 고개를 숙이려 하자 팽이종이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숙부. 숙부님의 은인은 제게도 은인이지요. 그렇게 죄송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때마침 저도 정소촌에 볼일이 있었으니 겸사겸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떠나는 팽이종을 보며 팽기문은 아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삼공자 같은 분이 장차 이 팽가를 이끌어 갈 진정한 그릇이거늘…….”
* * *
팽이종이 팽가로 떠난 이후 모용진은 모용혁과 대치 중에 있었다.
팽이종, 팽기문과의 오해는 풀었지만 그 이후에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모용혁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진심이냐?”
“예. 당연하죠. 아버지, 저는 항상 진심입니다.”
모용진이 모용혁에게 한 말.
그것은 바로 모용학관의 운영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모용혁은 강사에서 은퇴.
거기다가 한술 더 떠 모용진이 직접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 황당을 넘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던 모용혁이었다.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로만 알았는데 모용진은 이젠 진심으로 비무까지 하자고 했다.
본인이 이기면 자신의 말대로 해 달라고.
모용진은 그게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모용혁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지금 아비한테 구양절맥을 앓고 있는 아들과 진심으로 검을 나누란 말이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과?!”
“어우, 그 팔불출은 이제 가슴 속에 넣어 두시고요. 아버지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구양절맥인데도 불구하고 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고 있는 접니다. 한 번쯤은 믿어 보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구양절맥을 앓는 아이가 홀로 내공을 익히고 몸이 건강해졌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거기다가 한술 더 떠 일류 무사인 팽이종의 뒤로 숨어들어 급습까지 성공했다.
어느 누구에게 말해 줘도 믿지 않을 이야기.
하지만 그걸 모용진은 해냈다.
“허나…… 하아.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이냐. 설마 네가 기연(奇緣)이라도 얻었다는 것이냐?”
기연(奇緣)이란 말 그대로 기이한 인연을 뜻하는 말.
무림에선 어쩌다가 만난 고수를 스승으로 삼게 되었다거나 기이한 영약들을 얻은 상황을 뜻하는 말이었다.
모용혁은 모용진의 말에 그냥 반박할 거리가 없어서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예! 그렇습니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구구절절 시작되는 모용진의 장편 기연 소설.
실제로도 모용진은 모용혁이 기연 비스름한 말을 내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던 모용진이었기에 그의 거짓말은 거침없었고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열한 살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엄청난 거짓말.
그렇기에 모용혁은 모용진의 장편 기연 소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사실이냐? 몰래 빠져나가 산행을 하던 중에 동굴을 발견했고…… 그곳에 이름 모를 은거 기인이 있었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거 기인의 유골이 있었죠. 그의 앞에는 이름 없는 비급과 단약이 있었는데 저는 비급을 읽고 단약을 섭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약을 섭취하자 동굴이 무너져 내렸고 비급과 유골이 절벽에 쓸려 내려갔다?”
“예. 위험했었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전 무사히 빠져나왔고 그 덕에 이렇게 한층 더 건강해졌지요.”
군더더기 없는 모용진의 장편 기연 소설에 모용혁은 침음을 삼킬 수 없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왜 갔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 덕에 건강해진 것은 사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건강해졌다고 치자꾸나. 그런데 만일 내가 모용학관을 넘겨준다고 해도 대체 네가 뭘 가르치겠다는 거냐? 그 비급을 읽은 것도 한 번뿐이라면서. 한 번만 읽은 비급을 어찌…….”
모용혁의 말에 모용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그는 몸을 배배 꼬듯 비틀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응? 원래 누구나 한 번만 보면 다 아는 것 아니었나요? 저는 책 같은 건 한 번 보면 머릿속에 그대로 다 남아 있는데. 이상하다……. 아버지는 안 그래요? 비급이라고 해 봤자 한 삼백사십오 장밖에 되지 않는 종이 쪼가리인데.”
어우, 재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