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3
광마전생 (93)
혼인.
그것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큰 의미가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지금 모용진이 그 중요한 것을 당철삼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이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혼인에서 당철삼이 얻는 것은 안정감 하나가 아니었다.
한때 천하제일인이 사위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씨앗을 자신의 가문의 아이가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천기린은 대외적으로 모두가 쉬쉬하는 존재였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의 실력과 천재성은 분명한 것이었기에 명문세가들은 뒤에서 그의 씨를 얻고자 어떻게든 혼인을 시키려 노력하였고, 사천당가 역시 독봉(毒鳳)이라 불리는 당철삼의 막냇동생인 당이진을 시집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 천기린은 혼인에 관심이 없다며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알아서 사위로 들어오겠다니 이는 당가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기회였다.
게다가 지금 그는 통합무림과 맞설 생각으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그 가치는 더더욱 올라갔다.
“저, 정말인가? 혼인을 맺겠다고?”
“예. 사천당가 정도 되는 큰 세가라면 적절한 나이의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있지만…… 크흠, 그분이 살아 계시다면 지금 나이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환생을 하셨고 현재 나이는 약관이 조금 넘었습니다. 신체상으로도 외모적으로도 그리고 실제 나이로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천기린이 무척이나 젊다는 말에 당철삼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달았다.
너무나도 달았다.
달다 못해 그 풍미가 코끝을 자극하는 듯한 느낌.
이렇게 자극적이고 달달한 제안은 살아생전 처음인 당철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조금 더 의심이 갔고 사천당가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는 신중해야만 했다.
“그렇게 바로 고민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제가 드린 제안의 답은 그분께서 직접 듣겠다고 하셨습니다. 열흘 정도 뒤에 방문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때까지 저도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겠습니까?”
열흘이라는 시간.
그것은 당철삼에게 있어 충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제안을 건네 온 진유혼이 그 시간 동안 머무르겠다고 하니 이는 당철삼에게 사용할 수 있는 인질이 생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당철삼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머무르시게, 소문주. 우리 사천당가는 그대를 환영한다네.”
* * *
문이 열리고 등장한 여성.
그녀는 정말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길고 풍성한 신비한 분홍색 머리카락과 여성치고는 꽤나 큰 키.
매끈하고 새하얀 다리와 튼실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하체와 잘록한 허리.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엄청난 것은 그녀의 상체였다.
흘러내리는 듯한 커다란 가슴과 그것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하늘하늘한 무복.
그 사이의 골짜기는 너무나도 깊었지만 그것이 흉측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너무 정확하게 묘사한 것 같지만 천 년 묵은 요녀(妖女)가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 얼굴을 여우 가면으로 가리고 있으니 더욱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아,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너무 빤히 보고 있었는지 그녀의 말에 나는 재빠르게 사과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흑련의 소검이었다.
“무례한 놈!”
카앙!
하지만 홍련이 나서서 그녀의 검을 막아 냈고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령주로 보이는 여성이 어느새 그 사이로 끼어들더니 둘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 떨어뜨렸다.
“홍련 그리고 흑련. 싸우는 건 나중에 해도 좋으니 둘은 이만 물러나세요. 저는 그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하지만 령주님!”
“명령입니다, 흑련.”
명령이라는 그녀의 말에 흑련은 잠시 움찔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섰으나 홍련은 가만히 있었다.
“홍련?”
“령주님, 죄송하지만 전 이제 은월령의 비사가 아닙니다. 여기 계신 모용진 대협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양양의 보고가 사실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 홍련이…….”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 령주는 내 두 눈을 응시하더니 옅은 미소를 흘렸다.
“그 목석 같은 홍련을 홀리시다니. 모용진 대협이라고 하셨나요? 대체 어떤 요술을 부리신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마치 요술 같았다.
뭔가 홀리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
천 년은 무슨, 만 년은 먹은 요녀였군.
“요술을 부리진 않았습니다. 그저 실력으로 그녀를 차지했을 뿐이죠.”
“그렇군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할까요?”
그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려 하자 홍련도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란 명령을 내렸다.
홍련은 이제 은월령의 사자가 아니니 상관이 없다고 하였지만 저 령주가 단둘만의 대화를 원했으니 그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굳이 홍련을 데리고 들어가 대립각을 볼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흑련에게 한 번 더 몸수색을 당한 후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은 또 다른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었다.
나무를 파서 만든듯한 공간에 박혀 있는 여러 야광주들.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령주는 아래로 이어진 통로로 안내했고 그 통로를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천장에서 엄청난 물이 흐르는 동굴에 도착해 있었다.
“오…….”
자연이 만든 놀라운 광경에 감탄하며 물줄기를 보고 있자 령주가 그 물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곳은 아까 바깥에서 보신 폭포수의 뒤쪽입니다. 그리고 제 쉼터이자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기도 하죠.”
세차게 내려오는 물줄기 사이 사이로 갈라져 들어오는 햇빛.
이런 장관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짚으로 만든 푹신한 방석.
나를 방석에 앉힌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반대편 맨바닥에 다소곳이 자리했다.
차 한 잔 없는 어색한 분위기.
그녀와 마주하자 눈을 둘 곳이 마땅히 없던 나는 괜스레 떨어지는 폭포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아주 예의가 바르신 분이군요. 양양의 보고로는 후안무치하며 색골에다 음탕하기 그지없다고 그러던데.”
“왕세진…… 아니, 양양 그놈이 그렇게 보고를 올렸습니까? 하하. 누가 할 말을…….”
“그보다 이여립…… 아니, 모용진 대협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미리 조사는 했지만 이여립은 도중에 만들어진 이름과 신분이었고 모용진이라는 분은 이미 죽은 분이더군요.”
“역시 은월령이군요. 그런 정보까지 모두 꿰뚫고 있을 줄이야. 그럼 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으시겠군요.”
“물론이죠. 백호비무제의 우승자이자 홍련을 제압한, 최소 화경을 뛰어넘는 상당한 무공을 가진 실력자이시죠.”
가볍게 미소를 지은 것뿐인데 령주의 미소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여우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작은 입술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줄이야.
웬만한 심계에는 전혀 휘둘리지 않는 나인데 대체 무슨 술수를 쓴 거지?
나는 뛰어오르려는 심장을 간신히 누르며 몸 전체를 내기로 휘감았다.
청아한 느낌과 함께 또렷해지는 머리.
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이는 나를 다른 의미로 가슴 뛰게 만들었다.
아직 내가 모르는 무공이 있었을 줄이야.
“그 예전의 정보는 받지 못하셨나 봅니다?”
“어떤 정보를 말씀하시는 거죠?”
“제가 모용진이기 이전의 정보 말입니다.”
놀랍게도 그 양양도 목숨은 아까웠는지 내가 미리 일러 뒀던 말을 지킨 듯했다.
령주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전에 우선 서로 통성명부터 하죠.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령주님의 이름 정도는 저도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이런 결례를……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성아. 류성아라고 합니다. 이곳 은월령을 관리하고 있는 령주입니다.”
“이쁜 이름이네요. 그런데 혹시 령주님, 천기린이라는 이름 들어 보셨습니까?”
갑자기 내 입에서 천기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령주는 살짝 놀란 듯 움찔거리더니 말똥한 두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이름을 어찌……”
“아까 궁금해하셨던 저의 과거. 제가 그때에 쓰던 이름이 바로 천기린입니다.”
“아…….”
짧은 감탄사와 함께 령주는 동명이인이겠거니 하는 표정을 지었기에 나는 대놓고 그냥 못을 박아 버렸다.
“무림맹주로 있던 시절 은월령의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하던 소피두. 그 소피두를 거두어들여 은월령을 무림맹의 비호 안에 있도록 한 자.”
내 말에 령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그 모습에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확실히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자라는 것을.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 * *
령주는 나에게 증명을 원했다.
내가 천기린이라는 증명을.
그래서 나는 천기린만이 알 수 있는 은월령의 비밀을 그녀의 앞에서 모두 나열했다.
소피두와 그의 딸인 소성성에 관해서도 전부.
은월신보와 은자검에 관한 것도 술술 나열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됐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정말로…… 그 천기린 님이신 겁니까?”
“만일 거짓이라면 내 혀를 베어 가도 좋습니다. 아직 더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았다면…….”
“아닙니다. 천기린 조사님.”
그 순간 령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나를 조사라고 부르며 크게 엎드려 절을 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성성 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분은 매번 말씀하셨습니다. 혹여라도 후일 천기린 조사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저는 지금 은월령의 령주로서 그분들이 못다 한 사과를 조사님께 전해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과라니요? 제가 사과를 받을 이유는 딱히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과의 절을 하는데 이렇게 요염하다니.
큼…….
그보다 사과라니 소성성이 내게 잘못한 것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과는 내가 해야 했다.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나는 은월령이 이렇게라도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소성성 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과 아버지는 은인을 저버린 천하의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선 일어나시지요. 그렇게 계시니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령주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아까 전보다 좀 더 정자세로 앉아 나를 쳐다봤다.
“그럼 우선 그때 은월령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어차피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은 편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 은월령의 개파조사님이신 분에게 높임말을 듣고 있자니 너무나도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자신을 편히 불러 주길 바랐고 도저히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만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반말을 하기로 했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