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5
광마전생 (95)
령의.
그것은 은월령 내의 모두가 모여 은월령의 미래를 의논하는 회의였다.
이는 령주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열 수 있는 것으로 여태껏 단 한 번 소성성이 죽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 처음 개최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모용진도 은월령의 조사로서 참여할 수 있었지만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홍련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고 그렇게 지금 둘은 폭포수가 세차게 흐르는 물살 사이로 바깥 전경을 바라보며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님.”
“응?”
“정말로 그게 사실입니까?”
홍련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모용진은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은월령의 조사라는 거? 너도 비사이니 그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이 은월령을 처음에 만든 이가 소피두고 그를 데려와 정식적으로 무림맹의 부서로 만든 게 바로 나 천기린이라는 걸.”
“아뇨.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라…… 정말로 어젯밤 아무 일도 없으셨는지…….”
홍련의 관심사가 그것이라는 걸 깨달은 모용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한없이 무뚝뚝하면서도 너도 그 나이대의 여자가 맞긴 맞구나.”
“예…… 예? 아닙니다. 저, 저는 그냥 은월령과 주인님에겐 있어서 괴, 굉장히 중요한…….”
홍련은 무척이나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이제 스물네 살이 된 여성이었고 그 류성아 역시 고작 스물여섯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물여섯……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홍련은 둘째로 친다고 해도 류성아는 그 분위기에 비해 어려도 너무 어렸다.
마치 반로환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 요염함이 스물여섯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데 말이야.”
“예?”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별일은 없었어. 이야기를 좀 길게 나눴을 뿐이지. 너랑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말이야.”
모용진의 말에 홍련은 한숨을 돌렸는데 갑자기 왜 자신이 한숨을 돌렸는지에 대해 바로 고민에 빠졌다.
또 혼자서 끙끙대는 홍련을 보며 모용진이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조사님.”
“아. 끝났어?”
“예. 그런데 그것이…….”
성아의 어딘가 난감해 보이는 듯한 표정에 모용진은 곧바로 눈치챈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 그리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래, 내가 어디로 가면 되지?”
성아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산속.
온통 눈으로 뒤덮인 눈산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침엽수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모용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
“예. 특이하게도 여기 이곳에서만 대나무가 자랍니다. 그래서 저흰 이곳을 일종의 수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죠. 그나저나 조사님, 춥진 않으십니까?”
“아, 걱정 마. 이 정도 추위는 옛적에 극복해 냈으니까.”
확실히 모용진이 입고 있는 무복이 그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아 보이긴 했지만 애초에 그는 그 골짜기에서 한서불침(寒暑不侵)을 이룬 몸이었다.
그러니 고작 이 정도의 추위는 그의 몸을 얼어붙게 하진 못했다.
“그런데 나보다 너희 둘을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노골적으로 가슴골을 드러내고 있으면 추울 거 같은데”
“이, 이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저희의 의복이…….”
모용진의 말에 성아는 부끄러움을 타듯 얼굴을 붉혔고 홍련은 자신의 앞섬을 손으로 여몄다.
“뭐, 괜찮으면 상관없겠지.”
성아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복이라고 했지만 모용진의 기억에는 그런 의복을 지정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 눈요기로는 좋으니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모용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그때.
하늘에서 검은 인영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더니 정확하게 모용진의 코앞에 착지했다.
“왔군. 사기꾼 녀석.”
“역시 너였구나.”
모용진의 예상대로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흑련이었다.
흑련은 거리를 벌리며 재빠르게 대나무들을 밟고 올라가더니 주변에서 가장 높은 길쭉한 대나무 꼭대기 위에 올라섰다.
“은월령의 인정을 받고 싶다면 여기까지 올라와 내 시련을 받아라. 설마 이곳까지 올라오지도 못하는 삼류는 아니겠지?”
사실 저곳까지 올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삼류면 무림은 아마 삼류투성이일 것이다.
왜냐하면 저런 높은 곳까지 대나무를 밟고 올라서려면 절정의 다다른 고수도 어느 정도 긴 시간을 두고 감을 익혀야 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가 상대하려는 자는 모용진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아오른 모용진은 놀랍게도 그 높은 대나무 꼭대기까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올라섰다.
엄청난 강력으로 묘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여 준 모용진은 아주 부드럽게 흑련의 맞은편에 위치한 대나무 끝에 올라섰다.
“그래서 시련이 뭐지?”
“흥. 완전 삼류는 아닌가 보구나. 은월신보를 익혔다고 하더니. 그 도원영 패거리에게 주워 익혔나 보지?”
“아쉽게도 난 그놈의 얼굴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하, 발뺌하지 마라. 난 이미 양양에게 모두 들었으니까. 너는 흑천이라는 이름의 세력을 키워 스스로를 흑제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그 도원영이 만든 단체의 이름도 흑천이지. 모두 도원영과 네놈이 짜고 은월령을 위기에 빠뜨리려는 속셈이 아니더냐!”
“아, 우리는 흑천이 아니고 흑천파.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길래. 내가 그 도원영이라는 놈에게서 뺏으려고 그렇게 지었어. 흑천파와 흑제. 크…… 멋있지 않아?”
“흥. 네놈이 그 세 치 혀로 령주님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아. 그러니 얌전히 이곳에서 꺼져 줘야겠다!”
대나무를 발로 차며 허공으로 날아오른 흑련이 품에서 예리한 단검을 뽑아 들더니 모용진을 향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기를 머금은 단검은 단박에라도 모용진의 목을 가를 듯했지만 모용진은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끝났군!’
모용진이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았기에 단번에 그의 목을 벤 흑련.
그런데 그 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카앙.
‘서걱’과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아닌 철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
그 이상한 소리와 손의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고 있는 모용진이 있었다.
“어떻게……!”
“이제 갓 약관이라고 들었는데 엄청나게 강하군. 역시 은월령의 지사인가.”
여유롭게 목을 쓰다듬는 모용진의 목에는 작은 상처조차 보이지 않았다.
“네놈,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사술이라니. 이래 봬도 정파 무림맹의 맹주로 있었던 몸이거늘. 그나저나 이건 일방적으로 내게 불리한 비무가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대나무 위에서 싸우는 게 곤란하다거나 그런 건가?”
“아니, 뭐…… 이런 곳에서의 비무는 새로운 느낌이라 좋지. 다만 내가 말하는 것은 서로 이익이 맞지 않다는 뜻이야.”
“이익?”
“우선 나는 지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지. 방금 전의 일격으로 확실하게 깨달았어. 네가 날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걸. 그런데 나는 지금 널 죽일 생각이 없으니 서로 걸고 있는 것에 차이가 있지 않나?”
모용진의 말에 흑련은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흥. 웃기는군. 그럼 네놈도 날 죽이면 될 것 아닌가?”
“아니. 그건 아니지. 사실상 이 비무도 네가 일방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너도 하나쯤은 양보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놈의 혀가 길긴 길구나. 그래, 무슨 조건을 원하지?”
흑련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모용진이 피식 웃더니 자신이 밟고 있는 대나무를 발로 두어 번 내려찍었다.
“나는 이 비무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어. 그리고 그 어떠한 물리력도 사용하지 않을 거야.”
“뭐……?”
“날 쓰러뜨릴 수 있다면 마음대로 공격해도 좋다는 뜻이지. 나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을 테니까. 대신 네가 날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넌 내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
모용진의 말을 들은 흑련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기가 찼다.
아무리 그녀가 홍련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초절정의 끝에 달한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이기겠다는 것은 농락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 좋아. 받아들이지.”
“소원이 뭔지 궁금하진 않아?”
“궁금할 게 있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나무 두 개를 이어 밟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흑련.
그 높은 상공에서 날아오른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매와 같았다.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을 하지 못할 테니 말이야.”
* * *
“드디어 올 게 왔군요.”
“군사님의 예상이 정확했던 것 같습니다.”
녹수각의 꼭대기 층.
이제 총군사인 제갈영의 방이 된 그곳에 조종려가 찾아왔다.
흑천파의 제일장로이자 장강의 지배자이기도 하고 흑천파의 모든 문파원들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스승이기도 하여 흑천파에서 가장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가 제갈영을 찾아온 것은 바로 흑천에서 날아온 서신 때문이었다.
그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사문방(死門房)에서 그대들을 몰래 칠 준비를 하고 있소. 우리 흑천의 의지에 따르지 않는 그들의 행위에 흑제께서 많이 화가 나 장강을 돕고자 하니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부탁드리오.」
사문방은 흑도들 중에 꽤나 규모가 있는 곳으로 흑천의 여섯 번째 장로인 허무도라는 자가 방주로 있는 곳이었다.
그는 흑도 중에서도 손꼽는 실력자 중의 하나로 장강왕 조종려와 시귀(屍鬼) 독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경의 고수였다.
“장강은 예상대로 사문방이군요.”
“녹림도 같은 서신이 왔습니까?”
“예. 그 대상은 흑룡파(黑龍派)입니다.”
조종려의 물음에 제갈영이 녹림에게 온 서신을 내밀었고 그것을 펼쳐 본 조종려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문방이 흑룡파로 바뀐 것 이외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예. 아마도 사문방과 흑룡파도 똑같은 서신을 받았을 겁니다. 다만 그들은 저희와 달리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겠죠.”
“부군사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사흘 전에 하오문으로 가셨습니다. 잠시 돌아가 봐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고 오늘 아침 서신이 왔습니다.”
“설마…….”
“예. 독약전(毒藥殿)이라고 하더군요. 애초에 이 서신은 하오문에서 전달된 것이니 아마 그 일 때문에 불려갔던 것이겠죠.”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조종려가 턱을 쓰다듬더니 잠시 후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빠져 있습니다.”
“시귀 독진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예.”
“그 사람은 애초에 소속된 곳이 없었으니 나중에 처리하거나 흑천에서 직접 제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군사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달라는 것을 보면 그다지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우선 어찌 보면 이번 일은 저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나쁜 것이 아니다?”
문파 간의 전쟁을 하라는 것인데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제갈영의 말에 조종려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제가 흑도들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제가 말하는 것은 저희의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