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164)
마법은 괜히 배워서-165화(165/502)
# 165
그녀를 구해줘 1
레기온의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다산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그는 서른이 조금 넘는 나이에 여덟 아이의 아비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눈치에 대한 스킬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났다.
그는 재빨리 레기온의 옆으로 가서 작게 속삭였다.
“저들은 돈데크만 님의 무용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
레기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무용을 보였어?
다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레기온이 대답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역시 죽음의 도살자.
피를 보지 않고서는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나까지 죽는다.
“제가…… 저들에게 한 마디를 해도 될까요?”
다산은 레기온의 철갑에서 뿜어 대는 살기를 가까스로 참아 냈다. 가까이만 있어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고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 무시무시해서 200골드고 뭐고 도망을 치고 싶었다.
그래도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 님은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만큼 쓸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존재가치를 보이지 않으면 200골드를 가진 채 죽을지도 모른다.
레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쟤들이 왜 저런지 좀 알아봐.
다산은 무릎을 꿇고 있는 라이스와 비프에게 다가갔다.
예전에는 쳐다보지 못할 만큼 높으신 양반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정한 강자 앞에서는 모두가 초라할 뿐이다.
“돈데크만 님은 매우 화가 나 계십니다.”
다산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뭐? 화가 나 계셔?”
깜짝 놀란 라이스가 고개를 들어서 다산을 바라봤다. 레기온과는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저 혈광을 두 번 봤다가는 악몽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겨우 말 한 마디로 항복을 받아 주실 거라 생각하신 것은 아니겠죠? 저분은 천 명을 벤 적도 있습니다. 영웅 혹은 대학살자라 불리시죠. 그의 눈을 들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는 정도라는 안 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라이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릎을 꿇은 이상 이미 기가 죽었다. 다시 무릎을 펴서 레기온과 맞상대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모두가 전멸을 당하지 않는 한, 그가 레기온을 향해서 칼을 뽑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물을 가져오셔야 합니다.”
“제물?”
“죽음의 도살자라는 칭호를 보세요. 저분에게서 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숙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제물이 될 만한 자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운이 아주 좋습니다. 가장 먼저 무릎을 꿇지 않았다면…… 어찌 될지 짐작이 가시겠죠?”
먼데이 치킨 용병단의 용병들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사내의 말대로다. 우리들이 가장 먼저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을 알아봤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자네는 누군가?”
라이스가 물었다.
“그저 무명소졸입니다. 이름을 밝힐 정도는 안 됩니다.”
“돈데크만 님과는 무슨 관계인가?”
“운이 좋아서 그분을 모시게 됐습니다.”
“아아, 그렇군.”
라이스는 다산이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의 오른팔이라고 받아들였다.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의 오른팔이라면……!
그 남자!
연쇄 살인마 잭 니처.
공식적인 기록만 스물다섯 명을 살해했다. 그럼에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의 오른팔이기 때문이다.
분명 굉장히 야비한 남자라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
라이스가 보는 잭 니처는 굉장히 차분하고 눈치가 빠른 인물이었다.
“신세를 지게 됐군.”
라이스는 검을 들고서 용병들에게 외쳤다.
“가자, 가서 우리의 실력을 보여 주자!”
그와 비프는 ‘쟤들 왜 저래?’라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던, 미찌코 런던 용병단 용병들을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침 잘 됐다.
어차피 저들과도 오랜 숙원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참에 미찌코 런던 용병단을 궤멸시키리라.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 님의 뇌리에 각인시키겠다.
“가자아아!”
“와아아아!”
“죽여라!”
죽음의 숲에 들어가 다크 엘프들을 생포하기 위해서 모였던 용병들이 느닷없이 칼부림을 하면서 전투를 시작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레기온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 * *
“이, 이 미친 새끼들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미찌코 런던의 단장인 압둘 자바는 전용무기인 시미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던 용병의 배를 갈랐다. 용병은 윽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피가 회색빛 바닥으로 되어 있는 연무장에 넓게 퍼졌다.
“야이, 개쉐야!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압둘 자바는 자신의 부하들을 무자비하게 도륙을 하고 있는 라이스를 향해서 시미터를 가리켰다.
먼데이 치킨 용병단과 미찌코 런던 용병단은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이상하게 운이 꼬인 것인지, 전쟁에 참가하는 그들은 대부분 적군으로 만났다.
용병들의 생활이 원래 그러하다.
오늘은 적이 내일은 같은 편이 될 수가 있었다. 누군가 돈만 많이 준다면 얼마든지 주인을 바꿔 탄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족속이 ‘용병’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그들은 신은 ‘돈’이다.
돈을 쫓는 것뿐이었다. 그것가지고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용병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데이 치킨 용병단과 미찌코 런던 용병단은 서로 악연이 너무 깊었다.
적어도 열 차례 이상.
수많은 용병단과, 수많은 전쟁터에서 같은 용병단이 적으로 만날 확률은 지극히 적었다. 많아 봤자 서너 번이 다다. 그들이 적으로 조우한 횟수는 우연치곤 너무 많았다.
운이 없어서 그렇다고 치고-
적으로 만난 덕분에 그들은 서로를 너무 많이 죽였다.
한 번은 미찌코 런던 용병단 함정에 빠져서 먼데이 치킨 용병단이 전멸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라이스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로 그들은 서로의 이름만 들어도 이를 박박 가는 적이 되었다.
다만 적이지만 공공장소에서 검을 휘두를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영주의 성 안에서 칼을 휘두른다는 것은 반역을 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싸움을 하게 된 이유.
라이스는 용병의 배를 푹 찌르고는 가볍게 빼냈다. 검에 묻은 피를 털고서 압둘 자바를 향해 웃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않지. 오늘에야 네 목을 날릴 수가 있겠구나.”
“미친놈. 그게 가능할 듯싶으냐. 여긴 시그널 자작 영지야. 시그널 자작은 분명 네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네가 살아남을 길이 있다고 보느냐?”
“당연하지.”
“당연해?”
“이제부터 내가 모시게 된 분은 시그널 자작 따위는 비교도 안 되게 위대하신 분이시거든.”
압둘 자바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름 인정을 했던 라이벌인데…… 갑자기 정신이 헤까닥 맛이 간 것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미친놈. 이곳에 600명이 넘는 용병이 모여 있다. 먼데이 치킨 용병단이 꽤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너희들만으로 450명이나 되는 용병들을 쓰러트릴 수 있겠나?”
“내가 왜 이들을 다 쓰러트려야 하지?”
“우리 모두에게 싸움을 걸었잖아!”
“나는 너희를 전부 쓰러트리기 위해서 싸움을 건 것이 아니야.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다. 너희 몇몇을 제물로 바치고 내 존재에 대해서 각인을 받겠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도 들어는 봤겠지?”
“뭘?”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에 대해서.”
“주,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
“그래, 그분이 지금 이곳에 와 계신다.”
“서, 설마.”
라이스는 피식 웃으면서 레기온을 바라봤다.
압둘 자바도 그의 시선을 따라서 움직였다. 시선의 끝에는 철갑을 입은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염이 더러운 사내가 손바닥을 비벼 댔다.
“돈데크만 님이 어디에 있는데?”
“무식한 새끼. 안 보이나?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 님과 연쇄 살인마 잭 니처 님이.”
압둘 자바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돈데크만과 잭 니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딱 한 번 돈데크만과 잭 니처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기에 보이는 철갑을 입은 사내는 결코 아니다. 맹세할 수가 있다.
“너는 속고 있는 거야! 저 자식들은 사기꾼이라고!”
“헛소리!”
그때였다.
빠가가가가가각!
엄청난 타격음이 들리면서 레기온에게 달려들던 용병들이…….
수십 미터나 튕겨져 성벽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하도 말이 안 되는 광경이라 사투를 벌이던 용병들의 검이 일순간 멎었다.
* * *
-이게 웬 난리임?
마크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용병들이 칼부림을 시작했다.
무릎을 꿇더니, 울더니, 칼을 들고 다른 패거리들과 전투를 한다.
부하직원이 있었다면 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얘들 왜 이래?
-덕분에 미즈셋 구출작전은 쉬워진 듯함.
레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골치가 아픈 것은 저 많은 용병들이 적으로 돌아섰을 때였다. 그때는 대학살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지경까지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웬걸.
용병들이 지들끼리 치고받고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참에 성으로 잠입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서두르셈.
좋아. 가자고.
철컹철컹.
레기온은 성을 향해서 움직였다.
천천히.
그는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너무도 느린 움직임이었다. 주변은 빠르게 휙휙 날아다니고 그만 슬로우 모션으로 딱딱 끊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더 빨리 못 움직임?
쓰벌, 존나 힘들어. 근육이 찢어질 것 같다. 경량화 마법 좀 사용하면 안 되겠냐?
-의지박약임.
나쁜 쉐끼.
레기온은 사력을 다해서 뛰었다.
철컥철컥.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걷는 속도보다 느렸다. 그를 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저 자식을 죽여! 꽤 갑이 나가는 갑주를 걸치고 있다!”
용병들 세 명이서 레기온을 발견했다.
레기온의 철갑에서는 엄청난 살기가 자동발산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전이 벌어진 상태에서는 살기가 무감각해지는 모양이었다.
겁도 없이 용병들이 칼을 들고 레기온을 향해서 내리쳤다.
캉! 캉! 캉!
강력한 중철도 만들어진 철갑이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쉽게 잘라 낼 수가 없었다.
느려진 레기온은 용병들이 휘두르는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내야만 했다.
캉! 캉! 캉!
“이 새끼, 졸라 느리다. 역시 덩치 큰 놈들은 무섭지 않다니까. 어쭈, 휘두르는 것 봐라. 파리도 그 칼에는 맞지 않겠다.”
“방어력이 너무 세. 도저히 뚫을 수가 없어!”
“누가 해머 없나? 해머 있는 사람 좀 이리 와 봐! 칼이 안 든다면 부숴 버리자!”
용병들은 레기온이 만만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레기온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칼을 마구 휘둘렀다.
그럼에도 레기온은 그들을 쉽게 잡지 못했다.
당장 투구를 벗고 저 새끼들의 이마에 아이언 헤드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혹은 ‘뇌격!’을.
뇌격은 강제로 봉인을 당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번 사용을 했다가 감전이 돼서 죽는 줄 알았다. 이놈의 갑주는 전기를 아주 잘 빨아들인다.
다크 엘프 마을을 떠나기 전에 샌까가 말했다.
“천둥이 칠 때는 밖에 나가지 말게. 이 갑옷은 피뢰침 역할을 하네.”
정말! 욕만 나온다.
덕분에 레기온은 단 하나뿐인 액티브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으아아아악! 짜증 나!”
레기온의 광포한 목소리가 뱃속 깊숙한 곳에서 터졌다. 동시에 그는 비데가 개량을 해 준 철검을 휘둘렀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철검의 면에 맞은 세 명의 용병들이 거의 백 미터 넘게 떨어진 성까지 날아가서 부딪친 것이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레기온의 일격에 연무장에 있는 모두가 검을 멈췄다.