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7
광마전생 (87)
19장
“그래서 이분이 이제 우리랑 함께 다니신다고?”
“홍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가은 소문주님.”
“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주인님과 친구시니 편하게 홍련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 저는 홍련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홍련과 정리를 마친 진가은은 다시 모용진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참이야?”
“어떻게 하긴. 은월령에서 나를 마중 왔으니. 은월령에 찾아가야지.”
“나도 같이?”
사실 곤륜은 언제 가냐며 따지고 싶었던 진가은이었지만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속으로만 집어삼켰다.
모용진이 당연히 같이 가자고 할 것 같았기에 진가은은 뭘 챙겨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놀랍게도 되돌아온 대답은 ‘아니’였다.
“왜?”
“너는 따로 해야 할 게 있거든.”
“따로 해야 할 거라니?”
“학관에서 며칠 있다 보면 홍혜아에서 연락이 올 거야. 관주에겐 미리 같이 수련하러 가 볼 곳이 있다고 말해 뒀으니 편하게 나가면 돼.”
따로 할 일이 있다는 말에 진가은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지자 모용진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 마. 이것도 다 곤륜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곤륜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곤륜을 위해 한다는 말에 진가은의 어두웠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그래. 내가 은월령에 가는 것도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도 모두 ‘곤륜’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 그러니까 너무 전전긍긍해 있지 말고 기다려.”
그 말과 함께 모용진이 문을 나서려고 하자 그의 뒤에서 진가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어디 가는데?”
“말했잖아. 은월령에 간다고.”
“지금?”
“여긴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말이야.”
진가은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밖으로 나온 모용진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 출발할까.”
고개를 끄덕이는 홍련과 함께 백호학관을 빠져나간 모용진은 곧바로 말을 빌려 탈 수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말은 탈 줄 알아?”
“아니요. 굳이 탈 일이 없었으니…….”
“그래? 그럼 내 뒤에 올라타.”
마부에게 돈을 지불한 모용진은 능숙하게 말에 올라타더니 고삐를 쥐었고 홍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모용진의 손을 잡고 말에 올라탄 홍련이 멍하니 있자 모용진이 홍련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허리를 잡게 했다.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꽉 붙들어. 이럇!”
이히히힝.
모용진의 채찍질에 투레질을 한 말이 힘차게 대지를 박차더니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깜짝 놀란 홍련이 본능적으로 모용진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그렇게 마을 밖으로 나간 둘은 서안을 빠져나가 감숙을 향했다.
은월령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곧바로 감숙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용진을 바라보며 홍련이 질문을 던졌다.
“은월령이 감숙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야. 누구누구 씨에게 못이 귀에 박히듯 들었으니까. 너희들이 아직 존재하고 그 녀석의 유지를 받든다면 감숙에 있을 거라 생각했어. 소피두, 그 자식이 노래를 부를 정도로 자랑하던 곳이었으니까.”
“실제로도 좋은 곳입니다. 그분의 고향은.”
감숙 월곡(月谷).
그곳은 은월령을 만든 소피두의 고향이었다.
소피두는 매번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고 그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던 이가 천기린이었다.
“놈이 아직 살아 있진 않겠지?”
“아쉽게도 저는 그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은월령을 몰래 감숙으로 이전했다는 것은 윗분들에게 들어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 그러고 보니 너는 어쩌다 은월령에 들어가게 됐지? 몸이나 피부를 보면 남만 쪽 출신인 것 같은데.”
“예. 태양궁(太陽宮)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버려져 저는 잘 몰랐지만 저를 발견하신 분께서 제 쪽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자라 온 것은 중원이었기에 그쪽은 잘 모릅니다.”
“태양궁 출신이라면 여자라서 버려졌을지도 모르겠군. 양기를 숭상하는 그들이니……. 그럼 네 무공은 뭐지? 화령조익(火靈鳥翼)이었던가? 분명 은월령의 검술인 은자검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화령조익은 제가 직접 창안한 무공입니다.”
홍련은 자신이 버려졌을 때 지니고 있던 포대기와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은자검 하나로는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다고 느껴졌을 때 그녀는 우연히 그 포대기를 발견했고 어렸을 땐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포대기에 적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그 포대기에 적혀 있는 것은 태양궁의 내공심법 중 하나인 태양소헌(太陽紹憲)이었다.
작은 포대기에 모든 게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홍련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심법을 새롭게 만들어 냈고 이를 채양공(採陽功)이라 불렀다.
그 채양공과 은자검을 합쳐 새롭게 만든 신공이 바로 화령조익이었고 그렇게 이름을 붙인 이유는 검을 타고 흐르는 불꽃이 마치 새의 날개 같아서였기 때문이었다.
“대단한걸? 아무리 토대가 되어 주는 무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것도 화경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이제 대화는 이쯤 해야 되겠는걸.”
“예. 사방으로 둘러싸였군요.”
태양이 저물어 가는 죽림을 달려가고 있는 그들이었는데 주림에 들어오자마자 꼬리가 붙더니 어느새 수많은 인영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던 모용진과 홍련은 넓은 공간에서 말을 멈추었고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이 한 명씩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일제히 몰려나오는 그들은 바로 홍련이 이끌고 있던 비사대(飛司隊)였다.
족히 쉰 명은 될 법한 인원.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왕세진이었다.
“언니!”
홍련을 언니라고 부르며 튀어나온 그녀는 인피면구를 벗고 검은 복면을 두르고 있었다.
“양양. 분명 은월령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놀랍게도 왕세진의 본명은 양양이라는 귀여운 이름이었다.
“언니를 두고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럴 순 없어.”
양양의 말에 홍련이 말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님에게 듣기로는 너도 고독을 먹었다고 들었다.”
“너도라니…… 설마 언니……!”
홍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양양은 눈을 부릅뜨며 모용진을 노려봤다.
“나 하나로도 부족해서 우리 언니한테까지 고독을 먹여? 니가 사람이야?”
앙칼진 양양의 목소리.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모용진의 대답이 아닌 홍련의 날카로운 소검이었다.
“어, 언니…….”
목에 닿을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멈춘 홍련의 소검에 양양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자 홍련이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주인에 대한 모욕은 용서할 수 없다.”
“주인이라니…… 언니.”
“다른 비사대에게도 전한다. 나는 더 이상 은월령의 비사가 아니다. 여기 계신 모용진 님의 충실한 부하일 뿐. 계속해서 주인님의 앞길을 막는다면 내가 직접 상대해 주마.”
홍련이 진심이라는 듯 내기를 끌어 올려 불길을 뿜어내자 비사대원들이 크게 당황한 듯 한 걸음씩 물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 물러서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는 양양이었다.
‘저놈만 없다면, 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용진을 향해 뛰어든 양양.
하지만 홍련이 내뱉은 말은 아무렇게나 내뱉은 허언이 아니었다.
화륵!
거친 불길과 함께 홍련의 신형이 길어지더니 그대로 허공에 떠오른 양양을 걷어차 버린 것이었다.
“악!”
비명과 함께 대나무에 부딪치며 바닥에 쓰러진 양양의 앞으로 홍련의 자비 없는 불꽃이 번뜩였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고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다.”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한 홍련의 일격.
하지만 그녀의 검은 양양의 몸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쯤 해 둬. 나에게 이렇게까지 충성심을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주인님.”
“네 소중한 동료지 않았냐.”
홍련의 검을 막아 낸 것은 바로 모용진이었다.
큰 충격에 혼절한 양양을 품에 안은 모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사대들을 향해 소리쳤다.
“난 너희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 죽일 생각도 없어. 물론 ‘아직은’ 그렇단 말이지. 너희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인다면 그땐 홍련의 검이 가차 없이 휘둘러질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에게 홍련 님을 두고 떠나란 말씀이십니까.”
누군가의 대답에 모용진이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엔 홍련과 매우 눈매가 비슷한 여성이 서 있었다.
“너는 누구지?”
“비사대의 부장. 서련입니다.”
“그렇군. 비사대의 부장이라. 이제 실질적인 비사대의 우두머리는 네가 된것같으니 너에게 이야기하지. 홍련과 난 지금 은월령으로 가고 있다.”
은월령이라는 말에 서련이 크게 놀란 듯 움찔거렸지만 놀랍도록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은월령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그건 도착해 봐야 알아. 지금의 령주(嶺主)가 날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면 아주 평화롭게 해결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서로의 검에 피를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
령주를 만나겠다는 모용진의 말에 서련이 고개를 돌려 홍련을 바라보자 홍련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듯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았다.
“피를 보겠다는 말을 듣고도 저희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길은 어차피 홍련이 알고 있으니. 홍련은 그 길을 걸으며 슬픔에 빠지겠지. 가족 같은 너희들을 전부 죽이고 걸어가야 하는 길일 테니.”
모용진의 말에 서련의 눈에서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이렇다 할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서 주먹만 꽉 쥐었다.
“이런 마귀 같은 놈. 언젠가 그 업보를 청산할 날이 있을 것이다.”
“염려해 줘서 고맙군. 업보는 내가 청산할 테니 이만 비켜 주지 그래?”
모용진의 말에 일부 비사대들이 검을 뽑으려 했으나 서련이 손을 높게 들어 올리며 그들을 저지했다.
“길을 내 주어라. 우리는 그를 감시하며 함께 은월령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말한 서련은 모용진을 쳐다보았고 모용진은 승낙한다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적인 타협으로 길은 열렸고 모용진은 양양을 품에 안은 채 그대로 말에 올라탔다.
“귀찮긴 하지만 이 녀석이 기절했으니 내가 말에 태우고 가지. 홍련, 달려가도 문제는 없겠지?”
“예.”
“그럼 출발하지. 이럇!”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모용진과 양양을 태운 말이 출발했고 그 뒤를 홍련이 쫓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채 이동하는 비사대와 서련.
어쩌다 보니 비사대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하게 된 모용진은 그녀들의 조치로 아무런 방해 없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전력 질주 했고 섬서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을종이라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에는 이동하기 힘들었기에 마을의 객잔에 하루 머무르기로 한 모용진은 비사대를 배려해 그녀들의 방까지 모두 잡아 주었지만 돈을 지불하고 나자 그녀들은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하…… 거참, 돈이 얼만데. 이럴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던가.”
혹시 모를 암살의 위험보다 수중의 돈이 더 중요했던 모용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