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6
광마전생 (86)
후아…….
사실 그녀의 절기를 눈앞에 마주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긴장했다.
지금 내 실력으로 저걸 받아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천기린이었으면 모를까 아직 많이 부족한 이 몸으로 도저히 받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공기의 흐름과 대지의 감촉 그리고 그녀의 강렬한 내기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소검 위에 타오르는 불길의 뜨거움까지.
마치 내가 그녀가 된 것 같은 감각과 동시에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에 흐르는 피와 그 혈도를 따라 움직이는 내기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피부, 작은 솜털과 그 솜털에 엉겨 붙은 미세한 자연의 기운까지.
순간 찾아온 이상한 느낌을 나는 이렇게 명명했다.
무아일체(無我一體).
왜 그렇게 명명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뿐.
내 몸이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느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이건 내가 본디 알고 있었던 것.
하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이 순간에 나를 찾아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찾아온 위기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이끌어 낸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의 공격을 창천신검을 이용하여 막으려고 했다.
물론 내공의 차이로 인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무수한 경험과 무공이 있었기에 그 차이를 메꿔 어떻게든 그녀에게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온 무아일체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라고 외치듯이.
그리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아에 빠져 나는 손이 가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내가 잘라 낸 것은 그녀의 얼굴을 가리던 검은 천 조각.
그리고 동시에 홍련의 몸을 붙잡으며 그녀가 내뿜던 강대한 열기와 강기를 자연의 기를 이용하여 허공에 흘려 버렸다.
그녀는 앞선 내 검격에 이미 마음을 놓아 버렸고 그녀가 놓아 버린 내기를 흘려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 그 검술은…… 대체 무엇입니까.”
고개를 떨군 홍련의 질문.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무아(無我).”
* * *
모용진은 홍련과 대결이 끝난 후 아무 말 없이 기숙사로 돌아갔다.
진가은이 무슨 일이냐며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 열리지 않았고 뜻밖에도 홍련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그분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래도 중요한 기로에 접어드신 듯하니까요.”
반말이 아닌 존대로 바뀐 홍련의 말투.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홍련이 자청해서 모용진의 호법을 선 것이다.
왕세진과 은월령의 사자들이 왜 그러냐고 질문했지만 홍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들은 계획에 따라 날이 밝기 전에 백호학관을 떠났지만 홍련은 남아 있었다.
아침이 되어 기숙사의 모두가 홍련을 발견하고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사태를 정리한 것은 당연히 진가은이었다.
모용진이 갑자기 방에 틀어박히고 홍련이 갑자기 호법을 자청하여 서고 있으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소란은 진가은의 부탁으로 하태벽이 나서서 정리해 주었고 관주와 부관주도 나서서 함께 진화해 주었다.
모용진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기숙사에 박혔다는 말에 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었다.
홍련 역시 모용진과 관계가 있는 분이라며 대충 둘러대자 그들은 쉬이 수긍해 주었다.
원래 ‘난’ 인물에게는 이러저러한 비밀이 많은 법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나고 열네 번째 되는 밤.
“끄으으으아아아.”
어딘가 기분이 좋은 듯한 기지개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상반신을 탈의한 모용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밤이 참 맑네.”
“축하드리옵니다.”
밝은 달을 보며 모용진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옆에서 누군가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 누군가는 바로 홍련이었고 홍련을 본 모용진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가은이 아니었네? 돌아갈 줄 알았더니 기다리고 있었나?”
“예. 저는 당신과의 내기에서 패배했고 이제부터 당신의 것입니다. 아직 제 거처를 정해 주지 않으셨으나 주인의 곁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흐음…….”
홍련의 말에 모용진은 흥미롭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녀와 두 눈을 마주쳤다.
“너…… 봤구나. 뭘 봤지? 나에게서.”
모용진의 말에 홍련이 살짝 움찔거리더니 어차피 그에게 자신이 속내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봤습니다. ‘화경’이라는 절대 경지, 그 이상에 있는 것을.”
“그 이상이라니. 내게서 본 것이 화경 이상의 경지인 걸 네가 어떻게 알 수 있지?”
“현 무림의 절대 고수 중 한 명인 소림사의 공성 대사. 그는 저보다 훨씬 강했지만, 그것을 보진 못했으니까요.”
“무아를 말하는 건가?”
모용진의 말에 홍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잠시 그녀를 뚫어지듯 바라보던 모용진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달도 좋은데 잠시 걷지.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까.”
홍련은 모용진을 따라 걸었다.
이젠 지겹다며 이야기를 꺼낸 모용진은 그의 생을 설명했다.
구구절절함 없이 아주 담백하게.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용진의 말을 모두 믿었다.
왜냐하면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사실 나는 깨달음을 얻어서 방에 틀어박힌 게 아니야.”
“그럼 무슨 이유로 그 긴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다시 되새겨 본 것이었지. 너와 대결을 하며 느꼈거든 내가 너무 그것들을 내버려 두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말이야.”
“본래 가지고 있던 것…….”
“사실 난 내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잘 몰라. 내가 모용진으로 되살아나기 전 ‘화경’이었다는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이 몸으로 되살아나며 몇 번의 깨달음을 더 얻었어. 죽어가는 아이의 몸이었을 때 그리고 살기 위해 발악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리고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했을 때.”
화경에 이른 자가 세 번이나 더 깨달음을 얻었다.
이 말은 홍련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최소 자신보다 세 단계는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현경이고 그다음에 있는 것인지는. 벽을 허물었지만 그 벽 뒤에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거지.”
“그 영역은 누구도 알지 못했고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니까요.”
“맞아. 그러니 속단하긴 힘들지. 하지만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내면을 이끌어 보며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어.”
“그게 무엇입니까!”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홍련의 큰 목소리에 모용진도 깜짝 놀란 듯 몸을 들썩거리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임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 너도 날 많이 닮았구나? 아, 외모를 말하는 것은 아냐. 그저 네가 속에 가지고 있는 그 욕망(慾望)이 나와 닮았다는 뜻이지.”
모용진의 말을 홍련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숨길 필요도 없었고 모두 사실이니까.
아니, 화경의 고수라면 누구나가 한 번쯤은 안고 있었을 욕망이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얻은 깨달음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어. 그다음에 아득하니 존재하고 있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았지. 섣불리 관심을 줬다간 전설로만 내려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 당할지도 모르잖아? 그럼 내 목적도 이룰 수 없으니 절대 관심을 줘선 안 되는 거지.”
“깨달음의 활용 방법…….”
모용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이해까지는 하지 못한 홍련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용진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어때? 받아들이겠어?”
모용진의 말에 그제야 홍련은 깨달았다.
모용진이 말했던 깨달음의 활용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홍련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아니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음? 어째서지?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그 순간 홍련이 맨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하더니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이미 당신은 저의 주인님이십니다. 주인이 자신의 물건에게 굳이 제안을 하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홍련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
무언가가 그녀의 이마를 가로막으며 머리를 들어 올렸고 그것은 바로 모용진의 손이었다.
“나는 아무리 내 것이라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을 물건 취급 하진 않아.”
그대로 홍련의 몸을 일으킨 모용진은 홍련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 주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내가 너를 이긴 것은 어찌 보면 깨달음에 의존한 일종의 요행이야. 나는 ‘화경’ 그 이상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내 몸은 그렇게 강하지 못해. 내가 가진 내공은 진가은에 비교하면 쥐꼬리만 하고 내가 휘두르는 검 역시 옛날과 비교하면 그 절반조차 따라잡지 못했지. 물론 앞으로 더 나아질 거야. 하지만 시간이 걸리겠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너는 아주 괴로울지도 몰라. 너라는 존재가 생긴 이상 나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테니까.”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당연한 말이라……. 정말로 그게 당연한 말일까?”
나무 앞에서 멈춰 선 모용진은 굵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자신의 손에 들었다.
“지금 내 손에 든 이 가지가 너야. 은월령의 비사 홍련이지. 그럼 이 나무는 뭘까?”
“은월령……?”
홍련이 은월령이라는 대답을 하는 그 순간 모용진이 손에 쥔 나뭇가지를 휘두르더니 나무를 통째로 베어 버렸다.
쿵!
나뭇가지로 나무를 베는 신기.
하지만 이는 홍련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뭇가지에 강기를 씌워 휘두르면 나무 정도는 쉽게 벨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용진의 실력이 아니었다.
모용진이 한 행동이 의미하는 바.
그것은 홍련을 이용하여 은월령을 베겠다는 것이니까.
“아마도 이게 네 첫 임무가 될 거야. 그런데도 너는 내 아래로 들어와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자신이 있어?”
모용진의 말에 홍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잘려 나간 은월령의 나무를 쳐다봤다.
멍하니 흐르는 시간.
하지만 이내 홍련의 주먹은 꽉 쥐어졌고 모용진은 그녀의 결연한 눈을 마주했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아직까진 순탄했지만 내가 가는 길은 틀림없이 피의 길이야.”
“같은 피의 길이라면 좀 더 진하고 의미가 있는 곳을 걷겠습니다.”
홍련의 말에 모용진은 품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들었고 그녀는 거리낌 없이 그것을 받아 삼켰다.
“흑천파에 온 것을 환영한다, 홍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