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4
광마전생 (94)
천기린이 음모에 빠져 죽임을 당하기까지 대략 오 일 전.
소피두는 이 사실을 미리 눈치채 버렸다.
무림맹 내부에서 이상한 흐름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은 정보였다.
처음에 소피두는 이 사실을 천기린에게 알리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에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만약 이번에 어떻게 무마된다고 해도 같은 일은 또 벌어질 것이며 천기린이 죽게 되는 날 은월령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피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월령과 함께 도망치기로 했다.
천기린이 그에게 은인이고 소중한 사람이긴 하나 은월령에 비할 바는 못 되었으니까.
그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죽음을 연기하고 딸인 소성성을 은월령의 령주로 세웠다.
아직 어렸던 소성성이 당연히 은월령을 꾸려 나갈 수 없었기에 무림맹의 심사를 받아 조직을 와해시켰는데, 은월령이 무림맹에서 사라진 그날이 바로 천기린이 죽임을 당한 날이었다.
이는 큰 도박이었지만 어찌 됐든 소피두는 은월령을 지켜 냈다.
그들이 처음 도피한 곳은 산동에 위치한 제남이라는 거대한 도시였고 그 이후로 산서 녕하를 걸쳐 비교적 최근에 이곳 감숙에 자리 잡았다.
“당시 어렸던 소성성 님은 아버지가 그러한 일을 벌였다는 것을 아버지가 역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남긴 유언장으로 알게 되었고 그땐 이미 조사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소성성은?”
“몇 년 전 사건으로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의 뒤를 따라 지금의 은월령의 령주가 되었습니다.”
“사건?”
“오륙 년 전 은월령 내부에서 큰 배신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소성성 님은 돌아가셨고 그분이 남기신 유언에 따라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렇게 말한 성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구석에 놓인 작은 소쿠리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왔다.
“이것이 소피두 님께서 남긴 두루마리입니다. 소성성 님의 유언은 글로 남겨져 있는 것이 없고 제가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 옆을 지켰기에 마지막 유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필체는 소피두의 것이 확실했고 이 두루마리 자체도 제갈벽운이 즐겨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 두루마리의 절반은 자신이 죽고 앞으로 은월령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적혀 있었고
놀랍게도 나머지 절반은 나에 대한 사죄로 가득했다.
그는 내가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속죄하기 위해 죽어서도 이 죄를 안고 지옥 불에 구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잘못되어 있었다.
“멍청하긴.”
이미 나는 그를 용서…….
아니, 그는 용서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난 그에게 그 어떠한 화도 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했다.
은월령을 위해서 그는 최선의 일을 한 것이고 그 결과 여기에 많은 후손들이 살아남아 있으니까.
“헌데. 내가 구두로 전하는 걸로 신뢰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내가 어떻게 천기린인 것을 장담하고 이런 것을 보여 주는 거지? 여기에도 그는 오래전 죽은 사람이라 하지 않았나.”
“소성성 님은 항상 제게 조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조사님은 누구보다 친절하고 착한 분이시며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어 절대 죽지 않으실 분이라고. 소성성 님은 절대 조사님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확실히 소성성의 눈에 난 그렇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때 소성성은 아직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리고 소성성이라는 이름도 오직 그분만이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소성성 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소성성이라는 본명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대외적으로 그분의 이름은…….”
“소성유였지.”
“맞습니다.”
내 대답에 성아는 빙그레 웃더니 조금은 편해진 듯한 표정으로 자세를 살짝 풀었다.
단순하게 자세를 살짝 푼 것뿐인데 그녀의 요염함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요염함은 여태껏 느껴 왔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까 전에는 그녀의 작은 손짓에도 마음이 동할 것처럼 흔들렸지만 이젠 그저 요염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뭔가가 있었나 보군.”
“예?”
“방금 전까지는 네가 어떤 행동을 하여도 무척이나 마음이 동하는 느낌이었다. 내 심계가 흔들릴 정도로 말이지. 하지만 이젠 네가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네가 무슨 술수를 썼다는 게 확실해졌구나.”
“아, 죄송합니다. 그건…….”
성아가 사용한 것은 ‘혹매이신절(惑魅珥伸節)’이라는 무공이었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귀걸이는 일종의 신기(神器)에 가까운 물건이었는데 내공을 담은 성아의 목소리가 그 귀걸이를 울리면서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무공이라고 한다.
그녀의 말로는 상대에게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무공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이는 요부가 사용하는 매혹술(魅惑術)에 가까웠다.
“나쁘진 않지만 내 심계가 흔들릴 정도로 강하니 상대가 남성이라면 진실을 말하기도 전에 네 몸에 위해가 가해질 듯한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사님이 보기에 많이 부족해 보일진 몰라도 저는 은월령을 지키는 령주. 제 몸의 안위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흠…….”
알고 보면 그 무공은 정확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그 무공을 사용하는 이가 류성아였기에 이런 매혹술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혹매이신절을 사용하지 않아도 내 눈이 저절로 그녀를 향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많은 미인들을 만나 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로서도 조금 놀라울 정도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은월령의 옛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져서 어두워지자 야광주가 밝히고 있는 내부로 들어가 안쪽에 마련된 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 식사를 들고 온 것은 양양이었고 그녀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나갔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내게 잠자리를 안내해 주려 했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듣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까 전에 말한 그 내부의 배신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아…… 그건 저희 내부의 문제였고 더 이상 조사님께 누를 끼칠 순 없습니다. 저희가 일으킨 문제이니 저희가 직접 해결해야 합니다.”
“넌 나를 조사라고 부르고 있지. 그런데도 난 은월령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저희는…….”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그저 은월령이 존재하고 있는지 단순히 알아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야.”
내 말에 식기를 치우던 성아는 살짝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여기에 찾아온 것은 너희를 나와 동등한 동료로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동등한 위치의 동료로서. 하지만 네가 스스로 아래를 자처하고 있으니 나는 이제 너희를 다시 내 아래로 들이고자 생각 중이다. 옛날 무림맹주였던 그때처럼 말이지.”
“저흴…… 거두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내가 중원에서 큰일을 도모하는 중이거든. 마일 내 곁에 은월령이 있다면 더 든든할 것 같아서 말이지.”
내 말에 성아의 눈동자는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사님을 단념시키려면 그 방법밖엔 없는 것 같으니까요.”
* * *
산동에서 산서로 그리고 녕하까지.
은월령은 무림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겼다.
하지만 기나긴 도피 생활에 하나둘 지치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하고 일어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당시 해사와 벽사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은월령 내의 남자들을 규합해 당시 령주였던 소성성을 암살하고 은월령을 불태웠는데 그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
계속해서 도망만 다니는 삶은 더 이상 싫다는 게 그들의 목소리였다.
급습을 당해 소성성은 죽었지만 애초부터 여성의 숫자가 많았던 은월령은 그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았고 삼 일이라는 긴 내전을 치르고 나서야 해사를 비롯한 남자들은 도망치듯 은월령을 떠났다.
“그래서 늑대 가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군.”
은월령이라고 해서 전부 여우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늑대 가면, 여자는 여우 가면을 썼고 너무 어려 아직 일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면을 쓰지 않았다.
아무튼 당시의 벽사와 지사는 전투 중 사망했고 그렇게 살아남은 비사였던 류성아가 새로운 령주가 된 것이었다.
“오늘 월곡마을을 습격한 자들 역시 그들이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라면?”
“저희를 배신하고 도망친 남자들의 리더. 해사 도원영입니다.”
“응?”
도원영이라는 이름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은 이름의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흑천의 도원영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 그것을 어찌…….”
많이 놀란 듯한 성아의 표정.
나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암행부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흑천에서 유일하게 알 수 없었던 인물 ‘도원영’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겐 엄청난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은월령을 내 품에 거두어들여야겠구나.”
“어째서입니까. 그들을 아신다면 그들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존재인지도 아실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아주 잘 알고 있지.”
왜냐하면 은월령을 손에 넣을 확실한 구실이 내게 생겼으니까.
“서로의 목적이 일치하는데 은월령의 조사인 내가 어찌 손을 놓고만 있겠느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성아와 하룻밤을 보낸 나는 기분 좋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문을 나섰다.
물론 그 하룻밤이 남자와 여자가 정을 통한 하룻밤은 아니었다.
매번 해 오던 행사와도 같은 회유의 시간이었지.
하지만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그 시선들 중에는 흑련과 홍련도 있었다.
“이런 파렴치한 놈…… 대체 우리 령주님께 무슨 짓을…….”
화를 참지 못해 부들거리는 흑련의 모습은 왠지 귀여웠기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린놈이 야한 생각을 그리하면 쓰나.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놈이 감히!”
어린애 취급에 화가 난 듯 흑련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으나 내 목에 닿기 직전에 멈춰 섰다.
“지금 무슨 짓입니까, 흑련. 검을 치우십시오.”
언제 뒤따라 나왔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나타난 성아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령주님…….”
“흑련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은 흑련이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제가 곧 설명해 드리죠.”
그렇게 말한 성아는 나를 보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내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은월령의 령주로서 령의(嶺議)를 개최함을 알립니다. 집합 시간은 오늘 해가 가장 높게 뜨는 정오 미시(未時). 각 사자들은 이를 모두에게 전달해 임무를 나간 이 외에는 모두가 시간 내에 모이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