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3
광마전생 (83)
존재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제갈영의 말에 청화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쓸었다.
“사문방(死門房), 독약전(毒藥殿), 흑룡파(黑龍派)…… 확실히 그들은 사파의 축에 들어가지 못한 애매한 세력을 가진 이들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 약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확실히 군사님의 말씀대로 흑제께서는 사라지지 않을 세 개의 세력만을 손에 넣으셨군요. 녹림과 장강 그리고 하오문…….”
“하오문은 아직 손에 넣었다고 하기엔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오문은 제가 직접 요리해서 흑제 님께 올릴 생각이니까요.”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가야허라는 분과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가요?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던데…….”
괜히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제갈영이 빠르게 화두를 바꾸며 가야허의 이야기를 꺼내자 청화는 대뜸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하아…… 그건 제 업보랍니다. 제가 옛날에 쌓아 둔 업보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요. 딱히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 궁금하시다면 알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궁금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군사님은 정말로 솔직하시군요?”
제갈영의 궁금하다는 말에 청화는 감탄을 하면서도 조용히 가야허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처럼.
가야허와 청화 유미옥.
둘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살던 죽마고우였다.
털털했던 유미옥은 매일 소심한 가야허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그렇게 둘은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박살 낸 것도 바로 유미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자라온 그녀는 열네 살이 되던 어느 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연히 마을에 들린 항주의 유명한 행수가 청화의 미모를 한눈에 알아보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청루(靑樓)의 기녀가 되지 않겠냐고.
“이런 시골에서 평생 일만 하는 것보다 청루의 기녀가 되어 춤과 악기를 배워 그것으로 먹고사는 것이 더 화려한 인생이 될 것이다. 게다가 청루의 기녀는 적루의 기녀와 다르게 몸을 팔지 않아도 된다. 본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지.”
달콤한 그녀의 제안에 유미옥은 그녀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기녀가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냐고.
그 질문에 행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네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 네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갈고닦아 많은 재주를 가지게 되어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골 마을 정도는 하루 벌이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설사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해도 여기서 풀뿌리를 캐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다. 나에게 잘 배운다면 말이야.”
행수의 말에 유미옥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럼 갈게요.’라고.
그녀의 말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 이렇게 가난하게 평생을 사는 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었으니까.
행수가 그녀에게 내민 제안은 처음으로 맛보는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다.
유미옥은 행수에게 하루 말미를 달라고 부탁했고 그날로 유미옥은 가야허를 찾아가서 말했다.
자신은 이제 기녀가 될 것이고 너와는 헤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이제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일방적인 유미옥의 말에 그녀를 사랑했던 가야허는 당연히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유미옥은 그날 밤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행수가 있는 옆 마을까지 뛰어가 그들과 합류했다.
놀랍게도 그때의 행수와의 인연은 어떻게 보면 기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유미옥의 미모를 알아본 그 행수는 천기정루의 전 주인이었고 하오문의 부문주였으니까.
그래서 유미옥은 지금 천기정루의 청루주인 청화가 될 수 있었다.
연인을 버리고 돈을 좇다 보니 권력과 힘까지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전 가야허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하루 만에 연인을 버리고 돈을 좇아 기녀가 된 여자.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저는 사랑보단 돈이었고 그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으니까요.”
청화의 말에 제갈영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지만 청화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고 가야허는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낳고 잘살고 있더군요. 여전히 그는 자신을 버리고 간 저를 증오하는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그건 모두 다 제가 짊어질 업보니까요.”
그렇게 청화가 제갈영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그 시각.
모용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전 백호군이었던 장선강과 장선욱 그리고 장요였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그를 막아선 그들의 특징은 바로 무당파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죠, 선배님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뭐 딱히 일은 없지. 아, 그것보다 소식은 들었어, 후배님. 관주님과 부관주님께서 새로운 백호군이 되신 후배님께 ‘백호패(白虎牌)’를 넘기셨다지?”
백호패란 한마디로 하자면 백호학관 내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물건이었다.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은 물론 자유 수련도 가능하며 언제든지 백호학관 내에 있는 모든 기물과 서적을 이용할 수 있는 명패(名牌).
백호패의 능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학관이 비용을 치러 준비해 줬고 원한다면 바깥의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 명패는 분명 백호학관에 존재했지만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은 딱 두 번뿐이었고 그마저도 삼 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었는데 모용진은 학관을 졸업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학관 전체에 공지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선배님들?”
“아니, 문제는 없어. 근데 알랑가 모르겠네? 그 백호패라는 거 훔치거나 실력으로 뺏어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지?”
“글쎄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뭐, 선배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죠?”
“그래. 이 정도 들었으면 깨달았을 거야. 네가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지.”
그렇게 말한 장선강은 모용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듯한 느낌으로.
“뭐죠? 그 하찮은 손짓은.”
“하찮다니. 건방진 후배 주제에. 상황이 이해가 안 돼? 백호패를 넘기란 뜻이야.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 벌써 죽기엔 아깝지 않아?”
대놓고 모용진을 협박하는 장선강이었지만 모용진은 눈도 껌뻑하지 않았다.
그저 하찮은 미물을 보듯 장선강을 내려다보던 모용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무당파가 이런 시정잡배가 할 만한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리고 고작 이 정도의 인원으로 절 상대하려고 하신 겁니까? 세 분 다 저에게 당해 보셔서 이제 아실 텐데요. 무당파의 수치인 시정잡배 선배님들?”
“크크. 네 멋대로 지껄여. 어차피 패를 내놓지 않으면 너는 곧 죽을 목숨이니까. 그리고 고작 이 정도의 인원이라니? 이 정도면 충분히 많지 않나?”
장선강의 말에 골목 여기저기서 관도들이 하나둘씩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담을 넘고 건물을 뛰어넘으며 족히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모용진의 주변을 에워쌌다.
“어때? 이 정도면 그 백호패를 건넬 마음이 들어?”
“무슨 소리십니까, 선배님.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고작 이 정도의 인원으로 절 상대하실 수 있냐고 말이죠. 선배님 같은 쓰레기가 세 명에서 수백 명이 되었다고 해도 차이가 있나요? 그저 쓰레기 수백 개가 쌓여 있을 뿐이지.”
모용진의 신랄한 모욕에 여기저기서 분노한 관도들의 목소리가 퍼져 나왔고 장선강의 얼굴은 잔뜩 흥분한 듯 붉게 물들었다.
“네놈…… 네가 정녕 네 무덤을 파겠다는 뜻이냐?!”
“아, 무덤…… 무덤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이렇게 쓰레기들이 득실거리니. 백호학관은 청소를 잘 안 하나 봐요? 이런 것들도 관도랍시고 방치해 두다니.”
그 말에 결국 참지 못한 몇몇 인물들이 검을 뽑아 들고 모용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각자의 무공을 사용하며 달려드는 선배들.
하지만 모용진은 검을 들 가치도 없다는 듯이 주먹을 말아 쥐더니 크게 진각을 내디뎠다.
쾅!
지축이 흔들리는 큰 소리와 함께 비산하는 모래 먼지.
달려들던 선배들은 일순 당황하여 멈춰 섰지만 모용진은 멈추지 않았다.
“자, 이빨 나가요, 선배. 어금니 꽉 깨무세요.”
친절한 목소리와 그렇지 못한 문장.
가장 먼저 앞서 나왔던 소림사 출신의 사대고수…… 아니, 지금은 구대고수가 된 여동은 자욱한 모래 먼지를 꿰뚫으며 날아오는 모용진의 주먹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주먹이 자신의 안면에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백호비무제에서 자신에게 보여 줬던 무위는 그가 많이 봐준 것이었단 사실을.
콰작!
어딘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나르는 네 개의 하얀 이빨과 여동.
그는 무려 이 장이나 떠올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그대로 기절해 움직이지 못했다.
단 한 방에 쓰러진 여동.
그 모습에 모두가 경악하며 일제히 굳어 버렸지만 당연히 우리의 모용진은 멈추지 않았다.
퍽!
또 일격에 바닥에 꼬꾸라지며 처박히는 관도.
모용진은 바닥에 쓰러진 그를 밟으며 모두를 향해 손짓했다.
“후회하긴 이미 늦었어. 나는 굉장히 기억력이 좋거든. 지금 도망가도 내가 다 쫓아가서 여기 선배처럼 만들어 줄 거야. 그러니까 어때, 지금이라도 합심해서 나를 쓰러뜨리는 건? 혹시 알아? 우연히 눈먼 검에 내가 맞고 쓰러질지?”
* * *
선배들은 당연히 도망 대신 날 쓰러뜨리는 걸 선택했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수백이고 나는 혼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진 않았다.
나는 눈먼 검에 맞고 쓰러질 정도로 한심한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빠각!
도망치던 장요를 붙잡아 앞으로 평생 씹는 데 고생하도록 만들어 준 나는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끼고 아껴 뒀던 오늘의 주 요리.
바로 전 백호군 장선강이었다.
놀랍게도 장선강은 수백 대 일의 싸움이 시작되자 거리를 두고 쳐다보고 있더니 슬슬 모두가 쓰러져 가자 몰래 도망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호원의 뒤뜰로 도망쳤고 나는 그가 남긴 기의 흔적을 따라 쉽게 그를 붙잡았다.
“하여간 특이하다니깐, 이 백호학관의 관도들은. 그렇게 박살이 나도 교육 효과가 없는 건지 또 도전해 온단 말이야.”
“으으…….”
뒤뜰 벽 아래에 몸을 은닉하고 있던 장선강은 내 목소리에 경기를 하며 일어나더니 다시 한 번 재빠르게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부질 없는 일이었고 내가 그를 붙잡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일각도 되지 않았다.
붙잡힌 그는 곧바로 검을 휘두르며 저항해 왔지만 나는 살포시 그의 목을 강타해 바닥에 쓰러뜨렸다.
“끅끅…….”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듯 괴로워하는 장선강.
나는 당연히 이 사태를 주도한 그를 쉽게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오랜만에 몸을 진득하니 풀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니까.
나에게 적의를 드러낸 이에게 자비를 내려 줄 만큼 나는 성자가 아니니까.
나는 공포에 덜덜 떠는 장선강의 얼굴을 붙잡아 자리에서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자…… 오랜만에 기린구타권법(氣璘毆打拳法)이나 써 볼까? 한동안 안 쓴 지 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맞아 보면 알아, 맞아 보면. 괜찮아.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작은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난 것은.
“이 늦은 시간에 누구냐! 진작 기숙사로 복귀할 시간이거늘.”
그의 모습을 본 장선강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고 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자.
그는 바로 백호학관의 학생주임인 하태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