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131)
마법은 괜히 배워서-132화(132/502)
# 132
밤이 오면 1
여관방에 누워 있는 레기온은 속이 쓰렸다.
마크를 동원해서 스캔을 펼쳤지만 다크 엘프 꼬마는 찾을 수가 없었다.
“너 이 새끼, 엎드려! 너도 그 꼬마와 같은 다크 엘프지!”
엄한 헤일러에게 화풀이를 했다.
“사장님, 하지만 그건 원래 다크 엘프 종특이라니까요!”
헤일러도 뻐팅겼다.
아, 다크 엘프는 원래 종특이 사람 물건 훔치기냐고 따졌더니, 성인이 될 때까진 좀 그렇단다. 그래서 다크 엘프는 자식을 낳으면 지갑이나 귀금속을 숨기는 것에 천재가 된다나 뭐라나.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지가 한 일도 아닌데 때리기도 뭣해서 그냥 놔뒀다. 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왔삼.
마크가 말했다.
“알고 있어.”
다행히도 화를 풀어 줄 상대가 알아서 오고 있었다.
-인원이 제법 됨.
“알고 있다니까.”
레기온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요사이 돌아다니느라, 그리고 결정을 만드느라 미스릴을 많이 먹진 않았지만, 어느새 105가 된 지능 덕에 제법 잔머리가 돌아간다.
아침에 만났던 그 착한 산적 놈들.
뭔가 수상한 이 영지.
그리고…….
산드라 블록.
산적 놈들도 마약을 꽤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놈들에게도 마약을 공급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고, 산드라 블록의 말에 따르면 이 영지에 그런 길드의 숫자는 열. 제법 큰 영지지만 그걸 감안해도 많은 숫자다.
산적들은 그놈들뿐일까?
영지 내에 그런 길드가 열이라면, 영지 주변에 그런 산적단도 열이 넘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 백작령이 지나치게 어수선합니다.”
하인츠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백작님이 그렇게 되신 이후, 세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백작이 사라지자 숨어서 꿈틀대던 나쁜 놈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는 하인츠의 말. 그리고 이어진 위의 상황. 거기에 지금 오고 있는 놈들…….
확실하다.
이거…… 돈이 된다.
뒤셀르프 산맥 헤집기 싫어서 꼼수로 우회를 하려고 동남쪽으로 돌았더니, 생각보다 대어가 걸려들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갈 순 없지.
-어쩔 생각이삼?
“뭘, 어떡해. 일단 오는 놈들 붙잡아 놓고…….”
-놓고?
“하인츠에게 넘겨 버리지 뭐.”
-오호! 그거 괜찮은 생각임. 귀찮은 일은 넘겨 버리고, 생색은 내고.
“맞아.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후후후! 오랜만에 아마존에도 보낼 것이 생기니, 좀 좋아?”
레기온은 찬찬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놈들의 인기척이 옥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 * *
“헐!”
마약 길드원들이 옥상 문을 열려다가 레기온과 눈을 마주치곤 깜짝 놀랐다.
“어라? 니들 왜 같이 있냐?”
얼굴이 심하게 망가진 산드라 블록이 산적 두목과 함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냥 황소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너 이 새끼! 너였구나! 네가 이쪽까지 건드린 놈이었구나. 큭큭, 잘 걸렸다.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라.”
“흠.”
레기온은 턱을 매만졌다.
레기온은 황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뉴페이스가 오길 원했는데, 좀 아쉽긴 하네. 그래도 뭐, 괜찮겠지.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아주 대놓고 말한다.
“뭐?”
칼을 든 스물셋 길드원들은 레기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뒤의 산적 스물도 막상 다시 레기온을 보자 겁에 질린 모습이다.
“자, 너희들 내 말 잘 들어.”
“무슨 헛소리냐!”
“쉿,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조금만 기다려. 일단 내 말부터 들어 봐.”
레기온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다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 돼지, 존재감이 상당하다. 조금 전 보여 줬던 실력도 그렇고……. 이래저래 곤란하고 찜찜한 기분이긴 한데, 이럴 때는 분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잠시 기다려 보는 게 좋다는 걸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와의 줄다리기는 황소한테 맡기고.
처맞더라도 황소가 맞도록…….
“자자, 잘 들어. 일단 무기부터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러면 무서운 일이 생길 거거든.”
레기온이 손짓을 하며 설득조로 말했다.
“무슨 말이지?”
“야야, 황소야. 너는 말이 너무 짧은 게 흠이야. 그렇게 말 함부로 하다가 큰일 난다고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냐.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와 보래도 그러네.”
레기온이 더 살갑게 입을 뗐다.
“너희들이 잘 모르는데,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을 해야 할 거야. 안 그럼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이 날 테니까. 알겠지?”
“뭐?”
“이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이런 미친 새끼, 그냥 뒈져!”
화를 참지 못한 황소가 장검을 들고 휘둘렀다.
레기온은 움직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이딴 대충 휘두른 검에 생채기가 날 자신의 머리가 아니다. 레기온은 검이 날아오는 궤적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오히려 놀란 것은 황소다.
“으힉!”
적어도 죽일 마음은 없었던 황소가 검을 휘수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검은 정확히 레기온의 정수리를 내리쳤고, 꽝! 소리와 함께 장검의 날이 반으로 부러져 허공으로 날아갔다.
길드원들은 허공을 날아가는 검날에 시선을 빼앗겼다.
황소는 자신의 부러진 검을 바라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기온은 검날이 부딪쳤던 부위를 쓱쓱 문지르고는 황소의 앞으로 다가갔다.
황소는 뒷걸음질 쳤다.
“너, 너, 도대체 뭐야?”
“괜찮아, 긴장하지 마. 뭘 이런 걸로 놀래고 그래. 자자, 다시 모여 봐. 에이, 오라니까 그런다.”
황소는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그의 동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조금 전의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검을 받아 내는 머리라니.
길드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레기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신 그러지 마. 이제부턴 말로 안 끝나.”
길드원들은 레기온 주위로 점점 모여들었다.
“여기 있는 놈들 한 놈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
레기온은 품에서 중철 스태프를 꺼내며 말했다.
누구에게 말하는 거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장님.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자네 손을 지져서 어디다 써. 그냥 감봉이야.”
“허걱.”
레기온의 말에 스틸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리 다급한 느낌은 아니었다.
길드원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 어느새?
건물 네 모퉁이를 네 명의 남녀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크 엘프로 보이는 사내는 자신들을 향해서 화살을 겨눴다.
그들이 올라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문득 이거 일이 잘못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굴리지 마라.”
레기온은 씨익 웃으면서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빠아아아악!
30킬로그램이 넘는 중철 스태프가 그들의 턱을 강타했다.
* * *
“으아아아악!”
황소는 등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나가떨어지더니, 그 뒤에 다시 셋이 나자빠졌다. 멍하니 있었더니 곧 셋이 또 당했고, 그 뒤로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괴, 괴물이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다.
몇 명의 공격이 성공했나 싶었는데, 저 돼지가 대충 휘두른 팔에, 대충 내민 뱃살에, 대충 들이민 머리통에 무산됐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으아아악!”
마지막 동료가 쓰러졌다.
그 역시 이마가 장렬하게 깨졌다.
도대체 왜 마법사 무기인 스태프를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스태프처럼 보이는 그냥 몽둥이인가?
스태프와 부딪친 검의 칼날도 모조리 부러졌다.
“으아아아악!”
비록 이곳이 옥상이지만.
황소는 몸을 날렸다. 기껏 해 봤자 다리 하나 부러지겠지.
하지만-
쾅!
황소는 허공에서 뭔가에 부딪쳤다.
너무 전력을 다해서 뛰었기 때문일까. 그의 의식은 그대로 끊기고 말았다.
“쯧쯧, 뭐야. 왜 도망치지 말라고 쳐 놓은 결계에 알아서 부딪치는 거야. 안 보이나?”
미즈셋은 허공을 휘휘 저었다.
희미한 막이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어쨌든…… 모두 잡았습니다. 사장님.”
미즈셋은 스태프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는 레기온을 보면서 말했다.
* * *
철컹철컹-
황소는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창문 사이로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 난 아직 살아 있구나. 다행이다.’
어떤 방 안이었다.
침대가 보인다. 몇 가지 단출한 가구도 보였다.
벽에는 시그널 영주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평범한 영지의 가정집으로 보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동료들도 깨어났다. 그들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몇몇은 심하게 목이 타는지 작게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그들의 기침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깜짝 놀란 동료들이 기침을 한 사내를 노려봤다. 기침을 한 사내는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한 번 흘러나온 기침을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어떤 반응은 없었다.
“감옥은 아닌 것 같은데.”
황소는 팔과 발에 묶인 쇠사슬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무겁지는 않았다. 이 정도 무게라면 조금만 신경 쓰면 끊고 도망을 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어억.”
일어나는 순간 엄청난 무게가 그의 다리를 잡고 밑으로 이끌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움직이려고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건…….”
“왜 그래?”
황소가 덜덜 떨자 동료들이 더욱 불안해했다.
“마법인 것 같은데?”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황소와 똑같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깜짝 놀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망했어.
우리를 죽을 거야.
그 미친 사이코들한테 잡힌 것이 분명해.
특히 그 뚱땡이.
사람 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이코가 분명하던데. 그 스태프를 봐. 그건 마법사가 사용하는 스태프가 아니었어. 그냥 때리기 좋게 만들어진 스태프였잖아.
우리는 맞아 죽을 거야.
황소와 동료들은 끝내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그것보다……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구석에서 한 녀석이 말했다.
“뭐가?”
황소가 대꾸했다.
“이, 입김이…… 나와.”
황소와 동료들은 화들짝 놀랐다.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였다. 새벽에 아무리 온도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김이 나온다.
“헐! 이게 무슨 일이다냐!”
“조용히 해라.”
순간 어디선가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이 너무 차가워서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피부에 서리가 붙기 시작했다. 오한을 느끼며 그들은 손바닥으로 팔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거 오랜만에 재미있군.”
뼈의 손이 벽을 쑥 뚫고 나왔다.
뼈의 손을 본 황소와 동료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겁을 하고 말았다. 몇몇은 바닥에 그대로 오줌을 지렸다.
“너희들의 두려움이 나에겐 힘이 되지.”
뼈의 손을 가진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를 깊게 걸친 채, 허공에 둥둥 떠서 사이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압도적 존재감의 해골이 눈에 들어왔다.
그 초월적인 모습에 다들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리, 리치?”
황소가 짜내듯이 내뱉었다.
리치 마몬의 해골 입이 들썩거렸다.
“그래, 나는 리치다.”
리치 마몬은 황소와 동료들의 중심에 섰다.
그를 바라보는 황소와 동료들의 표정은 아예 얼이 빠져 버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리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치 마몬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투명한 쇠사슬이 날아와 황소와 동료들의 목에 채워졌다. 깜짝 놀란 그들은 투명한 쇠사슬을 잡고 흔들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로 머릿속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내가 묻는 것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마몬은 황소와 동료들을 조용히 훑어봤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언데드로 만들어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