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162)
마법은 괜히 배워서-163화(163/502)
# 163
죽음의 도살자 1
시그널은 관자놀이를 쿡쿡 눌렀다.
대주교가 그에게 내린 명령…….
“내가 할 일이 있어, 잠시 떠나야 하니, 내 아내가 될 사람을 잠시 네가 보호하고 있도록 하라.”
그렇게 대주교와 호위전사들이 돌아갔다.
시그널 자작은 대주교의 말을 추호도 어길 생각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곧 스톤 헤드교가 대륙을 지배할 날이 온다.
그때를 생각하자면 더욱더 교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다크 엘프 마을에서 당한 수모도 있잖은가? 이번에 미즈셋을 모시는 일은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큰 기회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미즈셋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춤도 췄다.
대주교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유지하라.”
망했다.
시그널 자작은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 치우고 있는 미즈셋을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단 며칠 사이에 미즈셋은 5킬로그램을 살이 쪘다.
단순하게 잘 먹는 것만이 아니다.
오직 비싸고 맛있는 음식만 먹는다.
시그널 자작조차 잘 먹지 못할 랍스타를 대충 먹고 버린다. 수많은 살점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까워 미치겄네!
저 상태로 대주교에게 미즈셋을 데리고 갔다가는…… 사지가 잘려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만 먹게 해!”
시그널 자작은 음식을 나르는 시녀들에게 버럭 외쳤다. 시녀들은 겁을 먹은 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음식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미즈셋 님께서 화를 내세요.”
“그깟 화 좀 내면 어때?”
“괜찮으시겠어요?”
“뭘?”
“미즈셋 님께서 ‘시그널 자작이 날 미치도록 구박했사옵니다. 너무 서러웠습니다.’라고 말을 하셔도?”
시그널 자작의 앞이 깜깜해졌다.
미래가 끔찍하다. 그런 말이 대주교 귀에 들어갔다가는 암흑 마신의 먹이로 던져지고 만다.
“그럼 칼로리가 낮은 음식으로 가지고 들어가. 운동 좀 시키고.”
“당이 떨어지면 안 된대요.”
“누가?”
“미즈셋 님이요.”
“으아아아악!”
시그널 자작은 다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뭐, 저런 년이 다 있냐. 아니 대주교가 나를 싫어하나? 왜 저런 년을 데리고 와서 내 목을 날리려고 하지?
“무조건 살을 빼게 해야 돼. 저 상태로 대주교한테 갔다가는 내가 죽어.”
시녀는 ‘안녕히 가세요. 영주님.’이라는 눈빛으로 시그널을 쳐다봤다.
화가 치밀어 오른 시그널은 시녀를 죽일까 하다가 관뒀다. 차라리 시녀를 살살 구슬려 미즈셋의 살을 빼게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가 1킬로그램 빠질 때마다 5골드씩 주지.”
“5골드요?”
“그래.”
“흐음.”
시녀가 간을 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리도 침착하다니. 정말 담대한 년이다.
시그널은 결국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0골드.”
“알았어요. 최선을 다해서 미즈셋 님의 살을 빼 볼게요.”
어린 시녀는 시그널 자작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녀는 고기 종류 음식을 죄다 빼고는 과일로 쟁반을 채웠다. 그리고 미즈셋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시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그널 자작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미즈셋이 후궁으로 가든, 본교로 가든 저년만큼은 살려 두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그널 님.”
이번 다크 엘프 마을 침공 작전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기사 중에 한 명인 인스타가 시그널 자작을 불렀다.
“왜?”
시그널 자작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용병들이 꽤 많이 모였습니다.”
“얼마나?”
“대략 600명도 넘는 것 같습니다.”
“호오, 600명이나?”
“네.”
용병들의 숫자를 귀로 듣자 시그널 자작의 표정이 펴졌다.
이번 작전의 실패로 손해만 수만 골드다. 마약을 팔아서 번 돈 중 많은 액수를 날렸다.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릎 써야 했다.
“600명이라…….”
그 정도 인원이라면 충분히 손실을 메울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가 보자.”
시그널 자작은 기사 인스타를 데리고 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래, 시그널 자작이 곧 나타날 것이란 말이지.”
레기온은 지옥에서 돌아온 김 상사의 목소리로 말했다.
다산은 벌벌 떨었다. 도저히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다. 어디 가서 쫄아 본 적이 없는 자신이었는데, 이 목소리는 아예 버틸 재간이 없을 만큼 두려웠다.
지금 그가 이곳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여덟 아이들이 굶고 있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그렇습니다.”
다산은 간신히 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그럼 시그널 자작을 잡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전쟁 용병들인가.”
“네? 누구를 잡아요?”
다산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곳은 시그널 자작의 성이다. 즉, 그의 텃밭이란 말이다. 이곳에서 누굴 잡아?
시그널 자작을? 혼자서?
보통이라면 에라이, 미친놈, 하고는 침을 뱉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누군가.
죽음의 도살자가 아니던가.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다산은 이 남자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었다. 동료들과 눈을 맞춰 보니 모두 맞다고 한다.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
사상 최악의 살인마.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이 유명해진 것은 약 7년 전부터였다.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 소속인지 알려진 것도 없었다. 그의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남부에서 1천 명을 베어 죽였다더라.
중부에서 귀족을 죽이고 일가족을 몰살시켰다더라.
황금 기사단에 쫓겨서 죽었지만 부활을 했다더라. 사실은 인간계를 교란시키기 위한 마계의 악마더라.
등등.
진실로 판명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악명은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그를 봤다는 자의 증언이 하나같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은 2미터에 가까운 신장을 가진 거한이다.
또한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흑색의 갑주를 입고 다닌다. 이마와 어깨에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어서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공포스럽다.
누가 봐도 레기온이 입고 있는 철갑갑주와 아주 비슷했다.
덕분에 레기온은-
공포를 몰고 다니는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이 되었다.
물론 본인만 모른다.
돈데크만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른다.
“돈데크만…… 님.”
다산은 레기온을 불렀다.
레기온은 다산이 자신을 부르는지 몰랐다. 그저 시그널 자작을 어떻게 잡아야 미즈셋을 상처 없이 구해 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저…… 돈데크만 님.”
다산이 레기온을 다시 불렀다.
“응? 나를 불렀나?”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돈데크만이라니?”
레기온은 충혈 된 눈으로 다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산은 흠칫 놀랐다. 설마 내가 돈데크만 님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아니겠지?
“다, 다른 이름으로 부를까요? 원하시는 대로 부르겠습니다.”
“됐다. 그렇게 불러도 된다.”
“알겠습니다. 돈데크만 님.”
역시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다운 배포라고 생각했다.
그가 뜨면 영지의 모든 기사들이 집결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어떤 상대건 처리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정말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오늘 이자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난다면 다신 객기를 부리지 않으리라.
“정말로 혼자서 시그널 자작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다산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물었다. 시그널 자작의 영지다. 범의 아가리 속이었다. 여기서 말 한 마디만 잘못 새어 나간다면 자신도 죽게 된다.
위용이 대단한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만 살아남겠지.
“그래, 이제부터 놈을 잡겠다. 안내해.”
“제, 제가요?”
여기.”
레기온은 가죽 주머니 하나를 더 꺼냈다.
“100골드. 오늘 하루…… 네 목숨은 내가 사마.”
가죽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100골드.
다산의 입장에서는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을 하더라도 얻을 수 없는 돈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일을 하고서 100골드?
미리 받은 돈까지 합하면 110골드다. 정말 몇 년 만에 처자식에게 실컷 고기를 사 줄 수 있는 돈이었다. 아니 며칠이고 계속해서 사 줄 수 있는 돈이다.
100골드.
좋아.
다산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200골드 주십시오.”
“200골드?”
레기온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투구 속으로 비친 그의 눈매가 미세하게 변하는 것만으로도 다산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최소한 제 목숨이 100골드보다는 높다고 생각됩니다.”
다산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했다.
돈데크만이 소문대로 악명이 자자한 자라면 여기서 목이 날아간다.
하지만 조금 겪어 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해서 인생 최대의 주사위를 던졌다. 그에게 200골드는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그러나 돈데크만에게 200골드란 그리 크지 않은 돈이라고 확실했다. 200골드에 시그널 자작을 잡을 수 있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다산.”
“네, 돈데크만 님.”
“제법 강단이 있군. 네 목숨을 200골드에 사겠다.”
레기온은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숙인 다산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 * *
먼데이 치킨 용병단 단장인 라이스는 주위를 돌아봤다.
꽤 많은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얼추 셈을 해 봐도 600명이 넘는다. 백작가도 아니고 겨우 자작가에서 모집한 용병들이 이 정도로 많이 모이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있다면 하나.
돈이 되기 때문이다.
“승냥이 같은 새끼들.”
라이스는 콧방귀를 끼었다. 누군가를 친다, 누군가와 전투를 벌인다, 누군가와 사생결단을 낸다, 등등의 얘기는 어딘가로 흘러 나가서는 안 된다.
모두 기밀이어야 한다.
이런 얘기는 흘러 나가면 반드시 상대의 귀에 들어가고, 그쪽 역시 방비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쪽보다 더 많은 병력을 끌어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귀족들 간의 영지전에서는 비밀엄수가 필수다.
하지만 시그널 영주는 어지간히 속이 뒤집힌 모양이다. 아예 악마의 숲으로 들어가 다크 엘프를 몽땅 잡겠다, 라고 대대적으로 용병들은 모집했다.
기본 수당도 파격적인 액수였다.
단일 원정 20골드. 다크 엘프 외에 어떤 약탈도 허용. 사망 시 위로금 20골드 지급.
내전이 발발한다 하여 왕국 내에 입국한 지 반년이 지났다.
누구한테 붙을 것인지 미리 샘을 다 해 두었다. 내전이 발생하자마자 그 귀족에게 줄을 댈 생각이었다. 만약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용병들의 몸값은 좀 더 오른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한몫을 잡으려고 했건만…… 내전이 발생할 듯 말 듯. 아주 고요하기만 했다.
애가 타는 것은 왕국에 입국한 수많은 전쟁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자리를 잡은 영지에서 상당한 돈을 까먹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돈벌이를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크 엘프 마을에는 보물이 가득하다면서?”
라이스는 얼마 전에 합류한 비프에게 물었다.
실력은 용병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아마도 전직 기사가 아닐까 의심이 된다. 뭐, 용병의 과거는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니 ‘너 어디서 뭐하다 온 놈이야?’라고는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굉장한 경험치를 쌓은 인물이라는 것은 몇 번 얘기를 하다 보면 단박에 알게 된다.
“많지요. 마법과 정령을 다루는 일족. 숲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이들이라 보석이나 귀금속은 많지 않겠지만, 못지않은 진귀한 물물들이 꽤 많을 겁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라이스는 거칠게 자란 턱을 문질렀다. 생각보다 큰 건수가 될 것 같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200명 이상의 다크 엘프들이 주거하는 서식지라고 들었습니다. 꽁꽁 숨어서 사는 엘프족들이기에 그 정도로 큰 마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두당 100골드 이상은 얻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당 100골드 이상?”
“네.”
“아주 좋구만. 허허허허.”
비프의 말을 들은 라이스는 웃었고 다른 용병들은 환희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쿵~ 쿵~ 쿵~ 쿵~
그들을 향해서 일정한 울림이 들렸다. 방앗간에서 밀을 찧을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지진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라이스와 용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철갑을 입은 악마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