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1
광마전생 (81)
18장
한때 백호학관의 일대고수이자 ‘백호군’이었던 장선강의 추락과 동시에 백호비무제는 성대하게 끝을 맞이했다.
그 이후 모용진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에 바빴다.
관주와 부관주를 비롯해 여러 선생들이 그를 찾았고 그에게 도움을 주길 원했다.
물론 모용진은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딱히 필요 없는 제안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한 명쯤은 통합무림에 관해 제안을 할 줄 알았는데 그 누구의 입에도 통합무림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괜히 시간만 버렸네.”
괜히 사서 고생했다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는 그가 지금 향하는 곳은 백호학관 내의 호원(護園)이었다.
호원은 백호학관을 방문한 귀인들을 모시는 곳으로 진가은이 하태벽과의 자리를 만들었다며 직접 안내해 주고 있었다.
물론 왕세진도 있었다.
진가은은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에 있어 살짝 불안해하긴 했지만 모용진은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왕세진은 도망칠 수도 도망갈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처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용진이었다.
“하태벽 장로님은 아직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셔. 네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해서 진짜로 아무 말도 안 하긴 했지만…… 정말 괜찮아?”
“괜찮아. 너만 내 당부를 까먹지 않으면 돼.”
모용진의 말에 진가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진이 한 당부.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곤륜을 지켜 줄 것이며 곤륜이 멸문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여기가 하태벽 장로님이 계시는 곳이야.”
똑똑.
진가은이 작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뉘시오?”
“백호학관의 일학년 진가은 관도 외 두 명이 학생주임님을 뵈러 왔습니다.”
“들어오게.”
진가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그곳엔 자리에 앉아 커다란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하태벽이 있었다.
“서예를 하시는 중이었군요.”
“무의 길을 걷는 자라고 해서 손에 병기만 쥔 채 살아갈 순 없는 것이지. 그것보다, 무슨 일인가? 이곳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인데.”
진가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서예에 몰두하던 하태벽.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진가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붓을 떨구고 말았다.
“오늘은 백호학관의 관도가 이닌 곤륜파의 소문주로 찾아왔습니다.”
곤륜파의 소문주로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란 하태벽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에는 진한 인상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긴 흑발에 진한 이목구비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
이여립.
당연히 하태벽 역시 이여립을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라며 진가은을 쳐다봤다.
“지금…… 소문주로 찾아왔다고 했나……?”
“굳이 한 번 더 여쭤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학생주임님. 아니, 곤륜 운우(雲雨)의 호법 하태벽 장로님.”
하태벽의 말에 대답한 것은 놀랍게도 진가은이 아닌 모용진이었다.
“자네는, 아니…… 소문주님, 이게 대체 무슨…….”
“지금부터 진가은…… 아니, 곤륜의 소문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일렀으니까요.”
모용진의 말에 하태벽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모용진이 슬쩍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등을 보이며 뒤로 돌았다.
“궁금하신 게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확인?”
“예, 확인. 당신이 저와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인지 알아봐야 하니까요. 밖으로 따라 나오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모용진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리자 하태벽은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가은을 쳐다봤지만 진가은은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됐건 지금 물어볼 게 많았던 하태벽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용진의 뒤를 따라갔고 그 뒤를 진가은과 왕세진이 따라갔다.
‘백호비무제의 우승자 이여립, 지금 한창 뜨거운 화제의 주인공인 그가 우리 소문주님과는 왜……? 그리고 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는 답은 없었고 슬쩍 진가은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는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놀랍게도 호원(護園)에 마련된 작은 연무장이었다.
현재 백호비무제가 끝난 호원엔 객원이 없었기에 누가 찾아올 리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날 왜 이리로 끌어낸 건가, 이여립 관도?”
“다 이유가 있지요. 그전에 우선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감사 인사라니?”
“백호학관 입관 시험 때 말입니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물론 하태벽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이 닿은 적이 없었기에 서서히 잊히고 있던 중 그가 백호비무제에서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하태벽에게 그 일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 외에 감상은 전혀 없었다.
“감사 인사를 할 거면 아까 그곳에서 했어도 될 것인데.”
“뭐, 그거랑 지금 제가 할 일이랑은 별개의 일이니까요. 그냥 생각이 나서 말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한 모용진은 품에서 검을 뽑아 들더니 하태벽을 향해 들어 올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아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와 대화를 나눌 자격이 있는 분인지 확인하겠다고.”
“거참 당돌한 아이구나.”
하태벽에게 지금의 이여립은 일개 관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크게 화를 내도 모자랄 상황이었는데 곤륜의 장로답게 그는 분개하지 않고 조용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이토록 도발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겠지. 자네의 바람대로 상대를 해 주겠으나 나도 무인이니 모욕을 받은 만큼 손 속에 자비는 없을 게야.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만일 당신이 이기면 제가 오늘 보인 무례에 책임을 지고 손을 자르든 발을 자르든 당신이 시키는 대로 모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기게 된다면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소원?”
“예. 그리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저기 있는 진가은에게 부탁해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지만 저는 당신에게서 그 소원을 이뤄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그 소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들어주겠네. 내가 패배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하태벽은 모용진의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웃으며 허공에 내기를 흩뿌렸다.
자신만만한 모용진에게 뭔가 있나 싶어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모용진은 그저 평범한 관도였다.
비록 이번 백호비무제에서 엄청난 기량과 실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래 봐야 아직 약관의 청년.
기껏 해 봐야 초절정의 초입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절대로 패배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같은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그 깊이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하태벽은 여유롭게 자세를 잡으며 검에 내기를 흘려보냈다.
“첫수는 무림의 선배인 내가 양보하지.”
“흐음…… 아니요. 그렇다면 제가 양보를 해야지요. 들어오십시오.”
“허허…….”
모용진의 도발 아닌 도발에 하태벽은 웃으면서도 그 기세를 날카롭게 펼쳤다.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날아가듯 튕겨 나가는 하태벽.
그의 두 눈에 모용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빈틈투성이였다.
‘오만하구나. 자신의 실력에 심취하여 남을 깔보다니. 내가 오늘 그 썩어 빠진 생각을 뽑아내 주마.’
하태벽의 몸놀림에는 운룡대팔식도 태허도룡검법도 없었다.
그저 건방진 후배를 힘으로 찍어 눌러 주겠다는 생각으로 내뻗은 검.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실망입니다.”
모용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과 동시에 하태벽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는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지만 바닥에 떨어지며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큰 내공을 담아 평범하게 내지른 검.
모용진은 검이 휘둘러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검의 옆면을 강하게 때리고는 그대로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하여 하늘로 올려 버린 것이었다.
멋지게 한 바퀴 회전하며 바닥에 착지하는 모용진과 꼴사납게 쓰러진 하태벽.
“큭…….”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내상마저 조금 입은 하태벽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놈은 대체……!”
“진심으로 해 주시지요. 만일 방금 전 한 수에서 제가 봐드리지 않았다면 장로님의 목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을 겁니다.”
모용진의 말에 움찔한 하태벽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젠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꽉 쥐었다.
“내가 큰 결례를 범했군. 관도이기 이전에 그대는 무림인이었음을 잠시 잊고 있었어.”
하태벽은 자신의 실책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모용진의 저 건방진 태도는 절대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진지하게 가겠네.”
“예.”
그 순간 하태벽의 기세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스산한 바람이 하태벽의 몸을 감싸더니 그의 검에서 강렬한 투지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퉁!
신기한 소리와 함께 발을 구른 하태벽의 몸은 마치 구름을 노니는 용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날았다.
곤륜의 절기인 운룡대팔식.
그는 운룡대팔식을 육성이나 올린 곤륜의 몇 안되는 실력자였고 이는 지금의 진가은에 비교하자면 엄청난 경지였다.
그리고 그 운룡대팔식과 함께 펼쳐지는 날카로운 검격, 태허도룡검법 역시 일품이었다.
“강천지룡(强天之龍).”
언젠가 진가은이 최양에게 썼던 일격필살의 초식.
하지만 진가은의 강천지룡과 하태벽의 강천지룡은 그 수준부터가 달랐다.
하태벽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는 진짜 한 마리의 용처럼 번뜩이며 이빨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모용진의 정면으로 쏟아졌다.
쿠르릉!
지천이 흔들리는 엄청난 위력.
이것이 바로 운우의 호법이자 곤륜의 검수(劍手)라고 불리는 하태벽의 실력이었다.
비록 아직 화경에 오르진 못했으나 엄청난 성취를 이룬 태허도룡검법으로 인해 화경에 오른 자들도 웬만하면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곤륜 내에선 종종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의 상대는 단순한 ‘화경’이 아니었다.
‘화경’을 뛰어넘은 그 언저리의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자신의 경지를 가늠하지 못하는 인물, ‘모용진’이었다.
“이……럴 수가……!”
하태벽은 입을 쩍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모용진을 응시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자신의 검을 받아 친 것도 모자라 어느새 목에 검을 가져다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 검이었다.
검에는 아무런 살기도, 내기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 모용진은 그 어떠한 초식도 쓰지 않았다.
단순하게 검을 놀리는 것만으로 하태벽의 강천지룡을 흘리고 목에 검을 가져다 댄 것이었다.
놀라는 하태벽을 바라보며 모용진은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같은 학관의 관도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검에 여유를 두신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 두시지요. 저는 지금 백호학관의 관도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한 번 더 그 검에 자비가 남아 있다면, 저를 조금이라도 우습게 보신다면 아마 그다음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곤륜파의 장로님.”
그 말에 하태벽이 움찔 놀라며 모용진을 쳐다보자 모용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벌린 채 검을 들어 올렸다.
“이것이 제가 곤륜에 드리는 마지막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