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8
광마전생 (88)
왕세진.
아니, 양양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그녀는 어딘가서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으으음…… 하아.”
깊은 숙면이 주는 만족감에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 양양은 자신의 앞에 무언가 딱딱한 게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익숙한 느낌이라며 눈을 뜬 양양.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바로 남성의 상반신이었다.
그것도 반쯤 풀어진 상반신.
화들짝 놀란 양양이 눈을 크게 뜨자 예의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천 번 죽여도 모자랄 그 얼굴의 주인은 바로 모용진.
양양이 잠결에 만진 것은 바로 모용진의 가슴 근육이었던 것이다.
입에서 비명 백만 개가 뿜어져 나올 뻔한 양양이 간신히 입을 막으며 몸을 일으키자 또 다른 인물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인물은 바로 자신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는 언니.
홍련이었다.
“어어어언니! 이봐요, 그동안 이자가 저를 이렇게 매일 품에 안고…….”
양양의 말에 홍련은 그녀를 한심한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그녀를 모용진의 품에서 떼어 냈다.
“밤사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난 잠을 자지 않았다. 주인님은 지금 그 자리에 주무셨고 네가 기절해 있던 곳은 바로 저기였지.”
홍련이 가리킨 곳은 모용진의 침상과 삼장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니, 언니! 제가 그럴 리가…….”
“축시(丑時)경 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뭔가를 찾는 듯 움직였고 주인님의 곁으로 이동하더군. 네가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얌전히 지켜보고 있었고 너는 곧바로 주인님의 곁에 눕더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지금 주인님의 벌어진 앞섬도 네가 한 짓이지.”
그렇게 말하며 홍련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모용진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남자의 몸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을 통해 본 적도 없었기에 자고 있는 모용진의 몸을 보는 것은 왠지 쑥스러웠던 그녀였다.
“큼…… 아무튼 이번 일로 확실히 알게 되었군. 소문으로 자자하던 양양의 잠버릇을 말이야.”
양양의 잠버릇.
그것은 비사대 안에서도 매우 유명한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 방을 써 본 이들은 모두 당했다고 했었으니까.
다만 양양은 전적으로 이를 부인했고 스스로 독방으로 이동하며 결백함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홍련의 말에 양양이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싸는 그때.
모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크게 켰다.
“뭐, 그래도 크게 기분 나쁘진 않아서 다행이잖냐. 외관은 볼만하니 말이야.”
모용진의 말에 홍련은 고개를 숙였고 양양은 크게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는 기분 나쁘다고 얼굴에 주먹을 꽂았으면서…….”
“그건 네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못생긴 남자 얼굴이 있으면 누가 좋아하겠냐?”
모용진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홍련의 인사를 받아 주더니 옷매무새를 고치기 시작했고 그사이 홍련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용진의 세안을 위해 뜨거운 물을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자연스럽게 둘만 남은 모용진과 양양.
눈치가 없진 않았던 양양이었기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모용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 어떻게 할 생각인지.”
“뭘?”
“홍련 언니에게도 고독을 먹였다며. 대체 은월령에 무슨 짓을 할 생각인 거야?”
“흐음. 그래도 네가 언니로 모시는 사람의 주인인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되나? 더군다나 나는 네 목숨을 쥐고 있는 사람인데?”
“상관없어. 내 목숨 따위. 언니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게 바로 나니까.”
“뭐, 매일 밤 몸을 섞은 사이니 이해해 줄게.”
모용진의 말에 양양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지더니 옆에 있던 목침(木寢)을 모용진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모용진이 그걸 맞을 리는 없었고 가볍게 목침을 피한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양양이 잠시 씩씩거리며 이불을 손에 꽉 쥐더니 그것을 품에 파묻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럼 나로 만족해.”
“뭐?”
“나로 만족하라고!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테니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대신 우리 언니 풀어 줘.”
한껏 붉어진 얼굴로 양양은 악을 쓰듯 제안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용진의 거절이었다.
“아니, 그건 안 되겠는걸. 홍련은 이미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려서 말이야. 너 하나로는 부족하지.”
“그럼 뭐 어쩌려고! 너 설마 우리 언니랑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야?!”
촤아악!
그 순간 바깥에서 뭔가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고 놀란 모용진이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곳에는 바지에 뜨거운 물을 잔뜩 쏟은 채 손에 대야를 들고 있는 홍련이 있었다.
온몸에서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는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 모용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겨, 결혼…….”
“저기, 괜찮아……? 뜨겁진 않고?”
“아! 넵, 괜찮습니다.”
괜찮다며 홍련은 황급히 문을 닫았고 놀란 모용진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뭐야……?”
* * *
이상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아침.
모용진이 간단한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련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동하시죠.”
“그래.”
서련과 모용진이 그날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날 저녁 모용진은 섬서에서 감숙으로 넘어갔고 근처 마을에서 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반복.
왜냐하면 감숙은 청해의 위를 둘러쌀 만큼 기다란 형태였고 월곡(月谷)은 마교가 있는 신강과 청해의 사이인 감숙의 끄트머리 쪽에 위치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위가 심해지고 산새가 험해지자 말은 더 이상 쓰지 못했고 근처에 마을도 없어 산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눈 덮인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맑은 새소리에 눈을 뜬 모용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품 안에 잠들어 있는 양양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진짜 이 정도면 얘는 기인(奇人)이 아닐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모용진의 품.
그것도 심지어 홍련이 또 그의 품에 파고들까 봐 일부러 제일 멀리서 재웠는데 양양은 마치 아기 새처럼 가장 따뜻한 곳을 찾아온 듯한 표정으로 모용진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모용진의 말에 먼저 일어나 있던 홍련이 양양의 뒷덜미를 잡아 들더니 그대로 눈이 가득 쌓인 눈밭에다가 던져 버렸다.
“앗, 차가!”
그 차가움에 양양이 잠에서 깨어나자 비사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오늘 오후쯤이면 월곡에 도착할 겁니다.”
출발과 동시에 들려온 홍련의 목소리.
모용진은 그녀의 목소리와 동시에 어제와는 약간 다른, 경계의 시선을 느꼈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는 비사대들의 시선에 모용진은 은월령이 가까워짐을 피부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가 극에 달했을 때.
모용진은 월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월곡은 모용진이 상상한 것이랑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월곡이라는 마을에는 커다란 불이 일어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병장기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뭐…… 뭐야!”
깜짝 놀란 듯한 비사대의 반응.
홍련과 양양 역시 그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놀라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모용진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모용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 집안에서 엄마가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뛰어나왔고 그 뒤를 따라 험상궂게 생긴 남성이 검을 들고 아이를 안은 엄마를 뒤쫓았다.
살기로 가득한 그의 눈빛.
비사대와 홍련은 너 나 할 것 없이 곧바로 그에게 뛰어들려 하였으나 발도 다 떼기 전에 멈춰 서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미 그곳에 모용진이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뭐야. 죽고 싶……!”
콰작!
이는 단순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얼굴 전체가 함몰되며 강인한 힘에 목뼈가 다 부러져 뜯겨 나가는 끔찍한 소리.
하지만 모용진의 몸에는 단 한 방울의 핏방울도 묻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부인?”
“감…… 감사합니다.”
모용진이 직접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뒤쪽으로 피신하라며 비사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살아남은 마을 주민은 이쪽으로 보낼 테니 양양과 서련은 남아서 이곳을 지킨다. 나머지는 날 따라와.”
“왜 저희가 당신의 명령을…….”
모용진의 명령에 서련이 반발하려던 그 순간 또 한 명의 도적이 모용진의 뒤를 노리고 나타났다.
정확하게 모용진의 정수리를 노리고 휘둘러진 검.
하지만 그 검은 백색의 장벽에 가로막혀 박살이 났고 깜짝 놀란 도적의 턱에 모용진의 팔꿈치가 작열했다.
콰직!
그 한 방에 턱뼈가 모조리 박살이 나며 도적은 즉사했고 이는 모용진이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월곡은 은월령의 마을 아닌가? 너희가 아니면 누가 여기를 지키지?”
* * *
“몽땅 뒤져라! 마을 내를 샅샅이 뒤져 모두 몰살하는 것이다!”
흑천의 제오장로 도손.
그는 오기전이 죽은 후 새롭게 오장로에 앉게 된 인물로 오늘은 그의 첫 임무를 수행하는 날이었다.
그가 도원영에게 받은 임무는 바로 감숙에 위치한 월곡이라는 마을을 습격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은월령을 찾아내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사실 도원영은 마을 주민을 모두 학살하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지만 귀찮은 게 싫었던 도손은 부하들에게 마을 주민의 전원 사살을 명했다.
그렇게 벌어진 끔찍한 학살의 현장.
월곡의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무림과는 먼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그런 그들이 흑천의 정예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 죽이다 보면 언젠가 나오겠지. 어떻게 생각하냐, 아우야.”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마을이 워낙 넓고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어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시간문제지요.”
도손이 아우라고 부르는 이는 도손이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그의 진짜 동생인 도곤이었다.
두 형제는 웃으며 철퇴를 휘두르더니 공포에 질려 구석에 몰려 있던 사람들을 일제히 사살했다.
콰직!
철퇴에 사람이 찢겨 나가는 끔찍한 광경.
하지만 그들은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부터 유명한 살인마였고 잔인하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흑천의 한자리에 오른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다음 집을 향해 이동하려는 그때.
부하 한 명이 도손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더니 그의 앞에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그게 지금 마을 입구에서 웬 고수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 빠르게 진격하여 이곳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수라는 말에 도손과 도곤은 크게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형님, 놈들이 드디어 나타났나 봅니다.”
“그래, 아우야.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일이 쉽게 풀리겠구나!”
둘은 서로를 보며 크게 웃어 젖히더니 부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놈들은 어디 있느냐. 이 도손과 도곤이 직접 그곳으로 가 상대해 줄 터이니. 즉시 안내하라!”
도손의 말에 부복했던 부하가 일어나려는 그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부하의 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군. 너희가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핏물을 밟으며 도손의 앞에 나타난 남성.
그는 바로 모용진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매우 분노한 듯 온몸에서 거침없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둘 중 누구부터 찢어발겨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